뜬금없이 화성악 이론을 떠올린 건 주말에 본 ‘나는 가수다’ 때문입니다. 박정현이 부른 ‘우연히’는 블루노트가 그득한 교과서적인 블루스 곡이죠. 문제는 이 블루노트가 정확히 반음을 내리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4분의 1과 반음 사이 어디쯤, 숫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애매한 그 어딘가가 바로 블루노트입니다.
박정현은 이 블루노트를 내는 데 천재적인 감각을 가진 가수입니다. 같은 무대에 서는 김조한도 마찬가지죠. 이들의 애드리브가 ‘원단’ 흑인음악과 훨씬 비슷하게 들리는 것도 본능적으로 이 음을 미묘하게 걸치며 블루스 음계 위를 자유자재로 뛰어다니기 때문입니다. 그 대신 블루스 음계를 국악의 5음계에 접목한 신중현의 ‘미인’이나 송창식의 ‘담배가게 아가씨’는 김범수나 윤도현이 불러야 제맛이 날 겁니다.
이유가 뭘까. 아무리 생각해도 박정현과 김조한이 어린 시절을 미국에서 보냈다는 사실과 떼어놓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음악이라는 건 어쨌든 감성이고, 성장기에 그런 음악, 그런 소리를 얼마나 듣고 따라 불렀는지가 엄청난 영향을 끼치죠. 이건 흡사 영어의 R 발음과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네요. 영어 공부를 아무리 해봐야 미묘한 차이를 넘기 어렵다는 점에서 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