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부터 비단을 유난히 좋아했어요. 은은한 광택과 고운 결을 마주하면 지금도 설레요. 빛깔 고운 비단을 재료로 한 땀, 한 땀 공들여 한복을 지으면 그 우아한 맵시에 반해 가슴이 벅차요.”
한복연구가 박술녀(54) 씨는 모시 적삼을 입고 있었다. 바느질에 길들여진 손가락 마디마디에는 굳은살이 박혀 있었다. 단아한 옷맵시와 달리 손은 투박해 보이지만 수많은 명품 한복이 이 손끝에서 만들어졌다.
“한복은 재봉틀로 박아 단시간에 대량생산하는 기성복과 차원이 달라요. 장인의 정성과 열정이 오롯이 깃든, 수공으로 만든 한복이야말로 진정한 명품이죠.”
그는 한복이 명절이나 경조사에만 입는 옷이 된 것을 안타까워하며 말을 이었다.
어릴 적부터 유별난 한복 사랑…한복 짓기는 내 운명
“한복을 만드는 것을 ‘짓는다’고 표현해요. 완성하기까지 많은 시간과 공력이 들어서일 거예요. 짓는다는 말은 아무 데나 붙이지 않아요. 인간의 삶에 꼭 필요한 밥을 ‘짓고’ 안식처인 집도 ‘짓고’요. 27년간 외길을 걸을 수 있었던 것은 한복이 지닌 느림의 미학에 매료된 덕분이죠.”
그는 충남 서천에서 7남매 중 셋째 딸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한복 사랑이 유별났다. 어머니와 함께 시장에 가면 한복집 앞에서 발을 떼지 못했다. 어머니 한복이 예뻐서 늘 만지작거리고 몰래 입어보기도 했다. 그런데 한복이 겉은 화려하지만 입기엔 영 불편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한복을 입기 편하게 고쳐보겠다고 마음먹은 게. 집안 형편 탓에 돈을 벌어야 했어요. 동생들을 위해 천안의 방직공장에서 일하다 스물네 살에 상경해 한복 짓는 일을 배웠죠.”
왜 하필 한복이었느냐고 묻자 “운명인 것 같다”는 답이 돌아왔다.
“양장 기술도 배웠지만 애초부터 목표는 한복을 짓는 거였어요. 어머니께서 ‘한복은 우리나라가 건재한 동안에는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거든요. 서울에 올라와 아침 9시부터 새벽 4시까지 일했어요. 걸핏하면 보일러가 고장 나는 추운 방에서 힘겹게 바느질을 배웠죠.”
그의 스승은 한복의 전설로 불리는 이리자 선생이다. 그는 스물여섯에 이리자 선생 문하생이 됐다. 남보다 늦게 시작한 만큼 잠을 줄여 두 배, 세 배 일했다. ‘10년을 입어도 모양이 변치 않는 한복을 짓겠다’는 신념이 그때 싹텄다. 바느질 솜씨는 문하생 18명 가운데서 도드라졌다. 그는 5년 만에 숍을 내고 독립했다. 1986년 서울 광진구 군자동에 문을 연 33㎡ 남짓한 한복집이 그곳이다.
“숍을 열자마자 입소문이 나 일감이 밀려들었어요. 출산 나흘 만에 젖먹이 녀석을 떼어내고 한복을 지었을 만큼 일에 미쳐 있었죠. 칭얼대는 아기를 큰 통에 넣어둔 채 바느질에 매달린 적도 있어요. 빵점 엄마였죠.”
그의 한복집은 군자동 일대에서 ‘한복을 참 잘 만드는 집’으로 소문났다. 풍문을 듣고 하루는 KBS 아나운서들이 몰려왔다. 한복을 빌리기 위해서였다. 그중에는 이금희 아나운서도 있었다.
“아나운서들이 내가 지은 한복을 입고 KBS ‘국악한마당’에 출연했는데 반응이 좋았어요. 그때부터 방송 협찬 제의가 빗발쳤죠. 결혼식 때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도 생겼고요.”
그는 ‘자고 일어날 때마다’ 유명해졌다. 군자동의 작은 한복집은 개업 11년 만에 강남구 청담동의 496㎡ 규모 매장으로 탈바꿈했고, 2005년에는 ‘청담동 사옥’이 문을 열었다. 지하 1층, 지상 4층에 1154㎡ 규모다.
해외 스타들도 “한복, 원더풀”
“처음에는 1,2층을 매장으로 사용했는데 지금은 1층만 써요. 방만하게 운영해선 안 되겠단 생각이 들어서요. 사람들은 제가 화려하게 살 거라고 여기지만 실은 그렇지 않아요. 운전과 홍보는 물론, 고객 관리도 직접 해요. 강남에서 유일하게 외부 컨설팅 안 받고, 살아남은 한복집이죠.”
그는 1년 365일 두 대의 휴대전화와 스케줄 다이어리를 끼고 다닌다. 분실을 우려해 끈으로 몸에 연결해 들고 다니는 휴대전화에는 일반인부터 연예인, 정·재계 유명 인사까지 고객 전화번호가 빼곡하다. 다이어리도 공란을 찾기 어려울 만큼 스케줄로 꽉 차 있다.
“매장을 찾는 분을 일일이 챙기는 건 기본 중 기본이에요. 아무리 바빠도 바느질을 꼼꼼히 챙겨야 하는 것처럼, 우리가 지은 한복을 입고 결혼하는 고객의 결혼식에도 반드시 참석해요.”
그가 빼놓지 않는 일과가 있다. 오전 8시 30분까지 머리를 다듬고 메이크업을 마치는 일, 저녁 9시 헬스클럽에 가는 일이 그것이다.
“아침 일찍 머리를 단장하고 화장하는 건 20년 가까이 된 습관이에요. 숨쉬기도 귀찮아하던 사람인데, 운동도 열심히 하고 있어요. 일주일에 6일, 날마다 3시간씩 운동해요. 6년 전 갑상샘암 수술을 한 후 건강의 중요성을 절실히 느꼈어요. 좋아하는 일을 계속하려면 내 몸은 내가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몸이 고달파도, 마음이 싱숭생숭해도 한복을 향한 열정은 한결같다. 그는 “갑상샘암 수술을 받으려고 병원에 누워 있을 때도 남들은 내 건강을 걱정해 우는데, 정작 나는 창고에 쌓인 원단 때문에 울었다”며 “내 몸보다 버려질 원단 생각에 가슴 아팠다”고 말했다.
“수술 후에도 계속 약을 먹고 있어요. 마음을 좀 느긋하게 먹어야 하는데 잘 안 돼요. 사소한 것부터 큰일까지 직접 챙겨야 직성이 풀려요. 패션쇼에 설 연예인도 일일이 전화해 직접 섭외해요.”
매년 한 차례 호텔을 빌려 한복패션쇼를 연다. 그때마다 연예인이 모델로 나섰다. 모두 그가 지은 한복을 입으면서 가까워진 사람들이다. 장동건, 김희선, 배용준, 이병헌, 비 같은 한류스타를 비롯해 박정수, 김수미, 김보연, 박해미 등이 ‘박술녀 한복 팬’으로 유명하다. 신성일, 엄앵란, 사미자, 조여정, 장서희, 윤손하, 정보석, 장윤석, 이경실, 이승연 등도 한복 입을 일이 있을 때마다 그를 찾는다.
“연예계 스타에게만 한복을 협찬하는 건 아니에요. 피겨 여왕 김연아, 프로골퍼 박세리와 신지애, 우주인 이소연도 국내외 큰 행사에서 내가 지은 한복을 입고 무대에 섰어요.”
“환경을 지키는 일, 손수건 사용부터 시작”
그는 방한한 해외 스타에게도 한복을 선물해왔다. 미국의 인기가수 브리트니 스피어스를 비롯해 할리우드 배우 앤젤리나 졸리, 피아니스트 조지 윈스턴, 영국의 싱어송라이터 미카, 어머니가 한국인인 미국의 R·B가수 에이머리 등이 한복을 선물로 받았다. 이들은 하나같이 한복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브리트니 스피어스는 미국으로 돌아가 “무척 아름다운 옷을 선물해줘 고맙다”는 편지를 보내왔다.
“생색내려고 한복을 선물한 건 아니지만 해외 스타가 흡족해하는 모습을 보면 한복인의 한 사람으로서 뿌듯해요. 가장 기억에 남는 스타는 브리트니 스피어스예요. ‘핑크 공주’ 스타일이라기에 족두리와 저고리, 치마를 분홍색으로 맞춰줬더니 좋아서 어쩔 줄 모르더군요.”
지난해엔 외국인에게 한복을 입힐 기회가 많았다. 서울 G20 정상회의의 성공적 개최를 염원하는 국궁페스티벌에서 주한대사관 부인들이 입은 한복을 제작했고, 서울국제경제자문단총회(SIBAC)에 참석한 외국인 최고경영자(CEO)들에게도 한복을 협찬한 것. 또 한국과 아랍에미리트(UAE) 수교 20주년을 기념해 두바이와 아부다비에서 열린 ‘한국문화의 밤, 한복쇼’에도 참가했다.
“외국인의 반응이 기대 이상이었어요. 한복을 처음 입어본 외국인도, 객석에서 쇼를 감상하던 관객도 ‘뷰티풀(Beautiful)’을 연발하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죠. 처음에는 인사치레라고 생각했는데 한복을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에서 진정성을 읽을 수 있었어요. 이제 한복 가치를 재평가할 때가 됐어요. 전통의상이라는 틀에 가두지 말고 문화유산으로서 만방에 알려야 해요.”
그는 8월 16일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한복패션쇼를 연다. 박정수, 금보라, 김수미, 박준금, 선우용녀를 비롯한 중견배우와 이은희, 소유진, 쥬얼리, 카라 같은 스타가 모델로 나선다. 쇼의 모토는 ‘환경을 지키는 일, 손수건부터 시작합니다’.
“1회용품 쓰지 말기를 실천해 환경을 지키자는 뜻이에요. 평소 바느질하면서 TV를 즐겨 보는데 드라마 주인공이 티슈로 눈물을 훔치는 장면을 볼 때마다 아쉬웠어요. 손수건 한 장만 있으면 티슈를 낭비하지 않아도 되잖아요. 작은 실천이 모이면 기적을 만들 수 있어요.”
한복연구가 박술녀(54) 씨는 모시 적삼을 입고 있었다. 바느질에 길들여진 손가락 마디마디에는 굳은살이 박혀 있었다. 단아한 옷맵시와 달리 손은 투박해 보이지만 수많은 명품 한복이 이 손끝에서 만들어졌다.
“한복은 재봉틀로 박아 단시간에 대량생산하는 기성복과 차원이 달라요. 장인의 정성과 열정이 오롯이 깃든, 수공으로 만든 한복이야말로 진정한 명품이죠.”
그는 한복이 명절이나 경조사에만 입는 옷이 된 것을 안타까워하며 말을 이었다.
어릴 적부터 유별난 한복 사랑…한복 짓기는 내 운명
“한복을 만드는 것을 ‘짓는다’고 표현해요. 완성하기까지 많은 시간과 공력이 들어서일 거예요. 짓는다는 말은 아무 데나 붙이지 않아요. 인간의 삶에 꼭 필요한 밥을 ‘짓고’ 안식처인 집도 ‘짓고’요. 27년간 외길을 걸을 수 있었던 것은 한복이 지닌 느림의 미학에 매료된 덕분이죠.”
그는 충남 서천에서 7남매 중 셋째 딸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한복 사랑이 유별났다. 어머니와 함께 시장에 가면 한복집 앞에서 발을 떼지 못했다. 어머니 한복이 예뻐서 늘 만지작거리고 몰래 입어보기도 했다. 그런데 한복이 겉은 화려하지만 입기엔 영 불편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한복을 입기 편하게 고쳐보겠다고 마음먹은 게. 집안 형편 탓에 돈을 벌어야 했어요. 동생들을 위해 천안의 방직공장에서 일하다 스물네 살에 상경해 한복 짓는 일을 배웠죠.”
왜 하필 한복이었느냐고 묻자 “운명인 것 같다”는 답이 돌아왔다.
“양장 기술도 배웠지만 애초부터 목표는 한복을 짓는 거였어요. 어머니께서 ‘한복은 우리나라가 건재한 동안에는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거든요. 서울에 올라와 아침 9시부터 새벽 4시까지 일했어요. 걸핏하면 보일러가 고장 나는 추운 방에서 힘겹게 바느질을 배웠죠.”
그의 스승은 한복의 전설로 불리는 이리자 선생이다. 그는 스물여섯에 이리자 선생 문하생이 됐다. 남보다 늦게 시작한 만큼 잠을 줄여 두 배, 세 배 일했다. ‘10년을 입어도 모양이 변치 않는 한복을 짓겠다’는 신념이 그때 싹텄다. 바느질 솜씨는 문하생 18명 가운데서 도드라졌다. 그는 5년 만에 숍을 내고 독립했다. 1986년 서울 광진구 군자동에 문을 연 33㎡ 남짓한 한복집이 그곳이다.
“숍을 열자마자 입소문이 나 일감이 밀려들었어요. 출산 나흘 만에 젖먹이 녀석을 떼어내고 한복을 지었을 만큼 일에 미쳐 있었죠. 칭얼대는 아기를 큰 통에 넣어둔 채 바느질에 매달린 적도 있어요. 빵점 엄마였죠.”
그의 한복집은 군자동 일대에서 ‘한복을 참 잘 만드는 집’으로 소문났다. 풍문을 듣고 하루는 KBS 아나운서들이 몰려왔다. 한복을 빌리기 위해서였다. 그중에는 이금희 아나운서도 있었다.
“아나운서들이 내가 지은 한복을 입고 KBS ‘국악한마당’에 출연했는데 반응이 좋았어요. 그때부터 방송 협찬 제의가 빗발쳤죠. 결혼식 때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도 생겼고요.”
그는 ‘자고 일어날 때마다’ 유명해졌다. 군자동의 작은 한복집은 개업 11년 만에 강남구 청담동의 496㎡ 규모 매장으로 탈바꿈했고, 2005년에는 ‘청담동 사옥’이 문을 열었다. 지하 1층, 지상 4층에 1154㎡ 규모다.
‘박술녀 한복’을 입은 가수 브리트니 스피어스, 피겨 스케이터 김연아, 피아니스트 조지 윈스턴, 성악가 폴 포츠(왼쪽부터).
“처음에는 1,2층을 매장으로 사용했는데 지금은 1층만 써요. 방만하게 운영해선 안 되겠단 생각이 들어서요. 사람들은 제가 화려하게 살 거라고 여기지만 실은 그렇지 않아요. 운전과 홍보는 물론, 고객 관리도 직접 해요. 강남에서 유일하게 외부 컨설팅 안 받고, 살아남은 한복집이죠.”
그는 1년 365일 두 대의 휴대전화와 스케줄 다이어리를 끼고 다닌다. 분실을 우려해 끈으로 몸에 연결해 들고 다니는 휴대전화에는 일반인부터 연예인, 정·재계 유명 인사까지 고객 전화번호가 빼곡하다. 다이어리도 공란을 찾기 어려울 만큼 스케줄로 꽉 차 있다.
“매장을 찾는 분을 일일이 챙기는 건 기본 중 기본이에요. 아무리 바빠도 바느질을 꼼꼼히 챙겨야 하는 것처럼, 우리가 지은 한복을 입고 결혼하는 고객의 결혼식에도 반드시 참석해요.”
그가 빼놓지 않는 일과가 있다. 오전 8시 30분까지 머리를 다듬고 메이크업을 마치는 일, 저녁 9시 헬스클럽에 가는 일이 그것이다.
“아침 일찍 머리를 단장하고 화장하는 건 20년 가까이 된 습관이에요. 숨쉬기도 귀찮아하던 사람인데, 운동도 열심히 하고 있어요. 일주일에 6일, 날마다 3시간씩 운동해요. 6년 전 갑상샘암 수술을 한 후 건강의 중요성을 절실히 느꼈어요. 좋아하는 일을 계속하려면 내 몸은 내가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몸이 고달파도, 마음이 싱숭생숭해도 한복을 향한 열정은 한결같다. 그는 “갑상샘암 수술을 받으려고 병원에 누워 있을 때도 남들은 내 건강을 걱정해 우는데, 정작 나는 창고에 쌓인 원단 때문에 울었다”며 “내 몸보다 버려질 원단 생각에 가슴 아팠다”고 말했다.
“수술 후에도 계속 약을 먹고 있어요. 마음을 좀 느긋하게 먹어야 하는데 잘 안 돼요. 사소한 것부터 큰일까지 직접 챙겨야 직성이 풀려요. 패션쇼에 설 연예인도 일일이 전화해 직접 섭외해요.”
매년 한 차례 호텔을 빌려 한복패션쇼를 연다. 그때마다 연예인이 모델로 나섰다. 모두 그가 지은 한복을 입으면서 가까워진 사람들이다. 장동건, 김희선, 배용준, 이병헌, 비 같은 한류스타를 비롯해 박정수, 김수미, 김보연, 박해미 등이 ‘박술녀 한복 팬’으로 유명하다. 신성일, 엄앵란, 사미자, 조여정, 장서희, 윤손하, 정보석, 장윤석, 이경실, 이승연 등도 한복 입을 일이 있을 때마다 그를 찾는다.
“연예계 스타에게만 한복을 협찬하는 건 아니에요. 피겨 여왕 김연아, 프로골퍼 박세리와 신지애, 우주인 이소연도 국내외 큰 행사에서 내가 지은 한복을 입고 무대에 섰어요.”
“환경을 지키는 일, 손수건 사용부터 시작”
그는 방한한 해외 스타에게도 한복을 선물해왔다. 미국의 인기가수 브리트니 스피어스를 비롯해 할리우드 배우 앤젤리나 졸리, 피아니스트 조지 윈스턴, 영국의 싱어송라이터 미카, 어머니가 한국인인 미국의 R·B가수 에이머리 등이 한복을 선물로 받았다. 이들은 하나같이 한복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브리트니 스피어스는 미국으로 돌아가 “무척 아름다운 옷을 선물해줘 고맙다”는 편지를 보내왔다.
“생색내려고 한복을 선물한 건 아니지만 해외 스타가 흡족해하는 모습을 보면 한복인의 한 사람으로서 뿌듯해요. 가장 기억에 남는 스타는 브리트니 스피어스예요. ‘핑크 공주’ 스타일이라기에 족두리와 저고리, 치마를 분홍색으로 맞춰줬더니 좋아서 어쩔 줄 모르더군요.”
지난해엔 외국인에게 한복을 입힐 기회가 많았다. 서울 G20 정상회의의 성공적 개최를 염원하는 국궁페스티벌에서 주한대사관 부인들이 입은 한복을 제작했고, 서울국제경제자문단총회(SIBAC)에 참석한 외국인 최고경영자(CEO)들에게도 한복을 협찬한 것. 또 한국과 아랍에미리트(UAE) 수교 20주년을 기념해 두바이와 아부다비에서 열린 ‘한국문화의 밤, 한복쇼’에도 참가했다.
“외국인의 반응이 기대 이상이었어요. 한복을 처음 입어본 외국인도, 객석에서 쇼를 감상하던 관객도 ‘뷰티풀(Beautiful)’을 연발하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죠. 처음에는 인사치레라고 생각했는데 한복을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에서 진정성을 읽을 수 있었어요. 이제 한복 가치를 재평가할 때가 됐어요. 전통의상이라는 틀에 가두지 말고 문화유산으로서 만방에 알려야 해요.”
그는 8월 16일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한복패션쇼를 연다. 박정수, 금보라, 김수미, 박준금, 선우용녀를 비롯한 중견배우와 이은희, 소유진, 쥬얼리, 카라 같은 스타가 모델로 나선다. 쇼의 모토는 ‘환경을 지키는 일, 손수건부터 시작합니다’.
“1회용품 쓰지 말기를 실천해 환경을 지키자는 뜻이에요. 평소 바느질하면서 TV를 즐겨 보는데 드라마 주인공이 티슈로 눈물을 훔치는 장면을 볼 때마다 아쉬웠어요. 손수건 한 장만 있으면 티슈를 낭비하지 않아도 되잖아요. 작은 실천이 모이면 기적을 만들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