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밀 겉껍데기가 들어간 전통 막국수다. 겉껍데기가 하는 구실은 시각적 만족감(?) 제공밖에 없다.
얼마 전 강원도 홍천 중앙시장의 방앗간에서 막국수에 대한 정보를 몇 가지 얻었다. 방앗간 입구에 놓인 막국수용 분말을 보며 “막국숫집은 다들 이거 쓰죠?”라고 했더니 여주인이 빙그레 웃으며 “다들 그 면에 익숙하잖아요”라고 대답했다. 제분공장에서는 밀가루와 전분을 60~70% 함유한, 그러니까 메밀은 조금 든 막국수용 분말 제품을 내놓는데 대부분의 막국수는 이것으로 만든다. 식당 간판에 ‘메밀가루를 직접 내린’이라고 쓰지 않고 ‘직접 뽑은 막국수’라고 써놓은 것도 이 때문이다. 요즘엔 메밀 30~40%면 그래도 괜찮은 편이다. 메밀은 극소량이고 태운 보리 냄새 풀풀 나는 막국수를 만나는 일도 흔하다.
방앗간 여주인은 메밀에 대해 이것저것 캐묻는 나에게 좋은 식당이 있다며 한 곳 알려줬다.
“우리 방앗간에서 메밀을 빻는데 그 가루만 가져가 면을 뽑는 식당이 있어다. 100% 메밀을 고집하는 막국숫집이죠. 그런데 입에 맞을지 모르겠네요.”
메밀 100%인 면은 힘이 없어 씹는 맛이 덜하므로 그 식당을 추천하면서도 조심스러워했다.
소비자는 막국수와 평양냉면을 동떨어진 음식으로 생각하지만 따지고 보면 한 계통이다. 메밀로 국수를 내려 동치미 등에 말아 먹는 음식이 조선시대에 전국적으로 있었고, 근대화 시기엔 강원도 막국수, 평양냉면이라는 이름으로 외식시장에 등장했다.
막국수와 평양냉면은 면 내리는 방식이 똑같다. 메밀가루에 밀가루나 전분을 적절히 배합해 반죽한 후 국수틀에 넣어 눌러 뽑는다. 그런데 식당의 막국수와 평양냉면은 대부분 면 색깔이 다르다. 막국수는 검고 평양냉면은 희묽다. 이런 차이는 ‘메밀의 겉껍데기를 넣었느냐 안 넣었느냐’에서 온다. 그러니까 막국수가 검은 것은 메밀의 겉껍데기가 들어가기 때문이다. 평양냉면은 겉껍데기를 넣지 않는다(평양냉면집 중 겉껍데기를 조금 넣는 곳도 있다. ‘이건 메밀이다’ 하는 기분을 주려는 차원이다).
‘막국수’라는 이름은 메밀 겉껍데기가 들어간 국수와 관련 있다. 사람들은 국수를 ‘마구’ 뽑았다, ‘금방’ 뽑았다 해서 ‘막’이라는 말이 붙은 것이라 하는데, 국수를 뽑는 방식에 ‘마구 하는 일’은 없으며, ‘금방 먹어야 하는 것’은 다른 메밀국수와 똑같다. 메밀은 원래 겉껍데기를 벗기고 난 다음 분말로 내는 것이 기본이다. 겉껍데기 벗긴 메밀은 메밀쌀이라 하는데 집에서는 보통 이 상태로 보관했다가 죽, 묵, 국수를 해 먹었다. 메밀 겉껍데기를 벗길 것도 없이 그냥 분쇄해 국수를 내릴 수도 있다. 이런 국수를 ‘메밀을 마구 분쇄했다’ 해서 막국수라 불렀고, 이것이 강원도 메밀국수 이름으로 굳은 것이다.
방앗간 여주인이 소개해준 막국숫집에 기대를 잔뜩 안고 갔다. 100% 메밀국수, 그것도 겉껍데기는 완전히 제거한 국수는 맞았다. 이런 메밀국수는 서울의 유명 평양냉면집에서 ‘순면’이라는 이름으로 판다. 메밀국수 마니아는 이런 순면 먹는 것을 즐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막국숫집에선 가장 좋은 면에 들척지근하고 시큼한 구연산 맛이 풀풀 나는 시판 육수를 사용했다. 최근 싸구려 공장 육수가 전국 막국숫집에 온통 번진 사실에 한숨이 나왔다. 요즘 막국숫집 육수가 이렇다. 막국수란 이름을 다시 해석하자면 ‘공장의 육수에 마구 말아 먹는 메밀국수’ 정도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