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99

..

출산율 ↓ 물가 ↑ 우표로 보는 ‘불편한 진실’

인플레이션 공포

  • 김동엽 미래에셋자산운용 은퇴교육센터장 dy.kim@miraeasset.com

    입력2011-08-08 11:25: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출산율 ↓ 물가 ↑ 우표로 보는 ‘불편한 진실’

    1973년 12월 주부클럽연합회가 광화문 지하도에서 ‘74년은 임신 안하는 해’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7월 말 영화를 보러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를 지나다 우연히 ‘우표전시회’를 마주쳤다. 마침 시간 여유도 있고 해서 잠시 옛 추억에 젖어볼 심산으로 전시회장 문을 열고 들어갔다. 필자가 학교를 다니던 1970~80년대만 해도, 취미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우표수집’이라고 답하는 친구가 많았다. 당시만 해도 새로운 우표를 발매하는 날이면 우체국 앞은 새벽부터 우표를 사려는 사람으로 장사진을 이뤘다. e메일이나 메신저가 발달하면서 손수 편지를 쓰는 사람이 줄었고, 우표수집 열풍도 사라졌다. 하지만 우리는 우표를 통해 과거 어떤 사건이 있었는지, 물가는 얼마나 올랐는지 등 시대상의 변화를 엿볼 수 있다.

    우표전시회장을 둘러보던 필자의 관심을 가장 먼저 끈 것은 한국 가족계획 변천사를 다룬 우표다. 은퇴를 얘기할 때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저출산’ 문제다. 출산율 저하로 노인을 부양할 경제활동 인구가 줄어들었다. 그런데 출산율 저하가 자연적 현상이 아니라 ‘피나는 노력의 산물’이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과거에 인위적으로 인구를 조작한 대가를 치르는지도 모른다.

    한국에서 ‘가족계획’이라는 말이 처음 등장한 때는 언제일까. 정부가 본격적인 산아제한 정책을 실시한 것은 1965년. 당시 한국 가임여성의 1인당 출산율은 5명이 넘었다. 이에 정부는 가난의 원인을 높은 출산율로 지목한 뒤 어떻게든 이를 낮추고자 ‘가족계획의 달’을 지정하고 기념우표를 발행했다. 우표 그림에서 아이가 적은 가정은 좋은 집에서 살고, 아이가 많은 가정은 초가집에 살고 있다. 그즈음 ‘덮어 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 못 면한다’라는 원색적 표어가 유행했던 것만 봐도, 출산율을 떨어뜨리려는 정부 의지가 얼마나 강력했는지 미뤄볼 수 있다(그림 1).

    산아제한을 위한 노력은 이후에도 노골적으로 이어졌다. 1978년에는 ‘둘만 낳자’라는 문구를 넣은 우표를 발행했다. 당시 가족계획 표어는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라는 것이었다. 둘만 낳자는 표어 덕분인지 1970년대 말 한국 가임여성 출산율은 2.6명 수준까지 떨어졌다(그림 2).

    1980년대 들어 가족계획 효과가 가시적으로 나타나자, 정부는 한걸음 더 나아갔다. 둘도 많다며 하나만 낳으라고 독려한 것이다. 우표에 ‘하나 낳아 알뜰살뜰’이라는 표현이 등장한 것도 이때다. 뿌리 깊은 남아 선호가 높은 출산율의 원인이라고 생각했는지 예쁘게 웃는 딸을 모델로 내세웠다.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는 표어가 유행했다. 가임여성 출산율은 1990년대 말 1.6명 수준으로 떨어졌다(그림 3).



    출산율 ↓ 물가 ↑ 우표로 보는 ‘불편한 진실’

    정부는 높은 출산율을 낮추고자 우표를 발행했다.

    격세지감이랄까. 한국 여성 출산율이 1.2명 수준까지 급락하자 오히려 비상이 걸렸다. 인구가 많은 것도 문제지만 일정 수준 이하로 줄어드는 것은 더 큰 문제다. 2000년 이전까지는 적극적인 산아제한 정책으로 ‘유년부양비’를 낮추면서 경제성장을 도모했다. 산아제한으로 경제활동 인구가 부양해야 할 유년인구를 줄인 것이다. 최근 고도 성장기를 이끌어온 이들이 은퇴하기 시작하고 산아제한 정책으로 인구수가 줄어든 세대가 경제활동을 시작하면서 ‘노년부양비’가 늘고 있다. 노후를 스스로 준비해야 하는 까닭이다.

    2000년 이후부터 가족계획이 산아제한에서 출산장려로 급선회했다. ‘아빠, 혼자는 싫어요, 엄마! 저도 동생을 갖고 싶어요’라는 표어가 등장했다. 2008년 발행한 ‘아이를 키우는 행복한 나라’ 우표는 ‘아이가 없으면 웃음도 없다’면서 저출산의 재앙을 경고했다(그림 4).

    우표 한 장에 얼마나 할까. 편지 쓰는 사람이 줄어들면서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사람도 드물어졌다. 정성스레 손으로 쓴 뒤 봉투에 넣고 우표를 붙여 보낸 편지를 보기가 쉽지 않다. 우편요금은 우편물의 무게와 배송 속도에 따라 달라지는데, 5~25g의 규격 우편물이라면 250원짜리 우표를 붙이면 된다. 우표란 우편요금 납부를 증명해주는 증표다.

    가족계획 우표를 통해 우편요금을 살펴보면, 1965년 4원이던 것이 2008년 250원으로 올랐다. 복리로 계산하면 매년 9.8%씩 상승한 셈이다. 가격은 올랐어도 우표 한 장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규격 우편물 한 통을 부치는 것이다. 물가가 많이 올랐다. 2011년엔 1965년 발행한 4원짜리 우표 62장을 붙여야 편지 한 통을 보낼 수 있다.

    인플레이션은 화폐가 가진 구매력을 떨어뜨린다. 우편요금처럼 물가가 매년 10% 가까이 오른다고 가정하면, 1000원이 가진 화폐가치는 5년 후 590원, 10년 후 349원, 20년 후 122원, 30년 후 42원으로 떨어진다. 1000원이라는 화폐에 표시한 금액은 그대로지만 인플레이션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구매력이 하락한다.

    사람들은 당장 눈앞에 벌어진 일이 아닌 경우에는 그 심각성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대표적인 예가 인플레이션이다. 과거를 회상하면서 물가가 참 많이 올랐구나 하고 느끼지만, 미래 투자계획을 세울 때는 인플레이션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는다. 이는 위험에 대한 편견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사람들은 주식이나 펀드 투자를 위험하다고 여긴다. 투자해서 큰 이익을 볼 수도 있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을 경우 투자한 돈을 잃을 수도 있다. 그러나 당장 눈앞에서 일어나는 자산 가치 하락만 위험한 것으로 볼 일은 아니다. 장기적 관점에서 인플레이션이 초래한 돈의 가치 하락도 마찬가지로 위험하다.

    출산율 ↓ 물가 ↑ 우표로 보는 ‘불편한 진실’
    노후준비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 적어도 10년 넘는 장기계획을 수립하고 준비해야 한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주가 등락보다 장기적으로 자산 가치를 갉아먹는 인플레이션에 주목해야 한다. 인플레이션은 부지불식간 노후자산을 갉아먹는다.

    오래된 우표는 어린 시절 향수뿐 아니라, 저출산 고령화가 가져온 불편한 현실도 깨닫게 해주었다.

    * 미래에셋 투자교육연구소 은퇴교육센터장으로 일반인과 근로자를 대상으로 한 은퇴교육과 퇴직연금 투자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