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저녁 본 ‘로스트 인 베이징(Lost in Beijing)’이라는 영화에서 압권은 단연 홍콩배우 량자후이(梁家輝)의 놀라온 연기였습니다. 금목걸이를 매달고 원색 와이셔츠를 풀어헤친 전형적인 중국 졸부. 1992년 영화 ‘연인(L’amant)’에서 뭇 여성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기품 넘치는 청년 부호라는 사실을 떠올리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흥미롭게도 량자후이의 그 비루하면서도 오만한 연기는 1999년 한국 영화 ‘세기말’에 출연한 배우 이호재의 그것과 닮아 있습니다. 성(性)과 도박을 팔아 일군 풍요로 욕망의 끝을 향해 달리는, 도덕률 따위는 자신과 아무런 관계가 없음을 선언하는 바로 그 얼굴 말입니다.
10년이 조금 못 되는 시간 차를 두고 한국과 중국에서 만든 영화의 이러한 기시감은 예사롭지 않습니다. 엄청난 속도로 자본주의의 정점을 향해 달려가는 사회라면 피할 수 없는 이미지라고나 할까요. ‘로스트 인 베이징’에 등장하는 가난한 노동자 부부의 슬럼가 아파트와 사장의 벤츠 승용차가 이를 단번에 보여줍니다. 그 부(富)를 아무런 정당성 없이 쌓았다는 사실이야말로 이 기시감의 가장 첨예한 리얼리즘이겠죠.
![베이징에서 길을 잃다](https://dimg.donga.com/egc/CDB/WEEKLY/Article/20/11/07/04/201107040500038_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