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화부) 장관이 3월12일 ‘광화문 문화포럼’ 초청으로 열린 ‘이명박 시대의 문화정책’ 강연에서 “이전 정부와 정치철학을 같이한 예술단체장은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취지의 ‘센’ 발언을 했다. 유 장관의 발언을 놓고 “자신의 말의 무게를 예상치 못한 순진한 발언”이라는 시각과 “치밀하게 계획된 발언으로 문화부 산하 단체장의 ‘물갈이’를 알리는 신호탄”이라는 의견이 엇갈린다.
이날 유 장관의 발언은 강연이 끝난 뒤 기자의 질문에 답변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문화부 장관이 된 후 첫 강연에서 유 장관은 연극 등 기초예술과 문화산업, 관광산업 등에 대한 정책 방향을 예정된 30분을 넘겨 45분 가까이 설명했다. 그가 밝힌 정책 방향은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원론적 차원의 큰 틀을 제시하는 수준에 그쳤다. 이 때문에 강연 후 질의 답변에서 나온 ‘자진 사퇴’ 발언은 더욱 세게 느껴졌다.
유 장관은 연극배우로서는 역대 최고의 햄릿 중 한 명으로 꼽힌다. 그렇다면 실제 업무 스타일은 어떨까? 일각에서는 우유부단한 햄릿과는 거리가 멀고, 오히려 직관에 따른 과감한 판단을 내리는 스타일에 가깝다는 평가를 한다. 유 장관의 이번 파문도 그런 스타일 때문에 예상치 못한 질문을 받고 즉석에서 답변하며 생긴 결과라는 것이다.
문화부 한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계획되지 않은 발언이었고, 이날 발언 이후 하루 종일 기자들이 장관실에 몰려들 만큼 큰 파문을 일으킬지는 장관도 예상치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당시 상황을 보면 유 장관의 발언은 이전 정부의 ‘코드 인사’ 문제에 대해 청와대 측과 어느 정도 ‘교감’이 이뤄진 상태에서 나온 것 아니냐는 시각이 많다.
답변을 시작하기에 앞서 유 장관은 전날 노무현 정권 임명 인사들의 퇴진을 거론한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의 이야기를 꺼냈다. 또 발언 도중 “혹시라도 그분들(이전 정권이 임명한 예술단체 기관장들)이 이 기사를 본다면, (이 정부와) 철학이 다르면 더 계시라고 부탁드려도 나가시지 않겠느냐”고 말해 자신의 발언 의도를 드러내기도 했다.
유 장관의 측근은 “생각이 다르면 스스로 물러나야 한다는 것이 평소 장관의 생각”이라고 했다. 유 장관도 과거 이명박 시장에 의해 서울문화재단 대표에 임명됐을 당시 ‘코드 인사’ 라는 말을 들었다. 이후 오세훈 시장으로 바뀌자 유 장관은 임기를 4~5개월 남긴 상태에서 사표를 냈다. 노 정권 때 임명된 인사들이 자신처럼 해주기를 바랐던 것일까. 전후 사정이야 어찌 됐든 유 장관은 ‘이명박 코드 심기’를 위한 ‘노무현 코드 뽑기’ 전투의 최전방에 선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