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에서 가장 힘센 집단과 사람들이 연일 벌이는 음모, 거짓의 활극 속에서 우리는 어느새 코를 막고 고개를 돌린다. 하지만 “그놈이 그놈이고 만날 반복되는 이야기니 어찌 돼도 나와 상관없다”는 생각은 안 했으면 좋겠다. “너무 더럽고 역겨워 들춰보기도 싫다”는 생각도 한참 동안은 참았으면 한다. 필시 이런 모습을 기대하는 어떤 자가 어둠 속에서 웃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하는 게 언론의 바람직한 기능 가운데 하나라고 믿는다. 펜의 힘이 칼보다 강한 이유는 진실의 빛에 기대고 있기 때문일 테니.
‘주간동아’ 613호를 만든 이들도 거대한 소용돌이 속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정보의 차별성과 깊이를 놓고 많이 고민했을 성싶다. 하지만 BBK 사건에 등장하는 여성들, 그리고 그 의혹을 둘러싼 정치권의 비난전을 보도한 기사는 게재된 순간 이미 식상한 것이 돼버렸다. 날마다 굵은 활자로 넘쳐나는 기사 속에서도 새로운 난투극과 진실게임이 벌어지고 있으니 어쩌면 당연한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김경준의 두 여인’에 관한 기사는 지난번 BBK 분석 기사를 중화하기 위한 배려일 수도 있단 생각은 필자만의 단견이리라. 아무튼 두 사람의 경력이 사건의 진실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 보이진 않았다. 천하쟁패의 와중에 전화 너머 목소리로 등장하던 여성들의 삶은 진실이 밝혀지는 대로 또 다른 굴곡을 겪을 수밖에 없겠지만.
추억은 모두 아름답다고 했던가. 젊은 시절의 고민과 방황, 치기어린 장난들을 떠올리며 쉼없이 시시덕거리다가도 잠시 깊은 상념에 잠길 시간을 만들어주는 따뜻한 동문 모임도, 정치 앞에서는 어쩔 수 없이 머릿수와 피아의 개념으로 단순화된다는 사실을 일깨워준 기사는 여러모로 씁쓸했다. 현실이 이렇듯 험난하기에 추억이 더욱 아름다운 것일까. “‘우리가 남이가!’ 정신을 벗어나야 선거는 ‘축제’가 될 수 있다”던 ‘교우’의 충고를 진정으로 되새겼으면 한다.

최강욱 변호사·법무법인 청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