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문제는 북극해가 녹는 현상에서 비롯됐다. 북극해가 급속도로 녹고 있다는 뉴스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인공위성을 동원해 조사한 바에 따르면, 1979년 이래 260만㎢의 북극해가 녹아 바다로 변했다. 이는 캘리포니아주의 6배에 이르는 넓이다. 기후학자, 환경학자들은 이로 인해 북극 생태계가 교란되고 전 세계의 해수면이 높아질 것이라 우려하고 있다.
북극 해저에 1660억 배럴 석유·천연가스 매장
그러나 올해 들어 북극해 해빙 문제는 엉뚱한 방향으로 번져나갔다. 영구적으로 얼어 있던 북극 일대가 녹으면서 북서항로가 뚫릴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북극을 통과하는 북서항로는 대서양과 태평양을 잇는 최단거리다. 이 항로가 뚫리면 파나마 운하를 통과하는 기존의 대서양-태평양 항로를 4000km 이상 단축할 수 있다. 홍콩 시사지 ‘아주주간’은 “50년 후에는 북극해가 겨울에도 얼지 않아 북서항로가 연중 개통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북서항로 문제는 북극을 둘러싼 국제분쟁의 시발점에 불과했다. 북극권 인접 국가들이 북극 심해에 묻힌 엄청난 양의 석유와 천연가스에 눈을 돌린 것이다. 지난해 말 미국 지질조사센터는 북극 해저에 무려 1660억 배럴의 석유와 천연가스가 매장돼 있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는 전 세계 석유, 천연가스 매장량의 25%에 이른다.
현재 북극은 남극과 마찬가지로 어느 국가의 영토도 아니다. 북극권 인접 국가들은 러시아 캐나다 덴마크 미국 노르웨이 5개국이다. 이 국가들은 각기 경제수역을 보유하고 있지만, 북극점을 비롯해 200만㎢에 이르는 북극해 중심지역은 5개국의 경제수역에 해당하지 않는다.
1909년 미국 탐험가 피어리가 최초로 북극점에 도달한 이후, 북극은 줄곧 쓸모없는 얼음덩어리 취급을 받았다. 심지어 미국은 82년 체결된 유엔의 해양협정에도 참가하지 않았다. 득보다 실이 많다는 미 상원의 반대 때문이었다. 그나마 덴마크가 북극권인 그린란드에 자치정부를 세울 정도의 관심을 기울인 것이 전부였다.
러시아 미니 잠수정 미르 1호가 8월2일 로봇 팔을 이용해 북극 해저 4261m 지점에 러시아 국기를 꽂았다.
그러자 곧바로 캐나다가 발끈했다. 캐나다의 피터 매케이 외무장관은 “지금은 전 세계를 돌며 깃발을 꽂는 대로 자국 영토가 되는 15세기가 아니다”라고 반발했다. 캐나다의 스티븐 하퍼 총리는 캐나다의 북쪽 끝 영토이자 북극권인 레졸루트 베이를 방문해 “캐나다는 북극에 대한 권리를 가진 국가”라고 주장하면서 무력을 동원해서라도 영유권을 행사하겠다고 경고했다. 캐나다에 이어 덴마크도 북극 해저탐사 계획을 발표했다. 미국 역시 유엔 해양협정에 참가하진 않았지만, 알래스카 인근 해역에 영유권이 있다고 주장한다.
러시아가 북극에 깃발을 꽂은 근거는 북극 해저의 로모노소프 해령에 있다. 러시아의 주장에 따르면 이 로모노소프 해령은 시베리아 대륙과 연결돼 있다고 한다. 그러자 덴마크가 로모노소프 해령은 시베리아 대륙이 아니라 그린란드에 연결돼 있다고 반박했다. 물론 이들의 주장은 국제법상 어떤 효력도 없다. 국제사법재판소 국경위원회는 북극이 자국 영토와 해저로 연결돼 있다는 덴마크와 러시아의 주장을 일축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고개를 든다. 북극해의 얼음은 왜 계속해서 녹고 있는 것일까? 과연 이 현상은 지구온난화 때문에 생겨난 것일까?
과학자들은 아직 북극해 얼음이 녹는 현상에 대한 뚜렷한 원인을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다만 일반인의 예상과 달리 지구온난화가 북극해 얼음이 녹는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라고 한다. NASA는 최근 지구온난화가 아니라 유빙이 북극해의 얼음을 녹이는 주범이라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NASA 연구진은 2000년 이후 북극 빙산들이 북극해에서 그린란드 쪽으로 이동하는 경향이 뚜렷하다고 말한다. 이 유빙들, 즉 북극해 얼음들이 남쪽으로 떠내려가면서 그 자리에 바다가 나타나고 있다. 특히 올 여름 북극해 빙산이 집중적으로 이동하고 녹으면서 북극해가 녹는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고 해양학자들은 입을 모은다. 올 여름에는 시베리아 고기압이 크게 발달하면서 북극해 빙산들을 바다 한가운데로 밀어냈다는 것이다.
북극 하면 떠오르는 거대한 빙산의 양도 눈에 띄게 줄었다. 미국 워싱턴 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1987~2007년 20년간 북극해 빙산은 80%에서 2% 수준으로 줄었다. 이 빙산들은 녹아서 비교적 작은 유빙으로 쪼개졌다. 그런데 이 유빙들은 해류에 잘 떠내려갈 뿐 아니라 여름 햇살이나 수증기에 곧잘 녹는다. 반면 겨울이 됐다고 해도 다시 어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해류의 변화 역시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알래스카 대학의 이고르 폴리야코프 교수와 마슬로프스키 박사는 대서양의 난류가 베링해협을 통해 북극해로 흘러들어가고 있다고 보고했다. 이런 해류의 변화는 심해에서도 비슷하게 일어나고 있다. 스칸디나비아반도 쪽에서 북극해로 대서양 난류가 유입되고 있다는 것이다.
원주민 이누이트 “개발하려면 우리 의견 반영해라”
문제는 이 같은 사태들을 예방하기는커녕 원인조차 알지 못한다는 데 있다. ‘뉴욕타임스’는 북극해의 얼음이 녹는 현상과 관련해 “12명이 넘는 전문가들과 인터뷰를 했지만 아무도 이 현상에 대해 뚜렷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다만 해류 이동이 중요한 구실을 했고, 해류 흐름이 변한 데는 지구온난화도 한몫했을 것이라는 견해가 우세한 정도다. 워싱턴 대학의 마이클 월레스 교수는 “북극해의 얼음이 녹는 직접적인 이유는 바람과 해류의 변화다. 이 현상이 지구온난화와 관계 있다는 증거는 아직까지 없다”고 말한다.
북극을 둘러싼 국가간 분쟁이 가열되면서 가장 불안한 사람은 아마도 이누이트족일 것이다. ‘에스키모’라는 인디언 방언으로 더 많이 알려진 이누이트족은 북극해 원주민. 16만명 정도의 이누이트가 알래스카, 그린란드, 캐나다 북부, 러시아 동부에 흩어져 살고 있으며, 그린란드에는 이누이트의 자치정부가 조직돼 있다.
이누이트들은 8월 러시아 깃발 사건 이후, 북극에 관심이 쏠리는 상황이 부담스러운 눈치다. 이들은 미국 일간지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와의 인터뷰에서 “북극이 어떤 이유에서든 개발된다면, 북극 원주민인 우리 이누이트들의 의견도 반영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누이트들은 대부분 북극 개발과 북극해 자원 탐사에 반대하고 있다. 이로 인해 자신들의 생활 터전이 파괴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이누이트들의 국제조직 ‘이누이트 북극권 위원회(ICC)’는 지구온난화를 일으키고 그 결과 북극의 생태계가 파괴되고 있다는 이유로 미국을 국제인권위원회에 제소했다. ICC의 셰일라 와트 클로셔 의장은 전 세계를 돌며 북극의 위기와 지구온난화의 문제점을 경고하고 있다.
모든 이누이트들이 북극해 자원 탐사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그린란드 자치정부를 이끌고 있는 이누이트들은 그린란드가 경제적 부를 획득하면 자신들의 숙원사업인 덴마크로부터의 완전 독립이 가능하리라 전망한다. 그래서 그린란드 자치정부는 북극해 자원 탐사를 지지하고 있다. 현재 그린란드에 거주하는 5만6000여 명의 주민 가운데 90%가 이누이트족이다.
북극에 묻혀 있다는 무진장의 천연자원은 지구가 인류에게 준 선물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 선물을 받기 위해서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북극 얼음이 녹아내리면서 전 세계에 어떤 기후변화가 일어날지 지금으로선 누구도 알 수 없다. 그것은 어떤 전대미문의 자연재해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현재의 과학기술로는 이 같은 재해를 예측할 수도, 막을 길도 없다. 그러나 북극 얼음이 녹고 있다는 학자들의 경고는 엄청난 자원을 노리는 강대국들의 귀에는 공염불로만 들리는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