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 중인 김아타.
나는 이번 기회에 사람들이 미술시장의 요란법석보다 그의 작품 자체에 주목하길 바란다. 김아타의 사진작품들은 미술시장과 언론의 떠들썩함이 생경하게 느껴질 만큼 고요하면서도 에너지 넘치고, 간결하면서도 깊은 뜻이 담긴 듯한 매력을 지녔다.
2002년 뉴욕 퀸스미술관에서 열린 그룹 전시로 뉴욕 미술계에 첫발을 디딘 김아타는 지난해 여름 뉴욕에서 첫 개인전을 가졌다. 그러나 ‘첫 번째’라는 단어로 수식하기엔 무척 화려한 시작이었다. 뉴욕 미술계뿐 아니라 세계 사진계의 흐름을 쥐고 있는 뉴욕 국제사진센터(ICP·International Center of Photography)에서 ‘온에어(On-Air)’ 프로젝트를 선보임과 동시에, 첼시의 요시 밀로(Yossi Milo) 갤러리에서 전속작가로 개인전을 열었기 때문. 개인전에서는 이전 프로젝트(1995~2002년)이자 그의 작품 가운데 가장 많이 알려진 ‘The Museum Project’를 전시했다. ‘뉴욕타임스’가 그의 ICP 전시 리뷰에 지면을 많이 할애했을 정도로 김아타의 대규모 공동 전시는 뉴욕 주요 언론의 큰 주목을 받았다.
고가에 팔린 작품들 … 이상과열 우려 판매 중단
1956년생 김아타에 대한 뉴욕 언론의 소개는 대부분 ‘창원대 기계공학과 졸업’이라는 그의 학력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러나 예술가의 기나긴 창작 여정이 단 몇 줄의 학력으로 요약될 수 없음은 자명하다. ‘실재하는 시간이 가장 초현실적으로 여겨지는 순간(When Real Time Turns Out to Be the Most Surreal of All)’이라는 제목으로 전시 리뷰를 쓴 ‘뉴욕타임스’의 홀랜드 카터는 기계공학을 전공했지만 철학과 문학에 관심이 많았던 김아타의 젊은 시절을 소개하면서, 하이데거의 실존주의 철학과 선(禪)불교가 그의 작품에 끼친 영향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카터를 비롯한 뉴욕 미술비평가들은 김아타의 작품세계에서 강렬한 비주얼과 잔영이 가득한 시각적 효과 사이에 아스라이 드러나는 그의 철학적 사유에 주목한다. 김아타 개인의 사유는 익숙하면서도 낯선 소재와 공간 안에서 사진 이미지로 빚어져 보는 이에게 깊은 울림이 있는 이야기로 다가간다.
온에어 프로젝트의 ‘뉴욕 타임스스퀘어’와 ‘키스’(오른쪽). ‘키스’는 남녀 15쌍이 키스하는 모습을 촬영해 포개놓은 이미지다.
‘사라지는 존재에서 영원을 찾다.’ 김아타의 온에어 프로젝트 작품들에 대한 뉴욕 비평가들의 주된 해석이다. 2006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김아타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존재 이유가 있다. 그리고 존재하는 모든 것은 결국 다 사라진다”고 설명했다. 사라지고 허물어지고 녹아내리는 것에서 존재 의미를 찾는 작가의 여정을 뉴욕 비평가들은 불교철학을 중심으로 한 동양철학에서 그 개념적 바탕을 찾는 듯하다.
생각해보면, 서구 미술계에서 활동하는 아시아 출신 작가가 동양철학을 자기 작품의 철학적 토대로 설명하는 것은 이제 식상한 개념적 장치일지도 모른다. 게다가 김아타가 사용하는 장시간 노출은 19세기 초 실험된 바 있는 전통적 사진기법이다. 그럼에도 뉴욕 미술계가 김아타의 작품에 새삼 주목하는 이유는 그가 사진매체를 통해 던지는 화두 때문이다. 즉 뉴욕은 김아타의 기법이 아닌 개념에 주목하며, 전통적 기법을 통한 그의 시각적 내러티브에서 신선함과 새로움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나와 타인을 조화시키는 사유의 철학 시각화
김아타의 작품을 들여다보면 차곡차곡 쌓이는 시간의 여정 사이사이에 존재에 대한 사유와 철학이 시각화돼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다. 결국 관람객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작가의 삶에 대한 사유가 얼마만큼 진정성을 띠고 있는지에 달렸다. 직접 정신병동에 들어가 환자들과 일상을 함께하며 촬영하고, ‘The Museum Project’를 촬영할 때는 모델들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삭발까지 했다는 작가의 일화가 마음에 와닿는 것도 결국 ‘진정성’ 때문이 아닐까.
아트 페어에서의 판매 호조로 국내에서 김아타의 존재가 새롭게 각인됐지만, 그의 작품은 이미 뉴욕뿐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입지를 굳혔다. 상파울로비엔날레를 비롯한 국제무대에서 활발한 전시 참여 활동을 벌였으며, 그의 사진집이 미국 현지에 발매돼 있기도 하다. 그런데 그의 작품은 이러한 외적 유명세만으로 따지기엔 작품과 관객 사이에서 일어나는 소통의 울림 폭이 무척 큰 듯하다.
비무장지대를 장시간 노출로 촬영한 그의 작품을 보는데 갑자기 눈물이 또르르 흘렀다. 이른바 ‘X세대’로, 90년대에 대학에 다니고 내 나라의 정치적 현실을 애써 외면한 채 살아온 나에게 한 번도 가본 적 없던 비무장지대의 사진이 가슴 뭉클하게 다가온 것은 무엇 때문일까. 정체성, 실존, 이데올로기, 폭력, 실재, 영원. 뉴욕 미술계는 이처럼 다양한 개념을 들춰내 그들이 김아타 작품에 끌리는 이유를 설명하려 시도한다. 하지만 그것은 갑작스런 눈물 한 방울에 있지 않을까.
사라짐을 통해 영원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작가. 내 안에 당신이, 우리가 있다고 말하는 작가. 나와 타인의 간극을 매일매일 잔인하리만큼 절감하는 우리의 척박한 일상을 생각할 때, 김아타는 나와 타인을 조화시키는 그 이상을 사진예술로 풀어나가고 있는 사람라 하겠다. 그러고 보니 그의 진심은 아주 가까이에 있었다. ‘나와 너’라는 뜻의 그의 이름 아타(我他) 속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