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9년 잡지사 기자로 일하던 중 서울조선족교회에서 발행하는 동북아신문 자원봉사자가 됐습니다. 2002년부터는 상근을 했고요. 중국 동포 사회의 면면, 생활상과 아픔, 꼭 필요한 것들에 대해 알게 됐죠.”
동포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일했지만 회의도 적지 않았다. “동포들이 기대만큼 따라주지 않을 때, 필요한 순간만 찾고 정작 문제가 해결되면 나 몰라라 할 때 적지 않은 좌절감을 느꼈죠.”
2003년 신문 일을 그만두고 장고에 들어갔다. 결론은 다시 ‘동포 속으로’. 자신처럼 동포 사회를 잘 아는 사람이 나서 ‘조선족타운’과 가리봉 지역민 사이의 가교 구실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해 8월 신문을 창간했습니다. 매주 A3용지 한 장에 동포 소식이나 법률 상식 등을 실어 무료로 배포했죠. 지금처럼 격주간 타블로이드 8면 체제로 전환한 건 지난해 말부터입니다.”
가리봉 지역엔 중국 동포들을 등쳐 먹고 사는 각종 브로커들이 넘친다. 김 국장은 “임금 체불을 해결해주곤 급여의 50%를 떼가버리는 식”이라며 “동포들에게 최소한의 비용으로 좋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싶다”고 했다. “그를 위해 재한조선족유학생네트워크, 가리봉상인연합회, 직업안내상담소 등과 ‘중국동포타운센터’라는 지역 네트워크를 만들고 있습니다. 지역사회에서 먼저 이들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타 지역 주민, 정치인들도 비로소 동포들을 한 식구로 여기게 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