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EC을 부산 발전의 지렛대로 활용하자는 이들과 세계화에 반대하는 반(反)APEC 진영 사이의 긴장감도 날이 갈수록 첨예해지고 있다.
11월9일 오전 8시30분, 출근하는 시민들로 붐비는 부산지하철 서면역. 평소 같으면 남의 나라 일로 흘려버릴 테러 뉴스에 부산 시민들은 높은 관심을 내비쳤다. 소식을 접한 이들은 지하철역 주변을 휘휘 둘러보며 ‘제발 부산에서만큼은 그런 일이 없기를…’ 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자원봉사자 김덕홍(71) 씨 역시 아침 뉴스에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오전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그가 하는 자원봉사란 경찰의 눈이 미치지 못하는 지하철 구석구석의 안전 상황을 점검하고, 오후에는 거리로 나가 동료들과 미화 활동을 벌이는 일. 78개에 달하는 부산지하철 전역에 배치된 이들 노년의 신사들이 부산 시민의 안전과 APEC의 성공 개최의 밑거름을 자처하고 나선 것이다. 놀라운 점은 김 씨와 같은 자원봉사자가 무려 3000여명에 달한다는 사실.
또 다른 자원봉사자 김덕례(58) 씨는 “이곳 부산에서는 테러가 불가능할 것 같고, 솔직히 서울 같은 다른 대도시가 걱정된다“며 멋쩍은 웃음을 지어 보인다. 이미 지하철역은 쓰레기통 하나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깨끗했다. 심지어 지하철 맨홀 뚜껑도 일일이 확인을 거쳐 100% 봉인 스티커를 붙여놓았다. 장난삼아 봉인 스티커를 떼어보는 사람도 없을 정도.
APEC 성공을 위한 부산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에 대한 미담은 일일이 거론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까다로운 교통통제나 입산금지와 같은 실생활의 불편함도 큰 불평 없이 적응하는 분위기다. APEC이 현실로 다가오면서 시민들의 열기와 기대감이 점차 고조되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는 APEC 이후에 찾아올 부산 발전에 대한 장밋빛 희망 때문이다.
자원봉사자 3000여명 … 시민들도 적극 동참
애당초 부산 시민들은 APEC에 큰 기대를 걸지 않았다. ‘올림픽이나 월드컵 같은 가시적인 경제 효과는 없을 것’이라는 비관론이 우세했던 것. 2004년 초, 극적으로 제주도를 제치고 APEC 행사 유치에 성공했을 때만 해도 시민들은 “덩치 큰 국책사업도 아닌 겨우 국제행사 하나 치르는 게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는 식의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부산시가 ‘세계적인 관광도시 부산 건설’을 역설하고, 이에 동참하는 시민들이 늘면서 분위기가 반전되기 시작했다.
“부산 경제는 IMF 이후 반짝 경기를 제외하고 줄곧 침체에 빠져 있었어요. 제조업에 대한 좌절과 미련 같은 게 있었는데 그간 시민들의 의식에 많은 변화가 있었던 거죠.”(부산시 APEC준비단 홍기호 사무관)
실제로 부산 시민들이 가장 고대하는 것은 무형의 산물, 바로 ‘세계도시 부산’이라는 브랜드 제고 효과다. 점차 제조업을 탈피하고 있는 부산이 앞으로 기대를 걸 수 있는 분야는 관광·문화 산업이다. 이른바 ‘부산 세계도시론’의 관건은 얼마나 자주 국제전시회나 행사를 유치하고 안전하게 치러낼 수 있는가 하는 것. 최근 세계적인 영화제로 성가를 높이고 있는 ‘부산국제영화제’ 역시 시민들의 의식을 바꿔놓는 데 일익을 담당했다는 평가다.
“부산이 싱가포르와 홍콩 같은 세계적인 도시로 발돋움할 때만이 우리나라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될 수 있습니다.”(허남식 부산시장)
경제 효과에 대한 긍정적인 전망도 나왔다. 최근 부산발전연구원은 APEC 정상회의 개최에 따른 부산지역의 생산 유발 효과가 4020억원에 이르고, 부가가치 유발 효과 1747억원, 소득 유발 효과 935억원 등 모두 6700억원대의 경제적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전망했다.
부산시 브랜드 제고 … 발전전략 빠르게 진행
부산시는 이번 APEC 준비를 통해 국제도시 승격을 위한 하드웨어는 갖춘 셈이 됐다. 해운대 전시컨벤션센터 벡스코(BEXCO)와 누리마루 APEC하우스에서 정상회의와 각국 정부대표, 기업인 등이 참가하는 대규모 회의를 통해 관광과 컨벤션 분야에서 국제 공인을 받는 셈이다.
그러나 이 같은 장밋빛 전망에도 불구하고 부산의 고민도 깊어가고 있다. 이른바 전 세계적으로 일고 있는 ‘반(反)세계화 물결’ 때문이다. 최근 전교조의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 비하 내용을 담은 동영상으로 논란이 된 ‘반아펙 교육’이 대표적 사례다.
대다수 시민들은 전교조의 과격성에 불만을 토로했지만 적잖은 서민들은 APEC 회의로 인한 고충을 표출하는 것도 사실이다. 행사를 위한 일부 전시행정도 서민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지적이다. 심지어 일부 인권단체들은 부산시의 치안 상태가 ‘준전시 상태’를 방불케 할 정도로 지나치다고 대립각을 세웠다. 이 같은 갈등의 정점에는 APEC 행사 기간 중 전 세계에서 모여들 ‘반아펙 시위대’가 존재한다.
그러나 대다수의 시민들은 의사표현의 자유는 인정하지만 대신 평화적인 시위가 이뤄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폭력시위로 변질해서 부산시의 이미지를 깎아내려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시민들은 폭력시위를 막기 위해 경찰과 시민단체 간의 중재 구실을 하겠다고 나서기도 했다.
과연 부산은 ‘대한민국 제2의 도시’라는 한계를 딛고 세계적 수준의 항구도시로 자리매김 할 수 있을 것인가. 부산의 성숙한 시민의식에 세계인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