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이 넘도록 걷고 또 걸었다.
3월1일 지리산 노고단에서 출발해 지리산권의 구례ㆍ하동ㆍ산청ㆍ함양군을 거쳐 남원시 지역을 지나고 있다. 1300리 정도를 걸었으나 도법 수경 스님과 함께 하는 ‘생명평화 탁발순례’는 이제 겨우 시작일 뿐이다.
4월22일에는 ‘4ㆍ3’ 민간인학살 사건의 상처가 깊은 제주도로 건너가 탁발순례를 한다. 그리고 전국의 면단위 지역을 중심으로 세상에서 가장 느린 걸음으로 간다면 최소 3년은 걸릴 테고, 남북 상황이 좋아져 북한에까지 갈 수 있다면 5년 정도를 길 위에 있어야 한다.
그저 눈비가 오면 길 위에서 눈비를 맞고, 밥을 주면 밥을 먹고, 술을 주면 술을 마시고, 돈을 주면 돈을 받고, 잠자리를 주면 잠자리를 탁발하고, 마음을 주면 마음을 탁발하고, 욕을 하면 욕까지도 탁발할 것이다.
그동안 걸으며 참으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걷자, 만나자, 만나서 생명평화를 얘기하자’가 탁발순례의 슬로건이니 고행의 도보순례와 더불어 각계각층의 사람들과 자연을 만나는 것은 당연지사다. 만남을 통해 삶의 즐거움과 희망을 언뜻 엿보기도 했다. 그러나 사람과 자연을 만나는 일이 어찌 희망적이기만 했으랴.
탁발순례단은 날마다 생명평화 대공사 중
더구나 사형선고를 받기도 전에 벌써 싸늘히 식어가고 있는 시신이 돼버린 우리의 농촌 현실은 참담했다. 경제발전과 근대화라는 논리 앞에서 어린아이의 울음소리가 끊긴 지 오래인 우리들의 고향은 마침내 노인요양원으로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그동안 순례의 길은 내내 봄이 오는 꽃길이었으나 그 꽃길마저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인 죽임의 길이요, ‘대문 밖이 곧 저승’인 길이었다. 짐승의 길은 사람의 길에 막혀 죽어가고, 사람의 길은 모두 차량을 위한 고속도로로 대체돼 먼저 목숨을 내놓지 않고서는 그 어디로도 걸어갈 수 없었다. 대지를 촉촉하게 적시며 생명의 젖줄이 되었던 물길은 골프장의 맹독성 농약에 몸을 내주거나 댐에 막혀 썩어가고 있었다.
한마디로 대한민국은 ‘공사 중’이다.
마을마다, 길마다, 강물마다, 바다마다, 섬마다, 산마다 포클레인 소리가 점령하지 않은 곳이 없다. 아무리 깊은 산속 골짜기를 가봐도 모두가 공사 중이다. 공사는 잘못된 것을 바로잡거나 우리의 삶이 지금보다 훨씬 나아지라고 하는 것 아닌가.
그러나 대한민국 공사 현장의 대부분은 주로 망치거나 파괴하는 쪽에 가까우니 답답하기 그지없다. 전남 구례군은 지리산 성삼재 케이블카 공사계획을 세우고 산자락 깊숙이 쇠말뚝을 박으려 하고 있으며, 경남 하동군의 아름다운 섬진강 벚꽃길은 4차선 확장공사로 망가질 위기에 놓여 있고, 산청군의 ‘지리산 빨치산 토벌기념관’과 ‘공비토벌 루트’는 시대착오적인 냉전논리로 지리산의 상처를 덧나게 하고 있으며, 함양군의 ‘다곡 리조트’ 계획은 청정마을인 지곡면 주암마을 주민들의 삶터를 골프장으로 덮으려 하고 있다.
어디 그뿐이랴. 대한민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에 걸친 모든 분야의 공사는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꼴이 아닐 수 없다. ‘돈 정치’와 ‘탄핵정국’이라는 정치공사마저 국민의 지혜와 중지를 모아내는 것이 아니라 ‘날림공사’가 되기 십상이고, 국립공원 1호이자 민족의 영산인 지리산 보존공사도 ‘관광개발’이라는 허명으로 온통 파헤치고 있으며, 농촌을 살리겠다면서 농민들을 또다시 도시빈민으로 내몰고 있다.
그리하여 생명평화 탁발순례단도 공사를 하는 중이다.
사람의 마음을 바꾸고, 정책을 바꾸는 대공사를 하면서 세상에서 가장 느린 걸음으로 가는 중이다. 순례단 각자에게는 자기 수행의 길이지만, 더불어 생명평화의 대안을 찾아나서는 ‘따로 또 같이’의 길이기도 하다. 느리지만 서서히 돋아나는 희망의 싹을 보는 것은 하나의 즐거움이기도 하다.
인간과 자연이 한 몸이 되는 내ㆍ외부 공사를 하며 걷다 보니 만나는 사람들 모두 생명평화의 공사를 즐겁게 시작하고, 상처 입은 나무는 나무대로 스스로를 치유하며 싹을 틔우고, 썩은 물은 물대로 흐르면서 정화되고 있다.
이 얼마나 가슴 벅차고 다행한 일인가. 마침내 대한민국은 21세기의 새로운 패러다임인 생명평화의 대공사를 하고 있는 중이다. 날마다 그대를 향해 걸어가리니 그대 또한 아주 천천히 걸어오시라.
3월1일 지리산 노고단에서 출발해 지리산권의 구례ㆍ하동ㆍ산청ㆍ함양군을 거쳐 남원시 지역을 지나고 있다. 1300리 정도를 걸었으나 도법 수경 스님과 함께 하는 ‘생명평화 탁발순례’는 이제 겨우 시작일 뿐이다.
4월22일에는 ‘4ㆍ3’ 민간인학살 사건의 상처가 깊은 제주도로 건너가 탁발순례를 한다. 그리고 전국의 면단위 지역을 중심으로 세상에서 가장 느린 걸음으로 간다면 최소 3년은 걸릴 테고, 남북 상황이 좋아져 북한에까지 갈 수 있다면 5년 정도를 길 위에 있어야 한다.
그저 눈비가 오면 길 위에서 눈비를 맞고, 밥을 주면 밥을 먹고, 술을 주면 술을 마시고, 돈을 주면 돈을 받고, 잠자리를 주면 잠자리를 탁발하고, 마음을 주면 마음을 탁발하고, 욕을 하면 욕까지도 탁발할 것이다.
그동안 걸으며 참으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걷자, 만나자, 만나서 생명평화를 얘기하자’가 탁발순례의 슬로건이니 고행의 도보순례와 더불어 각계각층의 사람들과 자연을 만나는 것은 당연지사다. 만남을 통해 삶의 즐거움과 희망을 언뜻 엿보기도 했다. 그러나 사람과 자연을 만나는 일이 어찌 희망적이기만 했으랴.
탁발순례단은 날마다 생명평화 대공사 중
더구나 사형선고를 받기도 전에 벌써 싸늘히 식어가고 있는 시신이 돼버린 우리의 농촌 현실은 참담했다. 경제발전과 근대화라는 논리 앞에서 어린아이의 울음소리가 끊긴 지 오래인 우리들의 고향은 마침내 노인요양원으로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그동안 순례의 길은 내내 봄이 오는 꽃길이었으나 그 꽃길마저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인 죽임의 길이요, ‘대문 밖이 곧 저승’인 길이었다. 짐승의 길은 사람의 길에 막혀 죽어가고, 사람의 길은 모두 차량을 위한 고속도로로 대체돼 먼저 목숨을 내놓지 않고서는 그 어디로도 걸어갈 수 없었다. 대지를 촉촉하게 적시며 생명의 젖줄이 되었던 물길은 골프장의 맹독성 농약에 몸을 내주거나 댐에 막혀 썩어가고 있었다.
한마디로 대한민국은 ‘공사 중’이다.
마을마다, 길마다, 강물마다, 바다마다, 섬마다, 산마다 포클레인 소리가 점령하지 않은 곳이 없다. 아무리 깊은 산속 골짜기를 가봐도 모두가 공사 중이다. 공사는 잘못된 것을 바로잡거나 우리의 삶이 지금보다 훨씬 나아지라고 하는 것 아닌가.
그러나 대한민국 공사 현장의 대부분은 주로 망치거나 파괴하는 쪽에 가까우니 답답하기 그지없다. 전남 구례군은 지리산 성삼재 케이블카 공사계획을 세우고 산자락 깊숙이 쇠말뚝을 박으려 하고 있으며, 경남 하동군의 아름다운 섬진강 벚꽃길은 4차선 확장공사로 망가질 위기에 놓여 있고, 산청군의 ‘지리산 빨치산 토벌기념관’과 ‘공비토벌 루트’는 시대착오적인 냉전논리로 지리산의 상처를 덧나게 하고 있으며, 함양군의 ‘다곡 리조트’ 계획은 청정마을인 지곡면 주암마을 주민들의 삶터를 골프장으로 덮으려 하고 있다.
어디 그뿐이랴. 대한민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에 걸친 모든 분야의 공사는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꼴이 아닐 수 없다. ‘돈 정치’와 ‘탄핵정국’이라는 정치공사마저 국민의 지혜와 중지를 모아내는 것이 아니라 ‘날림공사’가 되기 십상이고, 국립공원 1호이자 민족의 영산인 지리산 보존공사도 ‘관광개발’이라는 허명으로 온통 파헤치고 있으며, 농촌을 살리겠다면서 농민들을 또다시 도시빈민으로 내몰고 있다.
그리하여 생명평화 탁발순례단도 공사를 하는 중이다.
사람의 마음을 바꾸고, 정책을 바꾸는 대공사를 하면서 세상에서 가장 느린 걸음으로 가는 중이다. 순례단 각자에게는 자기 수행의 길이지만, 더불어 생명평화의 대안을 찾아나서는 ‘따로 또 같이’의 길이기도 하다. 느리지만 서서히 돋아나는 희망의 싹을 보는 것은 하나의 즐거움이기도 하다.
인간과 자연이 한 몸이 되는 내ㆍ외부 공사를 하며 걷다 보니 만나는 사람들 모두 생명평화의 공사를 즐겁게 시작하고, 상처 입은 나무는 나무대로 스스로를 치유하며 싹을 틔우고, 썩은 물은 물대로 흐르면서 정화되고 있다.
이 얼마나 가슴 벅차고 다행한 일인가. 마침내 대한민국은 21세기의 새로운 패러다임인 생명평화의 대공사를 하고 있는 중이다. 날마다 그대를 향해 걸어가리니 그대 또한 아주 천천히 걸어오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