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수년 동안 ‘공부와는 담 쌓고 지낸’ 운동선수들이 뒤늦게 밤새워 책을 뒤적인 끝에 두 번째 인생에서도 최고의 자리에 오른 사례가 적지 않다. 스포츠 스타 출신 직장인들의 성공 비결은 무엇일까. 극한의 한계를 넘나든 선수시절의 경험이 그들의 가장 큰 자산이었고 자연스레 몸에 붙은 목표의식과 책임감은 ‘성장 엔진’이었다. 직장에서도 ‘1등’ ‘최고’에 오른 스포츠 스타들은 “살아남기 위해 죽어라 공부하고 뛰었다”고 입을 모았다.
#다람쥐처럼 내달리다 - 정재섭 기업은행 풍납동 지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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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날쌘 다람쥐‘ ‘밤송이’라는 옛 별명 그대로였다. 무대가 코트에서 은행 객장으로 바뀌었을 뿐. 기업은행 풍납동 지점장으로 일하는 그는 89년 은행원으로 변신해 다람쥐처럼 달려왔다. 2002년엔 기업은행 최초의 30대 지점장이라는 파격 인사의 주인공이 돼 동료 은행원들을 놀라게 했다. 이는 서열과 기수를 엄격히 따지는 금융계에선 이례적인 일로 선수시절 별칭 ‘다람쥐’처럼 고객의 가려운 곳을 찾아 발빠르게 내달린 결과다.
그가 코트를 떠나 첫 출근한 곳은 기업은행 종로6가 지점. “농구만 하던 놈이 좋은 학교 나와서 신입사원 때부터 체계적으로 배운 사람들을 따라잡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죠. 종로에 발령받았는데 처음 2년은 매일 밤 12시가 넘어서 집에 들어갔습니다. 공부에 목숨을 걸었어요. 선·후배 안 가리고 모르는 게 있으면 물어보고, 책을 읽고 또 읽고….”
그러나 고민과 좌절은 잠시였다. 혼나고 깨지고 욕먹으면서 배운 은행 일은 그의 천직이었다. 선수 시절 몸에 밴 성실성과 운동선수 특유의 리더십을 발휘하는 데 은행이 안성맞춤이었던 것. 그는 가는 곳마다 눈부신 영업력을 발휘해 “과연 운동선수 출신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는 찬사를 들었다.
지난해 실적평가에서 풍납동 지점은 최우수 지점으로 뽑혔다. 만년 ‘꼴찌 지점’의 여·수신을 각각 50% 이상 끌어올리며 ‘1위 지점’으로 바꿔놓은 것. 덕분에 모교 교우회보에 그의 동정이 스포츠계 동문이 아닌 금융계 동문 자격으로 실리기도 했다.
과거 ‘칼퇴근’으로 유명했던 풍납동 지점은 요사이 밤 9시가 넘어도 불이 꺼지지 않는다. 직원들이 “살아남기 위해 모든 걸 버리고 공부에 매달렸다”는 정지점장을 본받고 싶어서다. 그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절망이 오히려 희망이 됐다. 회사 일로 고민하는 직장인들이나 후배들에게 막연히 두려워하기보다는 당차게 맞서 싸우라고 말해주고 싶다”면서 수줍게 웃었다.
#격투기처럼 공격적으로 - 전배제 삼성생명 신평촌영업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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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의 세월은 약관의 레슬링 선수를 불혹의 보험영업 관리자로 바꿔놓았다. 전소장은 영업관리 분야에서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그는 올 3월 회사에서 삼성생명 영업관리자상을 수상했다. 그가 맡은 지점은 늘 최고였다. 특히 영업 실적은 단 한 차례도 전체 지점 중 상위 10%를 벗어난 적이 없다. 그는 “격투기 종목 특유의 공격적인 리더십 때문 아니겠느냐”며 웃었다.
그가 삼성맨이 된 것은 올해로 20년째.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유도대학에 진학하면서 레슬링팀이 있는 삼성생명에 입사했다. 학업과 선수생활을 병행한 것. 은퇴 후 처음으로 영업소에 출근했을 때는 그 또한 고민이 이만저만한 게 아니었다. 보험상품의 특·장점을 가르쳐야 할 영업과장이 거꾸로 설계사들에게 배워야 했기 때문이다.
“명문대 졸업하고 입사한 친구들과 똑같이 승진시험 보고 경쟁하면서 받은 상이라 더 값지게 느껴집니다. 운동을 오래한 사람들은 대개 목표를 꼭 달성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강합니다. 스케줄을 짜고 훈련을 하는 버릇이 들어서 시간관리도 잘 하고요. 금융계나 영업 쪽에서 운동선수들이 두각을 나타내는 이유는 아마도 몸으로 익힌 책임감과 시간관리 능력 때문일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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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맡고 있는 혜화동 지점은 영업실적에서 2003년 상반기 최우수상, 하반기 우수상을 받았다. 그는 지난달 발가락 봉합수술을 받아 걷기가 불편하다. 폭설 피해 현장에 자원봉사하러 갔다 발가락이 잘리는 사고를 당했다고 한다.
“자원봉사도 사실 영업이거든요. 제 차를 사주는 것은 아니지만 현대차 다니는 친구가 시골까지 내려와서 열심히 일하고 갔다는 소문이 퍼지면 우리 회사 이미지가 얼마나 좋아지겠습니까. 연·고대 출신들도 들어오기 힘든 회사에 쉽게 들어왔으니 남들보다 더 노력해야지요.”
배구인들은 그를 강만수 전 현대캐피탈 감독과 더불어 역대 ‘최고의 공격수’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야생마를 그리며’라는 그의 팬클럽은 아직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회사원으로 변신한 그를 가장 괴롭힌 것은 ‘왕년엔 내가…’라는 선수시절의 추억이었다고 한다.
“대변이 뭔지, 차변이 뭔지도 몰랐지만 일은 비교적 빨리 배울 수 있었습니다. 다만 화려했던 선수시절의 추억을 떨쳐버리기가 마음처럼 쉽지는 않더군요.”
혜화동 지점이 1등을 하게 된 것은 팀워크 덕. 16명의 직원을 관리하는 그가 가장 중점을 두는 게 바로 팀워크다.
“팀워크를 높이기 위해 술자리를 자주 갖습니다. 그래서 몸도 많이 불었고요.(웃음) 팀워크가 갖춰지면 무서울 게 없습니다. 조직력이 절로 나오고 의리, 승부욕도 길러집니다. 팀워크에서 나오는 조직력, 의리, 승부욕은 마케팅의 기본이에요. 감독 하나 바뀌었을 뿐인데, 현대 배구팀이 요새 부쩍 실력이 늘었다고 합니다. 새 감독님 덕에 팀워크가 다시 살아난 거죠.”
‘직장인 마낙길’의 꿈은 현대차의 임원이 되는 것이다. 아직까지는 입사 동기보다 승진이 빠른 편이라고 한다. 그는 “조금 뒤떨어져 있더라도 언제든 따라잡을 수 있다는 믿음, 결승선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차범근의 센터링, 김재한의 헤딩슛 - 김재한 KB신용정보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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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사장은 옛 주택은행(국민은행과 합병)에 입사해 축구선수 및 감독으로 활약하다 축구 대신 금융을 선택했다. 본격적으로 금융계에 뛰어든 지 14년째. 차장으로 은행 일을 시작해 주택은행 계산동 지점장, 본점 영업부장, 국민은행 강동영업본부장 등을 거쳐 국민은행 자회사인 KB신용정보에 둥지를 틀었다.
은행이나 보험 등 치밀함과 섬세함을 중요시하는 전문직종에서 스포츠 스타가 임원에까지 오르기는 사실 쉽지 않다. 김부사장 역시 금융 일을 뒤늦게 배우느라 남들보다 더 노력한 것은 불문가지.
그는 “후배들이 금융계 등에서 맹활약하고 있는 모습이 보기 좋다”면서 “운동선수 출신들은 기획 쪽에선 치밀함이 다소 떨어질 수도 있으나 사람 관계, 즉 영업이나 마케팅 분야에선 엄청난 잠재력을 발휘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