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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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命 지킴이 25시 … 설악에 반해 살지요”

  • < 속초=구미화 기자 > mhkoo@donga.com

    입력2004-10-29 14: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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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人命 지킴이 25시 … 설악에 반해 살지요”
    진달래가 온 산을 화사하게 물들이고 도로마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4월 초, 설악산 산악구조대 가기현 대장(51)을 만나러 가는 길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서울을 떠난 지 3시간. 미시령 어귀로 들어서자 설악의 준봉(峻峰)이 한눈에 들어왔다. 겨울 내내 칼바람에 시달린 봉우리에도 봄은 어김없이 찾아오고 있었다.

    20년 넘게 설악산에서 산악구조 자원봉사 활동을 하고 있는 가기현 구조대장의 고향은 충남 서산. 사방을 둘러보아도 넓디넓은 들판뿐 제대로 된 산이라고는 찾아보기 어려운 곳에서 자란 그가 설악의 품에 안긴 것은 29년 전인 스물두 살 때였다. 당시 속초에 살고 있던 친척이 고향에 다니러 와서 입에 침이 마르도록 설악산을 자랑하자, 농사짓는 일이 갈수록 심드렁해지던 가씨는 무작정 설악산을 찾았다.

    “진부령을 넘는 순간 사방에 우뚝 솟은 산들을 보니 가슴이 답답해지더군요. 말로만 듣던 강원도 산골짜기가 바로 여기구나 싶었지요. 이런 데서 어떻게 살까 싶기도 하고…. 그런데 이제 다른 곳에서는 허전해서 못 살 것 같아요. 계절이 바뀔 때마다 달라지는 설악의 자태에 푹 빠졌기 때문이죠.”

    가씨는 설악산에 둥지를 틀면서 인두로 나무에 그림을 그리는 인두화를 배웠지만, 가만히 앉아 있어야 하는 일이 성격에 맞지 않아 1970년대 중반부터 설악산 관광안내를 시작했다. 그 일을 하면서 무리한 산행이나 부주의로 인한 사고를 자주 접하게 됐고, 그때마다 관광안내자로 구조에 나서면서 생명에 위협을 느낀 적이 많았다.



    “人命 지킴이 25시 … 설악에 반해 살지요”
    어느 해인가 가씨가 중·고등학생들을 이끌고 설악산을 오르는데 갑자기 “아~악” 하고 학생들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비선대 부근 급류에 한 학생이 휩쓸려 내려가고 있었던 것. 가씨는 앞뒤 생각할 겨를도 없이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런데 학생을 끌어안는 순간 가씨의 몸은 물속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제 죽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 무렵 발이 땅에 닿는 게 느껴졌다. 가씨는 반사적으로 치고 올라왔다. 사람들은 그저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었다. 가씨는 필사적으로 소리쳤다. 그제서야 사람들이 하나둘 겉옷을 이어 가씨에게 던져주었고, 학생과 가씨는 겨우 목숨을 건졌다. 그 일을 겪고 나서 가씨는 전문 구조활동 단체가 절실히 필요함을 느꼈다.

    가씨는 1978년 30여명의 주민을 모아 설악산 산악안전대를 결성했다. 1987년 사단법인 한국산악회 설악산 산악구조대로 이름을 바꾼 뒤 지금까지 구조한 인원만 2000여명에 이른다. 눈사태나 재해로 실종된 사람이 여름에 발견되어, 썩는 냄새가 진동하는 시신을 옮긴 것만 130구가 넘는다.

    산악사고 구조 활동에는 관리사무소 직원을 비롯해 강원도 소방본부의 헬기, 속초소방서 구조대와 경찰 등이 참여하고 있지만 현장 접근이 어려운 구조는 전적으로 설악산 산악구조대가 맡고 있다. 설악산 산악구조대원들은 설악산 구석구석을 손금 보듯 훤히 들여다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 지원금 없이 회원들의 주머니 돈으로 구조대를 운영하다 보니 어려운 점이 한둘이 아니다. 지난 3월16일 입주한 구조대 사무실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설악산 야영장 한쪽에 있는 컨테이너 박스 하나가 사무실인데 자금이 부족해 지붕은 올리지도 못했다. 올 여름 더위와 겨울 폭설을 어떻게 견딜까 벌써부터 걱정스럽다.

    관광안내나 상업 등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대원들은 사고가 날 때마다 하루 벌이를 포기하고 구조에 나선다.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45명에 이르던 대원 수도 15명으로 줄었다. 구조에 나설 때면 방수·방한 기능이 있는 외투를 입어야 하지만 비닐을 몸에 걸치고 그 위에 일반 외투를 입는 게 고작이다.

    “人命 지킴이 25시 … 설악에 반해 살지요”
    가씨는 온몸이 피범벅이 될 정도로 혼신의 힘을 다해 구조활동을 펴는 대원들에게 목욕비 한 푼 쥐어주지 못하는 현실이 가슴 아프다. 때문에 급박한 위기 상황에서도 대원들에게 먼저 나서라고 지시할 수 없다. 부상하거나 목숨을 잃어도 아무런 보상을 해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을 구하기 위해 흔쾌히 자신을 내던지는 대원도 적지 않아 가씨를 흐뭇하게 한다.

    지난해 여름 대구에서 온 30대 남자 두 명과 여자 한 명이 설악산 토왕성 암벽을 등반하다 사고를 당했다. 암벽을 오르던 중 일행 한 사람이 손을 뻗어 암벽에 튀어나온 바위 하나를 붙잡고 몸을 끌어올리려던 순간 바위가 튕겨져 나와 등반객의 이마를 강타한 것. 상처 입은 등반객은 자일에 매달린 채 몹시 고통스러워했다. 그러나 나머지 두 명은 갑작스런 사고에 당황할 뿐 어찌할 줄을 몰랐다. 구조대가 연락 받고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진 뒤였다.

    “암담했습니다. 등반객이 설치한 자일은 길이가 짧아 이용할 수 없었고, 새로 자일을 설치하고 부상자가 있는 곳까지 올라가려니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 같았어요. 또 난코스라 목숨 걸고 해내야 하는 일이어서 구조대원 누구에게도 지시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때였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한 대원이 암벽 한쪽에서 발견한 줄을 타고 암벽을 오르기 시작했다. 산에서 로프나 자일은 생명줄과 다름없기 때문에 산악인들은 자신이 설치한 줄이 아니고는 믿지 않는다. 그런데 대원 한 명이 누가 설치했는지도 모르는 가는 줄 하나에 의지한 채 타인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암벽을 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부상자가 흘리는 피를 맞으며 필사적으로 구조한 끝에 겨우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열악한 여건이지만 남아 있는 대원들은 구조대를 절대 떠날 수 없다고 말한다. “인명 구조의 절박한 상황을 잘 알기 때문에 사고 소식을 듣고 집 안에 가만히 앉아 있을 수는 없지요. 현장에 가서 눈으로 보고 구조에 동참해야 마음이 편하거든요.”

    이런 사명감과 뜨거운 동료애가 있기에 설악산 산악구조대가 유지된다. 설악산은 험준하기 그지없어 환자 수송에 며칠이 걸릴 때도 있지만, 대원들은 벌이를 포기해 가며 간식을 챙겨 사고 발생 지역으로 찾아온다. 그럴 때마다 가씨는 벅차오르는 감동을 느낀다.

    오랜 산행과 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체력 훈련 덕분에 군살 하나 없이 잘 다져진 몸을 갖고 있지만 가씨는 구조에 나설 때마다 목숨을 내걸어야 한다. 그래서 그는 고향에 홀로 계신 노모에게 자신의 활동을 비밀로 하고 있다. 노모는 귀하고 귀한 6대 독자 가씨가 산을 즐기는 것으로만 알고 있다. 어머니를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고향으로 돌아가야 하지만 설악산이 눈에 밟혀 발걸음을 돌리지 못한다.

    그런 가씨도 설악산을 떠나려 한 적이 있다. 1980년대 초 안면도가 고향인 아내를 중매로 만나 결혼한 뒤 수안보 부근에서 장사를 하자는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이사를 했던 것. 그러나 가씨는 2년 만에 배낭 하나 짊어지고 다시 설악산으로 돌아왔다.

    결혼 초반에는 불평을 털어놓던 아내도 설악동 입구에서 기념품 가게를 하며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사고 소식이 들려오면 익숙한 솜씨로 구조 장비를 챙긴다. 이제 아내도 ‘산사람’이 다 되었다며 가씨는 활짝 웃는다.

    “보람도 보람이지만 이젠 정들어서도 못 떠나요. 설악산은 제게 고향이나 다름없거든요.”

    오늘도 가씨는 봄나들이 온 관광객들을 안내하며 설악산 구석구석을 누비고 다닌다. 그런 가씨에게서 산신령의 그림자를 보았다면 지나친 과장일까.



    사람과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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