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윤의 시각
“정치는 잊어라, 생명을 살리는 일이다”
대북 인도적 지원에 대해 논할 때 항상 들리는 말들이 있다. “왜 받는 것 없이 퍼주기만 하는가?” “북한은 바뀌지 않았다” “군으로 전용되는 원조를 왜 계속하려 드는가?” “북한은 핵무기 개발을 멈추지 않는데 왜 인도적 지원을 하는가?” 등이다. 또한 이러한 말들은 국제 사회에서도 널리 받아들여진다.
이 같은 사고는 인도주의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고 정치적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지금 북한 주민은 심각한 기아와 질병으로 죽어간다. 영양실조가 아이의 왜소한 성장으로 이어지는 실정이다. 이러한 절망적 상황을 극복하려면 인도적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선린, 우호 차원뿐 아니라 국제 사회가 져야 할 의무, 명예 차원에서도 한국과 국제 사회는 그냥 지나칠 수 없다.
한국은 2000년에서 2007년 사이 북한에 매년 수십만t의 곡물을 지원했다. 2008년 보수 성향의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 대규모 대북 지원과 북한의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 폐기를 연계하는 정책을 펴면서 식량 지원을 중단했다. 북측이 식량 지원을 요청하는데도 일부 비판가는 북한이 2012년 4월 15일 김일성 탄생 100주년을 맞이해 주민에게 대량으로 배급할 식량을 끌어모으고자 식량 부족을 과장한다고 주장한다. 2012년은 북한이 ‘강성대국’의 새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천명한 해다.
사실 북한의 식량 위기는 세상에 알려지기 아주 오래전부터 시작됐다. 극심한 곡물 부족 현상은 1980년대 말부터 나타났다. 1990년대 초부터 근 10년 동안 기아와 각종 질병으로 100만 명의 북한 주민이 목숨을 잃은 이른바 대기근이 찾아오기 전에도 북한 정권은 식량 배급량을 10% 줄이고 ‘1일 2식’의 국가적 캠페인을 전개했다. 그러다 식량 위기가 심화하고 기근이 계속되자 배급을 완전히 중단했다. 이 탓에 북한 주민은 대부분 풀이나 벼 뿌리, 산과 들판의 소나무 속껍질이나 갖가지 풀로 연명하면서 하루에 한 끼밖에 먹지 못했다.
2010년 탈북한 한 인사는 지난 수년간의 사정이 너무 좋지 않아 자신이 살던, 그나마 부유하다는 평양에서도 주민이 받는 한 달 배급량이 실제적으로는 일주일 치밖에 안 됐다고 전했다. 가장 사정이 좋지 않은 곳은 교통 및 운송 여건이 형편없는 양강도, 자강도, 함경도 지역이다. 에너지 부족과 식량배급 체계 붕괴로 북한 주민은 최악의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었다. 최근 몇 년간의 식량 사정이 고난의 행군 때만큼 나쁘지는 않지만, 이미 상황은 악화할 대로 악화했다.
대북 원조를 논할 때 우리가 지원해준 것을 북한이 올바로 쓰지 않는다는 주장이 나온다. 만일 지원해준 것을 그들이 군용으로 전환한다면 무기 확보에 더 많은 재원을 투입할 수도 있다. 이러한 주장은 일견 타당하다. 원조한 식량은 실제로 필요한 사람에게 제공돼야 하고, 이를 보장하는 방법을 강구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대북 원조를 가장 효율적으로 이행할 수 있는 수단을 찾아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북한을 돕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는 수단의 문제지, 의도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원조 배분의 투명성을 확보하고자 한국 정부는 남한 동포가 북한과의 화해 분위기를 조성하고 적대감을 불식하려고 대북 지원을 한다고 북한 주민에게 알리는 노력을 기울여왔다. 한 예로, 한국 정부는 북한에 들어가는 원조 물자에 한국 라벨을 부착하고, 물자를 배분하기 전에는 라벨을 제거하지 말도록 요청했다. 또한 한국 정부는 북한이 군용으로 전환하기 힘든 물품 위주로 지원 물자를 선정했다. 이와 함께 국제적십자사연맹(IFRC) 대표가 지원 물자 분배 과정에 참여토록 했다.
제대로 분배하는지 확인하고자 북한 적십자사가 한국 적십자사에 분배 활동을 보고하거나, 국제 비정부기구 회원을 북한에 파견해 지켜보도록 했다. 결과적으로 북한 사람은 한국의 대북 지원을 인식하며, 한국 적십자사 직원과 비정부기구 단체 관계자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유럽연합(EU)과 미국은 지원 물자가 항구에 도착해 실제 의도한 수혜자에게 전달될 때까지 굉장히 엄격한 모니터링 시스템을 운영한다. 그리고 평양에 사무소를 설치해 상주 유엔세계식량계획(WFP) 직원이 원조 식량 배분을 감시하게 한다. 이들은 지원 물자를 전한 지역 내 가장 작은 행정 구역까지 다니면서 배분 상황을 검열한다.
한 탈북자는 군이 최우선적 배급 대상이기 때문에 군인이 식량 배급을 가장 먼저 받았으리라 추측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현역 군인이 배급 받는 식량의 양은 극히 제한적이다. 지난 10년간 한국 정부는 오로지 선적 및 양도한 원조 물자 수치만 계산해왔다. 한국의 지원 형태가 무조건적 지원이 아닌 식량 대출 성격을 띠기 때문이다. 지원 배분의 투명성을 보장하려면 현재의 식량 대출 형태를 무조건적 지원으로 전환해야 한다.
대북 인도적 지원과 관련한 문제를 풀려면 앞에 놓인 몇 가지 숙제를 해결해야 한다.
첫째, 국제 사회의 대북 지원 범위가 넓어져야 한다. 국제 사회의 지원은 긴급 구호를 넘어 지속가능한 발전을 도모할 필요가 있다. 유엔은 체계적으로 계획을 수정함으로써 대북 개발 구호 노력에 대한 개입을 늘려나가야 한다. 한국 정부와 국제 비정부기구 또한 초점을 개발 구호 프로젝트에 맞춰야 한다.
둘째, 대북 인도 지원은 여러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인도주의적 위기 상황은 북한 전 지역에서 벌어진다. 특히 식량, 안보, 보건, 환경, 교육 분야에서 더 심각하다. 따라서 제한된 물자를 필요로 하는 여러 지역에 균형 있게 분배하는 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특히 보건 관련 지원을 대폭 늘려나가야 한다.
셋째, 북한은 경제를 회생시키려는 노력을 스스로 시작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북한은 이 만성적 고난의 상황을 극복할 수 없을 것이다.
넷째, 예전에 비해 북한이 유엔과 한국 정부, 국제 비정부기구의 요구에 좀 더 협조적인 태도를 보이긴 하지만, 정부 차원에서의 협력은 여전히 불만족스러운 수준이다. 상황에 대한 거짓 없는 평가, 제한을 받지 않는 감시 활동, 지역 주민의 협조와 수혜자의 직접적 관여는 인도적 지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데 있어 없어서는 안 될 사항이다.
그동안 한국 정부의 대북 인도적 지원은 북한 경제 전반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대북 지원은 비록 작지만 지속가능한 북한 경제 성장에서 중요한 요인이다. 일반 주민에게 가는 직접적 편익은 미미할 수 있으나, 원조를 통해 시장가격 상승을 예방함으로써 북한 주민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쳐온 것이다. 인도적 원조는 시장경제의 확충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 시장에 생필품이 밀려 들어오므로 경제활동이 대폭 늘어나게 되고, 이를 통해 북한 주민이 시장경제를 배웠던 것이다. 또한 대북 인도적 원조는 적대감을 누그러뜨려 남한에 대한 북한의 인식을 변화시키는 긍정적 측면이 있다. 이는 결국 남북통일을 원하는 북한 주민의 증가로 이어지고, 이 자체가 향후 통일에 상당한 동력이 될 수 있다.
만일 북한 상황이 급격히 악화할 때까지 기다리면, 그때는 만시지탄이 될 것이다. 생명을 살리는 인도적 지원이 잘못된 일인가. 한국이 보낸 쌀로 북한 주민이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다면 북한 주민의 대남 감정은 우호적으로 변할 것이다. 한국 정부는 북한 주민 대부분, 특히 극심한 영양 결핍에 허덕이는 어린이가 직면한 비극적 상황을 의식적이고 의도적으로 외면할 수 있는가. 한국 정부는 북한에 관용과 연민의 손길 내밀기를 거부하는 이유를 국제 사회에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한국 정부는 윤리적 나침반을 잃어서는 안 된다.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의 말을 떠올려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배고픈 아이는 정치를 모른다.”
김영윤 통일연구원 수석연구위원
● 니콜라스 에버스타트의 시각
“외부 원조는 실패, 진정 보듬는 계획 세워야”
북한은 1994년 9월 대홍수가 찾아오기 전 6개월 동안 국제 사회에 식량 원조를 호소하는 광란의 외교 행보를 시작했다. 대홍수는 겉으로만 자립적인 ‘주체 북한’이 굉장히 어처구니없는 해외 원조를 요구할 때 이용하는 정당화 구실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북한은 오늘날까지 원조를 계속 요청한다. 북한은 WFP, 한국, 미국, 심지어 수많은 제3세계 국가에도 긴급 인도적 지원을 요청했다고 한다. 북한의 식량 위기는 18년째에 접어들었다. 그간 국제 사회로부터 수십억 달러와 수백만t의 인도적 지원을 받았는데도 말이다. 들리는 말로만 따지면, 북한은 스스로 먹고살 능력을 잃었다. 도시화, 문명화, 산업화한 사회가 나락으로 떨어진 첫 번째 사례가 될 것이다.
핵무기와 장거리 탄도 미사일 제조 및 시험 발사 같은 과제는 잘해내는 북한이 어찌 국민을 먹여 살리는 기본 과제는 해결하지 못할까. 이 근본적 질문에 대한 설득력 있는 답을 구해야만 북한에 존재하는 굶주림을 해결하는 성공적 전략을 수립할 수 있다.
아주 일반적으로 말해, 북한의 식량 위기는 4가지 결정적 요인이 작용한 결과로 이해해야 한다. 이 요인은 모두 북한이라는 국가 성격에서 비롯한 것이다.
첫째는 북한의 왜곡된 옛 소련식 경제구조다. 심지어 소련보다 훨씬 더 비틀어져 있으며, 훨씬 더 비생산적, 비효율적이다.
둘째는 북한 정권의 식량 자급자족 정책이다. 북한은 인구가 도시에 집중한 데다 경작할 수 있는 땅이 극히 제한적이며, 겨울도 길다. 그런데도 노동집약적 공산품 수출을 통해 외국의 값싼 곡물을 수입하려 하지 않았다.
셋째는 북한 정권이 오랫동안 지속해온 자국민과의 전쟁이다. 북한은 폴 포트의 캄보디아 크메르루주를 제외한 현대의 그 어느 국가보다도 철저하게 경제를 망가뜨렸고, 이에 따라 국민은 국가의 직접적 배급 체제에 의존하게 됐다. 그런데 이 공급라인이 메마르면서 수십만 명의 주민이 사형 선고와 조우한 것이다.
이러한 요인은 구조적 문제다. 그런데 외부 세계가 잘 모르는 북한 기아와 관련한 또 다른 문제가 존재한다. 이 요인은 북한에서 정치적으로 신분계층을 규정하는 성분 시스템과 관련 있다. 곧 발간할 로버트 M. 콜린스의 연구 결과를 보면, 이 성분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잘 나와 있다. 성분 시스템은 최상위 계층인 ‘핵심’부터 ‘적대’라고 부르는 최하위 계층까지 50개 이상의 계층으로 구성됐다. 북한에서 ‘적대 계층’으로 지정된 사람의 삶은 위험으로 가득 차 있다. 실제로 지난 15년간 가장 극심한 굶주림으로 고통받은 북한 주민이 북한 동북부에 몰려 있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6·25전쟁 이후 ‘적대 계층’ 사람을 대거 재정착시킨 곳이 바로 이 지역이다. 솔직히 말하면 극심한 곤궁기 동안 북한 정권은 ‘적대 계층’ 사람이 죽든 말든 별 상관하지 않았다.
지난 십수 년간 이어진 대북 구호 계획은 좋은 의도에서 시작했지만, 오늘날 북한의 기아 문제를 설명해주는 추악한 현실을 의식하지 못하거나 마주하고 싶어 하지 않는 우매한 국제 사회의 돈으로 뒷받침됐다. 우매한 구상이 완전한 실패였다는 것이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러한 구상을 통해 북한 정권을 살찌우고 지원하는 대단한 업적을 이룬 것이다. 물론 그저 우연히, 저도 모르게, 원래 의도했던 대로 북한 주민의 고통을 덜어주기도 했다.
우리는 과거 접근 방식이 붕괴했음을 깨달아야 한다. 앞으로의 원조는 지금껏 용인해온 불운한 구상과 완전히 다른 것이어야 한다. 필자는 그것을 ‘개입적 원조’라고 부르고 싶다.
간단히 말해, 개입적 원조를 통해 사망률이나 아동의 신장, 체중 등 건강과 영양에 관련한 상세한 내부 데이터를 국제 사회에 제공하도록 북한에 요구하는 것이다. 과거에 WFP와 여타 단체가 순순히 받아들인, 북한 정권이 조작했음이 명백한 데이터는 안 된다. 또한 한국어를 구사하는 외부 조사 인력이 자유롭게, 아무 제약 없이 북한 전 지역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덧붙여 개입적 원조는 구호기관을 대표하는 사람이 실행해야 한다. 단순히 북한 관료에게 식량을 넘겨주고 도움이 필요한 곳에 사용해달라고 해서는 안 된다. 김정일 정권의 선한 의도를 그냥 믿는다는 것은 개입적 원조에서는 있을 수 없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공평과 비차별이라는 인도적 지원의 두 기본 이념에 입각해 모든 북한 주민이 원조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는 점이다. ‘적대 계층’뿐 아니라 요덕과 다른 열악한 집단 수용소에 수감된 이들도 수혜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
개입적 원조 계획은 불가분의, 그리고 비타협적 성격을 갖는다. 즉, 흥정이나 살라미 전술, 공식적인 방해 공작은 어떠한 식으로도 허용해서는 안 된다. 북한이 이 같은 조건에 동의할 경우 원조 계획을 시행한다. 그렇지 않으면 바로 폐기 처분한다.
개입적 원조가 수많은 ‘원조 전문가’와 과거의 실패한 접근 방식을 고수하는 사람들에게는 지지 받을 수 없으리라는 사실을 잘 안다. 여타 전문가와 정책가 또한 회의적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이러한 원조 조건에 북한이 동의하겠느냐고 반박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이에 대한 필자 대답은 간단하다. 강력하게 요구할 수 있는 대담함이 없으면 우리는 절대 답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지난 세월 소심하고 무기력한 원조가 북한 주민에게 무엇을 초래했는지 지켜봤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식량 불안정이 그것이다. 이제는 북한 주민을 진정으로 보듬는 원조 계획을 만들 때가 되지 않았는가.
* 니콜라스 에버스타트는 미국 워싱턴에 소재한 미국기업연구소(AEC)의 정치경제학 명예교수다.
‘글로벌 아시아(Global Asia)’는 동아시아재단이 발간하는 국제 문제 전문의 계간 영문저널이다. ‘21세기 아시아가 열어가는 세계적 변화의 형성 과정을 주목한다’는 기조 하에 아시아 지역의 주요 현안에 관한 각국 전문가와 정책결정자의 공론장 구실을 담당한다.
“정치는 잊어라, 생명을 살리는 일이다”
대북 인도적 지원에 대해 논할 때 항상 들리는 말들이 있다. “왜 받는 것 없이 퍼주기만 하는가?” “북한은 바뀌지 않았다” “군으로 전용되는 원조를 왜 계속하려 드는가?” “북한은 핵무기 개발을 멈추지 않는데 왜 인도적 지원을 하는가?” 등이다. 또한 이러한 말들은 국제 사회에서도 널리 받아들여진다.
이 같은 사고는 인도주의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고 정치적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지금 북한 주민은 심각한 기아와 질병으로 죽어간다. 영양실조가 아이의 왜소한 성장으로 이어지는 실정이다. 이러한 절망적 상황을 극복하려면 인도적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선린, 우호 차원뿐 아니라 국제 사회가 져야 할 의무, 명예 차원에서도 한국과 국제 사회는 그냥 지나칠 수 없다.
한국은 2000년에서 2007년 사이 북한에 매년 수십만t의 곡물을 지원했다. 2008년 보수 성향의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 대규모 대북 지원과 북한의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 폐기를 연계하는 정책을 펴면서 식량 지원을 중단했다. 북측이 식량 지원을 요청하는데도 일부 비판가는 북한이 2012년 4월 15일 김일성 탄생 100주년을 맞이해 주민에게 대량으로 배급할 식량을 끌어모으고자 식량 부족을 과장한다고 주장한다. 2012년은 북한이 ‘강성대국’의 새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천명한 해다.
사실 북한의 식량 위기는 세상에 알려지기 아주 오래전부터 시작됐다. 극심한 곡물 부족 현상은 1980년대 말부터 나타났다. 1990년대 초부터 근 10년 동안 기아와 각종 질병으로 100만 명의 북한 주민이 목숨을 잃은 이른바 대기근이 찾아오기 전에도 북한 정권은 식량 배급량을 10% 줄이고 ‘1일 2식’의 국가적 캠페인을 전개했다. 그러다 식량 위기가 심화하고 기근이 계속되자 배급을 완전히 중단했다. 이 탓에 북한 주민은 대부분 풀이나 벼 뿌리, 산과 들판의 소나무 속껍질이나 갖가지 풀로 연명하면서 하루에 한 끼밖에 먹지 못했다.
2010년 탈북한 한 인사는 지난 수년간의 사정이 너무 좋지 않아 자신이 살던, 그나마 부유하다는 평양에서도 주민이 받는 한 달 배급량이 실제적으로는 일주일 치밖에 안 됐다고 전했다. 가장 사정이 좋지 않은 곳은 교통 및 운송 여건이 형편없는 양강도, 자강도, 함경도 지역이다. 에너지 부족과 식량배급 체계 붕괴로 북한 주민은 최악의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었다. 최근 몇 년간의 식량 사정이 고난의 행군 때만큼 나쁘지는 않지만, 이미 상황은 악화할 대로 악화했다.
대북 원조를 논할 때 우리가 지원해준 것을 북한이 올바로 쓰지 않는다는 주장이 나온다. 만일 지원해준 것을 그들이 군용으로 전환한다면 무기 확보에 더 많은 재원을 투입할 수도 있다. 이러한 주장은 일견 타당하다. 원조한 식량은 실제로 필요한 사람에게 제공돼야 하고, 이를 보장하는 방법을 강구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대북 원조를 가장 효율적으로 이행할 수 있는 수단을 찾아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북한을 돕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는 수단의 문제지, 의도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9월 30일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북민협)의 대북 물자가 경기 파주시 통일대교를 통과하고 있다.
제대로 분배하는지 확인하고자 북한 적십자사가 한국 적십자사에 분배 활동을 보고하거나, 국제 비정부기구 회원을 북한에 파견해 지켜보도록 했다. 결과적으로 북한 사람은 한국의 대북 지원을 인식하며, 한국 적십자사 직원과 비정부기구 단체 관계자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유럽연합(EU)과 미국은 지원 물자가 항구에 도착해 실제 의도한 수혜자에게 전달될 때까지 굉장히 엄격한 모니터링 시스템을 운영한다. 그리고 평양에 사무소를 설치해 상주 유엔세계식량계획(WFP) 직원이 원조 식량 배분을 감시하게 한다. 이들은 지원 물자를 전한 지역 내 가장 작은 행정 구역까지 다니면서 배분 상황을 검열한다.
한 탈북자는 군이 최우선적 배급 대상이기 때문에 군인이 식량 배급을 가장 먼저 받았으리라 추측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현역 군인이 배급 받는 식량의 양은 극히 제한적이다. 지난 10년간 한국 정부는 오로지 선적 및 양도한 원조 물자 수치만 계산해왔다. 한국의 지원 형태가 무조건적 지원이 아닌 식량 대출 성격을 띠기 때문이다. 지원 배분의 투명성을 보장하려면 현재의 식량 대출 형태를 무조건적 지원으로 전환해야 한다.
대북 인도적 지원과 관련한 문제를 풀려면 앞에 놓인 몇 가지 숙제를 해결해야 한다.
첫째, 국제 사회의 대북 지원 범위가 넓어져야 한다. 국제 사회의 지원은 긴급 구호를 넘어 지속가능한 발전을 도모할 필요가 있다. 유엔은 체계적으로 계획을 수정함으로써 대북 개발 구호 노력에 대한 개입을 늘려나가야 한다. 한국 정부와 국제 비정부기구 또한 초점을 개발 구호 프로젝트에 맞춰야 한다.
둘째, 대북 인도 지원은 여러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인도주의적 위기 상황은 북한 전 지역에서 벌어진다. 특히 식량, 안보, 보건, 환경, 교육 분야에서 더 심각하다. 따라서 제한된 물자를 필요로 하는 여러 지역에 균형 있게 분배하는 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특히 보건 관련 지원을 대폭 늘려나가야 한다.
셋째, 북한은 경제를 회생시키려는 노력을 스스로 시작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북한은 이 만성적 고난의 상황을 극복할 수 없을 것이다.
넷째, 예전에 비해 북한이 유엔과 한국 정부, 국제 비정부기구의 요구에 좀 더 협조적인 태도를 보이긴 하지만, 정부 차원에서의 협력은 여전히 불만족스러운 수준이다. 상황에 대한 거짓 없는 평가, 제한을 받지 않는 감시 활동, 지역 주민의 협조와 수혜자의 직접적 관여는 인도적 지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데 있어 없어서는 안 될 사항이다.
그동안 한국 정부의 대북 인도적 지원은 북한 경제 전반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대북 지원은 비록 작지만 지속가능한 북한 경제 성장에서 중요한 요인이다. 일반 주민에게 가는 직접적 편익은 미미할 수 있으나, 원조를 통해 시장가격 상승을 예방함으로써 북한 주민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쳐온 것이다. 인도적 원조는 시장경제의 확충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 시장에 생필품이 밀려 들어오므로 경제활동이 대폭 늘어나게 되고, 이를 통해 북한 주민이 시장경제를 배웠던 것이다. 또한 대북 인도적 원조는 적대감을 누그러뜨려 남한에 대한 북한의 인식을 변화시키는 긍정적 측면이 있다. 이는 결국 남북통일을 원하는 북한 주민의 증가로 이어지고, 이 자체가 향후 통일에 상당한 동력이 될 수 있다.
만일 북한 상황이 급격히 악화할 때까지 기다리면, 그때는 만시지탄이 될 것이다. 생명을 살리는 인도적 지원이 잘못된 일인가. 한국이 보낸 쌀로 북한 주민이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다면 북한 주민의 대남 감정은 우호적으로 변할 것이다. 한국 정부는 북한 주민 대부분, 특히 극심한 영양 결핍에 허덕이는 어린이가 직면한 비극적 상황을 의식적이고 의도적으로 외면할 수 있는가. 한국 정부는 북한에 관용과 연민의 손길 내밀기를 거부하는 이유를 국제 사회에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한국 정부는 윤리적 나침반을 잃어서는 안 된다.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의 말을 떠올려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배고픈 아이는 정치를 모른다.”
김영윤 통일연구원 수석연구위원
● 니콜라스 에버스타트의 시각
“외부 원조는 실패, 진정 보듬는 계획 세워야”
북한은 1994년 9월 대홍수가 찾아오기 전 6개월 동안 국제 사회에 식량 원조를 호소하는 광란의 외교 행보를 시작했다. 대홍수는 겉으로만 자립적인 ‘주체 북한’이 굉장히 어처구니없는 해외 원조를 요구할 때 이용하는 정당화 구실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북한은 오늘날까지 원조를 계속 요청한다. 북한은 WFP, 한국, 미국, 심지어 수많은 제3세계 국가에도 긴급 인도적 지원을 요청했다고 한다. 북한의 식량 위기는 18년째에 접어들었다. 그간 국제 사회로부터 수십억 달러와 수백만t의 인도적 지원을 받았는데도 말이다. 들리는 말로만 따지면, 북한은 스스로 먹고살 능력을 잃었다. 도시화, 문명화, 산업화한 사회가 나락으로 떨어진 첫 번째 사례가 될 것이다.
핵무기와 장거리 탄도 미사일 제조 및 시험 발사 같은 과제는 잘해내는 북한이 어찌 국민을 먹여 살리는 기본 과제는 해결하지 못할까. 이 근본적 질문에 대한 설득력 있는 답을 구해야만 북한에 존재하는 굶주림을 해결하는 성공적 전략을 수립할 수 있다.
아주 일반적으로 말해, 북한의 식량 위기는 4가지 결정적 요인이 작용한 결과로 이해해야 한다. 이 요인은 모두 북한이라는 국가 성격에서 비롯한 것이다.
첫째는 북한의 왜곡된 옛 소련식 경제구조다. 심지어 소련보다 훨씬 더 비틀어져 있으며, 훨씬 더 비생산적, 비효율적이다.
둘째는 북한 정권의 식량 자급자족 정책이다. 북한은 인구가 도시에 집중한 데다 경작할 수 있는 땅이 극히 제한적이며, 겨울도 길다. 그런데도 노동집약적 공산품 수출을 통해 외국의 값싼 곡물을 수입하려 하지 않았다.
셋째는 북한 정권이 오랫동안 지속해온 자국민과의 전쟁이다. 북한은 폴 포트의 캄보디아 크메르루주를 제외한 현대의 그 어느 국가보다도 철저하게 경제를 망가뜨렸고, 이에 따라 국민은 국가의 직접적 배급 체제에 의존하게 됐다. 그런데 이 공급라인이 메마르면서 수십만 명의 주민이 사형 선고와 조우한 것이다.
이러한 요인은 구조적 문제다. 그런데 외부 세계가 잘 모르는 북한 기아와 관련한 또 다른 문제가 존재한다. 이 요인은 북한에서 정치적으로 신분계층을 규정하는 성분 시스템과 관련 있다. 곧 발간할 로버트 M. 콜린스의 연구 결과를 보면, 이 성분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잘 나와 있다. 성분 시스템은 최상위 계층인 ‘핵심’부터 ‘적대’라고 부르는 최하위 계층까지 50개 이상의 계층으로 구성됐다. 북한에서 ‘적대 계층’으로 지정된 사람의 삶은 위험으로 가득 차 있다. 실제로 지난 15년간 가장 극심한 굶주림으로 고통받은 북한 주민이 북한 동북부에 몰려 있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6·25전쟁 이후 ‘적대 계층’ 사람을 대거 재정착시킨 곳이 바로 이 지역이다. 솔직히 말하면 극심한 곤궁기 동안 북한 정권은 ‘적대 계층’ 사람이 죽든 말든 별 상관하지 않았다.
지난 십수 년간 이어진 대북 구호 계획은 좋은 의도에서 시작했지만, 오늘날 북한의 기아 문제를 설명해주는 추악한 현실을 의식하지 못하거나 마주하고 싶어 하지 않는 우매한 국제 사회의 돈으로 뒷받침됐다. 우매한 구상이 완전한 실패였다는 것이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러한 구상을 통해 북한 정권을 살찌우고 지원하는 대단한 업적을 이룬 것이다. 물론 그저 우연히, 저도 모르게, 원래 의도했던 대로 북한 주민의 고통을 덜어주기도 했다.
우리는 과거 접근 방식이 붕괴했음을 깨달아야 한다. 앞으로의 원조는 지금껏 용인해온 불운한 구상과 완전히 다른 것이어야 한다. 필자는 그것을 ‘개입적 원조’라고 부르고 싶다.
간단히 말해, 개입적 원조를 통해 사망률이나 아동의 신장, 체중 등 건강과 영양에 관련한 상세한 내부 데이터를 국제 사회에 제공하도록 북한에 요구하는 것이다. 과거에 WFP와 여타 단체가 순순히 받아들인, 북한 정권이 조작했음이 명백한 데이터는 안 된다. 또한 한국어를 구사하는 외부 조사 인력이 자유롭게, 아무 제약 없이 북한 전 지역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덧붙여 개입적 원조는 구호기관을 대표하는 사람이 실행해야 한다. 단순히 북한 관료에게 식량을 넘겨주고 도움이 필요한 곳에 사용해달라고 해서는 안 된다. 김정일 정권의 선한 의도를 그냥 믿는다는 것은 개입적 원조에서는 있을 수 없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공평과 비차별이라는 인도적 지원의 두 기본 이념에 입각해 모든 북한 주민이 원조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는 점이다. ‘적대 계층’뿐 아니라 요덕과 다른 열악한 집단 수용소에 수감된 이들도 수혜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
개입적 원조 계획은 불가분의, 그리고 비타협적 성격을 갖는다. 즉, 흥정이나 살라미 전술, 공식적인 방해 공작은 어떠한 식으로도 허용해서는 안 된다. 북한이 이 같은 조건에 동의할 경우 원조 계획을 시행한다. 그렇지 않으면 바로 폐기 처분한다.
개입적 원조가 수많은 ‘원조 전문가’와 과거의 실패한 접근 방식을 고수하는 사람들에게는 지지 받을 수 없으리라는 사실을 잘 안다. 여타 전문가와 정책가 또한 회의적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이러한 원조 조건에 북한이 동의하겠느냐고 반박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이에 대한 필자 대답은 간단하다. 강력하게 요구할 수 있는 대담함이 없으면 우리는 절대 답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지난 세월 소심하고 무기력한 원조가 북한 주민에게 무엇을 초래했는지 지켜봤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식량 불안정이 그것이다. 이제는 북한 주민을 진정으로 보듬는 원조 계획을 만들 때가 되지 않았는가.
* 니콜라스 에버스타트는 미국 워싱턴에 소재한 미국기업연구소(AEC)의 정치경제학 명예교수다.
‘글로벌 아시아(Global Asia)’는 동아시아재단이 발간하는 국제 문제 전문의 계간 영문저널이다. ‘21세기 아시아가 열어가는 세계적 변화의 형성 과정을 주목한다’는 기조 하에 아시아 지역의 주요 현안에 관한 각국 전문가와 정책결정자의 공론장 구실을 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