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6월 26일(현지시간) 캐나다 토론토의 한 호텔에 마련된 한국 프레스센터에서 김성환 당시 대통령실 외교안보수석비서관이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연기에 관한 한미정상회담 결과에 대해 브리핑하고 있다.
전시작전통제권(이하 전작권) 전환 연기 사실을 공개한 2010년 6월 27일 한미정상회담 직후 현지에서 회담 결과를 발표한 김성환 당시 대통령실 외교안보수석비서관의 이 발언은 군 당국 주변에서 미묘한 파장을 일으켰다. ‘군의 준비태세가 미비해 전작권 연기가 불가피하다’는 뉘앙스가 묻어나는 설명에 발끈한 국방부는 고위관계자가 직접 “전작권 전환 연기는 북한의 2차 핵실험 등 안보환경의 변화 때문이지 우리 군의 능력은 충분하다”고 강조하고 나섰다. 대놓고 말은 못했지만 전작권과 관련해 청와대가 은연중에 내비친 인식을 반박한 셈이었다.
1년여의 시간이 지난 지금, 청와대와 안보부처 핵심에서 이 문제를 다뤄온 당국자들의 뒷이야기는 훨씬 솔직하다. “전환 프로세스를 착착 진행해 이미 65% 수준에 이르렀다”는 당시 군의 설명은 실상과 거리가 멀었다는 것. 이들이 가장 먼저 꺼내는 문제가 바로 C4I체계 구축을 완료해 미군의 체계와 연동하는 과제다. 쉽게 말해 “2012년이 안보적으로 불안한 시기여서 전작권 전환 연기가 불가피했다”는 공식 설명과 달리, 실제로는 C4I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데 대한 우려가 깊숙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당초 일정 준수를 강하게 주장했던 미국 측이 끝내 연기를 수용한 이유 또한 바로 이에 대한 염려 때문이라는 게 이들의 시각이다.
위키리크스 “주요 회의 때마다 반복 지적”
앞서 현대전에서 C4I체계가 갖는 중요성을 설명했지만, 특히 2015년 전작권 전환을 앞둔 한국군 상황에서는 그 의미가 배가된다. 현재는 한미연합사령부로 통합된 유사시 전쟁 지휘체계가 한국군 합동참모본부와 미군 한국사령부(KORCOM)로 분리돼 이른바 ‘병렬형 지휘체계’로 변하기 때문. 이렇듯 이원화한 사령부 사이의 협조 및 연락을 위해 동맹군사협조본부(AMCC)를 함께 구성함으로써 문제의 소지를 없앨 수 있으리라는 것이 그간 군당국의 설명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렇듯 사령부를 분리할 경우 양국군 사이의 실시간 정보연동이나 명령 전달은 이전에 비해 훨씬 중요해진다. 두 사령부 사이의 의사소통이 얼마나 빠른 속도로 이뤄지는지가 곧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핵심요소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 수단과 통로 구실을 할 신경망인 양국군의 C4I체계를 연동하는 작업이 전작권 전환과 관련한 하드웨어 구축사업 가운데 가장 중요한 과제라는 평가에 군 관계자 대부분이 동의하는 이유다. 이를 위해 한국군이 현재 사용하는 C4I체계인 KJCCS(합동지휘통제체계)를 AKJCCS(연합지휘통제체계·KJCCS 앞에 ‘동맹’을 뜻하는 ‘Alliance’를 붙인 용어)로 발전시킨 뒤, 이를 주한미군 C4I체계인 CENTRIX-K와 연동해 미군 C4I와 이어 붙인다는 것이 현재 계획의 골자다.
문제는 이처럼 중요한 과제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고, 이에 대해 미국 측이 심각한 우려를 전해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다. 8월 26일(현지시간)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주한 미대사관발(發) 외교전문을 보면, 전작권 전환을 결정한 후 열린 수차례의 한미 군사당국 회의에서 미국 측 대표들이 이 문제를 매우 강도 높게 지적해왔음을 알 수 있다. 한국군의 C4I체계 구축 작업이 속도를 내지 못하는 바람에 통합 작업 역시 예정대로 진행될 수 없다는 문제제기가 주요 회의 때마다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것이다.
이러한 우려가 가장 먼저 등장하는 것은 주한 미대사관이 2008년 11월 8일자로 작성한 제19차 한미 안보정책구상(SPI) 회의 관련 전문이다. 그해 9월 서울에서 열린 회의에서 미국 측 수석대표였던 데이비드 세드니 당시 미 국방부 동아태담당 부차관보가 C4I 부분을 꼬집어 지적하고 나선 것. 전작권 전환 준비를 종합적으로 검토한 이 회의에서 그는 과제 대부분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지만, C4I에 대해서만큼은 부정적으로 평가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한국 측은 2012년에 이르러서야 AKJCCS를 실전에 배치할 계획이지만, 전작권 전환 이전에 이를 충분히 시험해보고 가동하기에는 너무 늦다는 지적이었다.
6월 8일 경기도 파주시 무건리 훈련장에서 진행된 한미 기계화부대 연합전술훈련에서 K-1 전차가 기동하고 있다. 이날 훈련은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앞두고 한국군이 지휘권을 행사한 첫 전술훈련으로, 1군단 소속 2기갑여단과 미 2사단 예하 1여단이 참가했다.
미국 측의 우려는 이듬해에도 이어졌다. 2009년 3월 2일 서울에서 열린 제21차 SPI 회의 내용을 전한 3월 20일자 전문에 따르면, C4I 문제는 모두연설과 북한정세 토론에 이어 가장 먼저 논의했을 정도로 우선순위가 높은 이슈였다. 참석자였던 주한미군 기획참모부장(J5) 프랭크 팬터 소장은 “한국 정부가 AKJCCS 구축사업에 배정한 예산이 210만 달러에 불과하다”고 우려를 표시(expressed concern)했으며, 특히 “전작권 전환 이후 C4I체계 통합에 대해 양국이 공식적인 합의를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고 전문은 기록했다.
이 회의에도 참석한 세드니 부차관보의 발언은 한층 강도 높다. “C4I 문제는 전작권 전환을 위한 가장 핵심적인 전투 이슈(most critical warfighting issue)”라는 로버트 게이츠 당시 미 국방장관의 말을 인용한 그는 “전작권 전환을 예정대로 진행하려면 이 사안이 ‘노란색’에서 ‘초록색’으로 옮겨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드니 부차관보는 다음 SPI 회의 전까지 한국군이 AKJCCS 개발 진척도와 필요한 C4I 성능을 충족시킬 방안에 대해 브리핑해달라는 요구를 덧붙이기도 했다.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전문이 주한 미대사관이 작성한 보고서의 극히 일부임을 감안하면, 확인된 내용은 그간 미국 측이 제기해온 C4I 관련 우려 가운데 빙산의 일각일 공산이 크다.
전작권 전환 연기 이후에는 과연 양측의 협의와 사업 진행이 원활하게 이뤄졌을까. 유감스럽게도 그렇지 않다는 징후를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감사원이 8월 공개한 ‘국방정보화 추진실태 감사결과 처분요구서’에 따르면, 군은 여전히 한미 간 C4I 연동에 관한 구체적인 합의를 이뤄내지 못한 상태다. AKJCCS와 CENTRIX-K를 어떤 항목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 이어 붙여 실시간으로 연동할 것인지에 대한 합의 없이 AKJCCS에 대한 개발 작업을 진행한다는 것. 감사원은 추후 합의 결과에 따라 한국 측 C4I체계를 수정해야 할지 모른다는 부분을 우려사항으로 지적한 것으로 전해진다.
워싱턴에서 피어오르는 ‘음모론’
2008년 4월 8일 서울 용산 국방부 청사에서 열린 제17차 한미 안보정책구상(SPI) 회의에서 데이비드 세드니 당시 미 국방부 동아태담당 부차관보(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한국군의 C4I체계가 많은 문제점을 풀지 못한 데다 한미 사이의 공식 합의도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보니, 2015년 12월 전작권 전환까지 과연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군당국 내부에서도 만만치 않다. 아직 시간적 여유가 있다고는 하지만, 2006년 전작권 전환 일정을 결정한 이래 4년 가까이 흐른 2010년까지도 이 문제가 가장 큰 걸림돌로 남아 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는 것. 이명박 대통령의 안보참모로 분류되는 한 전문가의 말이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2013년 말이나 2014년 초쯤 C4I 문제가 다시 전작권 전환의 발목을 잡을지도 모를 일이다. 당장 워싱턴 인사들 사이에서는 한국 측의 ‘의도’를 의심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전작권 전환을 다시 연기하는 명분으로 삼으려고 C4I 문제 해결에 소극적인 것 아니냐는 이야기다. 어쨌든 한 번의 연기 결정이 군당국에 ‘다음에도 다시 연기할 수 있을 것’이라는 부정적인 학습효과를 남겼음은 부인하기 어렵고, 이를 감안하면 오히려 그 시점에 C4I 준비 지연 문제를 명확하게 짚고 넘어갔어야 옳지 않았나 한다. 천안함 사건과 국방예산 문제 등으로 헝클어진 군심(軍心)을 자극하지 않으려 했던 청와대의 ‘배려’가 부메랑으로 남은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