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아동 및 청소년 책을 펴내는 출판사마다 ‘책 친구, 학급문고-학급문고 설치프로젝트 제안서’란 제목의 문건이 팩스로 날아들었다. 초중고교의 모든 학급에 학년별로 초등 200종, 중등 100종 등 총 1800종을 선정해 학급문고를 설치하고, 교과 과정과 연계한 책 이야기 프로그램(수업용 및 학생의 독서활동노트(책 이야기꾼)를 함께 배포함으로써 독서, 교과, 지식의 축적과 학습을 연계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자는 것이었다.
추천도서는 출판사가 신청한 책 중에서 선정위원회가 정할 예정인데, 출판사는 자사 책이 선정되면 종당 20만 원의 홍보비를 지불해야 한다고 했다. 이렇게 낸 돈은 도서목록과 광고비로 쓸 예정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 사업의 도덕성을 이유로 신청하지 않는 출판사와 홍보비를 내지 못하는 영세 출판사의 책은 자동적으로 선정에서 제외될 수밖에 없다.
이 사업을 주도하는 이는 아동서적 총판을 운영하다 몇 년 전 부도 위험에 처하자 다른 업체에 회사를 넘긴 유통업자다. 그의 부인은 여전히 다른 아동서적 총판을 운영하는 중이어서 그가 재기 발판으로 이 사업을 추진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가 표면적으로 내세우는 명분은 물론 독서진흥이다.
그러나 교과와 연계한 추천 목록은 교사가 주체가 돼 선정해야 한다. 전국 모든 학생에게 동일한 책을 골라준다는 것은 학생의 개인적인 기호나 수준 차를 무시한 군국주의적 발상이다. 20만 원의 비용을 부담하는 출판사의 책 중에서만 선정할 때는 최선의 책이 아닌 2류, 3류 책이 대부분을 차지할 확률이 높다.
선례도 있다. 국내의 한 독서운동 단체는 수년 전에 사옥 마련 자금을 확보하려고 주주를 공개적으로 모집했다. 그렇게 모집한 출판사가 27개 사다. 이 단체의 월별 추천도서로 선정되면 출판사는 많게는 8000~1만2000부를 납품하는데, 이 단체는 주주 신청을 한 출판사의 책을 추천도서로 선정하면 납품가의 절반을 납부받아 출자금을 확보했다.
그런데 출자금을 확보한 이후에도 이 단체는 매달 정하는 추천도서의 90% 내외를 주주회사가 펴낸 책에서 골랐다. 따로 설립한 자회사의 책을 대폭 선정하는 횡포도 저질렀다. 그러니 국내 굴지의 아동출판사 책은 선정에서 거의 제외됐다. 일부 출판사는 과도한 입고가 인하에 반발해 납품을 거부하기도 했다. 이런 일이 지속되면서 부모나 교사, 독서지도사의 불만은 높아졌다. 이 단체는 최근 내부 반발을 무마하려고 그동안 소외시켰던 출판사의 양서를 일부 선정해 납품을 요구했다. 하지만 일부 출판사는 이 단체의 지극히 상업적인 작태에 면죄부를 줄 수 있다는 이유로 여전히 납품을 거부한다.
그동안 이 단체의 자산은 늘었을지 몰라도 아동출판시장의 창의성과 다양성은 많이 훼손됐다. 독서운동이 활발해지지도 않았다. 이런 운영 방안이 이룬 유일한 일은 이 단체가 일관되게 추진하는 독서운동, 즉 입시정책에 부응하는 독서운동의 입맛에 맞는 저질 책을 늘렸다는 것이다.
물론 아이의 다양한 관심에 부응하는 책을 출판하지 못한 가장 큰 책임은 출판사와 작가에게 있다. 하지만 도서유통시장이 양서를 걸러내지 못하는 구조에서 독서운동마저 상업주의적 행태에 휘둘린다면 출판사나 작가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따라서 수요자인 학생과 교사, 학부모가 이렇게 비정상적으로 선정한 목록은 수용하길 거부하는 것만이 이런 독버섯 같은 업자가 끼어들 틈을 주지 않고 아이의 이해와 욕구에 맞는 책의 출간을 늘릴 수 있는 길이다.
1958년 출생.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학교도서관저널’ ‘기획회의’ 등 발행. 저서 ‘출판마케팅 입문’ ‘열정시대’ ‘20대, 컨셉력에 목숨 걸어라’ ‘베스트셀러 30년’ 등 다수
추천도서는 출판사가 신청한 책 중에서 선정위원회가 정할 예정인데, 출판사는 자사 책이 선정되면 종당 20만 원의 홍보비를 지불해야 한다고 했다. 이렇게 낸 돈은 도서목록과 광고비로 쓸 예정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 사업의 도덕성을 이유로 신청하지 않는 출판사와 홍보비를 내지 못하는 영세 출판사의 책은 자동적으로 선정에서 제외될 수밖에 없다.
이 사업을 주도하는 이는 아동서적 총판을 운영하다 몇 년 전 부도 위험에 처하자 다른 업체에 회사를 넘긴 유통업자다. 그의 부인은 여전히 다른 아동서적 총판을 운영하는 중이어서 그가 재기 발판으로 이 사업을 추진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가 표면적으로 내세우는 명분은 물론 독서진흥이다.
그러나 교과와 연계한 추천 목록은 교사가 주체가 돼 선정해야 한다. 전국 모든 학생에게 동일한 책을 골라준다는 것은 학생의 개인적인 기호나 수준 차를 무시한 군국주의적 발상이다. 20만 원의 비용을 부담하는 출판사의 책 중에서만 선정할 때는 최선의 책이 아닌 2류, 3류 책이 대부분을 차지할 확률이 높다.
선례도 있다. 국내의 한 독서운동 단체는 수년 전에 사옥 마련 자금을 확보하려고 주주를 공개적으로 모집했다. 그렇게 모집한 출판사가 27개 사다. 이 단체의 월별 추천도서로 선정되면 출판사는 많게는 8000~1만2000부를 납품하는데, 이 단체는 주주 신청을 한 출판사의 책을 추천도서로 선정하면 납품가의 절반을 납부받아 출자금을 확보했다.
그런데 출자금을 확보한 이후에도 이 단체는 매달 정하는 추천도서의 90% 내외를 주주회사가 펴낸 책에서 골랐다. 따로 설립한 자회사의 책을 대폭 선정하는 횡포도 저질렀다. 그러니 국내 굴지의 아동출판사 책은 선정에서 거의 제외됐다. 일부 출판사는 과도한 입고가 인하에 반발해 납품을 거부하기도 했다. 이런 일이 지속되면서 부모나 교사, 독서지도사의 불만은 높아졌다. 이 단체는 최근 내부 반발을 무마하려고 그동안 소외시켰던 출판사의 양서를 일부 선정해 납품을 요구했다. 하지만 일부 출판사는 이 단체의 지극히 상업적인 작태에 면죄부를 줄 수 있다는 이유로 여전히 납품을 거부한다.
그동안 이 단체의 자산은 늘었을지 몰라도 아동출판시장의 창의성과 다양성은 많이 훼손됐다. 독서운동이 활발해지지도 않았다. 이런 운영 방안이 이룬 유일한 일은 이 단체가 일관되게 추진하는 독서운동, 즉 입시정책에 부응하는 독서운동의 입맛에 맞는 저질 책을 늘렸다는 것이다.
물론 아이의 다양한 관심에 부응하는 책을 출판하지 못한 가장 큰 책임은 출판사와 작가에게 있다. 하지만 도서유통시장이 양서를 걸러내지 못하는 구조에서 독서운동마저 상업주의적 행태에 휘둘린다면 출판사나 작가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따라서 수요자인 학생과 교사, 학부모가 이렇게 비정상적으로 선정한 목록은 수용하길 거부하는 것만이 이런 독버섯 같은 업자가 끼어들 틈을 주지 않고 아이의 이해와 욕구에 맞는 책의 출간을 늘릴 수 있는 길이다.
1958년 출생.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학교도서관저널’ ‘기획회의’ 등 발행. 저서 ‘출판마케팅 입문’ ‘열정시대’ ‘20대, 컨셉력에 목숨 걸어라’ ‘베스트셀러 30년’ 등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