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이 중요하듯, 기업도 다음 세대까지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루는 게 중요하다. 이를 위한 필수조건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다.”(코리아CSR 유명훈 대표)
요즘 기업이 환경경영, 윤리경영, 사회공헌 등을 통해 경제적 이익을 창출하면서 동시에 사회에 기여하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경영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그만큼 CSR이 기업에 미치는 영향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의미다. CSR 관련 뉴스도 연일 이어진다. ‘국민은행, 상반기 사회공헌 1등 은행’(9월18일), ‘하이닉스반도체, 지속경영위원회 출범’(18일), ‘정몽구 회장의 8400억원 출연 사회공헌위 내달 출범’(18일), CSR을 경영에 접목하기 위해 설립된 유엔(UN) 글로벌 콤팩트 한국협회 공식 출범’(17일)….
한동안 윤리강령 도입 바람이 불어 강령을 채택한 기업도 많아졌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350개 대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2005년 62%에서 2007년 93.5%로 높아졌다.
또 기업 사회공헌 지출 규모도 2004년 1조2000억원에서 2005년 1조4000억원으로 증가했다. CSR 활동을 잘하는 기업에 투자하는 사회책임투자(SRI) 펀드도 국내외에서 급성장하고 있다. 국내의 경우 사회책임투자 펀드 규모는 대신증권의 ‘지구온난화 펀드’ 등 2조원대. 주식시장의 큰손인 국민연금은 SRI 펀드에 3000억원을 투자해 올해 6월까지 주식형펀드 평균수익률(25.7%)보다 높은 29.15%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미국의 경우 SRI 펀드 규모가 2005년 말 기준으로 2조2900억 달러로 1995년 대비 3.6배 커졌고, 유럽의 경우 2005년 말 1조330억 유로로 2003년 대비 3배가 확대됐다.
지출 비용 美보다 높지만 기업 호감지수 하락
그러나 이처럼 기업들의 CSR 활동과 지출 규모는 전 세계적으로 늘어나지만, 거기에 상응하는 효과는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SK텔레콤 남영찬 부사장은 9월18일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와 국가인권위원회, 한국기업시민센터가 공동으로 개최한 CSR 국제회의에서 “국내 기업이 영업이익 대비 사회공헌에 지출하는 비용은 미국보다 높지만, 기업 호감지수는 하락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올해 대한상공회의소의 ‘기업의 사회공헌활동 선진화를 위한 5대 실천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시민들이 매긴 국내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 점수는 100점 만점에 37.4점에 불과했다.
그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국내 기업들이 아직까지 CSR에 대해 적절한 전략을 세우지 못하고 주먹구구식으로 접근하기 때문으로 풀이한다.
유명훈 대표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기업들의 무전략이 문제다. 특히 대기업들은 그들의 영업행태와 마찬가지로 특정한 전략 없이 문어발식으로 다양한 부문에 투자해왔다”고 지적했다.
기업들의 낡은 인식도 문제다. 몇몇 기업을 제외하고는 아직도 CSR을 사회공헌 활동과 동일시하는 곳이 많다. 이장원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우리나라 사람들은 CSR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이 지역봉사 활동이나 기부금 같은 기업의 자선활동이다. 그러나 CSR을 기업의 자선활동과 동일시하는 것은 CSR을 잘못 이해한 것이다. 자선행위가 CSR의 한 부분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아주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국내 주요 기업들이 비자금 조성 등 윤리경영에 문제가 생겼을 때 그것을 덮기 위해 거액의 기부금을 내는 ‘그린워시(Green- wash)’ 전략을 써온 것도 문제다. 전경련의 한 관계자는 “이전에 회계장부를 분식하던 한국 기업들이 이제는 기업윤리나 사회공헌과 같은 고상한 방식으로 바꿨다. 사법처리를 피하기 위해 수천억원의 재산을 기부하겠다고 공언하는 기업은 대한민국밖에 없다. 윤리경영과 사회공헌으로 치장해 치부(恥部)를 가리려는 새로운 형태의 ‘윤리분식’은 기업에 대한 사회적 불신을 증대시킬 뿐”이라고 꼬집었다.
기부금 대기업 편중 현상 심각
기업의 기부활동은 돈의 액수가 아무리 많아도 정도(正道)경영 등 CSR의 각 영역과 연결되지 않으면 제대로 효과를 볼 수 없다는 점은 미국 기업 엔론(Enron)의 사례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회계분식이 알려져 파산하기 전 엔론은 전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 10위 안에 들었고, 사회공헌 금액이 미국 내 5위에 오를 만큼 활발하게 기부활동을 해왔다. 그러나 회계분식이라는 비윤리 경영으로 결국 이 회사는 2002년 파국을 맞았다.
기부금의 편중 현상도 심각하다. 2005년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244개 주요 기업의 기부금 총액은 1조4000억원. 반면 매출이 작은 중소기업의 기부 등 CSR 관련 활동은 미미한 실정이다. 미국의 경우 상공회의소에서 5인 기업까지 CSR을 조사해 발표할 만큼 중소기업의 CSR 활동이 활발한 것에 비하면 큰 차이가 난다. 이 또한 전략 부재에서 비롯되는 현상이다.
유 대표는 “중소기업도 핵심 비즈니스와 관련된 CRS 전략을 통해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지역 기업이 지역사회를 바탕으로 다양한 활동을 펼칠 경우 지역에서도 존경받고, 그것을 바탕으로 전국 혹은 해외까지 비즈니스를 넓히는 기회를 만들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런 인식 전환이 바람직한 CSR 전략의 밑바탕이 된다. 유 대표는 전략적인 CSR 추진을 위해 강조돼야 할 기본요소로 △CSR에 대한 최고경영자(CEO)의 실천 의지 △체계적인 교육과 모니터링 등을 맡을 전담부서 △전사적 CSR 관리 솔루션 활용 △중장기 CSR 비전 수립 △기업의 핵심 비즈니스와 CSR의 전략적 연계 등 5가지를 꼽았다.
이런 기본 요소를 다 갖추고 바람직한 CSR 전략을 갖고 있는 기업으로 어디를 꼽을 수 있을까? 최근 내한한 아론 크레이머 BSR(Business for Social Responsibility) 대표는 다국적 정유회사 ‘셸(Shell)’을 꼽았다. 그는 “한때 셸은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낙인찍히기도 했지만 지금은 CEO가 지속가능성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으며, 이사회에서는 지속가능한 사회책임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다. 구조적으로 지속가능성을 비즈니스의 모든 활동에 통합 관리하기 위한 내부 시스템도 갖췄으며, 지역의 비즈니스 단위에서도 이를 적용하고 있다. 외부 비즈니스 파트너들과도 우호적인 협력을 통해 지속가능성을 도모하고, 모든 실적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국내 기업의 경우 CSR을 전사적으로 관리, 감독하는 조직과 시스템을 구축한 기업은 드물다. 양용희 호서대 교수(사회복지학)는 “CSR 총괄부서가 없을 경우 내부적으로 기업의 수익을 책임지는 부서와 사회공헌 담당자 사이에 불일치가 생길 가능성이 높다. 이럴 경우 사회책임과 기업중심이 충돌해 회사 자원만 낭비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예외적인 곳이 몇 군데 있기는 하다. 유한킴벌리는 최고경영자가 확고한 CSR 철학을 바탕으로 장기적인 비전을 가지고 환경경영, 윤리경영, 사회공헌 활동, 임직원 및 소비자 만족 경영 등 종합적인 CSR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왔다. 또 부사장이 ‘커뮤니케이션 및 CSR 본부’ 본부장을 맡아 CSR을 총괄한 결과 국내 기업 가운데 탁월한 기업 이미지를 구축했다. 해외 현지에서 사회공헌 활동을 펼쳐 탁월한 성과를 거둔 LG전자, 윤리경영 도입으로 주가와 매출에서 큰 향상을 보인 신세계와 하이닉스반도체 등도 전략적 CSR 도입으로 득을 보고 있는 기업들이다.
CSR에 대한 기업들의 전략적 접근이 더 필요해진 이유는 이것이 세계시장에서 진입 장벽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로 국제표준기구(ISO)는 2009년 11월부터 기업의 CSR 활동 인증을 위한 국제표준인 ISO26000을 도입할 예정이다. 환경, 인권, 노동, 지배구조, 공정한 업무 관행, 소비자 이슈, 지역사회 참여 등 7개 분야에서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지는데, 이 기준을 지키지 않을 경우 국제적 무역거래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게 된다. ISO26000이 ‘블루라운드(노동)’ ‘그린라운드(환경)’로 불리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세계무역기구(WTO),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많은 국제기구들이 여기에 참여할 뿐 아니라 금융기관들도 투자 및 기업을 평가할 때 이를 중요한 지표로 사용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경제연구소 조희재 수석연구원은 “ISO26000이 환경 가이드라인처럼 강제성이 있는 것은 아니고, 권고성이지만 수출이나 해외사업 시행 시 장벽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에 처음부터 기준을 만족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영국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은 정부 차원에서도 CSR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영국은 2001년 수정연금법을 발효해 연기금은 SRI 펀드에 투자할 것을 의무화했고, 프랑스도 2001년 신경제규제법을 제정해 상장기업의 연례보고서에 사회적·환경적 영향에 관한 내용을 포함시킬 것을 명문화했다.
특히 일본과 중국의 행보가 눈길을 끈다. 기업의 ‘지속가능성보고서’의 가이드라인을 입안하는 연구센터인 GRI(Global Reporting Initiative)에는 핵심 의사결정 조직인 이해관계자 위원회(Stakeholder Council)가 있는데 여기에 일본과 중국 위원이 각각 3명씩 포진하고 있다. 반면 한국 위원은 한 명도 없다. 인도(2명), 필리핀(2), 파키스탄(1)까지 참여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한국의 전략 부재를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양용희 교수는 “CSR의 국제적 흐름을 따라가려면 정부, 기업, 경제단체, 비정부기구(NGO)가 전략적으로 협력하고 대비할 네트워크를 구성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중요한 규범으로 ‘유엔 글로벌 콤팩트(UN Global Compact)’가 있다. 이는 2000년 코피 아난 전 유엔 사무총장이 제안해 출발한 것으로 지금은 반기문 사무총장의 핵심사업 가운데 하나다. 참여 기업들은 인권보호, 결사의 자유, 강제노동 금지, 환경문제 예방적 접근, 반부패 등 10개 원칙을 지키고 매년 연례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9월14일 현재 대한항공 등 82개 단체와 기업이 여기에 가입했다.
장기적 비전 갖춘 유한킴벌리 모범사례
양 교수는 “글로벌 콤팩트는 가입은 쉽지만 인권, 노동, 환경, 반부패 등 민감한 부문에 대해 매년 이행보고서를 내야 하기 때문에 대기업들이 가입을 주저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 우리나라 기업들도 다국적기업으로서 세계적인 영업활동을 위해서는 가입을 검토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 CSR은 세계적으로 거부할 수 없는 도도한 물결이 됐다. 이를 얼마나 제대로 준비하느냐에 따라 기업의 미래도 결정될 것이다. 그러나 CSR을 추진하는 데 경영진의 인식 차이, 비용 부담 등 다양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전문가들은 ‘가능하고 적정한 수준에서’ 꾸준히 준비해나갈 것을 권한다.
CSR에 대한 관심을 반영하듯 삼성경제연구소는 최근 ‘지속성장 기업의 조건: CSR’ 보고서를 내고 “앞으로 기업의 성장은 기업의 매출·호감도·브랜드력 등 유무형 자산가치 증대에 기여하는 사회적 책임을 얼마나 잘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또 “CSR 활동은 기업의 사회에 대한 무한책임이기보다는 기업 성과와 사회적 기여의 조화를 의미한다. CSR은 기본적으로 기업 성과가 뒷받침돼야 가능하고 동시에 기업도 지속성장을 위해 사회적 투자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국 기업들이 적절한 전략으로 사회책임과 이익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날은 과연 언제일까.
요즘 기업이 환경경영, 윤리경영, 사회공헌 등을 통해 경제적 이익을 창출하면서 동시에 사회에 기여하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경영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그만큼 CSR이 기업에 미치는 영향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의미다. CSR 관련 뉴스도 연일 이어진다. ‘국민은행, 상반기 사회공헌 1등 은행’(9월18일), ‘하이닉스반도체, 지속경영위원회 출범’(18일), ‘정몽구 회장의 8400억원 출연 사회공헌위 내달 출범’(18일), CSR을 경영에 접목하기 위해 설립된 유엔(UN) 글로벌 콤팩트 한국협회 공식 출범’(17일)….
한동안 윤리강령 도입 바람이 불어 강령을 채택한 기업도 많아졌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350개 대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2005년 62%에서 2007년 93.5%로 높아졌다.
또 기업 사회공헌 지출 규모도 2004년 1조2000억원에서 2005년 1조4000억원으로 증가했다. CSR 활동을 잘하는 기업에 투자하는 사회책임투자(SRI) 펀드도 국내외에서 급성장하고 있다. 국내의 경우 사회책임투자 펀드 규모는 대신증권의 ‘지구온난화 펀드’ 등 2조원대. 주식시장의 큰손인 국민연금은 SRI 펀드에 3000억원을 투자해 올해 6월까지 주식형펀드 평균수익률(25.7%)보다 높은 29.15%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미국의 경우 SRI 펀드 규모가 2005년 말 기준으로 2조2900억 달러로 1995년 대비 3.6배 커졌고, 유럽의 경우 2005년 말 1조330억 유로로 2003년 대비 3배가 확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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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18일 전경련, 국가인권위, 한국기업시민센터가 공동 개최한 CSR 국제회의에서 참석자들이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기업들의 CSR 활동과 지출 규모는 전 세계적으로 늘어나지만, 거기에 상응하는 효과는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SK텔레콤 남영찬 부사장은 9월18일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와 국가인권위원회, 한국기업시민센터가 공동으로 개최한 CSR 국제회의에서 “국내 기업이 영업이익 대비 사회공헌에 지출하는 비용은 미국보다 높지만, 기업 호감지수는 하락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올해 대한상공회의소의 ‘기업의 사회공헌활동 선진화를 위한 5대 실천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시민들이 매긴 국내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 점수는 100점 만점에 37.4점에 불과했다.
그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국내 기업들이 아직까지 CSR에 대해 적절한 전략을 세우지 못하고 주먹구구식으로 접근하기 때문으로 풀이한다.
유명훈 대표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기업들의 무전략이 문제다. 특히 대기업들은 그들의 영업행태와 마찬가지로 특정한 전략 없이 문어발식으로 다양한 부문에 투자해왔다”고 지적했다.
기업들의 낡은 인식도 문제다. 몇몇 기업을 제외하고는 아직도 CSR을 사회공헌 활동과 동일시하는 곳이 많다. 이장원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우리나라 사람들은 CSR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이 지역봉사 활동이나 기부금 같은 기업의 자선활동이다. 그러나 CSR을 기업의 자선활동과 동일시하는 것은 CSR을 잘못 이해한 것이다. 자선행위가 CSR의 한 부분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아주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국내 주요 기업들이 비자금 조성 등 윤리경영에 문제가 생겼을 때 그것을 덮기 위해 거액의 기부금을 내는 ‘그린워시(Green- wash)’ 전략을 써온 것도 문제다. 전경련의 한 관계자는 “이전에 회계장부를 분식하던 한국 기업들이 이제는 기업윤리나 사회공헌과 같은 고상한 방식으로 바꿨다. 사법처리를 피하기 위해 수천억원의 재산을 기부하겠다고 공언하는 기업은 대한민국밖에 없다. 윤리경영과 사회공헌으로 치장해 치부(恥部)를 가리려는 새로운 형태의 ‘윤리분식’은 기업에 대한 사회적 불신을 증대시킬 뿐”이라고 꼬집었다.
기부금 대기업 편중 현상 심각
기업의 기부활동은 돈의 액수가 아무리 많아도 정도(正道)경영 등 CSR의 각 영역과 연결되지 않으면 제대로 효과를 볼 수 없다는 점은 미국 기업 엔론(Enron)의 사례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회계분식이 알려져 파산하기 전 엔론은 전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 10위 안에 들었고, 사회공헌 금액이 미국 내 5위에 오를 만큼 활발하게 기부활동을 해왔다. 그러나 회계분식이라는 비윤리 경영으로 결국 이 회사는 2002년 파국을 맞았다.
기부금의 편중 현상도 심각하다. 2005년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244개 주요 기업의 기부금 총액은 1조4000억원. 반면 매출이 작은 중소기업의 기부 등 CSR 관련 활동은 미미한 실정이다. 미국의 경우 상공회의소에서 5인 기업까지 CSR을 조사해 발표할 만큼 중소기업의 CSR 활동이 활발한 것에 비하면 큰 차이가 난다. 이 또한 전략 부재에서 비롯되는 현상이다.
유 대표는 “중소기업도 핵심 비즈니스와 관련된 CRS 전략을 통해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지역 기업이 지역사회를 바탕으로 다양한 활동을 펼칠 경우 지역에서도 존경받고, 그것을 바탕으로 전국 혹은 해외까지 비즈니스를 넓히는 기회를 만들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런 인식 전환이 바람직한 CSR 전략의 밑바탕이 된다. 유 대표는 전략적인 CSR 추진을 위해 강조돼야 할 기본요소로 △CSR에 대한 최고경영자(CEO)의 실천 의지 △체계적인 교육과 모니터링 등을 맡을 전담부서 △전사적 CSR 관리 솔루션 활용 △중장기 CSR 비전 수립 △기업의 핵심 비즈니스와 CSR의 전략적 연계 등 5가지를 꼽았다.
이런 기본 요소를 다 갖추고 바람직한 CSR 전략을 갖고 있는 기업으로 어디를 꼽을 수 있을까? 최근 내한한 아론 크레이머 BSR(Business for Social Responsibility) 대표는 다국적 정유회사 ‘셸(Shell)’을 꼽았다. 그는 “한때 셸은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낙인찍히기도 했지만 지금은 CEO가 지속가능성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으며, 이사회에서는 지속가능한 사회책임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다. 구조적으로 지속가능성을 비즈니스의 모든 활동에 통합 관리하기 위한 내부 시스템도 갖췄으며, 지역의 비즈니스 단위에서도 이를 적용하고 있다. 외부 비즈니스 파트너들과도 우호적인 협력을 통해 지속가능성을 도모하고, 모든 실적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국내 기업의 경우 CSR을 전사적으로 관리, 감독하는 조직과 시스템을 구축한 기업은 드물다. 양용희 호서대 교수(사회복지학)는 “CSR 총괄부서가 없을 경우 내부적으로 기업의 수익을 책임지는 부서와 사회공헌 담당자 사이에 불일치가 생길 가능성이 높다. 이럴 경우 사회책임과 기업중심이 충돌해 회사 자원만 낭비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예외적인 곳이 몇 군데 있기는 하다. 유한킴벌리는 최고경영자가 확고한 CSR 철학을 바탕으로 장기적인 비전을 가지고 환경경영, 윤리경영, 사회공헌 활동, 임직원 및 소비자 만족 경영 등 종합적인 CSR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왔다. 또 부사장이 ‘커뮤니케이션 및 CSR 본부’ 본부장을 맡아 CSR을 총괄한 결과 국내 기업 가운데 탁월한 기업 이미지를 구축했다. 해외 현지에서 사회공헌 활동을 펼쳐 탁월한 성과를 거둔 LG전자, 윤리경영 도입으로 주가와 매출에서 큰 향상을 보인 신세계와 하이닉스반도체 등도 전략적 CSR 도입으로 득을 보고 있는 기업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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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SR에 대한 기업들의 전략적 접근이 더 필요해진 이유는 이것이 세계시장에서 진입 장벽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로 국제표준기구(ISO)는 2009년 11월부터 기업의 CSR 활동 인증을 위한 국제표준인 ISO26000을 도입할 예정이다. 환경, 인권, 노동, 지배구조, 공정한 업무 관행, 소비자 이슈, 지역사회 참여 등 7개 분야에서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지는데, 이 기준을 지키지 않을 경우 국제적 무역거래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게 된다. ISO26000이 ‘블루라운드(노동)’ ‘그린라운드(환경)’로 불리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세계무역기구(WTO),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많은 국제기구들이 여기에 참여할 뿐 아니라 금융기관들도 투자 및 기업을 평가할 때 이를 중요한 지표로 사용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경제연구소 조희재 수석연구원은 “ISO26000이 환경 가이드라인처럼 강제성이 있는 것은 아니고, 권고성이지만 수출이나 해외사업 시행 시 장벽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에 처음부터 기준을 만족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영국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은 정부 차원에서도 CSR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영국은 2001년 수정연금법을 발효해 연기금은 SRI 펀드에 투자할 것을 의무화했고, 프랑스도 2001년 신경제규제법을 제정해 상장기업의 연례보고서에 사회적·환경적 영향에 관한 내용을 포함시킬 것을 명문화했다.
특히 일본과 중국의 행보가 눈길을 끈다. 기업의 ‘지속가능성보고서’의 가이드라인을 입안하는 연구센터인 GRI(Global Reporting Initiative)에는 핵심 의사결정 조직인 이해관계자 위원회(Stakeholder Council)가 있는데 여기에 일본과 중국 위원이 각각 3명씩 포진하고 있다. 반면 한국 위원은 한 명도 없다. 인도(2명), 필리핀(2), 파키스탄(1)까지 참여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한국의 전략 부재를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양용희 교수는 “CSR의 국제적 흐름을 따라가려면 정부, 기업, 경제단체, 비정부기구(NGO)가 전략적으로 협력하고 대비할 네트워크를 구성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중요한 규범으로 ‘유엔 글로벌 콤팩트(UN Global Compact)’가 있다. 이는 2000년 코피 아난 전 유엔 사무총장이 제안해 출발한 것으로 지금은 반기문 사무총장의 핵심사업 가운데 하나다. 참여 기업들은 인권보호, 결사의 자유, 강제노동 금지, 환경문제 예방적 접근, 반부패 등 10개 원칙을 지키고 매년 연례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9월14일 현재 대한항공 등 82개 단체와 기업이 여기에 가입했다.
장기적 비전 갖춘 유한킴벌리 모범사례
양 교수는 “글로벌 콤팩트는 가입은 쉽지만 인권, 노동, 환경, 반부패 등 민감한 부문에 대해 매년 이행보고서를 내야 하기 때문에 대기업들이 가입을 주저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 우리나라 기업들도 다국적기업으로서 세계적인 영업활동을 위해서는 가입을 검토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 CSR은 세계적으로 거부할 수 없는 도도한 물결이 됐다. 이를 얼마나 제대로 준비하느냐에 따라 기업의 미래도 결정될 것이다. 그러나 CSR을 추진하는 데 경영진의 인식 차이, 비용 부담 등 다양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전문가들은 ‘가능하고 적정한 수준에서’ 꾸준히 준비해나갈 것을 권한다.
CSR에 대한 관심을 반영하듯 삼성경제연구소는 최근 ‘지속성장 기업의 조건: CSR’ 보고서를 내고 “앞으로 기업의 성장은 기업의 매출·호감도·브랜드력 등 유무형 자산가치 증대에 기여하는 사회적 책임을 얼마나 잘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또 “CSR 활동은 기업의 사회에 대한 무한책임이기보다는 기업 성과와 사회적 기여의 조화를 의미한다. CSR은 기본적으로 기업 성과가 뒷받침돼야 가능하고 동시에 기업도 지속성장을 위해 사회적 투자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국 기업들이 적절한 전략으로 사회책임과 이익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날은 과연 언제일까.
IS0(International Organization for Standardization) | 유엔 글로벌 콤팩트(UN Global Compact) | GRI(Global Reporting Initiative) 가이드라인 |
- 각국 표준제정 단체 대표로 구성 - 환경, 노동, 인권, 지배구조, 공정거래, 소비자보호 등 - 기업뿐 아니라 정부, 노조, 시민단체에도 적용할 수 있는 사회적 책임(SR)에 대한 표준인 ISO26000을 2009년 11월 발표할 예정 | - 1999년 유엔 코피 아난 사무총장 제안 - 인권, 노동, 환경, 반부패 등 4대 분야 10대 기업행동규범 - 전 세계적으로 4600개 기업 및 단체 가입 - 국내 SKT, 한전,대한항공,하나은행 등 81개 기업 및 단체 가입(2007년 9월5일 기준) | - UNEP와 국제 NGO단체인 CERES가 공동으로 1997년 창설 - 현재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지속가능성보고서 가이드라인 - 기업의 경제, 사회, 환경 등 3중의 기본 원칙에 따른 경영활동 공개하고 이를 통해 지속가능 경영의지 공유 목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