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547

..

국민연금이 지켜야 할 것은 코스피가 아니라 국민 노후

[김성일의 롤링머니] 국내 주식 비중 상향으로 ‘자국편향’ 확대… 분산투자 원칙에 역행

  • 김성일 업라이즈투자자문 대표

    입력2026-07-13 07:00:02

  • 글자크기 설정 닫기
    국민연금공단 서울 강남사옥. 동아DB

    국민연금공단 서울 강남사옥. 동아DB

    국민연금이 7월 1일 6개월간 중단했던 한국 주식 리밸런싱을 재개했다. 첫날 하루에만 2180억 원어치를 순매도했는데 가장 많이 판 종목은 삼성전자였다. 앞서 시장에서는 ‘매도 폭탄’에 대한 공포가 확산됐다. 신영증권에서 코스피가 9000 선에 이르면 국민연금이 74조 원어치를 매도해야 한다는 추산을 내놓자, 일각에서는 그 규모가 170조 원에 이를 수 있다는 소문까지 나돌았다. 이와 관련해 김성주 국민연금 이사장은 “언제부터 애널리스트가 점쟁이 노릇을 하게 됐는지 의아하다”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리밸런싱은 자산배분 운용에서 핵심 도구다. 주식과 채권, 대체투자 비중을 정해두고, 시장 움직임에 따라 각각의 비중이 목표치에서 벗어나면 다시 원래로 되돌리는 작업이다. 오른 자산은 조금 덜어내고, 반대로 내린 자산은 더 사들인다. 비싸진 것을 팔고 싸진 것을 사는, 감정과 정반대로 움직이는 규율이다. 자동차로 치면 정속주행 장치와 같다. 오르막에서 과속하지 않도록 설정한 속도에서 일정하게 움직이고, 내리막에서 겁먹지 않도록 속도를 붙잡아주는 장치다.

    국내 주식 비중 확대와 리밸런싱 유예

    1986년 브린슨·후드·비바워(BHB)가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장기 포트폴리오 성과의 변동은 ‘어떤 종목을 골랐느냐’나 ‘언제 사고팔았느냐’보다 ‘어떻게 자산을 배분했느냐’에서 대부분 갈린다. 국내에서도 같은 결론이 나온다. 고영은 국민연금공단 연구원과 정재만 숭실대 교수가 2020년 발표한 ‘국내 연기금 투자 성과의 분해’에 따르면 국내 20개 연기금의 2010~2015년 연평균 수익률 3.69%에서 전략적 자산배분에 따른 수익률이 3.60%대로 약 97.69%를 차지했다. 반면 종목 선택과 매매 타이밍이 보탠 몫은 극히 적었다. 그만큼 자산배분 비율을 지키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 리밸런싱은 바로 그 비율을 지키는 장치다. 목표를 정해놓고 흔들림 없이 되돌리는 것, 그 단순한 규율이 장기 수익의 뼈대가 된다.

    그런데 이번에 국민연금이 한 일은 엄밀히 말하면 리밸런싱이 아니다. 한국 증시가 급등하면서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비중은 4월 말 25%까지 부풀었다. 원래 목표는 14.9%였으니 10.1%p나 초과한 셈이다. 규율대로라면 그동안 그 격차만큼 팔아 목표로 되돌아왔어야 한다. 그런데 상반기 6개월 동안 리밸런싱을 유예했다. 또한 국민연금은 국내 주식을 매도하는 대신 목표선 자체를 20.8%로 끌어올렸다. 허용 밴드도 ±3%p에서 ±6%p로 넓혔다. 목표치를 올려 매도 물량을 줄임으로써 결과적으로 국내 증시의 매도 부담을 덜어낸 셈이다.  

    경제학에는 ‘자국편향(home bias)’이라는 오래된 수수께끼가 있다. 1991년 프렌치와 포테르바는 미국경제학회지에 발표한 연구에서 투자자들이 분산의 이점을 알면서도 유독 자국 자산에 과도하게 몰리는 현상을 이렇게 이름 붙였다. 자국편향이 위험한 이유는 국민 개개인의 처지를 떠올리면 분명해진다. 우리는 대부분 한국에서 월급을 받고, 한국에 집 한 채를 갖고 있으며, 한국 경기에 사업의 운명을 건다. 거의 모든 자산이 ‘한국’이라는 한 바구니에 담겨 있는 것이다. 그런데 국민의 노후연금마저 한국 주식에 쏠려 있으면 한국 경제가 휘청댈 때 일자리와 집값, 연금이 한꺼번에 흔들릴 수 있다. 따라서 노후 자금만큼은 국내 경제와 독립돼 안정적으로 움직여야 최후 안전판이 된다.



    국민연금 전문가들이 자국편향 위험성을 모를 리 없다.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비중은 한때 기금의 5분의 1을 넘길 만큼 컸다. 코스피가 사상 최고를 향하던 2021년 무렵엔 20%를 웃돌았다. 그러나 기금이 불어나고 해외투자를 늘리면서 목표 비중이 해마다 낮아졌다. 올해 기금운용계획에서는 14.4%까지 내려와 있었고, 계획대로라면 2029년까지 더 줄어들 예정이었다. 그런 목표를 올해 갑자기 20.8%로 되돌렸다.

    문제는 이 결정이 국민연금이 과거 스스로 내세운 논리와 배치된다는 점이다. 2019년 기금운용위원회는 2020~2024년 중기자산배분안을 의결하면서 기금 규모가 너무 커진 데다 국내 주식, 국내 채권 중심 포트폴리오에서 벗어나야 하기 때문에 해외 주식과 대체투자를 늘려 장기수익률을 높이고 위험을 분산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국내 주식 목표를 다시 크게 올린 이번 결정은 그때 논리에서 정면으로 배치된다.

    국민연금은 국민 노후 지키는 최후 곳간

    세계 최대 연기금인 노르웨이 국부펀드(GPFG)는 자국 주식에 한 푼도 넣지 않는다. 석유에 의존하는 자국 경제가 흔들릴 때 기금까지 함께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캐나다연금(CPP)의 자국편향도 3% 남짓에 그친다. 

    물론 국내 자본시장을 키우고 증시 수급을 떠받치는 것도 공적자금의 역할이라는 반론이 있고, 국내 주식투자자 입장에서는 국민연금의 매수를 원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기금의 존재 이유를 곰곰이 따져보면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다. 국민연금은 증시 부양 기구가 아니라 가입자의 노후를 지키는 최후 곳간이다. 기금운용위원회가 목표 비중을 손볼 때 가장 먼저 던져야 할 질문은 “증시에 도움이 되는가”가 아니라, “국민의 노후 재원을 가장 안전하고 튼튼하게 불리는가”여야 한다.

    시장이 오르면 개인투자자 누구나 목표를 슬쩍 올리고 싶어진다. 주식이 잘나갈 때 “비중을 좀 더 높게 잡아도 되지 않을까” 하는 유혹을 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문가에게도 어려운 영역인 예측을 개인이 잘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무리수다. 본업이 있는 개인투자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원칙을 지키고 담담하게 리밸런싱하는 것이다. 지금 당신의 포트폴리오는 목표에서 얼마나 벗어나 있는지 점검해보라. 그 답에 장기 성과의 결과가 달려 있다. 

    *유튜브와 포털에서 각각 ‘매거진동아’와 ‘투벤저스’를 검색해 팔로잉하시면 기사 외에도 동영상 등 다채로운 투자 정보를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