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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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어붙을 듯한 청량감’은 현대의 산물, 원래 맥주는 미지근했다 

[명욱의 술기로운 생활] 냉장기술, 美 금주법, 日 ‘생맥주’ 조어가 새로운 음주 문화 형성에 영향

  • 명욱 주류문화칼럼니스트

    입력2026-07-14 07: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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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맥주를 시원하게 마시게 된 건 냉장 시설이 갖춰진 20세기 이후 일이다. GETTYIMAGES

    맥주를 시원하게 마시게 된 건 냉장 시설이 갖춰진 20세기 이후 일이다. GETTYIMAGES

    습하고 더운 7월, 일과를 마친 뒤 마주하는 시원한 맥주 한 잔은 짜릿함을 선사한다. 강렬한 탄산과 함께 목을 타고 넘어가는 청량감, 그리고 보리의 단향과 구수함은 여름철 맥주가 가진 남다른 매력이다. 보리의 성질 역시 여름에 잘 어울린다. 겨울 추위를 견디며 자라는 보리는 전통적으로 찬 성질을 지닌 작물로 분류된다. 하지만 과거를 추적해보면 맥주가 처음부터 여름을 위해 존재한 술은 아니었다.

    ‘여름 맥주’는 불법이던 16세기

    과거에는 여름철 맥주 양조가 법적으로 철저히 금지됐다. ‘맥주 순수령’을 선포해 세계 맥주 문화의 기준을 세운 독일 바이에른 공국의 알브레히트 5세는 1553년 매년 성 게오르기우스 대축일인 4월 23일부터 성 미카엘 대축일인 9월 29일까지 공국 전역에서 맥주 양조를 일절 금지하는 법령을 선포했다.

    표면적 이유는 화재 예방이었다. 맥주를 주조하려면 맥즙을 장시간 끓여야 해 화기가 많이 사용된다. 그런데 유럽 여름은 매우 건조하다. 당시 양조 시설이 대부분 목조 건축물이던 점을 고려할 때 양조가 대형 화재의 도화선이 될 위험이 다분했다. 게다가 이 시기는 가을까지 이어지는 본격적인 농번기다. 밀과 보리를 수확해야 하는 중대한 시기에 귀중한 노동력이 양조장으로 분산되는 것을 막고, 농업에 국가 역량을 집중하려는 통치적 목적도 작용했다.

    산패 위험을 피하는 것도 중요했다. 여름철에는 맥주가 쉽게 오염되고 쉬기 일쑤였다. 바이에른은 1516년 제정된 빌헬름 4세의 맥주 순수령을 통해 맥주 원료를 보리, 홉, 물로만 제한했다. 아직 미생물학이나 효모에 대한 개념이 정립되지 않은 중세 기술력으로는 여름철 창궐하는 미생물과 고온 환경이 결합해 생기는 맥주의 부패를 막을 수 없었다. 따라서 바이에른 당국은 강제 하절기 휴업이라는 극단적 규제를 통해 품질이 저하된 맥주 유통을 차단하고 소비자 안전을 확보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러한 통제는 계절별 맥주 판매 가격의 상한선 설정으로까지 이어져 맥주 품질 표준화를 정착하는 기반이 됐다.

    그렇다면 인류는 언제부터 맥주를 얼음처럼 차갑게 즐기기 시작했을까. 사람들이 맥주를 시원하게 마시기 시작한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일단 가정용·산업용 냉장고가 보편화된 건 20세기 이후 일이다. 즉 수천 년 동안 인류가 소비한 맥주는 기본적으로 상온의 미지근한 상태였던 것이다. 지금도 유럽의 유서 깊은 펍에서 제공하는 맥주가 한국만큼 차갑지 않아 당황할 때가 있다. 이는 더는 냉장 시설 문제가 아니다. 그보다는 미지근한 온도를 통해 맥아의 묵직한 고소함과 효모가 빚어내는 복합적인 풍미를 온전히 음미하던 옛 음용 문화가 유럽에 여전히 남아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양조장을 얼음 판매소로 은폐하다가…

    목이 얼어붙을 듯 차가운 맥주는 아이러니하게도 20세기 초 미국의 금주법 때문에 유행하기 시작했다. 19세기 후반부터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인 20세기 초반까지 미국 양조산업을 장악하고 막대한 부를 축적한 세력은 대부분 독일계 이민자였다. 미국이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과 전면전을 벌이자, 미국 내에서는 이들이 적국에 자금을 지원하거나 스파이 활동을 벌이지 않을까 하는 불신이 피어올랐다. 금주법은 독일의 상징과도 같은 맥주산업의 숨통을 조이고 독일계 미국인 사회를 압박하기 위한 고도의 정치적 카드였다.

    술을 법으로 금지하자 공급망은 즉시 음지로 숨어들었다. 이 틈을 타 불법 주류 유통망을 장악한 범죄 집단, 즉 마피아가 전면에 등장했다. 시카고의 전설적인 마피아 보스 알 카포네를 필두로 한 이들 무리는 폐업하거나 방치된 양조장을 폭력으로 점거한 뒤 전문 양조사들을 포섭해 맥주를 대량으로 밀조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자신의 불법 맥주를 구매하지 않는 술집에 폭탄 테러를 감행하는 방식으로 시장을 독점해나갔다. 단속을 피해야 했던 술집들은 간판을 내리고 지하실 깊숙한 곳으로 숨어들었다. 바로 이 지하 밀조 시설과 비밀 바에서 맥주를 시원하게 팔아야만 하는 필연적인 이유가 생겨났다. 

    당시 대형 양조장은 금주법으로 정상 영업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그래서 생존을 위해 대형 냉동 설비와 얼음 창고를 활용해 대규모 얼음 제조 및 배달 사업을 벌이고 있던 터였다. 업주들은 매일 아침 공급되는 거대한 얼음 블록을 지하실 아이스박스에 넣고, 그 안에 맥주통을 보관했다. 사실 이런 행동에는 다른 목적도 있었다. 비위생적인 지하 시설에서 급하게 빚은 밀주는 품질이 조악했다. 찬 온도는 불쾌한 잡미와 잡내를 가리는 데 효과가 있었다.

    서구의 역사적 격변을 거치면서 정착된 차가운 맥주 문화는 근대 아시아, 특히 일본을 거쳐 한국으로 유입되면서 또 한 번 변화를 맞는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생맥주’라는 단어는 영어 ‘드래프트 비어(Draft Beer)’를 일본에서 번역한 것이다. 사실 드래프트 비어는 커다란 통에서 끌어내 잔에 따르는 맥주라는 의미라서 정확히 따지만 ‘통맥주’에 가깝다. 살균 처리를 하지 않아 효모가 살아 있는 맥주를 뜻하던 이 개념이 유통 과정의 편의성과 마케팅적 수사를 통해 ‘생(生)’이라는 단어로 치환된 것이다. 이를 통해 맥주는 무조건 차갑고 청량해야 한다는 인식이 대중에게 완벽하게 각인됐다.

    오늘날 당연하게 여기는 한여름의 짜릿하고 시원한 맥주는 이 술이 가진 본연의 모습이 아니다. 유럽의 기후적 한계와 바이에른의 엄격한 법령, 미국 금주법과 마피아의 생존 전략, 그리고 동아시아의 번역을 거치면서 오랫동안 진화하고 변모해온 역사적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명욱 칼럼니스트는… 주류 인문학 및 트렌드 연구가. 숙명여대 미식문화 최고위과정 주임교수를 거쳐 세종사이버대 바리스타&소믈리에학과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젊은 베르테르의 술품’과 ‘말술남녀’가 있다. 최근 술을 통해 역사와 트렌드를 바라보는 ‘술기로운 세계사’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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