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의 리오넬 메시. 뉴시스
‘생존’ 이상의 의미 있는 4강전
이번 4강전의 핵심은 단순히 누가 생존할지 여부가 아니다. 프랑스와 스페인은 최근 국제 대회에서 여러 차례 충돌하며 현대 축구의 두 흐름을 대표했다. 프랑스는 빠른 전환, 박스 안 결정력, 개인 기량의 폭발력을 앞세운다. 스페인은 점유, 압박, 위치 교환, 미드필드 장악을 통해 상대를 천천히 잠식한다. 월드컵 역사에서 여러 명장면을 남긴 잉글랜드와 아르헨티나도 상징적인 대진표를 만들었다.
스페인 대표팀의 라민 야말. 뉴시스
프랑스는 이번 대회 개막 직후부터 완벽한 팀은 아니었다. 그런데 토너먼트에 들어서자 실점 관리와 경기 운영 능력이 눈에 띄게 살아났다. 모로코전 승리는 프랑스가 왜 큰 대회 후반부에 강한 팀인지 다시 보여준 경기였다. 킬리안 음바페를 중심으로 한 전환 속도는 여전히 이번 대회 최고 수준이다. 우스만 뎀벨레와 마이클 올리세가 만들어내는 측면과 하프스페이스의 균열도 위협적이다. 프랑스가 먼저 득점하면 상대가 라인을 올릴 수밖에 없다. 바로 그 순간 프랑스는 가장 위협적인 공세를 시작한다.
스페인의 스타일은 조금 다르다. 무적함대의 강점은 한 장면에 국한되는 폭발력보다 경기 전체를 자기 리듬으로 끌고 가는 능력에 있다. 로드리, 페드리, 파비안 루이스로 이어지는 중원은 공을 잃은 뒤에도 곧바로 재압박을 걸 수 있다. 라민 야말과 니코 윌리엄스가 만들어내는 ‘폭’은 상대 수비를 옆으로 밀어낸다. 여기에 미켈 메리노처럼 후반 교체로 들어와 박스 근처에서 결정적 움직임을 가져갈 수 있는 자원까지 보유하고 있다. 스페인이 경기 지배력을 오래 유지할 경우 프랑스는 긴 시간 수비 블록 안에 갇힐 수 있다.

프랑스 대표팀의 킬리안 음바페. 뉴시스
전반 주도권 싸움이 관건, 잉글랜드 vs 아르헨티나
잉글랜드와 아르헨티나의 4강은 전술에 앞서 ‘스토리’가 강한 경기다. 잉글랜드는 월드컵에서 늘 기대와 압박감을 동시에 짊어지는 팀이다. 이번 월드컵에서 매 경기 압도적인 기량을 선보였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토너먼트 생존력은 확실히 증명했다. 해리 케인의 마무리, 주드 벨링엄의 박스 침투, 부카요 사카의 측면 파괴력은 여전히 잉글랜드 공격의 핵심이다. 다만 경기 중 주도권이 반복적으로 흔들린다는 점, 수비 전환에서 불안한 장면이 나온다는 점은 아르헨티나와의 맞대결에서 가장 큰 부담이다.
아르헨티나는 스위스를 3-1로 꺾고 4강에 올랐다. 점수만 보면 깔끔한 승리지만 아르헨티나 역시 토너먼트 내내 편한 경기만 치른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 팀에서 주목할 점은 무엇보다 메시의 존재다. 이제 메시는 단순히 득점으로만 평가할 수 있는 선수가 아니다. 템포를 늦추고, 상대 미드필더의 시선을 끌어당기고, 마지막 패스의 방향을 바꿈으로써 경기의 결을 바꾼다. 알렉시스 맥 알리스터, 훌리안 알바레스, 라우타로 마르티네스, 리산드로 마르티네스 등 주변 자원들도 메시가 만든 균열을 찬스로 바꾸는 역할을 분명히 해내고 있다.

잉글랜드 대표팀의 해리 케인. 뉴시스
잉글랜드가 개인 능력으로 득점 장면을 만들 수 있는 팀이라면, 아르헨티나는 경기 온도를 조절하며 상대를 지치게 만들 수 있는 팀이다. 아르헨티나의 변수는 체력과 경기 후반 운영이다. 토너먼트가 길어질수록 메시에게 의존하는 모습이 짙어지고 있다. 반면 잉글랜드는 벤치 자원의 폭이 넓다. 경기 후반 사카나 포든, 마커스 래시포드의 속도를 활용할 수 있다. 아르헨티나가 전반에 주도권을 잡지 못하고 후반까지 팽팽한 흐름을 허용하면, 잉글랜드의 체급과 교체 카드가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반대로 잉글랜드가 초반부터 조급해지면 아르헨티나는 특유의 노련함으로 경기 리듬을 유리하게 끌고 갈 수 있다.
전술 이상의 ‘무언가’ 필요
이번 월드컵 4강에 오른 팀들 모두 결승에 오를 자격이 있다. 프랑스는 최근 세 차례 월드컵에서 가장 꾸준한 토너먼트 경쟁력을 보여줬다. 스페인은 이번 월드컵에서 가장 현대적인 구조와 안정적인 경기 지배력을 뽐냈다. 잉글랜드는 선수단의 질과 우승 갈증이 절정에 오른 상황이다. 아르헨티나는 메시의 마지막 월드컵이라는 상징성과 토너먼트 운영의 노련함을 동시에 갖췄다.월드컵 4강은 언제나 전술 이상의 ‘무언가’를 필요로 하는 무대다. 한 번의 실수, 한 번의 세트피스, 한 명의 스타가 만든 ‘작은’ 장면이 그 시대 축구를 상징하는 모습으로 기록된다. 이번 4강도 마찬가지다. 프랑스와 스페인이 현대 축구의 주도권을 다투고, 잉글랜드와 아르헨티나가 역사와 상징을 다시 쓰는 밤. 결승으로 가는 마지막 관문 앞에서 네 팀은 각자 방식으로 월드컵을 들어 올릴 준비가 됐는지 입증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