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스피는 6월 2일 8801.49에 마감하며 종가 기준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뉴스1
대박 확률 포기 못 해 ‘복권형 주식’에 투자
지난 1년간 코스피 상승장에서 수십~수백%씩 수익을 맛본 경험은 많은 이에게 “내가 잘해서 돈을 벌었다”는 확신을 심어줬다. 그런 상황에서 나온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은 투기 심리마저 부추겼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투자자가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질문이 있다. 지난 1년간 거둔 수익은 “실력이었나, 아니면 운이었나”다.마이클 모부신 블루마운틴 캐피털 매니지먼트 리서치센터장은 저서 ‘운과 실력의 성공 방정식’에서 세상 모든 활동을 한 줄 위에 늘어놓는다. 한쪽 끝에는 룰렛이나 슬롯머신처럼 순전히 운으로 좌우되는 영역이, 반대쪽 끝에는 체스나 100m 달리기처럼 순전히 실력으로 좌우되는 영역이 놓인다. 이 둘을 가르는 모부신의 질문은 단순하다. 바로 ‘일부러 질 수 있는가’다. 체스는 마음만 먹으면 일부러 질 수 있지만 슬롯머신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투자는 이 선의 어디쯤 위치할까. 안타깝게도 우리 생각보다 운 쪽에 더 가깝다. 투자 기간이 짧을수록 더욱 그렇다. 모부신은 이를 한 줄 공식으로 요약한다. “우리가 관측한 결과의 분산은 실력의 분산과 운의 분산을 더한 값”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짧은 기간에는 운의 분산이 실력의 분산을 압도한다. 단기 수익률이 화려하더라도 실력 덕분이라고 단정하기 어려운 이유다.
모부신의 이 연속선은 우리에게 더 익숙한 다른 선과 정확히 포개진다. 바로 투자-투기-도박이다. 이들 중 실력 영역에 가까운 것은 투자이며, 도박은 완전한 운의 영역이다. 그 사이 어딘가에 투기가 있다. 운에 기대는 비중이 커질수록 우리는 투자에서 멀어지고 도박에 가까워진다는 뜻이다.
개인투자자가 간과하는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다. 같은 주식, 같은 ETF를 사도 누군가는 투자를 하고 누군가는 도박을 한다는 점이다. 이 둘을 가르는 것은 종목이 아니라, 사람이 ‘어떻게 하느냐’다. 같은 ETF를 사도 포트폴리오의 일부로 두고 길게 들고 가면 투자에 가깝지만, 단기 급등을 노리고 빚까지 내 소수 종목에 베팅하면 도박에 가까워진다.
특히 기초 자산의 2배로 움직이는 레버리지 상품은 이익뿐 아니라, 손실도 그만큼 키운다. 기초 종목이 10% 빠지면 레버리지 ETF 손실은 20%로 불어나는 식이다. 자동차로 치면 제한속도를 지키며 출퇴근에 쓸 경우 평범한 이동 수단이지만, 전방도 제대로 보지 않은 채 가속페달만 밟으면 운에 목숨을 거는 일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단일종목 레버리지에 올라타기로 선택한 것은 실력에 기댄 걸까, 아니면 운에 기댄 걸까. 알록 쿠마 미국 마이애미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2009년 ‘저널 오브 파이낸스’에 발표한 논문에서 ‘복권형 주식’을 분석했다. 미국 개인투자자 약 7만 명의 거래를 들여다본 연구로 주가가 싸고, 변동성이 크며, 잃을 확률은 높지만 아주 가끔 대박이 터지는 주식을 ‘복권형 주식’이라고 칭한다. 흥미롭게도 복권을 즐겨 사는 사람과 복권형 주식을 즐겨 사는 사람의 사회·경제적 특성이 거의 같았다. 이런 주식에 집중한 투자자는 다른 투자자보다 단순 수익률 기준으로 2~3%p가량 낮은 성과를 냈고, 위험을 감안해도 시장 평균에 못 미쳤다. 그런데도 수요는 줄지 않았다. 복권이 그렇듯, 경기가 어려울 때 오히려 늘었다. 아주 낮은 확률의 대박을 끝내 포기하지 못하는 것이다.
운의 영향 줄이는 자산배분 투자해야
큰 수익이 나면 우리는 왜 그토록 쉽게 ‘내 실력’이라고 착각할까.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대니얼 카너먼 미국 프린스턴대 명예교수는 저서 ‘생각에 관한 생각’에서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공식이라며 이렇게 적었다. “성공은 재능에 운을 더한 것이고, 큰 성공은 약간 더 많은 재능에 아주 많은 운을 더한 것이다.” 평범한 성공은 그나마 실력으로 설명되지만, 굉장히 큰 성공에는 운이 결정적으로 끼어든다는 뜻이다.한 가지 더 기억할 것이 있다. 좋은 운과 나쁜 운은 동전 양면처럼 하나의 분포에서 나온다. 개별 종목이나 단기 타이밍의 수익률은 양쪽으로 길게 늘어진 두꺼운 꼬리를 갖는데, 오른쪽 꼬리에서 운 좋게 뽑힌 큰 수익은 언젠가 왼쪽 꼬리의 큰 손실로 되돌아온다. 미국 투자 전문가 나심 탈레브의 표현을 빌리면 “운으로 얻은 것은 운으로 사라진다”. 그것도 아주 빠르고 갑작스럽게 말이다. 며칠 만에 20% 넘는 손실로 돌아선 레버리지 ETF가 그 직전까지는 누군가에게 짜릿한 수익을 안겨줬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된다.
정리해보자. 운에 기대 큰 한 방을 노릴수록 우리는 투자에서 멀어져 도박에 가까워지고, 데이터가 가리키는 그 끝은 대체로 손실이다. 그렇다면 운을 실력으로 바꾸는 길은 없을까. 다행히 있다. 개별 종목과 타이밍에 거는 베팅은 운의 몫이 크지만, 자산배분 같은 포트폴리오 투자는 다르다. 성격이 다른 자산에 나눠 담고 규칙에 따라 리밸런싱하면 수익률 분포가 정규 분포에 가깝게 다듬어지고, 두꺼운 꼬리에 숨어 있던 운의 영향이 줄어든다. 남는 것은 내가 설계한 부분, 곧 반복 가능한 실력이다. 1980년대 미국의 저명한 금융 전문가이자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게리 브린슨은 포트폴리오 수익률 변동에서 상당 부분이 종목 선택이나 매매 타이밍이 아닌, 자산배분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데이터로 보여준 바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