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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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솟는 환율에 환전소·유학생 시름 깊어진다

환율 방어 국민연금 동원 움직임에 전문가 “황금 거위 배 가르는 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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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영훈 기자

    yhmoon93@donga.com

    입력2025-11-29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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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25일 서울 중구 명동 한 환전소에 각국 화폐 환율이 표시돼 있다. 뉴스1

    11월 25일 서울 중구 명동 한 환전소에 각국 화폐 환율이 표시돼 있다. 뉴스1

    “하루에도 20원씩 환율이 왔다 갔다 하니까 어떻게 기준을 잡아야 할지 모르겠다. 오늘 아침만 해도 어제보다 10원 떨어져서 어제 산 달러는 팔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안 그래도 장사가 안 되는데 심란하다.” 

    서울 중구 명동에서 환전소를 운영하는 A 씨가 11월 26일 기자에게 한 말이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1457원에서 1476원까지 오르내렸다. 환율 불확실성이 심화해 환전소를 운영하는 이들의 고민이 커지는 가운데 원화 가치가 지속적으로 하락 추세를 보이며 해외 유학생과 주재원들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전문가들은 “단기적으로는 원/달러 환율이 1400원대 중후반 박스권에서 등락을 거듭하고 중장기적으로는 1500원 선을 넘을 수도 있다”고 전망한다.

    11월 26일 오후 찾은 명동 환전소 일대는 비교적 한산했다. 명동에서 환전소를 운영하는 B 씨는 “최근 환율이 상승하면서 환차익을 보려고 방문하는 손님들이 있지만 크게 늘지는 않은 데다, 소액을 바꿔 간다”며 “환율이 요동치는 상황이라 우리도 큰돈을 받기는 부담스러운 입장”이라고 말했다. 최근 원/달러 환율은 상승 추세 속에서 하루에도 20원 넘게 변동 폭을 키우며 불확실성이 심화되고 있다.

    뉴노멀 된 1400원대 환율

    이 때문에 명동 환전소를 찾는 내국인과 외국인의 희비도 엇갈린다. B 씨는 “투자 목적보다 학비나 체류비 등을 지불하려고 달러당 5원이라도 저렴한 환전소를 찾는 내국인이 많은데 오른 환율에 다들 당황스러워한다”며 “반대로 올해 들어 미국이나 유럽에서 온 여행객이 늘었는데 엔화가 쌀 때 한국인이 일본에 놀러갔던 것과 비슷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11월 24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오후 3시 30분 기준 1477.1원을 기록했다. 이는 4월 9일(1484.1원) 이후 7개월 반 만에 최고치다. 국제결제은행(BIS)이 발표한 10월 실질실효환율은 89.09로,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원화 가치가 크게 하락했던 2009년 8월(88.08)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올해 3월 국내 정치 불확실성이 가장 컸던 시기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BIS가 통계를 발표하는 주요 교역 64개국 가운데 10월에 한국보다 실질실효환율이 낮은 곳은 일본(70.41)과 중국(87.94)뿐이다. 일본과 중국을 제외하고는 원화 구매력이 상대적으로 낮아진 것. 이에 따라 해외 출장이나 장기 여행을 가는 이들도 타격을 받고 있다. 한 달의 절반을 태국에서 일하는 김모 씨(27)는 “신용카드로 결제하면 밧(태국 화폐)으로 할 건지, 달러로 할 건지를 묻는데 둘 다 원화보다 비싸 당황스럽다”며 “처음에는 태국이 물가가 훨씬 저렴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큰 차이를 못 느낄 정도”라고 말했다. 원/밧 환율은 6월 41원 중반대에서 11월 45원 중반대로 치솟았다. 

    6개월간 원/달러 환율이 6.7%(11월 27일 기준) 오르는 동안 원/유로 환율은 9.16% 상승했다. 11월 중순 이탈리아로 신혼여행을 간 박모 씨(32)는 “항공권을 살 때는 분명 유로당 1500원대 후반이었는데 지금은 1700원”이라며 “우선은 미리 바꿔둔 유로를 쓰고, 나머지는 해외 결제 할인이 되는 카드를 사용해 여행비를 줄일 것”이라고 말했다. 북미·유럽권 유학생들이 모이는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처음 왔을 때와 달라 무섭다” “장보러 가기가 겁난다”는 글이 게시되고 있다.

    “경제 펀더멘털의 문제”

    전문가들은 원화 약세 흐름이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본다. 이현훈 강원대 국제무역학과 명예교수는 “구조적으로 원화 가치가 낮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결국 환율은 펀더멘털 싸움인데 미국보다 경제성장률이 낮은 데다, 여기에 정부가 재정지출을 늘려 통화를 많이 풀면서 원화 약세 기조를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매년 200억 달러씩 내야 하는 대미 투자액도 리스크로 작용한다”고 덧붙였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한국의 경상수지 흑자 수치만 본다면 1250원대가 적정 환율이지만 여기에 1%대 낮은 경제성장률과 실업률을 감안할 경우 1400원대가 뉴노멀이 됐다”며 “문제는 경제 불확실성을 높이는 정책으로 환율이 요동치는 것인데, 그럼 원/달러 환율이 1500원 선을 넘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고환율 상황에 대비하고자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뿐 아니라 국민연금, 보건복지부까지 참여하는 ‘4자 협의체’를 최근 출범했다. 국민연금의 해외자산 축소,  환헤지(위험 회피) 등을 통해 환율 안정에 동원하는 방안이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1월 26일 기자회견을 통해 “국민연금 수익성과 외환시장 안정성을 조화하기 위해 ‘뉴프레임’ 구축 논의를 개시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이현훈 교수는 “원화 가치 하락은 구조적 문제에서 기인하는데, 자칫 황금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며  “정부 지출을 줄이고 금리를 올리는 등 구조적인 수술 없이는 장기적 환율 안정을 도모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대외 상황에 따라 환율이 안정을 찾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박상현 iM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지금은 모든 자금이 미국으로 흘러들어가고 있어 원화뿐 아니라, 엔화와 대만달러 역시 약세를 보이는 상황”이라며 “국내 수급 요건 자체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지만 12월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금리를 인하하고 차기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이 선임되면 달러가 약세 쪽으로 돌아설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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