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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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랜드마크와 고층 건물 조화 가능” vs “경복궁 옆에도 40층 지을 거냐”

종묘 인근 세운4구역 고층 재개발 논란… 상인들 “세계적 도시 발전상 보여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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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영훈 기자

    yhmoon93@donga.com

    입력2025-12-01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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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종로구 세운상가에서 바라본 세운4구역. 문영훈 기자

    서울 종로구 세운상가에서 바라본 세운4구역. 문영훈 기자

    세운4구역 고층 재개발을 두고 서울시와 정부의 대립이 이어지면서 이른바 ‘종묘 대전’이 가열되고 있다. 문화재 주변 개발 요건을 완화한 서울시 조례에 대해 대법원은 적법하다는 판결을 내렸지만, 문화유산청을 비롯한 정부 여당은 종묘 앞 141.9m 고층 건물 건설에 반대하며 기존 높이인 71.9m를 지켜야 한다고 나섰다. 종묘와 인근 세운상가 등을 찾아 상인들과 관광객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신축 건물로 신구 조화 이룬 도쿄

    11월 26일 ‘문화가 있는 날’을 맞아 무료 개장된 종묘는 평일인데도 많은 관광객으로 북적였다. 종묘를 방문한 이들 중에도 고층 재개발 논쟁에 대해 알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서울 영등포구에서 온 김모 씨(57)는 “세계 여행을 많이 다녀봤는데 역사적 랜드마크와 고층 건물이 조화를 이룬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다”며 “현대 건축 발전을 상징하는 초고층 건물과 종묘가 함께 있는 것이 좋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개발을 반대하는 이들도 있었다. 독일 뮌헨에서 한국으로 여행을 왔다는 알폰소 마우러 씨(60)는 “여행자로서 서울 시민들의 결정에 참견할 권리가 있나 싶지만, 과거 유적들은 당대 지어졌을 때 의도를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뮌헨 도심 중심부는 고도 제한이 있는데, 15세기에 지어진 교회 탑보다 높게 건물을 지을 수 없게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논쟁의 중심에는 종묘 정전에서 보이는 경관이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11월 18일 종로변 100m, 청계천변 145m 높이 건물이 세워진 모습의 시뮬레이션 사진을 공개하며 “숨이 턱 막히는 게 느껴지나”라고 반문했다. 국가유산청은 24일 다른 각도의 시뮬레이션 사진을 공개하며 맞섰다. 실제로 기자가 정전에서 외대문(정문) 쪽을 향해 보자 지금도 서쪽으로는 효성주얼리시티(19층), 힐스테이트 세운센트럴(27층) 건물이 일부 보였다. 관광객들에게 정전에서 40층짜리 고층 건물이 보이면 어떨 것 같으냐고 묻자 “크게 방해되지 않을 것 같다”와 “40층 건물은 아무래도 거슬릴 것 같다”는 의견이 나뉘었다. 

    주민들과 상인들의 의견은 어떨까. 종묘에서 나와 바로 정면에 있는 세운상가를 찾았다. 이곳은 1968년 지어진 한국 최초 주상복합건물로 당시에는 서울 랜드마크였다. 하지만 강남 개발이 본격화하며 쇠락의 길을 걸었다. 오세훈 시장이 2008년 세운상가를 공원화하는 계획을 발표했으나, 2011년 박원순 전 시장이 당선하면서 철거 대신 복원으로 가닥을 잡았고 도시재생사업이 추진됐다. 10년 후 다시 오세훈 시장이 4선을 하며 최근 녹지화 계획을 내놨다. 



    2006년 착수된 세운4구역 개발은 서울시장이 바뀌면서 멈춰 있는 상태다. 세운상가에서 50년간 음향기기를 판매한 오모 씨(71)는 “10년 넘게 저 땅이 공터로 남아 있었다”며 “유산을 보존하는 것도 좋지만 서울이 세계적인 도시가 된 상황에서 어차피 개발할 거라면 높이 짓는 게 낫지 않겠나”라고 고층 재개발에 찬성했다. 오 씨는 바로 앞 세운상가 공중보행교를 가리키면서 “박원순 전 시장이 세운상가를 그대로 살려본다고 해서 도시재생을 기대할 때도 있었지만, 그렇게 만든 보행로는 사람들이 다니지 않고 오히려 가게에 그림자만 지는 흉물이 됐다”고 말했다. 세운상가에서 전자기기를 판매하는 한 상인은 “매번 싸우기만 하는데 속도가 중요하다”며 “저기(세운4구역)도 20년째 저러는데 세운상가는 언제 재개발할 수 있겠나”라고 토로했다.

    세운4구역 주민들도 발 빠른 재개발 추진을 요구하고 있다. 세운4구역 주민대표회의 측은 11월 19일 기자회견을 열고 “누적 차입금만 7250억 원에 달하는 등 금융 비용이 많아 몇 년씩 기다릴 수 없다”며 “국가유산청 등이 재개발사업 추진을 불가능하게 한다면 소송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고층 개발에 신중해야 한다는 반대 목소리도 나왔다. 세운4구역 인근에서 전기 관련 업체를 운영하는 A 씨는 “한번 건물을 높이기 시작하면 나중에는 경복궁 옆에도 초고층 건물을 짓겠다고 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해외에서는 각자 방식으로 유산 경관을 보존하거나, 신구 조화를 이루며 도심을 되살린다. 일본은 도쿄역과 황궁을 잇는 마루노우치 지역에 30층 넘는 건물이 즐비하다. 2002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가 고도 제한을 풀었기 때문이다. 마루노우치는 보존과 개발이 조화를 이룬 사례로 꼽힌다. 

    도심 고도 제한 건 뮌헨

    앞서 독일 관광객이 소개한 뮌헨의 경우 2004년 주민투표를 통해 도심 지역에서 새로운 건축물을 지을 때 프라우엔 교회의 두 첨탑 높이(99m)를 넘지 못하도록 공식화했다. 당시 이 결정은 주민투표로 이뤄졌다. 주민들이 두 첨탑이 도심 어디서나 보일 수 있도록 합의한 것이다. 11월 27일 발표된 전국지표조사(NBS)에 따르면 ‘서울 종묘 인근 재개발 계획’ 관련 질문에 ‘개발 제한이 필요하다’는 응답이 69%, ‘초고층 빌딩 개발을 허용해야 한다’는 응답이 22%로 나왔다.

    전문가 사이에서도 의견이 나뉜다. 김경민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일본 마루노우치 인근에 건설되는 390m 높이의 토치타워가 언급되는데 이는 일왕궁에서 1㎞ 떨어진 위치에 있어 종묘와는 상황이 다르다”며 “4대문 안에서 남산 조망은 반드시 보호돼야 한다”고 썼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결국 건축·경관 통합심의를 거쳐야 할 텐데, 이때 문화유산청이 요구하는 내용을 반영해 합의점을 찾아내는 게 어떨까 싶다”고 말했다. 이어 이 교수는 “세운상가 일대인 종로·을지로가 서울 도심이지만 개발이 지연돼 과거 활기는 사라지고 슬럼화됐다”며 “서울시 계획이 어느 정도 도시 발전에 활력을 줄 수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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