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8월 27일 손길승 당시 대한텔레콤 사장(오른쪽 마이크 앞)이 제2 이동통신사업권 반납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제공 · SK]
지금으로부터 29년 전인 1992년 일이다. 노태우 정부 시절이던 그해 8월 20일 SK(당시 선경그룹)는 정부가 추진해온 제2 이동통신사업자로 선정됐다. 정부의 사업자 심사 과정에서 SK는 1만 점 만점에 8388점을 획득해 경쟁업체 포철(7496점·현 포스코), 코오롱(7099점)과 비교해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 최 선대회장은 이날 오후 기자회견을 열고 “6년 전 그룹 회장실에 정보통신전담반을 설치할 정도로 일찍부터 사업 참여를 준비했다”며 “앞으로 연구개발을 강화해 이동통신기술의 조기 자립과 경쟁력 확보에 힘쓰겠다”고 밝혔다. 사실 SK의 사업자 선정은 일찍이 예견된 일이었다. SK는 1980년 11월 대한석유공사(유공) 인수 이후 장기 경영 목표를 정보통신사업 진출로 정하고 치밀하게 준비했다. 1984년 미주 경영기획실에 텔레커뮤니케이션팀을 발족해 미국 정보통신 관련 정보와 기술 확보에 공을 들였다. 체신부가 1990년 7월 무렵 제2 이동통신사업자 선정에 나서기 훨씬 전이다.
“기회는 돈으로 따질 수 없다”
SK는 1989년 미국 뉴저지에 현지 법인 유크로닉스사, 1991년에는 선경텔레콤(1992년 대한텔레콤으로 변경) 등을 잇달아 설립해 정보통신사업 진출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SK가 압도적 점수 차로 경쟁사를 따돌린 데는 이유가 있었다. 그러나 SK 구성원들의 환호와 기쁨은 잠시였다. 일주일 만인 8월 27일 SK는 사업권 포기를 선언했다. 대선을 앞두고 노태우 대통령과 최종현 선대회장의 사돈 관계에 따른 특혜 시비가 불거졌기 때문이다. 대선 출마를 앞두고 여론에 민감해 있던 당시 민주자유당 김영삼 대표 측은 ‘사업자 선정 백지화’를 강하게 요구했다.손길승 대한텔레콤 사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합법적 절차와 공정한 평가를 거쳐 사업자로 선정됐으나 물의가 커 국민 화합에 기여한다는 취지에서 사업을 포기하기로 했다”고 선언했다. SK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SK 관계자는 “만약 ‘사업권 반납’ 이후 다른 기회가 없었다면 대한민국 이동통신 역사를 새로 쓴 오늘의 SK텔레콤도, 시총 200조 원대 대그룹으로 성장한 SK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SK는 이듬해인 1993년 김영삼 정부 출범으로 제2 이동통신사업자 선정 작업을 재개하면서 다시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정부가 민간 컨소시엄 구성을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에 일임하자 당시 전경련 회장이던 최 선대회장은 컨소시엄 불참을 선언했다. 또다시 특혜 시비에 휘말릴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결국 SK는 1994년 1월 민영화 대상이던 한국이동통신 공개입찰에 참여해 이동통신사업 진출의 꿈을 이뤘다. 제2 이동통신사업자로 선정되는 것과 달리 한국이동통신 지분 인수에는 천문학적 자금이 소요됐지만 최 선대회장은 밀어붙였다. 당시 경영진이 4271억 원이라는 막대한 인수자금 부담에 난색을 표하자 최 선대회장은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회다. 우리는 기업이 아니라 이동통신사업 진출의 기회를 산 것이다. 기회를 돈으로만 따질 수 없다”고 설득했다고 한다.
재계 관계자는 “결과적으로 1992년 8월에 있었던 드라마틱한 반전과 한국이동통신 인수라는 재반전으로 SK는 명분과 실리를 함께 취할 수 있었다”며 “그해 8월은 SK그룹 역사상 가장 뜨겁고 아찔했던 여름으로 기억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