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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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수록 더 머물고픈 예술의 도시 ‘빈’

[재이의 여행블루스] 찬란한 합스부르크 왕가의 문화유산 간직… 최고 음악가들의 예술 혼 녹아들어

  • 재이 여행작가

    입력2023-12-17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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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리 앙투아네트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쇤브룬 궁전’. [박진희 제공]

    마리 앙투아네트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쇤브룬 궁전’. [박진희 제공]

    정기 칼럼을 기고하다 보니 ‘이번 여행지는 어디로 정해야 하나’ 늘 고민이 된다. “이번까지만 쓰고 편집장님에게 그만두겠다고 꼭 말해야지” 다짐하다가도 또 한 편의 글이 완성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음 칼럼을 위한 여행지를 찾아 발길을 서두른다. 결단코 써지지 않을 듯하고 더는 새 글이 나오기 어려울 것 같은데도 새로운 글이 써지는 것처럼, 여행은 항상 새롭다. 똑같은 장소에 가더라도 사계절 모습이 다르고 하루에도 열두 번은 새 옷을 입고 마중을 나온다. 그 자리에 변함없이 있지만, 내 마음의 색깔대로 맞춰주기도 한다. 기분 좋은 날에는 상쾌해지고 머리가 무거운 날에는 홀가분해지게 만들어주니 여행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맛에 여행을 떠난다. 살다 보면 마음 답답한 일도, 걱정이 많아 잠 못 이루며 자책하고 스스로를 책망하는 일도 많다. 크고 작은 스트레스가 일상을 억누르려 할 때 잠시 멈춤 버튼을 누르고 과감히 새로운 길을 걸어보는 것도 괜찮다. 조금 여유가 있다면 일주일, 한 달 혹은 그 이상 여행지에서 살아보는 것도 좋다. 그런 과감한 선택과 결정이 우리 일상에 새로운 자극을 줄 테니.

    합스부르크 왕가의 중심 도시

    공허한 일상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줄 이번 여행지는 오스트리아 수도 빈이다. 유럽 한가운데에 위치한 오스트리아는 알프스산맥이 감싸고 푸른 다뉴브강이 흐르는 천혜의 자연유산을 지닌 축복의 나라다. 독일, 체코, 슬로바키아, 헝가리, 슬로베니아, 이탈리아, 스위스, 리히텐슈타인 등에 둘러싸인 전형적인 산악 내륙 국가인데, 1200년대 후반부터 유럽 역사의 중심에 섰던 합스부르크 왕가의 중심 도시가 됐고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다. 또한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요한 슈트라우스, 루트비히 판 베토벤, 프란츠 페터 슈베르트, 요하네스 브람스 같은 세계적인 음악가를 낳은 음악의 나라이기도 하다. 지금은 중부 유럽의 경제·문화·교통 요충지이자 동서 유럽의 가교 역할을 하는 나라로, 동유럽에 진출하려는 세계 각국 기업이 교두보로 선택하는 곳이다.

    이런 특별함 때문에 오스트리아 수도 빈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끊임없이 새로운 예술적 에너지가 재생산돼 지루함을 전혀 느낄 수 없는 도시가 됐다. 이는 다른 도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빈의 독특함이다. 도시 전체가 박물관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어느 거리, 어느 골목을 걸어도 음악, 미술, 문학, 철학 등 굵직한 역사 흔적이 넘쳐난다. 예술의 도시답게 편안하게 접할 수 있는 낭만적인 문화공연 역시 풍성하다.

    빈 도심은 여행하는 데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도시 전체로 보면 23개 구로 나뉘지만 구시가지인 1구만 둘러봐도 중세 도시 빈의 명소 대부분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구시가지인 1구는 순환도로인 ‘링(Ring)’을 따라 안쪽에 조성돼 있다. 직경이 4㎞에 불과해 여행 초보자도 도보로 충분히 탐방할 수 있다. 그럼에도 전체적으로 탐색해보고 싶다면 링을 빙글빙글 도는 트램 1번과 2번을 타고 한 바퀴 돌아보는 것을 추천한다. 트램으로 이동하다 보면 시민 문화공간인 ‘시청사’, 야경 명소인 ‘국회의사당’, 서양 고대 작품을 소장한 ‘미술사 박물관’, 세계 3대 오페라 하우스 중 하나인 ‘빈 국립 오페라 극장’ 등 주요 랜드마크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 혹시라도 방향을 잃었다면 당황하지 말고 빈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물이자 구시가지 어디에서나 보이는 ‘슈테판 대성당’을 찾으면 된다. 성당 위치가 바로 도심 정중앙이니 거기서부터 다시 여행을 시작하면 된다.



    첨탑이 인상적인 슈테판 성당

    거대한 첨탑이 인상적인 ‘슈테판 대성당’. [박진희 제공]

    거대한 첨탑이 인상적인 ‘슈테판 대성당’. [박진희 제공]

    빈은 배낭 하나 둘러메고 쉬엄쉬엄 걸으며 여행하기 참 좋은 곳이다. 명소들이 오밀조밀 몰려 있어 동선 짜기가 편하고 길을 잃을 걱정도 없다. 도보 여행의 첫 시작점은 오스트리아 최대 고딕 사원인 슈테판 성당이다. 높이가 137m나 돼 교회 첨탑만 보고 찾아가면 된다. 슈테판 성당은 12세기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처음 지어지기 시작해 약 800년 세월을 거치면서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했다. 한때는 터키군(현 튀르키예군), 독일군, 소련군으로부터 폭격을 받아 폐허가 됐지만 지금은 완벽하게 복구돼 웅장하고 아름다운 옛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대성당은 거대한 첨탑이 인상적이며, 23만 개 벽돌과 지붕이 화려한 모자이크로 장식돼 있어 예술성이 높다. 직접 보면 규모에 압도당하고 화려한 장식에 입이 떡 벌어진다.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큰 종으로 알려진 북측 종루탑의 ‘푸메린(Pummerin)’은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성당 왼쪽으로는 슈테판 광장에서 국립 오페라 극장까지 이어지는 빈 최대 번화가 ‘케른트너 스트라세(Karntner Street)’가 있다. 보행자 전용인 이곳에는 유럽의 유명 상표 전문 매장과 기념품을 판매하는 상점, 낭만적이고 고풍스러운 카페와 레스토랑이 줄지어 있다. 케른트너 거리를 거닐다 보면 연인은 어느덧 더 친밀해지고 사랑은 자연스레 깊어진다. 걷다 지치면 향기로운 커피와 달콤한 디저트가 유혹하는 노천카페에 들러 쉬어 가도 좋다. 1684년 빈 최초 커피하우스가 문을 연 이래 카페 문화는 빈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비엔나커피’라고 부르는 커피는 안타깝게도 이곳에 없다. 그 대신 커피 원액에 우유거품을 넣은 ‘멜란지’나 모카커피를 유리잔에 담아 진하고 무거운 크림을 띄운 ‘아인슈페너’가 있다. 도심 곳곳에는 수백 년 역사를 간직한 커피하우스가 즐비하다. 1788년 개업 당시 모차르트가 기념 연주를 하고 이후 베토벤이 피아노를 연주하며 커피를 마셨다는 ‘카페 프라우엔후버(Cafe′ Frauenhuber)’, 프로이트와 폴 매카트니가 좋아했던 ‘란트만(Landtmann)’, 빈을 대표하는 전통 카페 ‘디글라스(Diglas)’, 많은 예술가가 들렀다는 전설적인 카페 ‘첸트랄(Central)’이 대표적이다. 커피하우스와 함께 자연스레 발달한 것이 고급스럽고 세련된 디저트다. 진한 멜란지와 어울리는 단짝 디저트로는 사과파이 일종인 ‘아펠스트루델(Apfelstrudel)’과 초콜릿 케이크 ‘자허토르테(Sacher Torte)’가 있다.

    따뜻하게 속을 채웠으니 빈을 유럽 중심 도시로 탈바꿈시킨 합스부르크 왕가의 흔적을 찾아 떠나보자. 왕가의 궁전인 ‘호프부르크(Hofburg)’는 13세기부터 1918년 오스트리아 헝가리제국이 멸망할 때까지 많은 군주가 증축과 개축을 거듭했다. 그런 역사 때문에 각기 다른 시대 건축물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 경내에는 황제의 아파트, 부르크 정원, 헬덴 광장 등을 비롯해 악기·무기 박물관과 알베르티나 미술관, 말의 군무를 볼 수 있는 스페인 승마학교 등이 있어 짧은 시간 안에 알차게 돌아보려면 꼼꼼하게 계획을 세우는 것이 좋다. 중심 지역을 조금 벗어나면 왕가의 여름 별궁이자 마리 앙투아네트의 어린 시절이 담겨 있는 ‘쇤브룬 궁전’, 파리 루브르 박물관·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과 함께 유럽 3대 미술관으로 불리는 ‘미술사 박물관’을 만날 수 있다. 미술사 박물관은 합스부르크 왕들이 수집한 600년 예술 유산들로 채워져 있으니 함께 둘러보면 좋다.

    유럽 최고 빈 국립 오페라 극장

    황금빛 장식의 흰색 발코니가 
화려한 ‘빈 국립 오페라 극장’. [박진희 제공]

    황금빛 장식의 흰색 발코니가 화려한 ‘빈 국립 오페라 극장’. [박진희 제공]

    슈베르트, 모차르트 등 거장들의 곡을 감상하기 위함도 빈을 선택하는 이유 중 하나일 테다. 아름다운 음악의 향연을 만끽하며 빈에서 하루를 마무리해보자. 빈은 음악의 도시라는 명성에 걸맞게 시즌 동안 오페라, 예술음악제, 대무도회 같은 큰 행사와 더불어 다양한 공연을 즐길 수 있다.

    그중에서도 유럽 최고 오페라 극장인 ‘빈 국립 오페라 극장’에서 펼쳐지는 공연이 단연 으뜸이다. 1869년 문을 열어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로 서막을 올렸고, 1897년부터 10년 동안 낭만파 음악의 마지막 거장으로 불리는 구스타프 말러가 총감독으로 있었다. 총 객석 1642석과 입석 567석을 갖춘 빈 국립 오페라 극장은 2층으로 이어지는 계단과 샹들리에, 그리고 황금빛으로 장식한 흰색 발코니가 무척 화려하고 호화롭다. 오페라 공연을 보려면 인터넷으로 예약하거나 관광안내소에서 정보를 얻은 뒤 표를 구매하면 된다.

    허전한 일상을 채워줄 뭔가를 찾고 있다면 예술의 도시 빈은 더없이 매력적인 도시다. 발길 닿는 곳마다 예술가의 다양한 삶의 흔적이 녹아 있기에 감성 충만과 여행, 두 가지 목표를 충족할 수 있다. 그들이 거닐었을 길을 따라 역사의 추억을 감상할 수 있는 빈의 매력에 빠져보자.

    재이 여행작가는… 
    세계 100여 개국을 여행하며 세상을 향한 시선을 넓히기 시작했다. 지금은 삶의 대부분을 보낸 도시 생활을 마감하고 제주로 이주해 글을 쓰고 사진을 찍으며 다양한 여행 콘텐츠를 생산하는 노마드 인생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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