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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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 안락사, 생명 포기하는 행위 아니다

[황윤태의 동물병원 밖 수다] 불필요한 고통 줄이고 존엄 지키는 마지막 배려

  • 황윤태 빌리브동물병원 대표원장

    입력2026-04-13 17: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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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 반려동물이 ‘이 음식’을 먹어도 될까, ‘이런 행동’을 좋아할까. 궁금증에 대한 검색 결과는 언제나 불확실하다. 황윤태 수의사가 진료실에서 미처 다 전하지 못한, 반려동물에 관한 사소하지만 실용적인 팁들을 소개한다.
    반려동물의 안락사를 결정할 땐 ‘HHHHHMM’과 ‘OSU(Ohio State University) 평가표’를 활용할 수 있다. 제미나이 생성 이미지

    반려동물의 안락사를 결정할 땐 ‘HHHHHMM’과 ‘OSU(Ohio State University) 평가표’를 활용할 수 있다. 제미나이 생성 이미지

    반려동물과 함께 행복한 추억을 하나 둘 쌓아가다 보면 어느 순간 그들이 나이 들었음을 깨닫는다. 얼굴에 흰 털이 늘어나고, 예전과 달리 소리를 잘 듣지 못한다. 평소 좋아하던 산책이나 간식에도 이전만큼 반응하지 않는 데다, 힘없이 누워 있는 시간이 잦다. 이로써 우리는 작별의 순간이 가까워졌음을 서서히 느끼게 된다.

    자연사 택한 보호자 더 고통받기도

    반려동물이 사랑하는 가족 곁에서 고통 없이, 마치 잠이 들듯 평온하게 마지막 숨을 거두기를 모두가 바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런 사례는 매우 드물다. 오히려 심한 통증, 불안, 조절되지 않는 경련이나 호흡 곤란 같은 고통 속에서 생을 마감하는 일이 훨씬 많다. 이 과정은 반려동물뿐 아니라 곁에 있는 보호자에게도 큰 상처로 남는다.

     펫로스(pet loss) 관련 연구에 따르면 반려동물의 자연사를 경험한 보호자는 안락사를 선택한 보호자보다 더 큰 슬픔과 사회적 고립감, 통제력 상실을 경험한다. 죽음이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데 따른 불안감, 혹시나 상태가 호전될지도 모른다는 희망과 연이은 좌절, 그리고 수의사와의 교류 단절 등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그러다 보니 안락사를 선택하는 비율도 높다. 영국에서는 반려견의 약 91%, 이탈리아에서는 약 72%가 안락사로 세상과 작별한다.

    한국 상황은 다소 다르다. 가족을 향한 헌신과 자연사를 미덕으로 여기는 분위기 때문에 안락사에 대한 거부감이 비교적 큰 편이다. 안락사를 고민하는 순간, 동생이자 자식이며 친구로 여겨온 존재를 배신하는 것 같은 죄책감에 시달리기도 한다. 수의사가 안락사를 권해도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시간을 보내다가 결국 원치 않은 방식으로 마지막 순간을 맞는 경우가 적잖다. 많은 보호자가 “나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막상 그 상황에 놓이면 어떤 기준으로 판단해야 하는지, 자신의 선택이 과연 옳은지 깊은 혼란을 겪게 된다.

    보호자를 위한 판단 가이드

    안락사를 고민하는 보호자에게 나는 주로 ‘HHHHHMM’과 ‘OSU(Ohio State University) 평가표’ 두 가지를 작성해볼 것을 권한다. ‘HHHHHMM’은 가장 널리 사용되는 평가 도구로, 통증(Hurt), 식욕(Hunger), 수분(Hydration), 위생(Hygiene), 행복(Happiness), 이동성(Mobility), 그리고 ‘좋은 날이 나쁜 날보다 많은가(More good days than bad)’ 등 7가지 항목을 각각 1~10점으로 평가해 합산한다. 총점이 70점 만점 중 35점 이하면 적극적인 호스피스 처치나 안락사를 고려할 수 있다.



    ‘OSU 평가표’는 ‘HHHHHMM’을 바탕으로 하되 좀 더 세분화된 질문들로 구성돼 있다. 각 항목에 동의 정도를 표시하고, 응답 분포를 통해 반려동물의 전반적인 삶의 질을 평가하는 방식이다. 안락사 여부를 직접 결정하는 도구는 아니지만, 노령 반려동물에게 정기적으로 적용하면 어떤 부분을 더 관리해야 하는지, 삶의 질이 어떤 속도로 변화하는지를 파악하는 데 유용하다.

    주의할 점은 이러한 평가 결과만으로 안락사 여부를 결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는 어디까지나 보조적 수단일 뿐이며 호스피스 비용, 보호자의 돌봄 가능 시간, 반려동물의 치료 순응도 등 평가표에는 반영되지 않는 다양한 요소도 고려해야 한다. 또한 두 평가표는 보호자 혼자서도 체크할 수 있지만, 적절한 해석과 실제 치료 방향 설정을 위해서는 수의사와의 상담이 필수다. 보호자 상황에 맞는 수액 요법, 약물 처방, 간단한 처치 등을 통해 반려동물 삶의 질을 개선하는 과정은 결국 충분한 소통 속에서 완성된다.

    모든 반려동물이 최소한의 고통 속에서, 사랑하는 가족의 따뜻한 품 안에서 삶을 마무리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들의 삶은 인간과 마찬가지로 존중받아야 하며, 끝까지 보호받을 가치가 있다.

    우리는 그들이 마지막 순간에 어떤 선택을 원하는지 직접 들을 수 없기에 함께 살아온 가족으로서 그 결정을 대신 내려야 하는 책임을 진다. 그 선택의 순간은 분명 쉽지 않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오래 함께했는지가 아니라, ‘마지막까지 얼마나 덜 아프게, 덜 외롭게 곁을 지키는가’일 것이다. 명심할 점은 안락사는 생명을 포기하는 행위가 아니라, 불필요한 고통을 줄이기 위한 하나의 선택지라는 사실이다. 이별을 앞당기는 결정이 아닌, 고통을 줄이고 존엄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배려일 수 있다. 보호자의 깊은 고민과 사랑이 담긴 결정이라면 그 선택은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니다. 

    황윤태 수의사는… 2013년부터 임상 수의사로 일하고 있다. 현재 경기 성남 빌리브동물병원 대표원장, 한국동물병원협회 위원을 맡고 있다. 책 ‘반려동물, 사랑하니까 오해할 수 있어요’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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