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56년 11월 5일(현지 시간) 영국-프랑스 연합군의 공격으로 수에즈운하 옆 유류 저장 탱크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위키피디아
수에즈운하를 공동 관리해온 영국과 프랑스는 같은 해 10월 29일(이하 현지 시간) 나세르 대통령의 조치에 대응해 이스라엘까지 끌어들여 이집트를 침공했다(제2차 중동전쟁). 이들 3국은 수에즈운하를 점령했지만 9일 만에 철수했다. 이집트가 선박 수십 척을 침몰시키는 방법으로 수에즈운하 통행을 막았기 때문이다. 유럽의 원유 수입이 막혔고, 기축통화였던 영국 파운드화 가치도 급락했다. 결국 영국과 프랑스는 수에즈운하를 이집트에 양도해야 했다. 국제정치학자들은 이 사태를 두고 영국과 프랑스의 쇠퇴를 알린 이른바 ‘수에즈 모멘트’라 부르고 있다.
“역사상 가장 큰 수준의 공급 차질”

1960년 군중들에게 손을 흔드는 가말 압델 나세르 전 이집트 대통령. 위키피디아
국제유가가 상승하면 물가는 뛰고 소비는 얼어붙는다. 국제통화기금(IMF)은 국제유가가 50% 상승하면 세계 국내총생산(GDP)이 최대 2%p 하락할 수 있다고 본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IMF 총재는 국제유가가 10% 상승할 때마다 세계 인플레이션율은 0.4% 상승하고, 세계 GDP는 0.1~0.2% 감소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마크 잔디 무디스 애널리틱스 수석이코노미스트는 “국제유가가 배럴당 125달러가 되면 미국의 경기침체를 유발하는 기폭제가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호르무즈해협 봉쇄 효과가 상당하다고 판단한 이란은 아예 호르무즈해협의 ‘톨게이트화’를 추진하고 있다. 이란 의회 국가안보위원회는 3월 30일 호르무즈해협을 통과하는 선박에 통행료 규정을 적용하는 내용의 신규 관리 계획안을 승인했다. 그 내용을 보면 이란은 미국과 이스라엘 선박의 호르무즈해협 통과를 금지하고, 자국에 일방적인 경제제재를 가한 국가들의 해협 접근도 제한하기로 했다. 이와 관련해 블룸버그는 유조선의 경우 배럴당 1달러 수준의 통행료를 중국 통화인 위안화 또는 암호화폐인 스테이블코인으로 받는다는 계획을 마련했다고 보도했다. 초대형원유운반선(VLCC)의 적재 용량이 보통 200만 배럴인 만큼 통행료로 200만 달러(약 30억 원)를 징수하겠다는 것이다. 이란 반관영매체 타스님 통신은 이란 정부가 호르무즈해협 통행료를 부과하면 연간 1000억 달러(약 150조8800억 원) 넘는 수입을 거둘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이는 이란 GDP의 20~25%에 달한다.
이란이 통행료를 걷는 과정은 이렇다. 통행료를 내면 혁명수비대가 허가 코드와 항로 지침을 발급한다. 호르무즈해협에 접근한 선박은 초단파 무선으로 통과 코드를 송신하고 이후 여러 섬 사이 항로를 통과한다. 현재 혁명수비대는 해협을 지나는 선박들로부터 이미 통행료를 징수 중이며, 우호적인 국가들의 선박에는 우대 조치를 제공하고 있다. 이란은 호르무즈해협을 통과하려는 국가들을 1~5등급으로 분류해놨다. 미국 존스홉킨스대 중동 전문가인 발리 나스르 연구원은 “이란 정권에 호르무즈해협은 이제 핵 프로그램보다 중요해졌다”면서 “핵 프로그램은 상징적이었을 뿐 억지력을 제공하지 못한 반면, 지금 이란이 전쟁에서 버틸 수 있는 유일한 요인은 호르무즈해협 통제권과 거기서 나오는 수입”이라고 지적했다.
핵보다 중요해진 호르무즈해협

아랍에미리트연합(UAE) 해군 함정과 화물선이 호르무즈해협을 항해하고 있다. 뉴시스
이란이 통행료를 위안화로 받겠다는 것은 중국을 ‘뒷배’로 삼겠다는 뜻이다. 이른바 ‘페트로 달러’ 체제를 흔들겠다는 속셈이다. 미국과 사우디는 1974년 페트로 달러 체제를 구축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페트로 달러는 석유(petroleum)와 달러(dollar)의 합성어다. 당시 미국은 안보를 보장해주는 대가로 사우디와 원유를 달러화로만 거래하기로 했다. 이후 다른 중동 산유국으로 확대됐고, 산유국들은 석유를 팔아 벌어들인 달러화를 다시 미국 채권과 주식 등에 투자해왔다. 미국이 금본위제 폐지(1971) 후에도 달러 패권과 기축통화 국가 지위를 굳건히 지키면서 세계 금융시스템을 지배할 수 있었던 이유다.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에 따르면 2024~2025년 세계 원유 거래의 80%가 달러로 결제됐다.
중국은 그동안 위안화를 기축통화로 만들고자 상당한 공을 들여왔다. 그 결과 국제 결제망에서 위안화 사용 비율은 2011년 기준 0%에서 2024년 8월 4.7%까지 늘어났다. 위안화 사용이 증가한 것은 러시아, 이란, 베네수엘라 등 미국과 대립하는 산유국들의 하루 원유 생산량이 1400만~1500만 배럴(전 세계 원유 공급량의 15%)로 추정되는데, 이들이 모두 달러 결제망에서 이탈해 위안화·루블화로 거래해왔기 때문이다. 이란이 호르무즈해협 통행료를 위안화로 받을 경우 위안화 비중이 높아진다. 자칫하면 페트로 달러에 대항하는 페트로 위안 체제가 구축될 수도 있는 것이다.
70년 전 영국·프랑스 신세 될 수도
미국이 호르무즈해협을 재개방하지 못한 채 이란과의 전쟁에서 일방적으로 승리했다고 선언한 뒤 이란에서 철수할 경우 과거 영국과 프랑스의 신세가 될 수도 있다. 알프레드 맥코이 미국 위스콘신대 메디슨 캠퍼스 교수는 “1956년 수에즈 위기는 강대국이 벌인 마이크로 군사주의(Micro-militarism)의 대표적 사례”라면서 “미국의 이란 공격 역시 마이크로 군사주의로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마이크로 군사주의란 쇠락하는 초강대국이나 제국이 과거 영광을 되찾으려고 국지적 군사 개입을 감행했다가 더 큰 쇠퇴를 경험하는 걸 뜻한다. 서방 언론들은 이란이 호르무즈해협을 장악한 채로 전쟁이 끝난다면 미국엔 전략적 패배, 이란엔 전략적 승리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게다가 이란은 통행료를 미국·이스라엘 공습으로 파괴된 군사시설, 미사일·핵 프로그램 등을 재건하는 데 필요한 자금으로 사용할 수 있다.군사 전문가들은 미국이 호르무즈해협 개방을 위해 해병대 등을 동원해 호르무즈해협의 7개 섬 장악에 나설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 7개 섬들 이란에서 ‘움직이지도, 침몰하지도 않는 항공모함’으로 불린다. 미 해군이 페르시아만으로 이동할 때 먼저 마주치는 섬은 호르무즈해협 동쪽 호르무즈섬, 라라크섬, 케슘섬, 헨감섬이다. 이들 4개 섬은 이란의 배타적경제수역(EEZ) 내에 있어 본토와 가깝다. 4개 섬을 지나면 호르무즈해협 서쪽에 아부무사섬, 대(大)툰브섬, 소(小)툰브섬이 있다. 이들 3개 섬은 이란과 바다 맞은편에 있는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이 영유권을 놓고 서로 다퉈온 곳이다. 군사적으로 볼 때 이들 7개 섬을 연결한 곡선은 이란군이 호르무즈해협을 지키는 ‘아치형 방어선’이다. 미군이 7개 섬에 상륙작전을 벌일 경우 상당한 위험과 병력 손실이 따를 수밖에 없다고 군사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