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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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병 살인’의 비극, 국가가 막아야 한다

[이윤현의 보건과 건강]

  • 이윤현 남서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대한검역학회 회장)

    입력2026-04-15 07: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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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인 인구가 늘어나면서 간병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GETTYIMAGES

    노인 인구가 늘어나면서 간병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GETTYIMAGES

    대한민국은 인구 5명 중 1명이 노인인 초고령사회다. 최근 언론에 종종 등장하는 ‘간병 살인’과 ‘간병 파산’은 충격적인 사건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우리 주변에서 조용히 진행되는 일상의 비극이다. 양가 부모님이 모두 생존해 계신 필자에게도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거동이 불편한 필자의 장모님은 24시간 간병인을 두고 생활하신다. 매달 수백만 원씩 나가는 간병비는 개인이 감당하기에 너무 큰 부담이다. 가족 입에서 “이렇게 살아서 뭐하나”라는 말이 나올 때마다 마음이 무너진다. 

    가족 생존을 위협하는 노인 간병

    이 문제는 일본이 먼저 겪었다. 일본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일본에서는 매년 수십 건씩 ‘간병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가해자 상당수가 피해자의 배우자나 자녀다. 일본 언론에는 치매에 걸린 아내를 장기간 돌보던 남편이 아내를 살해한 뒤 자신도 목숨을 끊은 사건, 부모를 돌보던 중년 자녀가 경제적 압박에 시달리다가 스스로 생을 마감한 사건 등이 자주 보도된다. ‘개호피로’(介護疲れ: 돌봄지침)라는 표현이 일반화됐을 만큼 간병이 사회문제가 됐다. 일본 정부는 비극을 막고자 2000년 ‘개호보험제도(장기요양보험)’를 도입해 국가가 간병을 지원해왔다. 하지만 이후에도 가족의 경제적 부담과 인력 부족 문제가 사라지지 않아 계속 제도를 개편하고 있다.

    유럽 국가들도 상황이 비슷하다. 독일은 1995년 장기요양보험을 도입하면서 간병을 사회보험 체계에 포함했다. 재가돌봄, 방문간호, 가족간병수당 등을 제공해 가족의 부담을 줄이려 했다. 북유럽 국가들은 지방정부 중심의 방문 돌봄 서비스를 확대해 노인이 시설로 옮기지 않고 원래 살던 집에서 계속 생활하도록 지원한다. 그럼에도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재정 부담과 인력 부족 문제가 계속 제기되고 있다. 선진국조차 노인 간병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이 문제가 얼마나 구조적인 것인지 보여준다.

    한국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간병인을 24시간 고용할 경우 월 400만 원 넘게 드는 일이 흔하다. 장기요양보험이 도입됐지만 여전히 개인의 부담이 크다. 결국 가족이 집을 팔거나 노후자금을 소진하게 되고, 비용을 감당할 수 없을 때는 경제활동을 포기한 채 직접 간병에 나서기도 한다. 

    간병은 더는 가족의 희생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간병비의 국민건강보험 급여화, 방문 돌봄 확대, 공공 간병 인력 확충, 간호·간병 통합서비스 확대가 동시에 추진돼야 한다. 국민건강보험 재정 우선순위를 재조정해 간병을 공적 서비스의 핵심 항목으로 편입해야 한다. 특히 중증 환자에 대한 24시간 공공 돌봄 체계가 마련되지 않으면 ‘간병 파산’과 ‘간병 살인’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누구나 늙고, 누구나 돌봄 대상이 된다. 필자가 겪는 고민은 결국 우리 사회 모두가 마주하게 될 미래다. 초고령사회의 재앙을 막으려면 ‘간병의 국가 책임제’를 향한 담대한 사회적 합의와 정책적 결단이 필요하다. 국가가 국민의 마지막 존엄을 지켜줄 때 비로소 우리는 고령화라는 거대한 파도를 넘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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