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월 3일 중동 사태 장기화로 나프타 등석유화학 제품 수급 문제가 지속되면서 서울 시내 편의점에 종량제 봉투 구매 개수 제한 관련 안내문이 붙어 있다. 뉴스1
그럼에도 조금 멀리 보자면 어느 시점에서는 미국이 철수할 것이다. 그리고 그 시점 전후로 호르무즈해협은 이란이 통행료를 받더라도 봉쇄가 풀릴 테다. 하지만 페르시아만 내 산유국은 이번 전쟁으로 원유, 액화천연가스(LNG) 등 에너지 생산 및 운송 인프라 시설에 피해를 입었고, 이를 복구하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해 고유가 장기화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현대 문명사회 기반은 석유
현대 문명사회 기반은 석유다. 전쟁 초기 해협이 봉쇄됐을 때 원유 공급 부족 우려로 주유소 판매 가격이 급등한 사례는 사실 매우 사소한 문제에 불과하다. 원유를 정제하면 휘발유, 경유 등 연료가 나오지만 ‘산업의 쌀’로 불리는 나프타도 얻는다. 모든 석유화학 제품은 나프타로부터 시작된다. 최근 사재기 논란을 낳고 있는 쓰레기 종량제 봉투부터 가전제품, 자동차 윤활유, 식료품 포장지, 생필품 케이스, 의약품에 이르기까지 석유화학 제품을 사용하지 않는 산업은 없다.농업도 예외는 아니다. 봄이 되면 농부들이 파종을 해야 하고 이때 밭작물용 멀칭비닐, 시설하우스용 비닐 등 많은 관련 제품이 필요하다. 또한 이번 호르무즈해협이 봉쇄되면서 요소 비료 조달 문제가 제기됐는데, 실제 공급이 원활하지 않을 경우 올해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농산물 작황이 좋지 않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1차적으로 경제 전반에 인플레이션 압력이 급증한다.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3월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석유류 제품 가격이 전년 동월 대비 9.9% 급등했다. 다만 석유류가 전체 소비자물가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4.7%밖에 되지 않아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2.2% 상승하는 데 그쳤다.
하지만 과거 경험을 살펴보면 유가가 먼저 급등한 뒤 공업 제품 가격이 따라 오르고 마지막에 서비스 요금이 인상된다. 시차를 두고 물가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즉 앞으로 인플레이션 압력이 더욱 높아진다는 의미로, 고물가는 가계의 소비심리와 기업의 투자심리를 위축시키고 경제 전반에 걸쳐 활력을 가라앉게 만든다.
그럼에도 인플레이션은 시간이 지나면 해소된다. 그것보다 더욱 우려되는 점이 바로 석유파동(오일쇼크)이다. 앞에서 언급된 경제 전체의 공급 부족 강도가 임계치를 넘어서면 셧다운(shutdown)이 일어난다. 생산 활동이 대부분 아예 멈추면서 운송할 물건이 없어지고 마트 매대가 텅 비게 되는 것이다. 다행히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석유파동까지 갈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그럼에도 올해 중에는 인플레이션 압력이 높아져 고물가가 경제 발목을 잡을 것으로 생각된다.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에 따르면 4월 1일 오후 12시30분 기준 전국 휘발유 평균 가격은 전날보다 12.72원 오른 1907.68원으로 집계됐다. 사진은 이날 오후 서울 서초구 만남의광장 주유소 모습. 뉴스1
국제정치가 경제 논리 지배, 높은 변동성 조심해야
고유가 시대 혹은 더 극한 상황인 석유파동에 대비하려면 모든 경제 주체가 좀 더 적극적으로 대응에 나서야 한다. 먼저 정부는 가계와 기업의 불안 심리를 누그러뜨릴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일관된 메시지를 내야 한다. 즉 한국 경제가 현 위기를 이겨낼 수 있다는 정부의 자신감이다.하지만 현실에서는 원유 정제로 시작되는 복잡한 석유화학 가치 사슬 가운데 분명 어느 부분에서 수급 문제가 생길 것이다. 특히 지금 같은 초불확실성 상황에서는 시간이 지나면 가격이 더 오르리라는 기대로 출하를 늦추거나 원부자재를 필요 이상으로 사놓으려는 ‘사재기 심리’가 만연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정부도 당연히 놓치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 대한 비난 여론이 있더라도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면서 현 위기도 이겨낼 것이라는 자신감을 보여줘야 한다.
기업은 공급망 교란에 철저히 대비할 필요가 있다. 석유화학 제품이 사용되지 않는 산업이 없기에 현 위기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기업은 없다. 기업은 핵심 중간재 공급에 문제가 발생할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미리 대체 공급선을 확보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는 당장의 수익성을 따지지 말아야 한다. 다소 손해를 입더라도 생산 활동이 멈추지 않고 조금씩이라도 지속되는 것을 목표로 할 필요가 있다.
개인들은 사태 장기화에 대비해야 한다. 지금 가장 중요한 미덕은 ‘절약’이다. 당분간은 허리띠를 단단히 졸라매고 불필요한 지출을 줄여야 할 것이다. 특히 금융·자산투자를 하는 사람은 높은 변동성을 조심해야 한다. 지금은 국제정치 논리가 경제 논리를 지배하는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한마디가 시장 방향성을 좌지우지한다. 투자 대상이 무엇이든 근본적인 가치를 생각해보고 투자 방향성을 신중하게 결정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역사책에서 배웠던 ‘오일쇼크’가 재연될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파국적 미래를 대비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미국과 이란이 처해 있는 국제정치 역학이나 양국의 경제 여건을 볼 때 지금 우리가 겪는 고통이 오래갈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