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여파로 손님이 줄었을지 모르지만 평소 주말에는 발 디딜 틈이 없을 만큼 번잡하다. 큰길과 골목길을 따라 각종 문구류부터 장난감, 과학교재, 축제용품, 사무용품, 캠핑용품까지 온갖 물건을 파는 가게가 가득하다. ‘만물거리’라 불러도 좋을 정도다.
이구아나, 개구리, 공갈빵
동대문(흥인문)은 우리나라 보물 제1호다. 국보 제1호 남대문(숭례문)과 함께 우리나라 문화재를 대표한다. 그런데 유심히 살펴보면 동대문과 남대문 말고도 그 주변에는 더 많은 보물이 숨어 있다. 창신동도 그런 곳이다. 왜 보물일까. 귀하니 보물이다. 여기저기 흔하게 있는 게 아니니까!
흔히 창신동 하면 사람들이 떠올리는 곳은 종로 북쪽 지역이다. 2013년 도시재생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도시재생특별법)이 제정된 후 지난해 서울에서 가장 먼저 도시재생 시범구역으로 지정된 곳이다. 우리가 흔히 아는 재개발이나 재건축은 오래된 집과 길, 언덕, 나무까지 몽땅 철거하고 아파트를 짓는 방식이다. 창신동에서는 이를 지양하고 집과 길을 고치되, 필요한 시설과 공간을 끼워 넣는 방식으로 오래된 동네를 살려내려 이른바 ‘도시재생사업’이 한창이다.
그 바로 아래 남쪽에 우리가 얘기하는 장소가 있다. 종로와 청계천 사이, 동대문역과 동묘앞역 사이 창신동이다. 이곳에는 문구완구거리 외에도 보물이 가득하다. 청계천변에는 동대문 신발도매상가가 늘어서 있다. 건물 안쪽 작은 골목을 따라 걸으면 온갖 종류의 신발을 구경할 수 있고, 마음에 들면 착한 가격에 살 수도 있다.
신발도매상가가 끝나는 동남쪽 모퉁이 우리은행 주변에는 원앙과 앵무새, 이구아나, 햄스터, 토끼, 고슴도치, 컬러개구리, 가재, 병아리, 금붕어, 거북이 등 온갖 종류의 동물을 파는 가게가 모여 있다. 큰길 안쪽으로 들어가면 열대어, 수족관과 관련한 도매용품 상가들이 또 몰려 있다.
오래된 동네답게 추어탕과 함흥냉면으로 유명한 식당이 많고, 공갈빵집도 있다. 한옥 공갈빵집에서 공갈빵을 한 봉지 사서 아이들에게 건네며 공갈빵이 뭔지 알려주고, 예전에 아주 흔했다가 지금은 점점 사라져가는 것들의 소중함에 대해 얘기해줘도 좋겠다.
이 주제에 대해 얘기할 장소는 청계천변이나 세운상가 주변에도 있다. 동대문시장, 남대문시장, 광장시장, 방산시장, 중부시장, 중앙시장 같은 서울 재래시장도 그에 포함된다. 문구완구거리, 공구상가, 건자재상가, 의류상가, 전기전자상가, 조명용품거리처럼 특정 용품을 파는 가게가 이렇게 오밀조밀 모여 있는 건 어느 날 누군가 계획해 이뤄질 수 있는 게 아니다. 서울의 오랜 역사 속에서 나고 자란 도심 산업생태계가 만들어낸 결과물이자, 서울의 소중한 역사문화자산이다.
청계천변 동대문 신발도매상가에서는 온갖 종류의 신발을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다.
집 안에서 키우기 좋은 각종 동물을 판매하는 창신동 시장(위)과 추억의 간식 ‘공갈빵’ 가게.
문제는 재개발이다. 뉴타운(재정비촉진지구)이나 도시환경정비사업이란 이름으로 진행되는 도심재개발은 창신동을 비롯한 서울의 보물을 한꺼번에 없앨 위험이 있다. 다행히 창신동은 주민들의 요청으로 2013년 뉴타운 지구에서 해제됐지만 대규모 철거 재개발의 위협은 여전히 남아 있다. 창신동에 투자한 이들과 건물주들은 개발 이익을 가져다줄 재개발을 더 바랄 것이기 때문이다.
서울시와 종로구가 서울 도심산업을 어떻게 보고 어떻게 대할지에 따라 창신동의 미래는 결정될 것이다. 도심산업을 보전하며 살릴 것인지, 아니면 쓸어내고 없애버릴지 분명한 신호를 줘야 할 것이다. 철거 재개발보다 보전과 재생이 더 바람직하다고 판단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 재개발구역(도시환경정비구역)을 해제해 재개발 가능성을 제거하고, 개별 건물의 개·보수와 신·개축 같은 점진적 환경 개선을 유도, 지원해야 한다.
역사학자 전우용은 서울의 시공간을 인문학적으로 고찰해 펴낸 책에 ‘서울은 깊다’라는 제목을 붙였다. 그렇다. 서울은 깊은 도시다. 샘이 깊은 물처럼 그윽한 맛이 나고, 뿌리 깊은 나무처럼 단단하며, 열매는 풍성하고 품도 넓다. 새로 만들려고 애쓰기보다 이미 있는 것, 오래된 것들을 잘 지키고 살려라. 그게 요즘 세계 모든 도시가 존중하고 따르는 도시계획 트렌드이자, 역사도시를 돌보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