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뭄은 끝끝내 계속됐다. 들판에는 반 이상 모가 뽑히고 메밀 등속의 댓곡식이 뿌려졌으나, 끓는 폭양 아래서는 싹도 잘 아니날뿐더러, 설령 났더라도 말라지기 바쁠 지경이었다.’ ‘여기저기 탱고리수염 같은 벼포기가 벌써 발갛게 모깃불감이 되고, 마을 앞 정자나무 밑에는 떡심 풀린 농부들의 보람 없는 걱정만이 늘어갈 뿐이었다.’(김정한, ‘사하촌’ 중에서)
전국적으로 가뭄 피해가 속출하는 가운데 6월 17일 오후 찾은 인천 강화군 강화읍 오상리의 한 농촌 풍경은 소설 ‘사하촌’의 문장 문장을 고스란히 옮겨놓은 것처럼 보였다. 논바닥은 바싹 말라 쩍쩍 갈라졌고, 강화도에서 두 번째로 큰 내가저수지(고려저수지)는 저수지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바닥을 드러낸 지 오래였다. 파종이 늦어진 어린 벼싹들은 뙤약볕에 맥없이 늘어져 누렇게 변했다. 마을에 양수기는 동이 났고, 서로 남은 물을 끌어다 제 논에 대려다 보니 민심마저 흉흉해 고성이 오가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나무그늘 아래 망연히 앉아 더위를 피하던 60, 70대의 농민들은 “살면서 이렇게 심한 가뭄은 처음 본다”며 입을 모았다. 전국이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공포에 떠는 가운데에도 지금 농촌에서는 가뭄이 메르스보다 더 무섭다. 마을회관 인근에서 만난 농민은 “메르스는 모르겠고 지금은 가뭄 때문에 다 죽게 생겼다”고 말했다.
역병에 가뭄까지…
“예전에는 들에 나오면 시원하고 좋았는데, 이제는 답답하기만 해. 이런 가뭄은 생전 처음이야.”
평생 이곳에서 농사를 지어온 이연순(69) 씨는 “자식들이 올해는 농사 포기하라 하더라고. 그런데 그럴 수가 있어야지”라며 한숨을 쉬었다. 그는 “급수차가 와서 물을 대주는데 내 논은 멀어서 그런지 물도 안 대줘”라며 자신의 논을 보여줬다. 9256㎡ 논이 바싹 말라 있었고, 다른 논들처럼 줄지어진 벼 모종 사이로 탈모처럼 드문드문 빈자리가 보였다. 이씨는 “온 동네가 난리야. 이장님 논도 말이 아니라 (이장님에게) 물 달라고 덤벼보지도 못 했어”라고 말했다. 그의 논 주위를 둘러보는 와중에도 몇몇 농민이 논에 나와 벼를 쓰다듬거나 주위를 빙빙 돌며 한숨을 쉬었다.
무심한 하늘을 대신해 논에 물을 대는 건 경찰서, 소방서, 군부대, 군청 등의 급수차량이다. 이례적으로 경찰에서 시위 진압용 살수차에 물을 공급하던 물보급차도 급수 지원 활동에 나섰다. 레미콘도 물을 채워 급수에 투입됐다. 소방관들은 주말 없이 6t, 12t 소방차를 몰고 나가 하루 4~5회씩 논에 물을 댄다. 김운진 내가119안전센터장은 “2년 전에도 급수 지원에 나섰지만 올해처럼 장기간은 아니었다. 내가저수지가 완전히 바닥을 드러낸 것도 처음”이라며 “그나마 주말에 비가 왔지만 강수량이 20㎖에 불과해 턱없이 모자랐다. 앞으로 비가 올 때까지 물을 공급할 예정이지만, 일시적으로 논을 적시는 정도의 효과밖에 없어 임시 조치에 불과하다”고 안타까워했다. 조창희 지방소방교도 “소방관 생활을 하면서 이렇게 큰 가뭄에 지원을 나가는 것은 처음”이라며 “물을 뿌려도 금방 증발해 효율이 떨어지는 것 같다. 급수차로 물을 뿌리고 있으면 농민들이 와서 ‘벼가 타들어간다. 우리 논에도 물을 달라’는 이야기를 한다”고 말했다. 그전까지는 김포에서 한강물을 가져왔는데, 지금은 하수종말처리장에서 물을 받아와 공급하고 있다.
이날 현장 시찰을 나온 이상복 강화군수를 발견한 주민들은 “가뭄을 해결해달라”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강화군청은 6월 3일부터 한해대책 상황실을 설치하고 부군수 총괄하에 급수 대책 마련에 나섰다. 이 군수는 “지난해는 재작년 강수량의 절반 수준이었고, 올해도 극심히 가문 상태다. 정부에서 많이 도움을 줘 근근이 버티고 있다. 주말에 비가 적게나마 온 덕에 많은 논이 살아날 수 있었다. 앞으로 비가 올 때까지는 버텨보자는 심정으로 군과 소방서, 경찰, 민간 급수차를 총동원해 급한 논부터 급수를 지원하고 있다”며 “이제 강화는 상습적 한해지역이다. 지금은 김포에서 물을 가져오고 있는데, 가뭄 극복을 위해 한강물을 끌어올 수 있는 급수관을 연결하고, 비가 오기 전 급한 대로 저수지를 준설하는 방안을 농림축산식품부(농식품부)에 건의해 현재 검토 중인 단계”라고 말했다.
임시 조치만 있고 장기 대책은 없어
이씨는 가뭄 이후 처음으로 이날 논에 물을 댈 수 있었다. 12t짜리 소방차가 이씨 논에 물을 뿌리자 거짓말처럼 무지개가 나타났다. 그의 논에 물을 대는 와중에도 양수기로 자기 논에 물을 대던 일부 농민이 “저 소방차가 지나가면서 논에 물을 대던 호스가 망가졌다”며 “고쳐놓고 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기상청에 따르면 6월 15일 기준 전국 누적강수량은 286.7mm로 평년(348.4mm) 대비 82% 수준이었다. 서울, 경기 등 중부지역은 누적강수량(161.5mm)이 평년(295.2mm)의 55%에 그쳤다. 기상청은 올해 초 수문기상과 가뭄업무를 전담하는 방재기상팀을 신설하고 가뭄 관련 연구개발과 유관기관의 협력 추진, 기상청·한국수자원공사가 공동 설립한 수문기상협력센터를 통한 가뭄 업무 협력 등에 주력하고 있다. 기상청 관계자는 “가뭄은 시작과 끝을 알기 어렵다 보니 원인이나 전망에 대해서도 파악이 어려운 분야”라면서 “장마가 와야 해갈이 될 텐데, 장마 시기는 6월 말에서 늦으면 7월 초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사이 비는 간간히 오겠지만, 6월 25일까지는 장마전선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부는 대책 마련을 고심하고 있다. 국토교통부(국토부)는 수자원정책국장을 실장으로 하는 용수수급상황실을 운영 중이다. 국토부와 한국수자원공사는 6월 11일부터 화천·의암·춘천댐 등 한강수계 발전댐들이 발전을 위해 내보내는 물을 하류 용수공급에 활용해 다목적댐의 용수공급 부담을 더는 ‘비상 댐 연계운영’도 시작했다. 지난해 7월부터 가뭄대책본부를 운영 중인 한국수자원공사는 지방자치단체(지자체)로부터 요청받아 경기·강원 등 가뭄지역 16개 시·군에 2014년 12월부터 현재까지 병물 9만4000병과 급수차량 2192㎥의 용수를 긴급 지원했다.
농식품부는 6월 12일 가뭄대책상황실을 가뭄·수급대책상황실로 확대하고 상황실장도 국장에서 차관으로 격상한 데 이어 14일 여인홍 차관 주재로 긴급 가뭄·수급 안정 회의를 열고 가뭄 장기화에 대비한 총력 지원체계로 전환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매일 지자체를 통해 상황을 파악하고 있다. 현재 가뭄이 심각한 지역은 인천 강화, 옹진, 경기 파주, 여주, 이천, 강원 영동지방과 경북 동해안 등으로 강원지역 작물은 고온 때문에 시드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전국적으로는 3880ha에 시듦 현상이 나타나고, 논물마름 현상은 2700ha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런 지역들에 농식품부 예산 62억 원을 지원했고, 28개 시·군에서 270억 원을 투입한 상태다. 매일 급수차와 양수기를 동원해 공무원, 군인, 주민 등 1만8000여 명이 급수에 도움을 주고 있다”며 “기획재정부, 국민안전처와 적극적으로 협력해 가뭄을 이겨나갈 대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가뭄 가고 태풍 온다?
이동필 농식품부 장관은 10월까지 가뭄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중·장기 종합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국무총리가 공석일 당시 최경환 국무총리 직무대행 겸 경제부총리는 6월 17일 열린 제12차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가뭄 피해를 고려한 경기보완책을 이달 내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문제는 가뭄이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올해는 장마마저 늦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데, 마른장마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지난해에는 장마가 22년 만에 7월에 시작하면서 댐과 저수지가 바닥을 드러냈고, 강원도의 대표적인 축제인 인제빙어축제는 물이 말라 사상 처음으로 행사를 취소해야 했다.
반기성 케이웨더 예보센터장은 극심한 가뭄의 원인으로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온 상승과 엘니뇨현상을 들었다. “지난해 8월부터 가물었는데 그런 현상이 2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다. 지난해 엘니뇨현상 탓에 장마가 늦고, 장마 기간에도 비가 많이 오지 않았다. 북태평양 고기압의 힘이 약해 장마전선을 한반도로 밀어 올려주지 못했고, 건조하면서 뜨거운 동서 고기압세력이 버티고 있다 보니 5월에 이례적인 폭염이 있었다. 7월 상순까지는 가물 것으로 본다. 중부는 평년 정도, 남부는 비가 많이 오고, 경기 북부는 비가 적겠다. 지난해처럼 마른장마는 아닐 것”이라고 예측했다.
당장 하루하루 속이 바짝 마르는 농민과 달리 도시에서는 가뭄의 심각성을 직접적으로 느끼기 어렵다. 반 센터장은 “농업과 축산업은 피해가 극심하다. 벌써 배추 같은 농작물 가격이 2배로 폭등했고, 쌀이나 과일도 마찬가지가 될 것이다. 닭이나 돼지 폐사율까지 높아지면 전반적인 식자재 가격이 훌쩍 뛸 가능성이 있다. 또한 한강수계가 감소하면 적조와 녹조가 발생해 도시민 생활에도 당장 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말했다.
태풍 소식도 한 달 넘게 잠잠해 불안함을 더한다. 가뭄 피해를 겨우 수습한 뒤에도 ‘슈퍼 태풍’이 한반도를 강타하면 피해가 클 것이라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강남영 기상청 국가태풍센터 박사는 “엘니뇨현상이 있을 때 태풍이 많이 발생하고 강한 태풍이 생기는 건 맞지만, 우리나라로 오는 태풍이 많아진다는 뜻은 아니다. 태풍에는 양면성이 있다. 강수량의 3분의 1이 태풍에서 비롯되기에 직접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면 태풍이 오는 것 자체를 걱정할 필요는 없다. 올해 현재까지 태풍이 7번 발생했는데, 하반기에도 평년 수준의 태풍이 발생할 것으로 본다. 6월부터 태풍이 쉬고 있는데, 에너지를 축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우리나라에 영향을 미치지 않더라도 조만간 태풍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 농촌이라면 농작물 재해 보험에 가입하는 것이 대비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상청 국가태풍센터는 5월 1일부터 예보 서비스를 태풍 외에도 태풍의 사전 및 사후 단계인 열대저압부(Tropical Depression·TD)까지 확대해 사전에 조치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도록 한 상태다.
물 절약만으론 대비 역부족
한국이 점차 고온다습한 아열대성 기후로 가면 장기적으로 폭염 피해도 예상된다. 국립재난안전연구원 안전연구실의 김도우, 정재학, 이종설 연구원은 지난해 열린 기후변화연구 학술대회에서 기상청의 기후변화 시나리오와 통계청의 장래인구 추계자료를 적용해 2050년대 우리나라의 폭염(하루 최고 기온이 33도 이상인 날) 연속일수와 인명 피해 발생 건수를 추정했다. 이들은 7~8월 일사병이나 열사병 등 온열질환으로 숨진 경우를 폭염 사망자로 정의했다. 이에 따르면 온실가스가 감축되지 않고 계속 늘어날 경우 2051~2060년 폭염 사망자 수는 연평균 134명으로, 2001~2010년(20명)보다 6.8배 증가할 것으로 예상됐다. 2051~2060년 최고기온 33도 이상인 날이 연속적으로 발생하는 날(폭염 연속일수)은 연평균 10일로 나타났는데, 이는 2001~2010년(4일)보다 2.5배 증가한 수치다. 연구는 폭염 연속일수가 폭염으로 인한 사망과 크게 연관이 있다고 분석했다.
기후 전문가들은 미래 엘니뇨현상뿐 아니라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상이변과 이상기후에 대해 장기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반 센터장은 “장기적으로 국내 가용 수자원 상태를 파악하고 인공강우 기술을 개발하는 등 여러 조치를 생각해볼 수 있겠지만, 당장 2~3주 내에도 비가 오지 않으면 제한급수를 하거나, 식수 공급을 하는 등 대책을 세우는 게 시급하다. 이미 우리는 물 부족 국가다. 가뭄에 대비해 소형 댐을 많이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가뭄이 올해 한 해로 끝나지 않고 장기화할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장기간 가뭄 주기를 분석해온 변희룡 부경대 환경대기과학과 교수는 “가뭄은 통계치를 갖고 주기를 따지는데, 한 해짜리 가뭄은 임시 조치만 하고 넘길 수 있겠지만 2년 연속 가물기 시작하면 피해가 막심해진다. 올해는 가뭄 주기로 따지면 38년 주기에 걸리는데, 38년 주기 가뭄은 3년간 가물기 때문에 상당히 위험한 상황”이라고 말했다(상자기사 참조). 그는 “최소한 가뭄이 발생할 기미가 보이면 특보를 내고, 가뭄 강도를 정부에서 계량화하는 것을 추진해야 한다. 보와 댐을 많이 짓고, 소양강댐같이 큰 댐이 어렵다면 작은 댐을 산골짜기에 만들어 용수를 확보해야 한다. 단순히 국민이 물을 아껴 쓰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물차를 보내고 생수를 보내는 단기적인 대책에 그치지 말고, 가뭄 정책 연구도 체계적으로 진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많은 전문가가 공통적으로 저수지 및 댐 건설을 주장하지만 당장 시행은 요원해 보인다. 예산 문제만은 아니다. 지난 정부에서 22조 원을 들여 4대강 사업을 하면서 16개 보를 건설할 때 명분은 유량을 확보해 생태계를 복원하고 ‘홍수나 가뭄에 대비하자’는 것이었으나, 보의 물이 가뭄지역까지 내려갈 수 있는 수로가 갖춰져 있지 않아 현재 확보한 11억7000t가량의 물을 가뭄지역에서 활용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은 6월 17일 브리핑을 내고 “정부는 실패한 4대강 사업을 답습하는 국가하천계획 수립을 중단하고 근본적인 가뭄 문제 해결에 집중해야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전국적으로 가뭄 피해가 속출하는 가운데 6월 17일 오후 찾은 인천 강화군 강화읍 오상리의 한 농촌 풍경은 소설 ‘사하촌’의 문장 문장을 고스란히 옮겨놓은 것처럼 보였다. 논바닥은 바싹 말라 쩍쩍 갈라졌고, 강화도에서 두 번째로 큰 내가저수지(고려저수지)는 저수지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바닥을 드러낸 지 오래였다. 파종이 늦어진 어린 벼싹들은 뙤약볕에 맥없이 늘어져 누렇게 변했다. 마을에 양수기는 동이 났고, 서로 남은 물을 끌어다 제 논에 대려다 보니 민심마저 흉흉해 고성이 오가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나무그늘 아래 망연히 앉아 더위를 피하던 60, 70대의 농민들은 “살면서 이렇게 심한 가뭄은 처음 본다”며 입을 모았다. 전국이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공포에 떠는 가운데에도 지금 농촌에서는 가뭄이 메르스보다 더 무섭다. 마을회관 인근에서 만난 농민은 “메르스는 모르겠고 지금은 가뭄 때문에 다 죽게 생겼다”고 말했다.
역병에 가뭄까지…
“예전에는 들에 나오면 시원하고 좋았는데, 이제는 답답하기만 해. 이런 가뭄은 생전 처음이야.”
평생 이곳에서 농사를 지어온 이연순(69) 씨는 “자식들이 올해는 농사 포기하라 하더라고. 그런데 그럴 수가 있어야지”라며 한숨을 쉬었다. 그는 “급수차가 와서 물을 대주는데 내 논은 멀어서 그런지 물도 안 대줘”라며 자신의 논을 보여줬다. 9256㎡ 논이 바싹 말라 있었고, 다른 논들처럼 줄지어진 벼 모종 사이로 탈모처럼 드문드문 빈자리가 보였다. 이씨는 “온 동네가 난리야. 이장님 논도 말이 아니라 (이장님에게) 물 달라고 덤벼보지도 못 했어”라고 말했다. 그의 논 주위를 둘러보는 와중에도 몇몇 농민이 논에 나와 벼를 쓰다듬거나 주위를 빙빙 돌며 한숨을 쉬었다.
무심한 하늘을 대신해 논에 물을 대는 건 경찰서, 소방서, 군부대, 군청 등의 급수차량이다. 이례적으로 경찰에서 시위 진압용 살수차에 물을 공급하던 물보급차도 급수 지원 활동에 나섰다. 레미콘도 물을 채워 급수에 투입됐다. 소방관들은 주말 없이 6t, 12t 소방차를 몰고 나가 하루 4~5회씩 논에 물을 댄다. 김운진 내가119안전센터장은 “2년 전에도 급수 지원에 나섰지만 올해처럼 장기간은 아니었다. 내가저수지가 완전히 바닥을 드러낸 것도 처음”이라며 “그나마 주말에 비가 왔지만 강수량이 20㎖에 불과해 턱없이 모자랐다. 앞으로 비가 올 때까지 물을 공급할 예정이지만, 일시적으로 논을 적시는 정도의 효과밖에 없어 임시 조치에 불과하다”고 안타까워했다. 조창희 지방소방교도 “소방관 생활을 하면서 이렇게 큰 가뭄에 지원을 나가는 것은 처음”이라며 “물을 뿌려도 금방 증발해 효율이 떨어지는 것 같다. 급수차로 물을 뿌리고 있으면 농민들이 와서 ‘벼가 타들어간다. 우리 논에도 물을 달라’는 이야기를 한다”고 말했다. 그전까지는 김포에서 한강물을 가져왔는데, 지금은 하수종말처리장에서 물을 받아와 공급하고 있다.
이날 현장 시찰을 나온 이상복 강화군수를 발견한 주민들은 “가뭄을 해결해달라”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강화군청은 6월 3일부터 한해대책 상황실을 설치하고 부군수 총괄하에 급수 대책 마련에 나섰다. 이 군수는 “지난해는 재작년 강수량의 절반 수준이었고, 올해도 극심히 가문 상태다. 정부에서 많이 도움을 줘 근근이 버티고 있다. 주말에 비가 적게나마 온 덕에 많은 논이 살아날 수 있었다. 앞으로 비가 올 때까지는 버텨보자는 심정으로 군과 소방서, 경찰, 민간 급수차를 총동원해 급한 논부터 급수를 지원하고 있다”며 “이제 강화는 상습적 한해지역이다. 지금은 김포에서 물을 가져오고 있는데, 가뭄 극복을 위해 한강물을 끌어올 수 있는 급수관을 연결하고, 비가 오기 전 급한 대로 저수지를 준설하는 방안을 농림축산식품부(농식품부)에 건의해 현재 검토 중인 단계”라고 말했다.
임시 조치만 있고 장기 대책은 없어
이씨는 가뭄 이후 처음으로 이날 논에 물을 댈 수 있었다. 12t짜리 소방차가 이씨 논에 물을 뿌리자 거짓말처럼 무지개가 나타났다. 그의 논에 물을 대는 와중에도 양수기로 자기 논에 물을 대던 일부 농민이 “저 소방차가 지나가면서 논에 물을 대던 호스가 망가졌다”며 “고쳐놓고 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기상청에 따르면 6월 15일 기준 전국 누적강수량은 286.7mm로 평년(348.4mm) 대비 82% 수준이었다. 서울, 경기 등 중부지역은 누적강수량(161.5mm)이 평년(295.2mm)의 55%에 그쳤다. 기상청은 올해 초 수문기상과 가뭄업무를 전담하는 방재기상팀을 신설하고 가뭄 관련 연구개발과 유관기관의 협력 추진, 기상청·한국수자원공사가 공동 설립한 수문기상협력센터를 통한 가뭄 업무 협력 등에 주력하고 있다. 기상청 관계자는 “가뭄은 시작과 끝을 알기 어렵다 보니 원인이나 전망에 대해서도 파악이 어려운 분야”라면서 “장마가 와야 해갈이 될 텐데, 장마 시기는 6월 말에서 늦으면 7월 초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사이 비는 간간히 오겠지만, 6월 25일까지는 장마전선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부는 대책 마련을 고심하고 있다. 국토교통부(국토부)는 수자원정책국장을 실장으로 하는 용수수급상황실을 운영 중이다. 국토부와 한국수자원공사는 6월 11일부터 화천·의암·춘천댐 등 한강수계 발전댐들이 발전을 위해 내보내는 물을 하류 용수공급에 활용해 다목적댐의 용수공급 부담을 더는 ‘비상 댐 연계운영’도 시작했다. 지난해 7월부터 가뭄대책본부를 운영 중인 한국수자원공사는 지방자치단체(지자체)로부터 요청받아 경기·강원 등 가뭄지역 16개 시·군에 2014년 12월부터 현재까지 병물 9만4000병과 급수차량 2192㎥의 용수를 긴급 지원했다.
농식품부는 6월 12일 가뭄대책상황실을 가뭄·수급대책상황실로 확대하고 상황실장도 국장에서 차관으로 격상한 데 이어 14일 여인홍 차관 주재로 긴급 가뭄·수급 안정 회의를 열고 가뭄 장기화에 대비한 총력 지원체계로 전환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매일 지자체를 통해 상황을 파악하고 있다. 현재 가뭄이 심각한 지역은 인천 강화, 옹진, 경기 파주, 여주, 이천, 강원 영동지방과 경북 동해안 등으로 강원지역 작물은 고온 때문에 시드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전국적으로는 3880ha에 시듦 현상이 나타나고, 논물마름 현상은 2700ha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런 지역들에 농식품부 예산 62억 원을 지원했고, 28개 시·군에서 270억 원을 투입한 상태다. 매일 급수차와 양수기를 동원해 공무원, 군인, 주민 등 1만8000여 명이 급수에 도움을 주고 있다”며 “기획재정부, 국민안전처와 적극적으로 협력해 가뭄을 이겨나갈 대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가뭄 가고 태풍 온다?
이동필 농식품부 장관은 10월까지 가뭄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중·장기 종합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국무총리가 공석일 당시 최경환 국무총리 직무대행 겸 경제부총리는 6월 17일 열린 제12차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가뭄 피해를 고려한 경기보완책을 이달 내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문제는 가뭄이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올해는 장마마저 늦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데, 마른장마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지난해에는 장마가 22년 만에 7월에 시작하면서 댐과 저수지가 바닥을 드러냈고, 강원도의 대표적인 축제인 인제빙어축제는 물이 말라 사상 처음으로 행사를 취소해야 했다.
반기성 케이웨더 예보센터장은 극심한 가뭄의 원인으로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온 상승과 엘니뇨현상을 들었다. “지난해 8월부터 가물었는데 그런 현상이 2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다. 지난해 엘니뇨현상 탓에 장마가 늦고, 장마 기간에도 비가 많이 오지 않았다. 북태평양 고기압의 힘이 약해 장마전선을 한반도로 밀어 올려주지 못했고, 건조하면서 뜨거운 동서 고기압세력이 버티고 있다 보니 5월에 이례적인 폭염이 있었다. 7월 상순까지는 가물 것으로 본다. 중부는 평년 정도, 남부는 비가 많이 오고, 경기 북부는 비가 적겠다. 지난해처럼 마른장마는 아닐 것”이라고 예측했다.
당장 하루하루 속이 바짝 마르는 농민과 달리 도시에서는 가뭄의 심각성을 직접적으로 느끼기 어렵다. 반 센터장은 “농업과 축산업은 피해가 극심하다. 벌써 배추 같은 농작물 가격이 2배로 폭등했고, 쌀이나 과일도 마찬가지가 될 것이다. 닭이나 돼지 폐사율까지 높아지면 전반적인 식자재 가격이 훌쩍 뛸 가능성이 있다. 또한 한강수계가 감소하면 적조와 녹조가 발생해 도시민 생활에도 당장 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말했다.
태풍 소식도 한 달 넘게 잠잠해 불안함을 더한다. 가뭄 피해를 겨우 수습한 뒤에도 ‘슈퍼 태풍’이 한반도를 강타하면 피해가 클 것이라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강남영 기상청 국가태풍센터 박사는 “엘니뇨현상이 있을 때 태풍이 많이 발생하고 강한 태풍이 생기는 건 맞지만, 우리나라로 오는 태풍이 많아진다는 뜻은 아니다. 태풍에는 양면성이 있다. 강수량의 3분의 1이 태풍에서 비롯되기에 직접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면 태풍이 오는 것 자체를 걱정할 필요는 없다. 올해 현재까지 태풍이 7번 발생했는데, 하반기에도 평년 수준의 태풍이 발생할 것으로 본다. 6월부터 태풍이 쉬고 있는데, 에너지를 축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우리나라에 영향을 미치지 않더라도 조만간 태풍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 농촌이라면 농작물 재해 보험에 가입하는 것이 대비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상청 국가태풍센터는 5월 1일부터 예보 서비스를 태풍 외에도 태풍의 사전 및 사후 단계인 열대저압부(Tropical Depression·TD)까지 확대해 사전에 조치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도록 한 상태다.
물 절약만으론 대비 역부족
한국이 점차 고온다습한 아열대성 기후로 가면 장기적으로 폭염 피해도 예상된다. 국립재난안전연구원 안전연구실의 김도우, 정재학, 이종설 연구원은 지난해 열린 기후변화연구 학술대회에서 기상청의 기후변화 시나리오와 통계청의 장래인구 추계자료를 적용해 2050년대 우리나라의 폭염(하루 최고 기온이 33도 이상인 날) 연속일수와 인명 피해 발생 건수를 추정했다. 이들은 7~8월 일사병이나 열사병 등 온열질환으로 숨진 경우를 폭염 사망자로 정의했다. 이에 따르면 온실가스가 감축되지 않고 계속 늘어날 경우 2051~2060년 폭염 사망자 수는 연평균 134명으로, 2001~2010년(20명)보다 6.8배 증가할 것으로 예상됐다. 2051~2060년 최고기온 33도 이상인 날이 연속적으로 발생하는 날(폭염 연속일수)은 연평균 10일로 나타났는데, 이는 2001~2010년(4일)보다 2.5배 증가한 수치다. 연구는 폭염 연속일수가 폭염으로 인한 사망과 크게 연관이 있다고 분석했다.
기후 전문가들은 미래 엘니뇨현상뿐 아니라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상이변과 이상기후에 대해 장기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반 센터장은 “장기적으로 국내 가용 수자원 상태를 파악하고 인공강우 기술을 개발하는 등 여러 조치를 생각해볼 수 있겠지만, 당장 2~3주 내에도 비가 오지 않으면 제한급수를 하거나, 식수 공급을 하는 등 대책을 세우는 게 시급하다. 이미 우리는 물 부족 국가다. 가뭄에 대비해 소형 댐을 많이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가뭄이 올해 한 해로 끝나지 않고 장기화할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장기간 가뭄 주기를 분석해온 변희룡 부경대 환경대기과학과 교수는 “가뭄은 통계치를 갖고 주기를 따지는데, 한 해짜리 가뭄은 임시 조치만 하고 넘길 수 있겠지만 2년 연속 가물기 시작하면 피해가 막심해진다. 올해는 가뭄 주기로 따지면 38년 주기에 걸리는데, 38년 주기 가뭄은 3년간 가물기 때문에 상당히 위험한 상황”이라고 말했다(상자기사 참조). 그는 “최소한 가뭄이 발생할 기미가 보이면 특보를 내고, 가뭄 강도를 정부에서 계량화하는 것을 추진해야 한다. 보와 댐을 많이 짓고, 소양강댐같이 큰 댐이 어렵다면 작은 댐을 산골짜기에 만들어 용수를 확보해야 한다. 단순히 국민이 물을 아껴 쓰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물차를 보내고 생수를 보내는 단기적인 대책에 그치지 말고, 가뭄 정책 연구도 체계적으로 진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많은 전문가가 공통적으로 저수지 및 댐 건설을 주장하지만 당장 시행은 요원해 보인다. 예산 문제만은 아니다. 지난 정부에서 22조 원을 들여 4대강 사업을 하면서 16개 보를 건설할 때 명분은 유량을 확보해 생태계를 복원하고 ‘홍수나 가뭄에 대비하자’는 것이었으나, 보의 물이 가뭄지역까지 내려갈 수 있는 수로가 갖춰져 있지 않아 현재 확보한 11억7000t가량의 물을 가뭄지역에서 활용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은 6월 17일 브리핑을 내고 “정부는 실패한 4대강 사업을 답습하는 국가하천계획 수립을 중단하고 근본적인 가뭄 문제 해결에 집중해야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