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각지 농촌들에서 100년래의 왕가물(가뭄)로 심한 피해를 받고 있다. 종합된 자료에 의하면 8일 현재 전국적으로 44만1560여 정보의 모내기한 논에서 13만6200여 정보의 벼모들이 말라가고 있다.’(조선중앙통신 6월 16일자 ‘조선의 농촌 심한 가물피해’ 기사 중에서)
가뭄 피해는 휴전선을 따지지 않는다. 특히 관개수로 등 인프라가 취약하고 농업에 경제 활동의 상당 부분을 의존하는 북한의 피해는 상상 이상이다. ‘노동신문’ 등 북한 관영언론에 따르면 본격 파종 시기인 1~5월 평균 강수량은 135.4mm로 평년(182.6mm)의 74.2%에 그쳤고, 감자와 고구마 등 식량작물 파종이 시작되는 3월 강수량은 7.7mm로 평년 26.2mm의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했다. 북한 언론에서 가뭄 피해 최소화를 위한 주민 활동을 독려하는 기사가 연일 등장하는 이유다.
북측 공식자료에 따르면 가뭄 피해가 가장 극심한 지역은 곡창지대로 알려진 황해도와 평안남도, 함경남도다. 황해도 남부지방의 경우 모내기를 실시한 논의 80% 가까이, 황해도 북부에서는 57%가 말라붙어가고 있다는 것. 5월 들어 다른 지역에서는 부분적으로 비가 내렸지만, 유독 이 지역에서는 강수량이 극히 미미했던 탓이다. 이 때문에 저수지 수위가 연일 최저치를 경신하는가 하면, 벼뿐 아니라 강냉이(옥수수) 등 다른 작물 역시 피해를 입고 있다는 게 우리 기상청에 해당하는 북한 기상수문국의 조사 결과다.
이어지는 연쇄효과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당장 올해 북한 식량 사정이 심각한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분석이 줄을 잇고 있다. 6월 10일 방한한 데이비드 카트루드 유엔세계식량계획(WFP) 아시아지역본부장은 “농번기 가뭄으로 북한의 식량 상황이 심각해지면 재난 상황에 맞춰 식량지원을 늘릴 수 있다”고 밝혔다. 6월 9일 통일부는 가뭄이 7월 초까지 지속될 경우 예년에 비해 식량생산량이 15~20% 감소할 것이라는 예상을 내놓기도 했다.
가장 심각한 부분은 가뭄이 지난해부터 장기간 지속되고 있다는 사실. 통일부에 따르면 북한 지역의 2014년 강수량은 평년(1981~2010년 평균)의 61%에 불과했다. 당시 봄 가뭄은 저수지 저장용수 등을 활용해 그럭저럭 ‘선방’했지만, 용수가 대부분 고갈된 올해는 직접적인 피해를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는 것이다. 북한 농업 전문가인 권태진 GS&J 인스티튜트 북한동북아연구원장은 “올해 가뭄이 2모작 파종기에 집중되는 바람에 피해가 한결 심각해졌다”면서 “가을 수확기까지 미리 예상하긴 어렵지만, 식량생산량 15% 이상 감소라는 예상을 무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가뭄이 북한 경제에 몰고 올 타격은 농업에 그치지 않는다. 수력발전에 전체 발전량의 3분의 2를 의존하는 전력생산구조 때문에 가뭄이 에너지 사정 악화로 직결되는 것. 지난해 이후 각 지방이 부족한 전력으로 고초를 겪는 것은 물론이고, 평양에서도 중심지를 제외한 대부분 지역에서 수일간 정전이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는 외신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북한 경제당국은 전력 부족 사태를 만회하기 위해 석탄채굴을 쉼 없이 독려 중이다. 김정은 조선노동당 제1비서의 관련 지역 현지시찰도 눈에 띄게 늘었다.
본래 석탄은 전통적인 북한의 대중(對中) 수출품목. 전체 수출액의 40%를 무연탄이 차지할 정도로 압도적인 비율이었다. 그러나 이어지는 가뭄으로 화력발전소의 석탄 수요가 급증하면서 수출량이 확연히 줄고 있다. 중국 해관총서(우리의 세관)의 수출통계에 따르면 2014년 한 해 북한이 중국에 수출한 무연탄 규모는 1543만t으로 2013년보다 6.4% 감소했다. 여기에 국제시장에서의 석탄 가격 하락이 겹치면서, 금액으로 따지면 감소치는 17.6%에 달한다. 2억4000만 달러(약 2669억 원) 이상, 북한이 한 해 전 세계에 내다파는 수출액의 7% 넘는 돈이 허공으로 사라졌다는 뜻이다. 경제수지 악화와 외화 부족은 불을 보듯 뻔하다.
‘고난의 행군’ 그 후 20년
문제는 올해 들어 이러한 추세가 한층 심해졌다는 사실이다. 3월 이후 한 달간 사실상 석탄 수출이 중단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는가 하면, 이어지는 채굴 독려로 주요 탄광의 경제성이 형편없이 떨어지면서 아예 생산량 자체가 줄었다는 분석도 이어지고 있다. 수십 년간 닫아뒀던 소규모 갱도를 다시 열어 채굴에 나설 정도로 상황이 안 좋다는 것. 여기에 부족한 수력발전을 대체하려고 무리하게 가동했던 청진화력발전소 등이 한계에 이르면서 가동이 중단됐다는 게 해외 전문매체들의 북한발(發) 보도다. 청진화력발전소는 북한의 대표적 산업시설인 김책제철소에 전력을 공급하는 곳이다.
북한 경제가 타격을 입으면서 주민들에 대한 당국의 통제력 역시 급속도로 위축될 개연성이 크다. 김정은 체제 출범 이후 평양 당국이 주민들의 상업 활동 등 사(私)경제를 묵인하면서 북한 전역에 ‘개인 비즈니스’가 급속도로 확산하고 있음은 잘 알려진 사실. 6월 9일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은 함경북도의 소식통을 인용해 ‘학생들과 군인들까지 총동원된 협동농장 농작물은 날이 갈수록 말라가고 있지만 개인이 운영하는 ‘뙈기밭’은 가뭄이 무색하게 싱싱함을 유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1990년대 중반 대기근 사태를 겪으며 주민들이 체득한 ‘알아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교훈이 한층 강화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흐름이 장기적으로 김정은 체제를 불안정하게 만들 것이라는 데는 전문가 사이에 이견을 찾기 어렵다. 한 관계부처 고위 당국자는 “이른바 ‘고난의 행군’ 시기에 굶주림을 겪으며 성장기를 보낸 세대가 상당히 체제 비판적인 성향을 보인다는 사실이 여러 경로로 확인된다”면서 “이들이 20, 30대 주력 생산 활동 인구가 된 지금, 가뭄 피해가 당시에 버금가는 경제 실패로 이어질 경우 김정은 체제가 과연 버텨낼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체제에 대한 충성심이 아니라 부(富)에 대한 갈증이 온 나라를 뒤덮은 최근 북한의 분위기가 한층 강화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가뭄 피해는 휴전선을 따지지 않는다. 특히 관개수로 등 인프라가 취약하고 농업에 경제 활동의 상당 부분을 의존하는 북한의 피해는 상상 이상이다. ‘노동신문’ 등 북한 관영언론에 따르면 본격 파종 시기인 1~5월 평균 강수량은 135.4mm로 평년(182.6mm)의 74.2%에 그쳤고, 감자와 고구마 등 식량작물 파종이 시작되는 3월 강수량은 7.7mm로 평년 26.2mm의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했다. 북한 언론에서 가뭄 피해 최소화를 위한 주민 활동을 독려하는 기사가 연일 등장하는 이유다.
북측 공식자료에 따르면 가뭄 피해가 가장 극심한 지역은 곡창지대로 알려진 황해도와 평안남도, 함경남도다. 황해도 남부지방의 경우 모내기를 실시한 논의 80% 가까이, 황해도 북부에서는 57%가 말라붙어가고 있다는 것. 5월 들어 다른 지역에서는 부분적으로 비가 내렸지만, 유독 이 지역에서는 강수량이 극히 미미했던 탓이다. 이 때문에 저수지 수위가 연일 최저치를 경신하는가 하면, 벼뿐 아니라 강냉이(옥수수) 등 다른 작물 역시 피해를 입고 있다는 게 우리 기상청에 해당하는 북한 기상수문국의 조사 결과다.
이어지는 연쇄효과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당장 올해 북한 식량 사정이 심각한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분석이 줄을 잇고 있다. 6월 10일 방한한 데이비드 카트루드 유엔세계식량계획(WFP) 아시아지역본부장은 “농번기 가뭄으로 북한의 식량 상황이 심각해지면 재난 상황에 맞춰 식량지원을 늘릴 수 있다”고 밝혔다. 6월 9일 통일부는 가뭄이 7월 초까지 지속될 경우 예년에 비해 식량생산량이 15~20% 감소할 것이라는 예상을 내놓기도 했다.
가장 심각한 부분은 가뭄이 지난해부터 장기간 지속되고 있다는 사실. 통일부에 따르면 북한 지역의 2014년 강수량은 평년(1981~2010년 평균)의 61%에 불과했다. 당시 봄 가뭄은 저수지 저장용수 등을 활용해 그럭저럭 ‘선방’했지만, 용수가 대부분 고갈된 올해는 직접적인 피해를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는 것이다. 북한 농업 전문가인 권태진 GS&J 인스티튜트 북한동북아연구원장은 “올해 가뭄이 2모작 파종기에 집중되는 바람에 피해가 한결 심각해졌다”면서 “가을 수확기까지 미리 예상하긴 어렵지만, 식량생산량 15% 이상 감소라는 예상을 무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가뭄이 북한 경제에 몰고 올 타격은 농업에 그치지 않는다. 수력발전에 전체 발전량의 3분의 2를 의존하는 전력생산구조 때문에 가뭄이 에너지 사정 악화로 직결되는 것. 지난해 이후 각 지방이 부족한 전력으로 고초를 겪는 것은 물론이고, 평양에서도 중심지를 제외한 대부분 지역에서 수일간 정전이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는 외신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북한 경제당국은 전력 부족 사태를 만회하기 위해 석탄채굴을 쉼 없이 독려 중이다. 김정은 조선노동당 제1비서의 관련 지역 현지시찰도 눈에 띄게 늘었다.
본래 석탄은 전통적인 북한의 대중(對中) 수출품목. 전체 수출액의 40%를 무연탄이 차지할 정도로 압도적인 비율이었다. 그러나 이어지는 가뭄으로 화력발전소의 석탄 수요가 급증하면서 수출량이 확연히 줄고 있다. 중국 해관총서(우리의 세관)의 수출통계에 따르면 2014년 한 해 북한이 중국에 수출한 무연탄 규모는 1543만t으로 2013년보다 6.4% 감소했다. 여기에 국제시장에서의 석탄 가격 하락이 겹치면서, 금액으로 따지면 감소치는 17.6%에 달한다. 2억4000만 달러(약 2669억 원) 이상, 북한이 한 해 전 세계에 내다파는 수출액의 7% 넘는 돈이 허공으로 사라졌다는 뜻이다. 경제수지 악화와 외화 부족은 불을 보듯 뻔하다.
‘고난의 행군’ 그 후 20년
문제는 올해 들어 이러한 추세가 한층 심해졌다는 사실이다. 3월 이후 한 달간 사실상 석탄 수출이 중단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는가 하면, 이어지는 채굴 독려로 주요 탄광의 경제성이 형편없이 떨어지면서 아예 생산량 자체가 줄었다는 분석도 이어지고 있다. 수십 년간 닫아뒀던 소규모 갱도를 다시 열어 채굴에 나설 정도로 상황이 안 좋다는 것. 여기에 부족한 수력발전을 대체하려고 무리하게 가동했던 청진화력발전소 등이 한계에 이르면서 가동이 중단됐다는 게 해외 전문매체들의 북한발(發) 보도다. 청진화력발전소는 북한의 대표적 산업시설인 김책제철소에 전력을 공급하는 곳이다.
북한 경제가 타격을 입으면서 주민들에 대한 당국의 통제력 역시 급속도로 위축될 개연성이 크다. 김정은 체제 출범 이후 평양 당국이 주민들의 상업 활동 등 사(私)경제를 묵인하면서 북한 전역에 ‘개인 비즈니스’가 급속도로 확산하고 있음은 잘 알려진 사실. 6월 9일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은 함경북도의 소식통을 인용해 ‘학생들과 군인들까지 총동원된 협동농장 농작물은 날이 갈수록 말라가고 있지만 개인이 운영하는 ‘뙈기밭’은 가뭄이 무색하게 싱싱함을 유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1990년대 중반 대기근 사태를 겪으며 주민들이 체득한 ‘알아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교훈이 한층 강화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흐름이 장기적으로 김정은 체제를 불안정하게 만들 것이라는 데는 전문가 사이에 이견을 찾기 어렵다. 한 관계부처 고위 당국자는 “이른바 ‘고난의 행군’ 시기에 굶주림을 겪으며 성장기를 보낸 세대가 상당히 체제 비판적인 성향을 보인다는 사실이 여러 경로로 확인된다”면서 “이들이 20, 30대 주력 생산 활동 인구가 된 지금, 가뭄 피해가 당시에 버금가는 경제 실패로 이어질 경우 김정은 체제가 과연 버텨낼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체제에 대한 충성심이 아니라 부(富)에 대한 갈증이 온 나라를 뒤덮은 최근 북한의 분위기가 한층 강화될 것이라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