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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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이 라마 후계자 중국 입김

2인자 바꿔치기한 베이징, ‘꼭두각시 지명’ 개연성 높아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입력2015-06-22 11: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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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 14세가 후계자 선정 문제를 놓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티베트 불교(라마교)의 전통을 따를 수도 없고, 새로운 후계자 선정 방법도 마땅치 않기 때문. 달라이 라마는 티베트 불교의 수장이자 최고통치자인 법왕을 일컫는 호칭이다. 티베트 주민들은 역대 달라이 라마를 대자대비 마음으로 중생을 구제하고 제도하는 관세음보살의 화신이라고 믿어왔다.

    달라이 라마는 ‘환생(還生)’ 제도라는 특이한 방식으로 선정된다. 티베트 불교에선 달라이 라마가 입적하면 다시 환생한다고 믿기 때문에 환생한 달라이 라마가 후계자로 결정된다. 달라이 라마가 열반하기 전 다시 태어날 지역을 유언하면, 달라이 라마가 죽고 10개월이 지난 뒤부터 49일 이내에 해당 지역에서 태어난 어린이 가운데 새 달라이 라마를 선정한다. 이 같은 전통은 초대 달라이 라마(1391~1474)부터 지금까지 계속돼왔다. 현 달라이 라마 14세도 1935년 달라이 라마 13세의 환생자로 인정받았다.

    중국에 충성 맹세한 판첸 라마

    그러나 달라이 라마 14세는 환생제도를 폐지하고 자신이 죽기 전 후계자를 선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달라이 라마 14세는 가톨릭의 교황 선출처럼 차기 달라이 라마를 티베트 불교 성직자들의 비밀투표로 뽑는 방식도 가능하다고 밝혔다. 심지어 여성도 후계자가 될 수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달라이 라마 14세가 전통을 깨고 후계자 선정 방법을 놓고 고심하는 이유는 중국 정부가 임명한 티베트 불교 2인자인 판첸 라마 때문이다. 판첸 라마는 어린 달라이 라마를 훈육해 최고지도자가 될 때까지 스승으로서 권한대행을 하는 직책이다. 아미타불의 화신이라 불리는 판첸 라마 역시 환생제도에 따라 결정된다.



    달라이 라마 14세는 전통에 따라 환생한 판첸 라마를 찾아다닌 끝에 1995년 5월 14일 당시 여섯 살이던 겐둔 치아키 니마를 판첸 라마로 선정했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이를 무시하고 겐둔 치아키 니마를 비밀리에 연금한 뒤 기알첸 노르부라는 소년을 판첸 라마로 결정했다. 현재 겐둔 치아키 니마의 소재는 물론 생사조차 알 수 없다. 달라이 라마 14세는 중국 정부가 차기 달라이 라마를 똑같은 방법으로 바꿔치기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그가 입적하면 기알첸 노르부는 판첸 라마로서 후계자 선정을 좌지우지할 수 있고, 티베트를 통치할 수도 있다. 기알첸 노르부는 현재 중국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부주석이다.

    7월 6일 80세 생일을 맞는 달라이 라마 14세로서는 후계자 선출 문제를 정리하지 않을 경우 자칫 중국 정부가 내세운 꼭두각시가 차기 달라이 라마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차기 달라이 라마는 티베트 독립 문제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 반면 중국 정부는 달라이 라마 14세가 환생제도를 존중해야 한다면서 환생제도 폐지는 티베트 불교의 전통을 모독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간 티베트 불교의 전통과 관습을 파괴해온 중국 정부가 이러한 주장을 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라는 게 중론이다.

    중국 정부 속셈은 차기 달라이 라마를 자국 뜻대로 정함으로써 향후 티베트 독립의 불씨를 없애겠다는 것. 양측이 이 문제를 두고 팽팽하게 맞서는 가운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6월 10일 기알첸 노르부를 접견하고 티베트 불교와 사회주의 사회가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해달라고 당부했다. 시 주석이 기알첸 노르부를 만난 데는 차기 달라이 라마 선정이 중국 정부 손에 있음을 강조하는 동시에 인도 다람살라에 있는 티베트 망명정부가 최근 벌이는 겐둔 치아키 니마 석방 운동에 찬물을 끼얹으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기알첸 노르부는 시 주석에게 ‘하다’(哈達:경의를 표시하는 하얀색 긴 비단 스카프)를 건네며 “조국통일과 민족단결을 굳건하게 수호하겠다”고 충성을 맹세했다.

    유례없는 비폭력 저항

    중국 정부는 1951년 군대를 동원해 티베트를 강제 병합했고 이후 티베트 주민들의 분리독립운동을 무자비하게 탄압해왔다. 중국 정부는 최근 ‘리틀 티베트’로 불리는 간쑤성, 쓰촨성, 칭하이성의 티베트족 집단거주 지역에서 달라이 라마 14세의 생일 축하 행사 등 군중집회를 일절 금한 바 있다. 군경 무장병력을 대규모로 증원해 주요 도로, 불교 사원, 민간 주택들을 대상으로 철저한 감시도 펴고 있다.

    티베트 승려와 주민들은 중국 정부의 탄압이 갈수록 심해지자 자신의 몸을 스스로 불태우는 분신(焚身)으로 맞서고 있다. 2009년 2월부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티베트 분신 자살자는 모두 141명. 반면 분신한 사람 가운데 불이 붙은 상태에서 중국인에게 위해를 가하거나 중국 정부 시설물을 파괴하려는 시도는 한 차례도 없었다. 오로지 자신만을 희생해 티베트의 자유와 독립을 염원하며 쓰러진 셈이다. 세계 정치사에서 유례가 없는 비폭력 저항운동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달라이 라마 14세는 추가 희생을 막기 위해 중국 정부에 고도의 자치를 허용해줄 것을 요구해왔지만, 중국 정부는 최근 발간한 백서에서 이를 강력히 비난하고 나섰다. ‘고도의 자치는 중국 속의 중국을 만들려는 음모’이며 ‘달라이 라마 14세의 요구는 중국 헌법과 국가제도를 완전히 위반한 것’이라는 반박이다. 중국 정부는 추후 달라이 라마 14세가 사망할 경우 티베트의 독립 요구가 크게 줄어들 것으로 보지만, 티베트 승려와 주민들의 저항이 중단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로브상 상계 티베트 망명정부 총리는 “티베트에 대한 중국의 철권통치는 북한 독재정권과 다를 바 없다”면서 “티베트 독립을 위해 계속 투쟁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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