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 샘 벨(사진·샘 록웰 분)은 달 표면 채굴기지에서 홀로 3년간 일한다. 그러다 또 다른 ‘나’를 만난다.
영화를 보는 한국 관객들은 아마 또 다른 신기한 경험을 할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달 기지의 이름이 ‘사랑’이고, “안녕하세요”라는 한국말도 들린다. 던컨 존스 감독은 ‘올드보이’를 만든 박찬욱 감독을 매우 존경하며, 한국이야말로 미래에 미국과 합작회사를 차릴 수 있는 강대국이 될 것이라 믿기에 달 기지 곳곳에 한국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그런데 던컨 존스 감독은 아이러니하게도 존경하는 박 감독의 후속작 ‘박쥐’를 제치고 올해 시체스 영화제에서 ‘더 문’으로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그만큼 ‘더 문’은 데뷔작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탄탄한 구성을 자랑한다.
달 표면의 채굴 기지에 홀로 3년간 근무 중인 주인공 샘 벨(샘 록웰 분)은 통신위성 고장으로 지구와 실시간 통신이 단절된 채 컴퓨터 거티(케빈 스페이시 분)와 일하고 있다. 3년의 긴 근무를 끝내고 2주 후 귀환해 가족을 만날 희망에 부푼 샘. 그러나 샘은 어느 날 기지에서 신비로운 한 여인을 환영처럼 보는가 하면, 기지 밖에서도 미스터리한 존재를 만나면서 자신 역시 회사가 만들어낸 클론이라는 충격적인 비밀을 알게 된다. 그리고 자신과 똑같이 생기고 이름도 같은 또 다른 클론과 우연히 만나게 된다.
영화를 보다 보면 ‘블레이드 러너’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A. I’ 같은 SF 영화가 저절로 떠오른다. 특히 샘을 돕는 컴퓨터 거티는 케빈 스페이시가 목소리만으로 출연하는데, 그 모양새가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컴퓨터 할과 매우 유사하다(거티는 실상 인간을 위로할 줄 모른다. 그저 샘이 외롭거나 힘들어 보일 때면 “배고프냐? 먹을 것 좀 줄까?”라고 물어보기만 한다).
그러나 ‘더 문’은 이러한 SF 장르의 관성에 그대로 빠지지 않는다. 예를 들면 거티는 비록 컴퓨터지만 선한 존재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할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또한 일일이 미니어처 촬영을 한 달의 표면은 1970~80년대 SF 영화를 보는 듯한 아날로그 시대의 시각적 쾌감을 선사한다. 500만 달러라는 저예산으로 영화를 완성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무엇보다 던컨 존스 감독이 창조한 샘은 ‘스타 트렉’이 보여주는 스마트한 우주비행사의 이미지나 우주 괴물과 싸우는 ‘에일리언’의 전사적 이미지를 모두 벗어버렸다. 혼자 달 기지에서 늘 같은 음식을 데워먹고, 이야기할 존재라고는 목소리와 이모티콘만을 가진 컴퓨터 한 대가 전부인 이 사내는 철저히 블루칼라 노동자의 느낌이 배어난다. 아내와 아이가 컴퓨터 저 너머에서 ‘아빠는 우주비행사’라고 웃고 있지만, 그 말이 왠지 공허하게 들린다.
던컨 존스 감독은 인간의 문명이 존재하는 한, 그것이 우주나 달일지라도 우리가 만들어내는 일상의 공허함과 억압적 노동환경은 지속되리라는 묵시록적인 비전으로 달 착륙 40주년의 해를 환영한다.
두 샘은 처음에는 서로 자신이 오리지널이라고 싸우지만, 결국 협력해 스스로 정체성의 미스터리를 찾아가게 된다. 즉 인간의 경쟁심보다 더 근본적인 동력은 외로움이라는 감독의 인간관, 다국적 기업이 만들어낸 실상은 토할 정도로 추악하지만 인간은 심지어 컴퓨터와도 연대할 수 있다는 감독의 전언에 한 표를 던진다.
쓸쓸한 아름다움이 깃든 영화 ‘더 문’(원제는 그냥 문). 그러므로 ‘플라이 투 더 문’은 가라. ‘2012’보다 2012배 나은 영화 ‘더 문’ 그 자체로 ‘자족’한 새로운 ‘달’이 우리 곁에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