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산 정상 부근의 철쭉 군락지에 만발한 눈꽃. 뒤편 구름바다 위로 함백산이 보인다.
승용차나 버스 대신 기차를 이용하면 가슴 졸이는 일 없이 비교적 빠르고 안전하게 눈 구경을 다녀올 수 있다. 특히 적설량이 많아 근사한 눈꽃과 겨울 태양을 감상할 수 있는 태백산은 겨울철 최고의 ‘기차 여행지’로 손꼽힌다.
강원도 태백땅은 조금 과장하면 ‘국토의 어버이’라 할 수 있다. 우리 땅의 양대 젖줄인 한강과 낙동강의 물길이 모두 이곳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창죽동 금대봉골에 있는 ‘검룡소(劍龍沼)’는 한강의 발원지이고, 황지동의 황지연못에서 솟아난 물은 낙동강의 첫 물길을 이룬다. 게다가 이 땅의 구석구석까지 실핏줄처럼 뻗어나간 산줄기들이 하나로 모이는 태백산도 이곳에 솟아 있다. 어머니처럼 자애로운 강줄기도 태백에서 시작되고, 아버지같이 듬직한 산줄기도 모두 태백땅으로 모여드는 셈이다.
백두대간 한복판에 좌정한 태백산은 우리 땅에서 가장 상서로운 해맞이 명산이다. 또한 예부터 겨레의 영산(靈山)으로 여겨진 태백산의 천제단에서는 ‘한배검(단군)’에게 올리는 제의가 한 해도 거르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태백산에 오르는 사람들에게선 순례자 같은 엄숙함과 비장감마저 엿보인다.
겨울 태백산은 온통 하얀 꽃밭이다. 산상의 모든 나무는 새하얀 눈꽃으로 피어나고, 산비탈의 울창한 숲은 눈부신 눈꽃 터널을 만든다. 발아래에도 순백의 정갈한 눈길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화사한 눈꽃은 어떤 봄꽃에도 뒤지지 않을 만큼 고혹적이다. 나뭇가지마다 핀 눈꽃을 보느라 관광객들의 눈과 볼은 발그레해진다.
여러 갈래인 태백산 등산코스 중 비교적 오르기가 쉽고 소요시간도 짧은 것은 유일사 코스다. 유일사 매표소에서 태백산 정상인 장군봉(해발 1567m)까지 약 4km 구간을 오르는 데 2시간가량 걸린다. 유일사가 자리한 중턱까지는 겨울 내내 빙판길로 변하는 찻길이 나 있어 길 잃을 염려도 없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정상 가까운 능선길에 올라서면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라는 주목나무 군락지가 장관을 연출한다. 사방으로 뻗은 산줄기가 장엄하고, 저마다 다른 톤의 실루엣으로 층첩한 산봉우리는 거친 평원을 질주하는 야생마들처럼 역동적이다. 태백산 해돋이는 바로 이 산맥과 산봉우리를 조연 삼아 펼치는 대자연의 드라마다. 그래서 더욱 장엄하고 화려하게 느껴진다.
태백산 능선길은 대체로 눈길이 다져져서 미끄러운 데다 바람이 매우 거센 편이다. 그러므로 미끄럼을 방지하는 아이젠과 바람을 차단하는 윈드재킷은 필수다. 기본 장비와 방한복을 제대로 갖췄다면 초등학교 고학년 어린이도 산행이 가능하다. 대신 산행시간을 여유 있게 잡고 초콜릿, 양갱, 초코파이 등 열량 높은 간식거리와 따뜻한 음료를 챙기는 것이 좋다.
인공조명이 화려한 태백 용연동굴 내부.
유일사 코스로 태백산에 올랐다면 하산 코스는 해마다 ‘태백산눈축제’의 주행사장이 들어서는 당골광장으로 잡는 게 좋다. 태백산 정상에서 망경사를 거쳐 당골광장까지 가는 데는 1시간30분에서 2시간가량 소요된다.
올해로 15회를 맞은 2008년 태백산눈축제는 1월25일부터 2월3일까지 열흘간 열린다. 축제기간 중에는 눈조각 경연대회, 가족썰매왕 경주대회, 얼음터널과 이글루카페 체험, 눈미끄럼틀 타기 등 다채로운 이벤트가 연일 계속돼 추위를 잊게 한다. 축제가 끝난 뒤에도 얼마 동안은 축제에 사용된 시설물이 정상 운영된다.
태백산에 올라 눈꽃과 해돋이를 구경하고 당골광장에서 눈미끄럼틀을 타고 석탄박물관을 둘러본 뒤에도 기차 출발시각에 대려면 넉넉하다. 태백 시내의 황지연못과 화전동의 용연동굴은 그런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둘러볼 만한 곳들이다.
태백 시내 한복판에 자리한 황지연못은 상지, 중지, 하지의 세 곳으로 이뤄져 있다. 이곳에서 하루 5000t가량 쉼없이 솟아오르는 샘물은 1300여 리나 굽이굽이 흐르는 낙동강의 첫 물길을 이룬다. 그리고 금대봉(1418m) 동북쪽의 깊숙한 골짜기에 있는 검룡소는 514km에 이르는 한강 물줄기가 처음 시작되는 곳이다.
1997년부터 개방된 용연동굴도 금대봉 동쪽 자락에 자리했다. 해발 920m 지점에 있어 전국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석회동굴로 유명하다.
하지만 2차 생성물 대부분이 사람들의 손길로 크게 훼손된 상태. 정식 개장 이전에 종유석과 석순 등을 채취해 팔았던 일부 주민과 수석 판매상들의 소행이라 전한다. 그래서 용연동굴을 한 바퀴 둘러본 뒤엔 아름다운 생명체의 주검을 목격한 것처럼 섬뜩한 느낌이 오래도록 사그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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