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동 깍개등에서 바라본 저동항의 야경. 맨 왼쪽 해안절벽 위에 행남등대가 자리한다.
섬의 한복판에 자리한 성인봉(984m)은 물론, 바닷가 절벽 꼭대기까지 울창한 숲에 뒤덮여 있는 점도 광활한 초원지대를 이루는 제주도와 뚜렷이 구별되는 풍경이다. 섬을 둘러싼 바다의 느낌도 독특하다. 뭍과 인접한 바다까지도 아득한 심연(深淵)처럼 검푸른 빛깔을 띤다. 그러면서도 간간이 드러나는 비췻빛, 에메랄드빛 바다는 제주도의 어느 바다보다 빛깔이 아름답다.
이처럼 독특한 풍광을 보여주는 울릉도는 사시사철 어느 때 가도 만족스런 여행지다. 그런데 이맘때쯤 만추에 일부러 울릉도를 찾는 것은 성인봉 자락의 만산홍엽과 행남등대(도동항로표지관리소) 가는 길의 샛노란 털머위꽃을 감상하기 위함이다.
사실 성인봉은 울릉도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울릉도가 성인봉이고, 성인봉이 곧 울릉도인 셈이다. 성인봉 산자락이 바다와 맞닿은 곳에 마을과 일주도로가 있고, 마을과 일주도로 옆의 산자락을 거슬러 오르면 어김없이 성인봉 정상에 다다른다.
이처럼 성인봉은 울릉도를 낳은 어머니요, 울릉도에 솟은 모든 산봉(山峰)들의 지존(至尊)이다. 그러니 멀고 험한 뱃길을 달려 울릉도까지 간 김에 성인봉 정상을 밟아보지 않을 수 없다. 성인봉에 오르지 않는 울릉도 여행은 반쪽짜리에 불과하다.
성인봉에 올라야 하는 이유는 또 있다. 우리나라의 유일한 ‘진짜’ 원시림이 그곳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육지에도 ‘마지막 원시림’ 또는 ‘처녀림’ 등의 수식어가 따라붙는 천연림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아름드리 나무가 울창한 숲에 대해 상투적으로 붙이는 헌사(獻辭)일 뿐이다. 실제로 태곳적부터 한 번도 훼손되지 않고 천연의 상태를 고스란히 간직한 숲은 성인봉뿐이다.
성인봉 원시림에는 활엽수가 빼곡히 들어차 있어 단풍 빛깔이 유난히 곱다. 대체로 10월 중순경 성인봉 정상부터 물들기 시작한 단풍은 11월 초까지도 울릉도 전역을 울긋불긋한 원색으로 치장한다. 그러나 올해는 예년보다 10일가량이나 단풍이 늦은 덕택에 11월 중순까지도 성인봉 자락의 단풍을 구경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11월6일 현재 해발 700m 이상의 등산로에서는 이미 단풍터널보다도 낙엽길의 운치가 더 돋보였지만, 해발 500m 내외 지역에서는 성인봉 원시림 특유의 현란한 단풍이 절정기를 누리고 있었다.
만추 여행지로 적격 … 대규모 털머위 군락도 장관
서면 구암마을의 해안도로에서 바라본 해넘이 광경. 해발 700m의 전망대에서 바라본 성인봉 원시림(아래).
산행 기점과 정상까지의 직선거리가 약 3km에 불과한 성인봉의 등산로는 경사가 몹시 가파르다. 웬만한 곳은 45도 이상이고, 평탄하다 싶은 곳도 30도를 넘기 일쑤다. 더욱이 몇십 m 앞도 볼 수 없을 정도로 짙은 안개가 순식간에 몰려오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등산로가 또렷하고 군데군데 이정표와 쉼터가 설치돼 있어 안전하게 산행을 즐길 수 있다. 게다가 성인봉과 나리분지 사이의 급경사 등산로에는 최근 튼튼하고 걷기 편한 나무계단이 설치돼 한결 수월하게 성인봉을 오르내릴 수 있다.
울릉도 해안지역의 산비탈과 숲 속을 화사한 꽃밭으로 탈바꿈시키는 털머위 군락도 성인봉 원시림지대의 오색단풍에 뒤지지 않을 장관이다. 10~11월에 샛노란 꽃이 피는 털머위는 울릉도뿐 아니라 제주도나 남해안의 섬 지역에도 자생한다. 하지만 수천 그루의 털머위가 군락을 이룬 광경은 울릉도 이외의 지역에는 흔치 않다. 울릉도 털머위 군락은 행남등대 가는 길에 만날 수 있다.
도동항에서 행남해안 산책로를 따라 30분쯤 걷다 보면 도동항과 저동항 사이의 돌출한 해안절벽 위에 자리잡은 행남등대에 이른다. 대규모의 털머위 군락은 등대 바로 앞의 해송숲에 형성돼 있다. 비탈진 숲을 뒤덮은 털머위 군락이 마치 봄날의 제주도 유채밭처럼 샛노랗다. 국화과 식물 특유의 진한 꽃향기가 코끝에 진동한다. 늦가을에 뜻하지 않게 만난 꽃밭이 꿈속의 풍경인 듯 몽환적이다. 동해 먼바다 화산섬에서의 때아닌 일장춘몽이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을 성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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