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세계 3대 지능형 로봇기술 강국 실현, 원천·핵심 신기술 10개 이상 확보, 세계 로봇시장 15% 점유, 지능형 로봇 총생산 30조원 및 수출 200억 달러 달성, 고용창출 10만명 효과.’
2003년 7월 참여정부가 향후 국민경제를 견인할 10대 차세대 성장동력산업 중 하나로 선정한 지능형 로봇산업의 장밋빛 청사진이다. 이 야심찬 비전을 가진 사업은 과연 정부 바람대로 순항할 수 있을까.
국가핵심전략산업 … 청와대서 ‘교통정리’
지능형 로봇산업은 미래 국가핵심전략산업(상자기사 참조). 그런데도 로봇산업에 대한 체계적 지원·육성의 대전제가 되는 ‘지능형 로봇 개발 및 보급 촉진법’(이하 로봇특별법) 제정 문제를 둘러싸고 관계부처 간 이견을 좁히지 못해 그동안 법 제정 자체가 표류하는 등 파행을 빚어왔다.
로봇특별법안은 8월 국회 산업자원위원회 서갑원 의원(대통합민주신당) 등 의원 16명이 발의한 것. 법안 내용 중 관계부처 간 핵심 쟁점이 된 사항은 △입법 자체의 필요성 여부 △로봇산업위원회 신설 △로봇펀드 등에 대한 정부 지원 △로봇랜드 조성지역 지정 △한국로봇산업진흥원 및 지능형 로봇 전문연구원 설립 등이다.
하지만 10월31일 청와대 경제정책수석 주재로 열린 쟁점조정회의에서 산업자원부(이하 산자부), 정보통신부(이하 정통부), 과학기술부(이하 과기부), 기획예산처(이하 예산처) 4개 관계부처가 원칙적으로 법 제정에 동의하는 한편, 그간의 이견에 대한 조율에 노력하기로 함으로써 법 제정은 일단 가닥이 잡힌 모양새다.
서 의원실 측은 “국회 일정에 차질만 빚어지지 않는다면 법안은 11월12일 국회 산자위에 상정되고, 다음 날 산자위 법안심사소위원회로 넘겨질 것이다. 이후 최종심사를 거치면 11월 말쯤 국회에서 통과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긍정적인 전망을 한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관계부처들이 법 제정엔 동의했지만 법안 내용의 세부 쟁점사항들에 대한 입장차가 여전히 팽팽하기 때문이다. 설령 법안이 17대 정기국회 회기 내에 통과된다 해도 향후 지능형 로봇산업의 행보가 순조로울지 또한 미지수다. 지금까지 로봇특별법 논의가 진행돼오는 동안 각 부처 사이에 불거진 갈등이 합일점을 찾지 못한 채 불씨로 남을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이는 청와대 경제정책수석 주재회의가 관계부처들의 자발적 의사에 의해 열렸다기보다는 힘 있는 상위기관의 ‘교통정리’ 성격이 짙은 데다, 이 회의로 ‘법 제정 반대’라는 산자부 이외 부처들의 기존 입장이 ‘법 제정’ 쪽으로 ‘급반전’할 수밖에 없었다는 정황과도 무관치 않다.
로봇특별법 제정을 둘러싼 갈등의 주역은 단연 주관부처인 산자부와 협조부처인 정통부. 정통부는 그동안 지능형 로봇산업에 대해 두 부처가 역할을 분담해 추진해왔는데도 8월 산자부가 서 의원이 대표발의한 법안을 전격적으로 들고 나온 것에 대해 입법 자체를 줄곧 반대해왔다. 법안의 주요 내용이 산자부 ‘입맛’대로만 채워져 있다는 게 정통부가 내세운 반대 이유다.
서 의원이 내놓은 법안엔 △산자부 장관 주관으로 관계중앙행정기관의 장(長)과 광역지방자치단체장의 의견을 수렴해 지능형 로봇 개발 및 보급 촉진을 위한 5개년 기본계획 수립 △5개년 기본계획 및 중복투자 조정, 로봇랜드 조성 등 중요 사항을 심의하기 위해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한 로봇산업위원회 설치 △로봇산업에 대한 민간투자 유도를 위해 지능형 로봇투자회의 설립 및 투자위험보증사업 실시, 자금차입과 조세지원의 근거 규정을 둘 것 등의 내용이 들어 있다. 더불어 △로봇수요 창출기반 마련을 위해 산자부 장관이 로봇랜드 조성지역 지정 △시장형성 초기단계인 로봇산업의 정책개발을 지원하고 산업진흥 및 시장창출을 위한 인프라 조성과 홍보사업을 행하는 로봇산업진흥원의 설립 조항도 두고 있다.
산자부가 로봇산업 총괄·조정 법적 근거
산자부가 로봇산업 관련법을 특별법 형태로 제정하려는 까닭은 국내 로봇산업이 시장형성 초기단계인 만큼 범국가적 차원에서 미래 유망산업으로 키우려면 개별 육성법 제정이 필수적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로봇특별법안은 산자부가 지능형 로봇산업을 총괄·조정·감독하는 데 긴요한 법적 근거가 되는 셈이다.
이 때문에 산자부 의도대로 법이 제정될 경우 정통부 담당 영역인 ‘정보기술(IT) 기반 지능형 서비스 로봇사업’이 로봇산업 주도권을 쥔 산자부에 의해 축소되거나 없어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정통부 내에 존재해왔다. 정통부는 로봇산업 육성을 위해 연내에 특별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고집해온 산자부와 달리 로봇 관련법은 현행 일반법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논리를 제시해왔다.
또한 로봇랜드 조성, 한국로봇산업진흥원 신설 등 예산 부담과 조직 신설 등을 내용으로 하는 법안을 다른 관계부처와 사전협의 없이 의원입법으로 추진하는 것에 절차적인 문제점까지 있다는 공세를 폈다. 정통부는 그 근거로 7월 국무회의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정부가 의원입법을 추진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입법예고 과정의 문제점 등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는데도 산자부가 이를 알면서도 의원입법을 추진했으며, 그 과정에서 관계부처에 통보하는 등 최소한의 협력조치조차 취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든다.
이와 관련, 정통부는 산자부가 부처이기주의에 빠져 독단적으로 법 제정을 강행하려 함으로써 관계부처 간 갈등을 증폭시킨다며 10월8일 법제처에 로봇특별법안에 대한 입법조정 신청까지 했다. 이에 대해 법제처는 같은 달 25일 관계부처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입법정책협의회를 열어 △입법의 필요성 인정 △관계부처 실무회의를 통한 주요 쟁점 조정(법리적인 조정 필요 시 입법정책협의회에서 재논의) △정부의 통일된 의견이 마련될 때까지 국회심사 보류 등을 결정했다. 앞서 언급한 청와대 경제정책수석 주재 회의도 이를 계기로 열리게 된 측면이 크다.
어쨌든 정통부는 청와대 경제정책수석 주재 회의 이후엔 특별법 제정이라는 기본 방향엔 동의한 상태. 하지만 법안의 연내 처리엔 여전히 미온적이다. 정통부 산업기술팀 관계자는 “정통부가 큰 틀에서 법 제정에 동의한 건 사실이지만, 산자부와 세부 쟁점에 대한 합의까지 이뤄진 건 아니다”며 “산자부가 법 제정에 반대했던 관계부처들의 의견을 취합한 뒤 법안을 최종 수정해 11월12일 국회 산자위 입법조사관실에 제출할 예정이라지만, 남은 시일이 촉박해 타 부처 의견을 모조리 조율하기가 힘들므로 연내에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기는 물리적으로 힘들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어찌 보면 로봇특별법안을 둘러싼 갈등은 산자부와 정통부의 ‘생존본능’과도 무관하지 않은 문제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과기부와 예산처 또한 촉각을 곤두세워온 사안. 예산처는 예산 부담이 된다는 이유로 한국로봇산업진흥원 신설에 반대해왔다. 예산처 산업정보재정과 관계자는 “진흥원 신설 문제는 아직 산자부와 협의 중인 상태라 뭐라 말하긴 어렵다”면서도 “관계부처들의 이견 조율 과정에서 또다시 마찰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과기부 역시 법안 내용 중 국무총리 산하에 로봇산업 정책을 총괄할 로봇산업위원회를 신설하는 것은 현재 대통령 산하 국가과학기술위원회와 차세대성장동력특별위원회 등 기존 총괄조직체계와 충돌한다며 반대해왔다.
관계부처들 사이에 특히 논란이 된 법안 내용은 로봇랜드 및 로봇펀드 조성 부분. 법안은 로봇전시관, 놀이기구, 경기장, 매장 등을 갖춘 산업연계형 테마파크 형태의 로봇랜드 유치를 희망하는 지방자치단체에 국유재산 무상 대여 등 특혜를 주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과거 대전엑스포과학공원 등 정부가 조성한 테마파크가 수익성 문제로 사후관리에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만큼 사업성도 불확실하고, 민간에서 추진해야 할 테마파크 사업에 특혜를 부여하면 형평성 문제를 불러일으킬 수 있으므로 정부가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게 산자부 이외 부처들의 견해다. 또한 로봇산업 육성에 사용될 국가 재원이 한정돼 있고, 로봇분야 국가 연구개발(R·D) 예산이 연간 800억원대에 그치는 상황에서 원천기술 개발 등에 비해 우선순위가 높지 않은 로봇랜드 사업에 최대 1조원의 정부 및 민간 자금을 투입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의구심을 표한다. 게다가 현재 국내에 상용화된 로봇이 두 종류뿐이어서 대규모 로봇랜드 조성을 위해선 외국산 제품 도입이 불가피하므로 국내 로봇산업 활성화를 꾀한다는 당초 취지가 무색해진다는 것이다.
로봇업계 “일단 반갑지만 후유증도 걱정”
법안에서는 또한 로봇기술 개발 등에 투자할 펀드 조성을 위해 투자보증 사업을 실시하도록 규정해 1000억원 수준의 민간자금 유치를 위해 투자보증 등에 정부가 430억원을 지원할 것이 예상되는데, 투자자 손실을 정부가 보전하는 것은 수익자부담원칙과 자유주의경제 기본원리에 반하며 타 사업과의 비례성 원칙에도 어긋난다는 것이 관계부처들이 내세운 반대 논리다.
그럼에도 산자부의 법안 처리 의지는 강하다. 산자부 로봇팀 관계자는 “일단 모든 관계부처가 입법 필요성엔 동의한 만큼 해당 부처들과 조속히 쟁점사항들을 조율해 연내 법안이 통과되게 총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관계부처 간 갈등으로 정부의 로봇육성정책 의지에 긴가민가했던 로봇업계는 법 제정 논의가 청와대 경제정책수석 주재 회의 직후 급물살을 타게 되자 우선은 반기면서도 한편으로는 우려하는 눈치다.
익명을 요구한 한 로봇업체 대표는 “로봇기업들은 당연히 로봇특별법 제정에 반대하지 않지만, 지금처럼 법 제정을 서두르다 보면 자칫 관계부처 간에 후유증이 남아 업계에 악영향을 끼치지나 않을까 걱정된다”며 “솔직히 법안 내용을 제대로 읽어본 로봇기업 대표들이 매우 드물다”고 전했다.
또 다른 업체 대표는 “아직 국내 로봇산업이 제대로 자리잡지 못한 만큼 법 제정에 거는 기대가 크다. 하지만 부처 간 중복투자 등은 피하는 방향으로 합리적인 이견 조율이 이뤄졌으면 한다”는 바람을 밝혔다.
현재로서는 로봇특별법이 연내에 제정될지 여부가 불투명하다. 일각에선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산자부와 정통부의 주도권 다툼 때문에 로봇산업에 대한 국가적 의지가 약화될 수 있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어쨌든 분명한 것 한 가지는 법 제정이 졸속으로 추진된다면 국내 로봇산업의 발전이 그만큼 더딜 것이라는 전망이다.
지능형 로봇 개발은 세계적으로도 초기단계다. 그만큼 로봇산업의 미래는 밝다. 그러나 이전투구(泥田鬪狗) 양상을 보여온 관계부처들의 첨예한 입장차를 우여곡절 끝에 미봉(彌縫)하는 무리수를 둔 로봇특별법안이 로봇산업 육성에 제대로 기여할지는 두고 볼 문제다.
2003년 7월 참여정부가 향후 국민경제를 견인할 10대 차세대 성장동력산업 중 하나로 선정한 지능형 로봇산업의 장밋빛 청사진이다. 이 야심찬 비전을 가진 사업은 과연 정부 바람대로 순항할 수 있을까.
국가핵심전략산업 … 청와대서 ‘교통정리’
지능형 로봇산업은 미래 국가핵심전략산업(상자기사 참조). 그런데도 로봇산업에 대한 체계적 지원·육성의 대전제가 되는 ‘지능형 로봇 개발 및 보급 촉진법’(이하 로봇특별법) 제정 문제를 둘러싸고 관계부처 간 이견을 좁히지 못해 그동안 법 제정 자체가 표류하는 등 파행을 빚어왔다.
로봇특별법안은 8월 국회 산업자원위원회 서갑원 의원(대통합민주신당) 등 의원 16명이 발의한 것. 법안 내용 중 관계부처 간 핵심 쟁점이 된 사항은 △입법 자체의 필요성 여부 △로봇산업위원회 신설 △로봇펀드 등에 대한 정부 지원 △로봇랜드 조성지역 지정 △한국로봇산업진흥원 및 지능형 로봇 전문연구원 설립 등이다.
하지만 10월31일 청와대 경제정책수석 주재로 열린 쟁점조정회의에서 산업자원부(이하 산자부), 정보통신부(이하 정통부), 과학기술부(이하 과기부), 기획예산처(이하 예산처) 4개 관계부처가 원칙적으로 법 제정에 동의하는 한편, 그간의 이견에 대한 조율에 노력하기로 함으로써 법 제정은 일단 가닥이 잡힌 모양새다.
서 의원실 측은 “국회 일정에 차질만 빚어지지 않는다면 법안은 11월12일 국회 산자위에 상정되고, 다음 날 산자위 법안심사소위원회로 넘겨질 것이다. 이후 최종심사를 거치면 11월 말쯤 국회에서 통과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긍정적인 전망을 한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관계부처들이 법 제정엔 동의했지만 법안 내용의 세부 쟁점사항들에 대한 입장차가 여전히 팽팽하기 때문이다. 설령 법안이 17대 정기국회 회기 내에 통과된다 해도 향후 지능형 로봇산업의 행보가 순조로울지 또한 미지수다. 지금까지 로봇특별법 논의가 진행돼오는 동안 각 부처 사이에 불거진 갈등이 합일점을 찾지 못한 채 불씨로 남을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이는 청와대 경제정책수석 주재회의가 관계부처들의 자발적 의사에 의해 열렸다기보다는 힘 있는 상위기관의 ‘교통정리’ 성격이 짙은 데다, 이 회의로 ‘법 제정 반대’라는 산자부 이외 부처들의 기존 입장이 ‘법 제정’ 쪽으로 ‘급반전’할 수밖에 없었다는 정황과도 무관치 않다.
정부는 2013년 세계 3대 지능형 로봇기술 강국 실현을 목표로 하고 있다.
서 의원이 내놓은 법안엔 △산자부 장관 주관으로 관계중앙행정기관의 장(長)과 광역지방자치단체장의 의견을 수렴해 지능형 로봇 개발 및 보급 촉진을 위한 5개년 기본계획 수립 △5개년 기본계획 및 중복투자 조정, 로봇랜드 조성 등 중요 사항을 심의하기 위해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한 로봇산업위원회 설치 △로봇산업에 대한 민간투자 유도를 위해 지능형 로봇투자회의 설립 및 투자위험보증사업 실시, 자금차입과 조세지원의 근거 규정을 둘 것 등의 내용이 들어 있다. 더불어 △로봇수요 창출기반 마련을 위해 산자부 장관이 로봇랜드 조성지역 지정 △시장형성 초기단계인 로봇산업의 정책개발을 지원하고 산업진흥 및 시장창출을 위한 인프라 조성과 홍보사업을 행하는 로봇산업진흥원의 설립 조항도 두고 있다.
산자부가 로봇산업 총괄·조정 법적 근거
국내 로봇제조 업체들이 6월 서울 코엑스에서 연 ‘로봇앤로봇’ 전시회.
이 때문에 산자부 의도대로 법이 제정될 경우 정통부 담당 영역인 ‘정보기술(IT) 기반 지능형 서비스 로봇사업’이 로봇산업 주도권을 쥔 산자부에 의해 축소되거나 없어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정통부 내에 존재해왔다. 정통부는 로봇산업 육성을 위해 연내에 특별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고집해온 산자부와 달리 로봇 관련법은 현행 일반법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논리를 제시해왔다.
또한 로봇랜드 조성, 한국로봇산업진흥원 신설 등 예산 부담과 조직 신설 등을 내용으로 하는 법안을 다른 관계부처와 사전협의 없이 의원입법으로 추진하는 것에 절차적인 문제점까지 있다는 공세를 폈다. 정통부는 그 근거로 7월 국무회의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정부가 의원입법을 추진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입법예고 과정의 문제점 등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는데도 산자부가 이를 알면서도 의원입법을 추진했으며, 그 과정에서 관계부처에 통보하는 등 최소한의 협력조치조차 취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든다.
이와 관련, 정통부는 산자부가 부처이기주의에 빠져 독단적으로 법 제정을 강행하려 함으로써 관계부처 간 갈등을 증폭시킨다며 10월8일 법제처에 로봇특별법안에 대한 입법조정 신청까지 했다. 이에 대해 법제처는 같은 달 25일 관계부처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입법정책협의회를 열어 △입법의 필요성 인정 △관계부처 실무회의를 통한 주요 쟁점 조정(법리적인 조정 필요 시 입법정책협의회에서 재논의) △정부의 통일된 의견이 마련될 때까지 국회심사 보류 등을 결정했다. 앞서 언급한 청와대 경제정책수석 주재 회의도 이를 계기로 열리게 된 측면이 크다.
어쨌든 정통부는 청와대 경제정책수석 주재 회의 이후엔 특별법 제정이라는 기본 방향엔 동의한 상태. 하지만 법안의 연내 처리엔 여전히 미온적이다. 정통부 산업기술팀 관계자는 “정통부가 큰 틀에서 법 제정에 동의한 건 사실이지만, 산자부와 세부 쟁점에 대한 합의까지 이뤄진 건 아니다”며 “산자부가 법 제정에 반대했던 관계부처들의 의견을 취합한 뒤 법안을 최종 수정해 11월12일 국회 산자위 입법조사관실에 제출할 예정이라지만, 남은 시일이 촉박해 타 부처 의견을 모조리 조율하기가 힘들므로 연내에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기는 물리적으로 힘들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어찌 보면 로봇특별법안을 둘러싼 갈등은 산자부와 정통부의 ‘생존본능’과도 무관하지 않은 문제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과기부와 예산처 또한 촉각을 곤두세워온 사안. 예산처는 예산 부담이 된다는 이유로 한국로봇산업진흥원 신설에 반대해왔다. 예산처 산업정보재정과 관계자는 “진흥원 신설 문제는 아직 산자부와 협의 중인 상태라 뭐라 말하긴 어렵다”면서도 “관계부처들의 이견 조율 과정에서 또다시 마찰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과기부 역시 법안 내용 중 국무총리 산하에 로봇산업 정책을 총괄할 로봇산업위원회를 신설하는 것은 현재 대통령 산하 국가과학기술위원회와 차세대성장동력특별위원회 등 기존 총괄조직체계와 충돌한다며 반대해왔다.
관계부처들 사이에 특히 논란이 된 법안 내용은 로봇랜드 및 로봇펀드 조성 부분. 법안은 로봇전시관, 놀이기구, 경기장, 매장 등을 갖춘 산업연계형 테마파크 형태의 로봇랜드 유치를 희망하는 지방자치단체에 국유재산 무상 대여 등 특혜를 주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과거 대전엑스포과학공원 등 정부가 조성한 테마파크가 수익성 문제로 사후관리에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만큼 사업성도 불확실하고, 민간에서 추진해야 할 테마파크 사업에 특혜를 부여하면 형평성 문제를 불러일으킬 수 있으므로 정부가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게 산자부 이외 부처들의 견해다. 또한 로봇산업 육성에 사용될 국가 재원이 한정돼 있고, 로봇분야 국가 연구개발(R·D) 예산이 연간 800억원대에 그치는 상황에서 원천기술 개발 등에 비해 우선순위가 높지 않은 로봇랜드 사업에 최대 1조원의 정부 및 민간 자금을 투입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의구심을 표한다. 게다가 현재 국내에 상용화된 로봇이 두 종류뿐이어서 대규모 로봇랜드 조성을 위해선 외국산 제품 도입이 불가피하므로 국내 로봇산업 활성화를 꾀한다는 당초 취지가 무색해진다는 것이다.
로봇업계 “일단 반갑지만 후유증도 걱정”
법안에서는 또한 로봇기술 개발 등에 투자할 펀드 조성을 위해 투자보증 사업을 실시하도록 규정해 1000억원 수준의 민간자금 유치를 위해 투자보증 등에 정부가 430억원을 지원할 것이 예상되는데, 투자자 손실을 정부가 보전하는 것은 수익자부담원칙과 자유주의경제 기본원리에 반하며 타 사업과의 비례성 원칙에도 어긋난다는 것이 관계부처들이 내세운 반대 논리다.
그럼에도 산자부의 법안 처리 의지는 강하다. 산자부 로봇팀 관계자는 “일단 모든 관계부처가 입법 필요성엔 동의한 만큼 해당 부처들과 조속히 쟁점사항들을 조율해 연내 법안이 통과되게 총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관계부처 간 갈등으로 정부의 로봇육성정책 의지에 긴가민가했던 로봇업계는 법 제정 논의가 청와대 경제정책수석 주재 회의 직후 급물살을 타게 되자 우선은 반기면서도 한편으로는 우려하는 눈치다.
익명을 요구한 한 로봇업체 대표는 “로봇기업들은 당연히 로봇특별법 제정에 반대하지 않지만, 지금처럼 법 제정을 서두르다 보면 자칫 관계부처 간에 후유증이 남아 업계에 악영향을 끼치지나 않을까 걱정된다”며 “솔직히 법안 내용을 제대로 읽어본 로봇기업 대표들이 매우 드물다”고 전했다.
또 다른 업체 대표는 “아직 국내 로봇산업이 제대로 자리잡지 못한 만큼 법 제정에 거는 기대가 크다. 하지만 부처 간 중복투자 등은 피하는 방향으로 합리적인 이견 조율이 이뤄졌으면 한다”는 바람을 밝혔다.
현재로서는 로봇특별법이 연내에 제정될지 여부가 불투명하다. 일각에선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산자부와 정통부의 주도권 다툼 때문에 로봇산업에 대한 국가적 의지가 약화될 수 있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어쨌든 분명한 것 한 가지는 법 제정이 졸속으로 추진된다면 국내 로봇산업의 발전이 그만큼 더딜 것이라는 전망이다.
지능형 로봇 개발은 세계적으로도 초기단계다. 그만큼 로봇산업의 미래는 밝다. 그러나 이전투구(泥田鬪狗) 양상을 보여온 관계부처들의 첨예한 입장차를 우여곡절 끝에 미봉(彌縫)하는 무리수를 둔 로봇특별법안이 로봇산업 육성에 제대로 기여할지는 두고 볼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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