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량하게만 보이는 행사장 한구석에서 이세창(37) 알스타즈(R-Stars) 감독을 만날 수 있었다. 연예인 카레이서로 알려진 이 감독은 2003년 자신이 설립한 회사이자 연예인 카레이싱 팀 알스타즈가 국내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자체 브랜드 제품도 내놓는 등 성공궤도에 진입하면서 요즘은 자동차 업계에서 꽤 힘 있는, 유명 인사다. 그런 그가 이 행사에 무슨 볼일이 있는 걸까.
두 팔 걷어붙이고 모터스포츠 보급과 홍보
“행사 주최 측에서 일반인 대상으로 드라이빙 강좌를 해달라고 부탁해서요. 그런데 강의 시간이 너무 짧아 아쉽네요.”
모터스포츠를 국내에 알리는 일이라면 두 팔 걷고 나선다는 소문은 사실이었다. 이날 행사 프로그램 진행이 늦어지면서 그의 드라이빙 강좌는 예정보다 1시간이나 늦게 시작됐다. 그런데다 강의실엔 20명도 안 되는 사람이 모여 보는 사람이 민망할 정도였다. 하지만 정작 강의자인 이 감독은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이 감독은 코너링을 주행할 때의 방법과 레이싱 기술 중 하나인 ‘힐앤토(heel and toe)’에 대해 설명했는데 강의에서 자동차에 대한 그의 열정이 느껴졌다. 힐앤토는 주행하다 속도를 급격히 줄일 때 엔진브레이크가 심하게 작동하지 않도록 제어하면서 저단으로 변속하는 기술. 오른쪽 발뒤꿈치로 브레이크 페달을, 발끝으로는 액셀러레이터를 번갈아 밟기 때문에 이런 명칭이 붙었다.
40분 남짓의 이론교육 뒤엔 트랙 동승 체험이 이어졌다. 이 감독이 현대자동차 클릭(1500cc)을 몰고 실제 레이싱하듯 스피드웨이의 트랙을 돌았는데, 옆에 탄 나는 그 속도감에 머리칼이 쭈뼛 설 정도였다. ‘카레이서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이 감독은 1996년부터 카레이서를 시작해 2001년과 2002년 투어링 A클래스(2000cc 비개조 차량 대회)에서 2년 연속 챔피언에 오른 바 있다. 하지만 카레이서로서의 면모는 그의 일부일 뿐이다. 단순히 ‘마니아들의 리그’에 그치던 국내 모터스포츠의 판을 키우는 일. 사실 그의 진가는 여기에 있다.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유운리의 시골 주택가 안에 알스타즈의 본부가 있다. 대지 300평 정도에 자동차 정비소와 낡은 사무실이 캠프의 전부이긴 하지만 바로 이곳에서 그가 가진 모터스포츠의 비전이 자라고 있다.
현재 그가 가장 의욕적으로 하고 있는 일은 알스타즈 브랜드의 제품을 내놓는 것. 3년간의 연구개발 끝에 그가 디자인한 브레이크 패드가 올해 출시되면서 그동안의 노력이 결실을 맺었다. 이 제품은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이세창 알스타즈 감독이 자신이 직접 디자인하고 3년간의 연구개발 끝에 올해 내놓은 브레이크 패드를 앞에 놓고 포즈를 취했다.
그가 하는 일은 이 악순환을 선순환으로 바꾸는 것이다. 레이싱 팀을 운영하고 있어 제품 개발이 상대적으로 쉽다. 계속 테스트를 해볼 수 있기 때문. 또 완성된 제품을 달고 대회에 참가해 좋은 성적을 내면 자연스럽게 제품 검증이 이뤄진다. 매출이 생기면 이를 연구개발비에 투자해 또 다른 제품을 내놓는다. 세계 유명 자동차업체들이 포뮬러원(F1) 등 카레이싱에 엄청난 돈을 들여 팀을 운영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레이싱이라는 혹독한 상황이야말로 자사 자동차의 우수성을 알리고, 지속적으로 새 제품을 개발할 수 있는 실험의 장이 되기 때문이다.
이 감독은 “이제 시작일 뿐”이라고 말했다. 장기적으로 이 감독이 염두에 두고 있는 부분은 자동차 전용경기장 건립과 레이싱 스쿨 설립이다. 모터스포츠의 저변 확대를 위해 꼭 필요한 부분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경기장 건립을 위해 그는 요즘 기회 있을 때마다 지방자치단체 관련 인사를 만나고 다닌다. 2년 전 경기공업대학교 교수(모터스포츠학과)가 되면서 레이싱 스쿨 설립의 발판도 마련했다.
연예인으로서의 활동은 카레이싱과 연결하려 한다. 최근 그는 카레이싱을 소재로 한 뮤직비디오를 연출, 제작했고 역시 카레이싱을 주요 소재로 한 드라마 제작도 추진 중이다. 영화계에선 자동차 추격장면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이 다재다능하고 열정 넘치는 인물이 국내 모터스포츠를 어디로 끌고 갈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