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안 뮈노즈, ‘제리를 기다리며’
미술관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불평이다. 하지만 만화가 어렵다고, 잘 모르겠다고 말하는 사람은 드물다. 대상의 충실한 재현을 거부하는 추상화와 달리 만화에는 알아보기 쉬운 그림과 이야기, 대사가 있다. 이 때문에 방바닥에 엎드려 아무 생각 없이 집어들고 편하게 볼 수 있는 것이 만화 아니던가. 그런데 만화가 추상이 된다면?
지금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는 만화와 추상화가 만나는 교차지점을 보여주는 전시 ‘Comic Abstraction(코믹 추상화)’전이 열리고 있다.
만화를 순수미술 영역으로 가져온 작가들은 이전에도 있었다. 로이 리히텐슈타인이나 앤디 워홀 등 팝아트 작가들은 만화의 한 컷을 선택해 내용을 바꾸거나, 확대 또는 반복함으로써 다른 맥락을 가진 ‘미술 작품’으로 변모시켰다.
하지만 이번 ‘Comic Abstraction’전에 내놓은 작품들은 이전 작품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만화의 이미지보다는 재현 방식을 달리했다.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한 만화의 일부 요소를 제거하고 새롭게 구성해 추상화했다. 그 결과 친숙한 만화가 낯설어지고 우스꽝스러운 이야기가 심각한 정치적 이슈를 전달한다.
작가 너이엔쉬반더는 만화 ‘Ze Carioca’의 한 페이지를 택해 모든 이미지와 텍스트를 단색으로 덮어버리고 말풍선을 비웠다. 브라질 독자를 위해 1941년 월트 디즈니사가 발표한 이 만화는 축구를 즐기는 민족주의적 성향의 앵무새 Ze Carioca에 대한 이야기다. 하지만 작가는 브라질인에 대한 이러한 클리셰(상투적 표현)를 지워버리고 독자 나름대로 다시 그려보도록 권유한 것이다.
후안 뮈노즈의 작품 ‘제리를 기다리며’는 캄캄한 방 안에 조그만 쥐구멍 하나를 뚫어두고 만화 ‘톰과 제리’의 배경음악을 들려줬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톰의 추격신에서 언제나 흘러나오던 긴박감 넘치는 사운드다. 캄캄한 방 안에서 고조되는 음악을 듣고 있으면 마치 무슨 일인지 곧 벌어질 것 같다. 그러나 관객의 기대만이 고양될 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 간단한 사운드 설치작품으로 작가는 우리 기억 속에 각인된 이미지와 기대감을 자극한다.
구상과 비구상, 순수예술과 대중예술이라는 해묵은 이슈에 만화라는 매체를 중심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전시는 꽤 흥미롭게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