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륙하는 TA-50 전술입문기. 비행중지에 들어간 A-37과 F-5를 대체하기 위해 공군과 방사청은 TA-50을 토대로 한 공격기 FA-50을 60여 대 제작하기로 했다. FA-50은 대지 공격과 요격 능력을 갖춘 저급(소형) 전투기 구실을 한다.
지금까지 전투기에 탑재된 레이더는 둥그런 반사판을 빙빙 돌리면서 레이더파를 쏘고, 그것이 반사돼 돌아오는 것을 포착해 물체를 추적했는데, 이를‘기계식 레이더’라고 한다. AESA는 이와는 전혀 다르게 작동한다.
잠자리는 2만여 개의 홑눈이 모인 ‘겹눈’을 갖고 있는데, AESA가 바로 겹눈 체제의 레이더다. AESA 레이더의 원판 위에는 손가락 크기 정도의 ‘모듈(module)’이 1000개 남짓 박혀 있으며, 이 모듈이 잠자리의 홑눈처럼 각각의 목표물을 추적한다.
따라서 AESA는 기계식보다 훨씬 더 많은 목표물을 추적한다. 아주 빠르게 움직이는 목표물에 집중할 때는 여러 개 모듈을 동원해 좀더 정교한 추적을 한다.
이런 이유로 서구에서 개발된 첨단 전투기들은 하나같이 AESA 레이더를 탑재하고 있다. 미 해군의 주력기로 개발된 F/A-18E/F 슈퍼호넷에 탑재된 APG-79를 시작으로 세계 최강의 5세대 스텔스 전투기 F-22에 실린 APG-77, F-35에 장착된 APG-81이 미국에서 개발된 AESA 레이더들이다. 유럽 4개국이 공동 개발한 유러파이터 타이푼에는 이제 시제품이 나온 ‘캡터(CAPTOR)’라는 이름의 AESA 레이더가 들어간다. 이들 4개 가운데 가장 우수한 것이 바로 F-22에 실린 APG-77이다.
잠자리 홑눈처럼 목표물 추적
나머지 전투기는 대부분 기계식 레이더를 탑재하고 있다. 한국 공군이 보유한 최강의 전투기 F-15K에 실린 APG-63(v)1 레이더와 KF-16에 탑재된 APG-68 레이더는 기계식이다. 프랑스가 개발한 라팔의 RBE-2도 아직은 완전한 AESA 레이더로 판정받지 못했다.
한국은 언제쯤 AESA 레이더를 탑재한 전투기를 보유할 것인가. 이 문제에 대해 공군과 방위사업청(이하 방사청)이 뜻밖의 ‘도박’을 펼쳤다. T-50을 토대로 만들려고 하는 공격기 FA-50에 AESA 레이더를 탑재하겠다고 한 것. 그러나 이 도박은 성공 가능성이 낮아 관계자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셀렉스사가 제작하기로 한 빅센-500E 레이더. 셀렉스사는 빅센-500E를 소개하는 브로셔에 FA-50 공격기 사진을 함께 싣는 센스를 발휘했다(사진 위). <br>F-35 전투기에 탑재된 AESA 레이더 모형. 둥근 원판 위에 1200여 개의 모듈이 박혀 있다.
T-50은 전투기급 조종술만 익히는 것이라 레이더가 없지만, TA-50은 전투술을 익히는 것이라 소형 기계식 레이더인 APG-67이 탑재돼 있다. 이 훈련을 마친 뒤 후보생들은 실력에 따라 F-15K, KF-16, F-4, F-5 전투기와 A-37 공격기의 정식 조종사로 임명된다.
한국 공군이 보유한 다섯 종류의 전투·공격기 가운데 ‘저급’으로 분류되는 A-37과 F-5는 30년인 작전수명을 넘겨 차례로 비행중지 명령을 받고 있다. 공군은 하루빨리 이 전투기가 하던 일을 수행할 후속 기종을 결정해야 하는 처지다.
TA-50은 최근 개발한 것이라 A-37은 물론 F-5보다 비행능력이 뛰어나다. 이 점에 착안한 공군과 방사청은 TA-50을 외부연료탱크와 미사일, 투하폭탄을 탑재할 수 있게 개조해 ‘공격기’ FA-50을 개발하기로 했다. 그리고 FA-50의 성능을 강화하기 위해 AESA 레이더를 탑재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선진국들은 대형 전투기에 들어가는 AESA 레이더부터 개발해왔으므로 FA-50에 실을 만큼 작은 AESA 레이더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영국과 이탈리아의 합작회사 셀렉스(Selex)가 유러파이터 타이푼에 들어간 캡터 레이더를 축소한 소형 AESA 레이더인 ‘빅센(VIXEN)-500E’ 개발을 선언했다. 이에 공군과 방사청은 빅센-500E라면 FA-50에 탑재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한 달 남짓 시간 ‘기적’ 이루나
그러나 이 꿈을 실현하려면 몇 개의 ‘아주 높은 산’을 넘어야 한다. 주지하다시피 T-50은 미국 기술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개발초기 한미 양국은 ‘T-50의 성능은 KF-16과 같거나 그 이하로 한다’는 약속을 했다. 소형이지만 빅센-500E의 성능은 KF-16에 탑재한 기계식 APG-68 레이더를 근소하게 앞설 가능성이 있다.
두 나라는 ‘T-50 계열에는 양국이 갖지 못한 기술에 한해서만 제3국 기술을 도입한다’는 약속도 했다. 미국은 “TA-50에 미국제 기계식 레이더인 APG-67을 실었으니, FA-50에도 이 레이더를 쓰라”고 주장한다. 반면 한국은 “FA-50에는 소형 AESA 레이더를 실어야 하는데, 미국엔 이러한 레이더가 없으니 셀렉스 사 레이더를 싣겠다”며 맞서고 있다.
세 번째는 미국 정부의 승인 여부다. T-50 개발 계약 시 양국은 ‘한국이 미국산 부품을 넣은 T-50을 제작해 제3국에 판매하려면, 한국은 사전에 미국 정부의 승인을 받는다’는 약속을 했다. 그런데 FA-50 사업은 ‘미국산 부품에 유럽제 부품을 결합해 한국에서 사용할 공격기를 만들겠다’는 것이니 이 약속과는 배치되는 측면이 있다.
지난해 12월 FA-50 사업의 추진을 결정한 공군과 방사청은 미국 정부에 “셀렉스사 레이더 사용에 동의해달라”고 요청했다. 전례 없는 요청을 받은 미국은 고민을 거듭하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처리 기준이 마련돼 있지 않다”며 서류를 반려했다. 교묘한 수사로 거부 뜻을 밝힌 것.
미 정부의 승인 없이 셀렉스사 레이더 탑재를 결정하면 한국은 미국으로부터 T-50 제작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강력한 제재를 받을 수 있다. 이미 A-37과 F-5는 비행중지에 들어가, 공군과 방사청은 8월 60대의 FA-50을 개발 양산하는 사업을 시작해야 할 처지다.
공군과 방사청이 미국을 설득하고 셀렉스사가 AESA 레이더 개발에 성공한다면 한국은 가장 강력한 소형 전투기를 생산하는 나라가 될 것이다. 한 달 남짓한 시간 안에 공군과 방사청은 과연 ‘기적’을 이뤄낼 수 있을 것인가. 이 노력이 실패하면 그 책임을 묻는 후유증이 만만찮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