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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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길레라가‘완소녀’인 까닭은… 가창력 퀸, 그리고 감정 처리의 달인

한국 여가수들 섹시미보다 음악성으로 승부 내야

  • 임진모 음악평론가 www.izm.co.kr

    입력2007-07-04 18: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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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길레라가‘완소녀’인 까닭은… 가창력 퀸, 그리고 감정 처리의 달인
    지금은 현저히 떨어졌지만, 서구 팝 음악의 동향은 여전히 음악팬들의 관심을 모은다. 만일 그들에게 현재 최고의 팝가수를 꼽으라고 하면 반드시 등장하는 인물 가운데 한 명이 6월23~24일 내한공연을 펼친 크리스티나 아길레라다. 당대 화제를 독점한 브리트니 스피어스보다 조금 늦은 1999년, 20세가 채 되기도 전에 데뷔한 그는 브리트니와 함께 10대 여가수 돌풍을 일으키며 어린 팬들의 관심을 양분한 주인공이다.

    데뷔앨범에서 ‘Genie in a bottle’을 비롯해 세곡을 거푸 전미 차트 1위에 올려놓으며 음악시장을 강타했다는 점, 게다가 등장한 지 어느덧 8년의 세월이 흘렀다는 점을 감안할 때 우리 같으면 벌써 대여섯 장의 앨범을 발표했겠지만, 지금까지 아길레라가 낸 독집 앨범은 3장에 불과하다. 그는 이 점부터가 다르다. 즉, 그는 자신의 의지와 영역을 강조하는 록을 하는 것도 아닐뿐더러, 엄연히 기획사가 있고 치밀한 홍보와 마케팅이 뒷받침된 ‘대중가수’임에도 한국 음악계처럼 팔리는 때를 만났다며 마구 앨범을 쏟아내는 식의 상업적 접근을 해오지는 않았다.

    8년간 독집 앨범은 3장뿐 ‘상업적 접근’ 탈피

    명백히 주류를 터전으로 삼고 있으면서도 주류의 상투적, 관습적 방식으로 일관하지 않은 채 비주류의 강점인 ‘음악인다움’을 놓치지 않으려는 자세는 귀감으로 삼을 만한 서구 음악계의 미덕이다. 특히 아길레라는 그런 틀에 잘 들어맞는 대표 가수로 평가된다. 그래서 서구 평단은 뻔한 상업적 가수임을 알면서도 그에게 ‘아티스트’라는 조금은 고매한 타이틀을 부여했다.

    돌이켜보면 데뷔 시기에 아길레라가 처한 상황은 그다지 유리한 편이 못 됐다. 먼저 나이가 어렸다. 그때만 해도 팝 음악계에서 미성년은 음악성의 부재라는 선입관과 연결돼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게다가 그는 ‘틴에이저 걸’ 선풍이라는 새로운 트렌드를 연 브리트니보다 출발이 늦었다. 뒷북은 상업 및 평가 측면에서 갈채받기 어려운 전통적인 아킬레스건이다.



    잘못하면 영원히 2등으로 머물 수도 있었던 처지. 하지만 아길레라는 친근감과 화제성으로 떠오른 브리트니와는 다른 면모와 이미지로 치고 나왔다. 그것은 예나 지금이나 음악 관계자들이 신주단지처럼 받드는 ‘가창력’이다. ‘노래를 잘한다’는 소박한 기본을 신봉하는 쪽으로 승부수를 띄운 것이다.

    파괴력은 대단했다. 여기저기서 “어리고 깜찍한 미모만 눈에 띄었는데 생각보다 노래를 잘하더라” “목소리가 앵앵거리지 않고 정돈돼 있다”는 말이 나오더니 순식간에 ‘꼬마 머라이어 캐리’ ‘차세대 팝의 디바’라는 찬사가 터져나왔다.

    대중이 받은 인상도 비슷했다. 많은 사람들이 의외의 노래 솜씨에 감화된 덕분에 아길레라는 줄줄이 히트송을 쏟아냈다.

    데뷔 이듬해 그래미상 시상식은 그 정점이었다. 권위와 역사를 자랑하는 그래미상 중에서도 노른자위로 꼽히는 신인상 부문의 트로피를 브리트니와 아길레라 가운데 누가 가져가느냐가 시상식 전부터 화제였다. 하지만 음악성을 중시하는 그래미상은 아길레라의 손을 들어줬다. 가창력을 지닌 아길레라의 상대적 우월성을 인정한 것이다.

    실제로 ‘Genie in a bottle’에서의 리듬을 타면서도 음을 장악하는 능력, 지금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발라드 ‘I turn to you’에서보여준 능란한 감정 처리는 실로 놀랍다. 어느 때는 시원하게 치솟으며 폭발하다가도 곧바로 절제하면서 감정을 다스리는 ‘완급 조절’은 그의 주특기다. 특히 ‘노래를 잘해야 오래가는’ 여가수 처지에서는 분명한 역할모델이다.

    아길레라가‘완소녀’인 까닭은… 가창력 퀸, 그리고 감정 처리의 달인

    요즘 최고 주가를 올리고 있는 아이비(오른쪽)는 빠른 리듬을 타는 능력을, 섹시 스타 이효리는 고음 처리와 호흡, 발성을 배워야 한다.

    반면 국내 가요계는 노래 실력보다는 앳된 외모, 성인이 된 뒤의 ‘섹시’ 같은 비주얼 면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구체적으로 핑클의 이효리, 주얼리의 서인영, 샤크라의 황보, 샵의 서지영, 그리고 채연 등 우리의 톱 여가수들은 아길레라의 ‘겉’은 따라잡았지만 고음 처리, 호흡, 발성 등 ‘속’은 갖추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어쩌다 발라드를 부를 때 그 간극은 더 확연히 드러난다.

    노래를 잘하고 춤도 잘 춘다는 보아 역시 아길레라 같은 ‘깊은 소리’를 내는 데는 여전히 부족하다. 요즘 최고 주가를 올리는 아이비도 댄스와 발라드라는 양날개를 제대로 갖추려면 빠른 리듬을 타는 능력을 더 키워야 한다. 교훈은 지난해 아길레라가 내놓은 3집 앨범 제목에 담겨 있다. ‘기본으로 돌아가라(Back to basics).’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음악적 진화를 향한 노력’이다. 아길레라는 데뷔앨범에서 팝댄스 및 발라드 가수였다면, 다음 앨범에서는 청순한 10대를 완전히 부정하는 까칠한 ‘힙합 전사’로 변신했다. 성공에 민감한 우리 음악계 같았으면 초기에 대중적 호응을 가져온 스타일을 좀처럼 버리지 못했을 것이다. 발라드에만 전념하는 이수영과 컴백에 성공한 양파는 반드시 이 점을 참고해야 한다.

    현실에 안주 않고 음악적 진화 위해 노력

    아길레라는 찬사를 받은 3집 앨범 ‘Back to basics’로 다시 한 번 자신이 부단히 음악 영역을 개척해가는 ‘아티스트’임을 과시한다. 두 장의 CD로 엮은 이 앨범은 흘러간 1920년대와 40년대의 스윙, 초창기 블루스, 부기우기 등 저 옛날의 음악으로 돌아가 거기서 신선함을 구하는 ‘온고지신’ 스타일이다. 서구 평단으로부터 “음악 거장들이 앞으로 함께 작업하고 싶은 욕구를 일으킬 만한 웰메이드 앨범”이라는 격찬을 받았다.

    금발에 분홍색 정장, 검은색 복대 차림의 공연포스터에서 아길레라의 모습은 아름답다. 음악 내용에 맞춰 외모도 복고적으로 꾸민 것이다. 이것은 ‘가창력을 토대로 한 도전’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이미지 전술일 뿐이다. 국내 여가수들은 메시지 없이 오로지 이미지만 차용하는 풍조에서 탈피해 무엇보다 ‘Ain’t no other man’처럼 비트를 잘 타고 ‘Hurt’처럼 멜로디를 진하게 전달하는 가창력을 갖추기 위해 땀 흘려야 한다.

    내한공연을 통해 우리는 아일랜드와 에콰도르 혈통을 지닌 1980년 12월생의 여가수가 과연 어떻게 노래를 부르고, 어떤 음악을 시도했는지 지켜볼 수 있었다. 그는 ‘지각 입국’ ‘늑장 공연’으로 논란을 불러일으켰으나 파워풀한 가창력과 멋진 무대 매너로 불만을 불식시켰다. 이번 앨범과 공연의 타이틀처럼 국내 음악계가 ‘기본으로 돌아가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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