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에 전쟁이 선포되었다. 어떻게 보면 공생관계라고 할 수 있는 영화제작자들이, 스타 배우를 보유한 매니지먼트 회사에 선전포고를 한 것이다. 한국영화제작가협회(이사장 김형준·이하 제협)는 6월28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영화산업 정상화를 위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는 현재 한국영화를 제작하고 있는 영화사 대표들의 대부분이 참석했다. 시네마서비스 강우석, 싸이더스 차승재, 씨네2000의 이춘연, 신씨네의 신철, MK픽쳐스의 이은 등 한국 영화계에 커다란 족적을 남기고 있는 이들이 굳은 표정으로 기자간담회를 연 이유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매니지먼트사의 ‘횡포’ 때문이다.
이날 제작자들은 ‘스타 캐스팅 위주의 투자 관행은 시정돼야 한다. 기여 없는 공동제작 요구, 부당한 제작 지분 요구, 기타 스타 캐스팅을 조건으로 한 부당 행위에 단호히 대처하겠다’는 결의문을 발표했다. 단순히 스타를 보유하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매니지먼트사가 턱없이 높은 개런티를 부르고 여러 가지 부가이익을 챙기려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스타들의 작품당 출연료는 물론 할리우드에는 비할 바 못 되지만, 동남아 국가들이나 유럽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는다. 빅3, 즉 송강호· 설경구·최민식 등은 편당 4억~5억원 수준이다.
그러나 그들이 과연 할리우드 배우들처럼 영화적 재미나 완성도와는 별개로 관중을 극장으로 끌어모으는 티켓 파워가 있는가 하는 점에서는 많은 영화인들이 회의적이다. 극단적으로 문근영 이외에 진정한 의미의 티켓 파워를 가진 배우들은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도 매니지먼트사들은 과다한 출연료를 요구하고, 공동제작으로 매니지먼트사 이름을 올려줄 것을 주장한다. 한 발 더 나아가 300만, 500만 등 일정 숫자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면 관객 1인당 몇 %의 지분을 달라고 한다.
“스타 캐스팅 위주의 투자 관행 반드시 시정돼야”
그렇다고 영화 계발 초기의 위험부담에 대해서 매니지먼트사들이 공동 책임을 지는 것도 아니다. 영화사에서 힘들여 아이템 기획을 하고, 시나리오 계발하고, 때로는 몇 년에 걸쳐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모든 준비를 끝내면, 캐스팅 단계에서 매니지먼트사가 갑자기 뛰어들어 너무나 많은 것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의 주장이 일정 부분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 우리 영화계의 구조적 모순 때문이다. 스타의 수는 극히 제한되어 있고, 투자사들은 흥행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으로 스타 캐스팅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보다 며칠 앞선 25일, 김형준 제협 이사장은 앞으로 매니지먼트사의 공동제작에 응하지 않고 지분 요구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그러므로 기자간담회는 한 발 더 나아가 영화제작자들이 힘을 합해서 현재의 불합리한 제작 관행에 이의를 제기한 것에 따른 것이다.
나우필름의 이준동 대표는 “오늘의 자리는 강호의 결투를 다루는 누아르가 아니라, 영화인 전체의 공생을 위한 휴먼 드라마”라고 유머 섞어 말했지만 누가 봐도 분명한 선전포고였다. 그 발단은 강우석 시네마서비스 대표였다. 그는 최근 여러 매체를 통해 지속적으로 매니지먼트사의 횡포를 지적했고, 최민식·송강호 등의 실명을 거론하며 이들이 지나친 출연료를 요구하고 영화제작 때 지분을 과다하게 요구하고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에 대해 6월29일 최민식과 송강호는 합동기자회견을 열고 강우석 감독에게 공개 사과할 것을 요구했다. 최민식은 출연료는 배우들의 창작 고통에 대한 정당한 대가라고 말하며 강 감독이 자신에 대한 개인적 감정을 쏟아낸 것이라고 분노했고, 송강호는 지분을 요구한 적이 없다며 오히려 시네마서비스에서 지난 4년 동안 캐스팅 때문에 자신에게 연락 한번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시시비비를 떠나 이번 사태의 밑바닥에는 90년대 중반 이후 급성장한 한국 영화산업이 과도기를 거치면서 잘못 형성된 구조적 모순이 깔려 있다.
제협은 2004년 말, 임의단체에서 사단법인으로 다시 출발했다. 초대 이사장에는 임의단체 시절부터 회장을 맡았던 한맥영화사 김형준 대표가 선임됐다. 김형준 이사장은 ‘실미도’의 제작자로 더 알려져 있다. 오랫동안 충무로를 떠돌던 실미도 프로젝트를 영화화될 수 있도록 기획을 다듬어서 오랜 친구인 강 감독에게 연출을 하도록 했다.
영화배우 못지않은 외모를 지닌 그를 충무로 시네마서비스 빌딩 3층에 있는 한맥영화사 사장실에서 만났다. 그의 방에는 ‘여고괴담’ 시리즈를 만든 씨네2000의 이춘연 사장이 있었다. 씨네2000의 사무실은 한맥영화사 바로 옆방이고, 이 사장은 임의단체 시절 제협 회장을 했었다.
“이전에는 임의단체여서 하고 싶은 걸 제대로 못했다. 통장 하나도 단체 이름으로 만들지 못했다. 개인 이름으로 해야 했고, 정부 지원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는 불법복제 방지도 공식적으로 할 수 있다. 나도 회장에서 이사장으로 직함이 바뀌었다. 무게도 약간 실린 것 같고, 회원도 많이 늘었다. 현재 제협 회원사에서 제작한 영화가 전체 한국영화의 60~70%를 차지한다.”
제협에는 총 60개의 영화사가 가입해 있다. 전국적으로 1500여개의 영화사가 등록되어 있으니 극히 일부분만 가입되어 있는 셈이지만, CJ·시네마서비스·싸이더스 등 주요 영화사들이 거의 가입돼 있기 때문에 국내 유일의 영화제작가 단체인 제협에 무게가 실리는 것이다. 가입하는 데 특별한 조건이 있는 것은 아니다. 영화를 한 편 이상 제작한 영화사는 가입비만 내면 운영회의의 인준을 받아서 가입할 수 있다. 사단법인이 된 뒤 제협은 올해부터 영화진흥위원회로부터 지원도 받는다.
“사단법인으로 바뀌면서 이사장 임기를 1년으로 했다. 봉사직인데 여러 사람이 돌아가면서 해야 된다는 생각에서다. 나도 영화사 사장으로, 돌아다니면서 펀딩도 하고 캐스팅도 해야 하는데 매니지먼트 문제가 있어서 캐스팅이 어렵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제협이 매니지먼트사를 공격하자, 스타들을 보유하고 있는 매니지먼트사에서 김형준 이사장이 대표로 있는 한맥영화사 작품의 캐스팅에 응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영화산업 내 수익 불균형 해소에 역점”
“처음 제협 회장으로 선출될 때 나의 공약이 사단법인화와 체계적 조직이었다. 사단법인이 된 이후엔 ‘영화산업 내의 수익 불균형구조 해소’였다. 가령 극장 부율(극장 입장료에 대해 극장 측과 배급사 측이 나누는 비율) 문제라든가, 스태프 처우 개선, 매니지먼트사 문제가 포함된다. 그중 첫 단계가 매니지먼트사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그들은 하는 일 없이 영화사 지분을 뺏아가고 있다. 또 카드 할인수수료도 문제다. 극장 입장료 2000원을 할인해주고 카드회사는 극장에 반을 부담시킨다. 다시 극장에서는 제작자에게 그 전액을 부담하게 한다. 영화제작자가 이통사나 카드사의 마케팅을 위해 왜 돈을 써야 하는가. 그들은 전체적으로 영화산업의 파이가 커진다는 논리를 편다. 그렇다면 모든 극장에서 카드 할인을 해줘야 하는데, 선택된 일부 극장에서만 할인을 해준다. 카드 할인을 못 해주는 극장은 망한다. 그런 것도 수익 불균형 구조에 들어간다.”
한국 영화산업이 확장되면서 생겨나는 이 같은 부작용들은 개인이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져야 영화산업이 더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영화 제작을 위해서는 많은 돈이 필요한데, 영화를 만든 사람들에게 수익이 제대로 돌아오고 있지 않다고 많은 제작자들이 생각하는 것이다. ‘실미도’로 200억원이 넘는 수익을 냈다고 하지만, 시네마서비스는 그 후에 개봉된 7편의 영화가 흥행에 실패하면서 적자로 돌아섰다.
“‘실미도’를 만든 사람인데 난 지금 집도 없고 차도 없다. 통장에는 100만원도 없다. 제작자들 중에서 개인적으로 잘사는 사람은 아주 소수에 불과하다. 강우석 감독이 돈 많을 것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제작사들 중에서 누적 적자 없는 데가 없다. 대부분의 경우 영화에 대한 열정으로 모든 것을 감수하고 고생하고 있다. 나도 지난 18년 동안 이 노력과 공을 들여서 레스토랑이라도 경영했으면 엄청나게 편하게 지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극장은 돈 벌어도 제작사는 손해 보는 구조
김형준 이사장은 원래 재정학을 공부해서 외교관이 되려고 했다. 방위산업체를 운영하던 부친의 뜻도 그랬다. 그러나 미국 유학 도중, 삼촌인 현진영화사 김원두 사장의 권유로 영화 수입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자신이 수입한 영화들이 한국에서 대박을 터뜨리자 짜릿한 쾌감을 느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영화 제작일을 하면서 작고한 부친이 물려준 상당한 유산을 모두 까먹었다. 지금도 그의 모친은 영화 제작일만 안 하면 경제적 도움을 주겠다고 한다.
“모든 것의 기본은 콘텐츠다. 예를 들어 전지현의 경우, 아시아 최고의 스타가 되었지만 그 이익은 매니지먼트사에 돌아간다. 콘텐츠를 만들어준 영화제작자는 아무런 반사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제작사가 힘들여 기획한 영화를 매니지먼트사에서는 배우만 대주고 과다한 지분을 요구한다. 하는 일 없이 공동제작에 자기들 이름 올리고 지분까지 요구하는 행위는 독점적 지위를 남용하는 것이다. 미국에서도 캘리포니아 주법에는 매니지먼트와 제작을 겸하지 못하도록 돼 있다. 독점방지법이다. 각 분야별로 룰이 있고 역할이 있는데 독점적 지위를 갖는 것은 산업적으로 봤을 때 안 좋다. 제작자로서 밥그릇을 지키려고 그러는 게 아니라, 정말 영화를 생각해서 하는 소리다.”
독점적 지위를 방지하는 법률도 필요하지만 그는 우선 대화를 통해 엔터테인먼트사들을 설득하려고 한다. 그래서 여론이라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제작자들의 타깃이 되고 있는 엔터테인먼트사는 싸이더스HQ와 플레이어 엔터테인먼트 등이다.
“스타라는 것은 초기에 관객들을 극장으로 끌고 올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일 뿐이지, 끝까지 책임을 지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작자도 투자자도 위험을 줄이기 위해 스타를 쓰는 것인데, 오래가지는 못한다. ‘집으로...’나 ‘마파도’ 같은 경우는 별로 유명하지 않은 배우를 써서 성공한 케이스다. 이런 제작이 늘어나야 한다.”
그는 극장 부율도 시정돼야 한다고 말한다. 현재 외국영화의 경우 극장과 제작사가 4대 6의 구조로 수익을 나누지만, 한국영화는 5대 5로 배분된다. 즉 한국영화 제작자들이 외화보다 10%의 수익에서 차별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런 불균형은 한국영화에 관객이 들지 않던 시절, 극장업자들에게 조금 더 한국영화를 상영할 수 있게 하는 매력적인 인센티브를 주기 위해서 시행된 것이지만, 이제 상황은 변했다. 관객들은 지금 외화보다 한국영화를 더 사랑하고 작품당 관객수도 훨씬 많다. 그렇다면 당연히 수익 배분이 동등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삼성동 메가박스는 150억 순익, CGV 체인점 전체는 400억원의 순익을 보고 있다. 그러나 2004년 제작된 한국영화는 편당 5억5000만원의 적자를 냈다. 극장 부율 조정 문제에 대해서는 슬슬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는데, 분위기가 괜찮다. 문화부에서 적극적으로 유도하고 있다.”
그가 운영하고 있는 한맥영화사에서는 세계일보 1억원 고료 당선작 김별아의 ‘미실’ 판권을 구입해서 영화를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이민용 감독의 ‘독도수비대’가 내년 2월 촬영에 들어가고, 현대판 예수처럼 구성된 양동근 주연의 독특한 캐릭터 영화 ‘양주갑’도 캐나다 올 로케이션으로 촬영하려고 한다. 그외에도 ‘모노폴리’ 등 8편의 영화를 한꺼번에 준비하고 있다.
“나는 영화판에 처음 들어올 때부터 사장 이하를 해본 적이 없어 지금 잘나가는 감독들과 친하게 지내지 못했다. 그래서 힘들었다. 재정학을 전공한 풍월로 영세한 한국영화를 증권가에 등록해보려고도 했다. 결국 그 시대가 오긴 왔는데 다른 사람이 먼저 그 일을 했다. 이제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다른 일을 할 수도 없다.”
이렇게 말했지만 김형준 이사장은 충무로의 아이디어 뱅크로 알려져 있다. 기획력이 뛰어나고 늘 새로운 트렌드를 흡수할 수 있는 작품들을 내놓는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프렌치 키스’, ‘덤 앤 더머’ 같은 외화의 자막 번역도 직접 했고 ‘가슴 달린 남자’나 ‘미스터 맘마’의 시나리오도 썼다. ‘미스터 맘마’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것이다.
나는 그에게 영화를 통해 세상에 어떤 말을 하고 싶은지 물었다. 그는 잠깐 고민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난 진지하지 않은 사람이라 그런 이야기를 하면 안 어울린다. 기독교에서도 모든 사람이 세상에 나온 데는 이유가 있다고 한다. ‘실미도’에서 얻은 보람이 있다. 김형준이 없었다면 ‘실미도’가 나왔을까, 그런 영화를 만들었다는 것이 감사하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인생에 대해 뒤돌아보고 생각하게 된다. 결국 영화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그들을 변화시키고 싶다. 이 나이에 큰돈 벌기는 틀렸으니 돈으로 봉사 못할 바에 그런 걸로라도 봉사해야지. 내 자식들이 나를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 있도록 살겠다. 그러나 우리 가족은 내 마음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아버님에게서 많은 유산을 물려받았는데 모두 영화에 썼다. 겉으로는 후회스럽다고 말하지만 속으로는 후회하지 않는다. 앞으로 만들 영화에 대한 기대감이 있기 때문이다. 기대가 있으면 후회는 없다.”
이날 제작자들은 ‘스타 캐스팅 위주의 투자 관행은 시정돼야 한다. 기여 없는 공동제작 요구, 부당한 제작 지분 요구, 기타 스타 캐스팅을 조건으로 한 부당 행위에 단호히 대처하겠다’는 결의문을 발표했다. 단순히 스타를 보유하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매니지먼트사가 턱없이 높은 개런티를 부르고 여러 가지 부가이익을 챙기려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스타들의 작품당 출연료는 물론 할리우드에는 비할 바 못 되지만, 동남아 국가들이나 유럽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는다. 빅3, 즉 송강호· 설경구·최민식 등은 편당 4억~5억원 수준이다.
그러나 그들이 과연 할리우드 배우들처럼 영화적 재미나 완성도와는 별개로 관중을 극장으로 끌어모으는 티켓 파워가 있는가 하는 점에서는 많은 영화인들이 회의적이다. 극단적으로 문근영 이외에 진정한 의미의 티켓 파워를 가진 배우들은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도 매니지먼트사들은 과다한 출연료를 요구하고, 공동제작으로 매니지먼트사 이름을 올려줄 것을 주장한다. 한 발 더 나아가 300만, 500만 등 일정 숫자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면 관객 1인당 몇 %의 지분을 달라고 한다.
“스타 캐스팅 위주의 투자 관행 반드시 시정돼야”
그렇다고 영화 계발 초기의 위험부담에 대해서 매니지먼트사들이 공동 책임을 지는 것도 아니다. 영화사에서 힘들여 아이템 기획을 하고, 시나리오 계발하고, 때로는 몇 년에 걸쳐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모든 준비를 끝내면, 캐스팅 단계에서 매니지먼트사가 갑자기 뛰어들어 너무나 많은 것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의 주장이 일정 부분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 우리 영화계의 구조적 모순 때문이다. 스타의 수는 극히 제한되어 있고, 투자사들은 흥행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으로 스타 캐스팅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보다 며칠 앞선 25일, 김형준 제협 이사장은 앞으로 매니지먼트사의 공동제작에 응하지 않고 지분 요구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그러므로 기자간담회는 한 발 더 나아가 영화제작자들이 힘을 합해서 현재의 불합리한 제작 관행에 이의를 제기한 것에 따른 것이다.
나우필름의 이준동 대표는 “오늘의 자리는 강호의 결투를 다루는 누아르가 아니라, 영화인 전체의 공생을 위한 휴먼 드라마”라고 유머 섞어 말했지만 누가 봐도 분명한 선전포고였다. 그 발단은 강우석 시네마서비스 대표였다. 그는 최근 여러 매체를 통해 지속적으로 매니지먼트사의 횡포를 지적했고, 최민식·송강호 등의 실명을 거론하며 이들이 지나친 출연료를 요구하고 영화제작 때 지분을 과다하게 요구하고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에 대해 6월29일 최민식과 송강호는 합동기자회견을 열고 강우석 감독에게 공개 사과할 것을 요구했다. 최민식은 출연료는 배우들의 창작 고통에 대한 정당한 대가라고 말하며 강 감독이 자신에 대한 개인적 감정을 쏟아낸 것이라고 분노했고, 송강호는 지분을 요구한 적이 없다며 오히려 시네마서비스에서 지난 4년 동안 캐스팅 때문에 자신에게 연락 한번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시시비비를 떠나 이번 사태의 밑바닥에는 90년대 중반 이후 급성장한 한국 영화산업이 과도기를 거치면서 잘못 형성된 구조적 모순이 깔려 있다.
제협은 2004년 말, 임의단체에서 사단법인으로 다시 출발했다. 초대 이사장에는 임의단체 시절부터 회장을 맡았던 한맥영화사 김형준 대표가 선임됐다. 김형준 이사장은 ‘실미도’의 제작자로 더 알려져 있다. 오랫동안 충무로를 떠돌던 실미도 프로젝트를 영화화될 수 있도록 기획을 다듬어서 오랜 친구인 강 감독에게 연출을 하도록 했다.
영화배우 못지않은 외모를 지닌 그를 충무로 시네마서비스 빌딩 3층에 있는 한맥영화사 사장실에서 만났다. 그의 방에는 ‘여고괴담’ 시리즈를 만든 씨네2000의 이춘연 사장이 있었다. 씨네2000의 사무실은 한맥영화사 바로 옆방이고, 이 사장은 임의단체 시절 제협 회장을 했었다.
“이전에는 임의단체여서 하고 싶은 걸 제대로 못했다. 통장 하나도 단체 이름으로 만들지 못했다. 개인 이름으로 해야 했고, 정부 지원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는 불법복제 방지도 공식적으로 할 수 있다. 나도 회장에서 이사장으로 직함이 바뀌었다. 무게도 약간 실린 것 같고, 회원도 많이 늘었다. 현재 제협 회원사에서 제작한 영화가 전체 한국영화의 60~70%를 차지한다.”
제협에는 총 60개의 영화사가 가입해 있다. 전국적으로 1500여개의 영화사가 등록되어 있으니 극히 일부분만 가입되어 있는 셈이지만, CJ·시네마서비스·싸이더스 등 주요 영화사들이 거의 가입돼 있기 때문에 국내 유일의 영화제작가 단체인 제협에 무게가 실리는 것이다. 가입하는 데 특별한 조건이 있는 것은 아니다. 영화를 한 편 이상 제작한 영화사는 가입비만 내면 운영회의의 인준을 받아서 가입할 수 있다. 사단법인이 된 뒤 제협은 올해부터 영화진흥위원회로부터 지원도 받는다.
“사단법인으로 바뀌면서 이사장 임기를 1년으로 했다. 봉사직인데 여러 사람이 돌아가면서 해야 된다는 생각에서다. 나도 영화사 사장으로, 돌아다니면서 펀딩도 하고 캐스팅도 해야 하는데 매니지먼트 문제가 있어서 캐스팅이 어렵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제협이 매니지먼트사를 공격하자, 스타들을 보유하고 있는 매니지먼트사에서 김형준 이사장이 대표로 있는 한맥영화사 작품의 캐스팅에 응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영화산업 내 수익 불균형 해소에 역점”
“처음 제협 회장으로 선출될 때 나의 공약이 사단법인화와 체계적 조직이었다. 사단법인이 된 이후엔 ‘영화산업 내의 수익 불균형구조 해소’였다. 가령 극장 부율(극장 입장료에 대해 극장 측과 배급사 측이 나누는 비율) 문제라든가, 스태프 처우 개선, 매니지먼트사 문제가 포함된다. 그중 첫 단계가 매니지먼트사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그들은 하는 일 없이 영화사 지분을 뺏아가고 있다. 또 카드 할인수수료도 문제다. 극장 입장료 2000원을 할인해주고 카드회사는 극장에 반을 부담시킨다. 다시 극장에서는 제작자에게 그 전액을 부담하게 한다. 영화제작자가 이통사나 카드사의 마케팅을 위해 왜 돈을 써야 하는가. 그들은 전체적으로 영화산업의 파이가 커진다는 논리를 편다. 그렇다면 모든 극장에서 카드 할인을 해줘야 하는데, 선택된 일부 극장에서만 할인을 해준다. 카드 할인을 못 해주는 극장은 망한다. 그런 것도 수익 불균형 구조에 들어간다.”
한국 영화산업이 확장되면서 생겨나는 이 같은 부작용들은 개인이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져야 영화산업이 더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영화 제작을 위해서는 많은 돈이 필요한데, 영화를 만든 사람들에게 수익이 제대로 돌아오고 있지 않다고 많은 제작자들이 생각하는 것이다. ‘실미도’로 200억원이 넘는 수익을 냈다고 하지만, 시네마서비스는 그 후에 개봉된 7편의 영화가 흥행에 실패하면서 적자로 돌아섰다.
“‘실미도’를 만든 사람인데 난 지금 집도 없고 차도 없다. 통장에는 100만원도 없다. 제작자들 중에서 개인적으로 잘사는 사람은 아주 소수에 불과하다. 강우석 감독이 돈 많을 것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제작사들 중에서 누적 적자 없는 데가 없다. 대부분의 경우 영화에 대한 열정으로 모든 것을 감수하고 고생하고 있다. 나도 지난 18년 동안 이 노력과 공을 들여서 레스토랑이라도 경영했으면 엄청나게 편하게 지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극장은 돈 벌어도 제작사는 손해 보는 구조
김형준 이사장은 원래 재정학을 공부해서 외교관이 되려고 했다. 방위산업체를 운영하던 부친의 뜻도 그랬다. 그러나 미국 유학 도중, 삼촌인 현진영화사 김원두 사장의 권유로 영화 수입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자신이 수입한 영화들이 한국에서 대박을 터뜨리자 짜릿한 쾌감을 느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영화 제작일을 하면서 작고한 부친이 물려준 상당한 유산을 모두 까먹었다. 지금도 그의 모친은 영화 제작일만 안 하면 경제적 도움을 주겠다고 한다.
“모든 것의 기본은 콘텐츠다. 예를 들어 전지현의 경우, 아시아 최고의 스타가 되었지만 그 이익은 매니지먼트사에 돌아간다. 콘텐츠를 만들어준 영화제작자는 아무런 반사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제작사가 힘들여 기획한 영화를 매니지먼트사에서는 배우만 대주고 과다한 지분을 요구한다. 하는 일 없이 공동제작에 자기들 이름 올리고 지분까지 요구하는 행위는 독점적 지위를 남용하는 것이다. 미국에서도 캘리포니아 주법에는 매니지먼트와 제작을 겸하지 못하도록 돼 있다. 독점방지법이다. 각 분야별로 룰이 있고 역할이 있는데 독점적 지위를 갖는 것은 산업적으로 봤을 때 안 좋다. 제작자로서 밥그릇을 지키려고 그러는 게 아니라, 정말 영화를 생각해서 하는 소리다.”
독점적 지위를 방지하는 법률도 필요하지만 그는 우선 대화를 통해 엔터테인먼트사들을 설득하려고 한다. 그래서 여론이라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제작자들의 타깃이 되고 있는 엔터테인먼트사는 싸이더스HQ와 플레이어 엔터테인먼트 등이다.
“스타라는 것은 초기에 관객들을 극장으로 끌고 올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일 뿐이지, 끝까지 책임을 지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작자도 투자자도 위험을 줄이기 위해 스타를 쓰는 것인데, 오래가지는 못한다. ‘집으로...’나 ‘마파도’ 같은 경우는 별로 유명하지 않은 배우를 써서 성공한 케이스다. 이런 제작이 늘어나야 한다.”
그는 극장 부율도 시정돼야 한다고 말한다. 현재 외국영화의 경우 극장과 제작사가 4대 6의 구조로 수익을 나누지만, 한국영화는 5대 5로 배분된다. 즉 한국영화 제작자들이 외화보다 10%의 수익에서 차별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런 불균형은 한국영화에 관객이 들지 않던 시절, 극장업자들에게 조금 더 한국영화를 상영할 수 있게 하는 매력적인 인센티브를 주기 위해서 시행된 것이지만, 이제 상황은 변했다. 관객들은 지금 외화보다 한국영화를 더 사랑하고 작품당 관객수도 훨씬 많다. 그렇다면 당연히 수익 배분이 동등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김형준 이사장이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시나리오를 쓴 ‘미스터 맘마’.
그가 운영하고 있는 한맥영화사에서는 세계일보 1억원 고료 당선작 김별아의 ‘미실’ 판권을 구입해서 영화를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이민용 감독의 ‘독도수비대’가 내년 2월 촬영에 들어가고, 현대판 예수처럼 구성된 양동근 주연의 독특한 캐릭터 영화 ‘양주갑’도 캐나다 올 로케이션으로 촬영하려고 한다. 그외에도 ‘모노폴리’ 등 8편의 영화를 한꺼번에 준비하고 있다.
“나는 영화판에 처음 들어올 때부터 사장 이하를 해본 적이 없어 지금 잘나가는 감독들과 친하게 지내지 못했다. 그래서 힘들었다. 재정학을 전공한 풍월로 영세한 한국영화를 증권가에 등록해보려고도 했다. 결국 그 시대가 오긴 왔는데 다른 사람이 먼저 그 일을 했다. 이제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다른 일을 할 수도 없다.”
이렇게 말했지만 김형준 이사장은 충무로의 아이디어 뱅크로 알려져 있다. 기획력이 뛰어나고 늘 새로운 트렌드를 흡수할 수 있는 작품들을 내놓는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프렌치 키스’, ‘덤 앤 더머’ 같은 외화의 자막 번역도 직접 했고 ‘가슴 달린 남자’나 ‘미스터 맘마’의 시나리오도 썼다. ‘미스터 맘마’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것이다.
나는 그에게 영화를 통해 세상에 어떤 말을 하고 싶은지 물었다. 그는 잠깐 고민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난 진지하지 않은 사람이라 그런 이야기를 하면 안 어울린다. 기독교에서도 모든 사람이 세상에 나온 데는 이유가 있다고 한다. ‘실미도’에서 얻은 보람이 있다. 김형준이 없었다면 ‘실미도’가 나왔을까, 그런 영화를 만들었다는 것이 감사하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인생에 대해 뒤돌아보고 생각하게 된다. 결국 영화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그들을 변화시키고 싶다. 이 나이에 큰돈 벌기는 틀렸으니 돈으로 봉사 못할 바에 그런 걸로라도 봉사해야지. 내 자식들이 나를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 있도록 살겠다. 그러나 우리 가족은 내 마음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아버님에게서 많은 유산을 물려받았는데 모두 영화에 썼다. 겉으로는 후회스럽다고 말하지만 속으로는 후회하지 않는다. 앞으로 만들 영화에 대한 기대감이 있기 때문이다. 기대가 있으면 후회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