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에 있는 부패방지위원회.
7월부터 시행되는 개정된 부방법 시행령은 △부패 신고에 대한 보상금을 2억원에서 20억원으로 늘리고 △환수된 돈이 없더라도 공익 기여가 현저할 경우 내부고발자에게 포상금을 주며 △내부고발자에게 보복행위를 하거나 그의 신분을 누설한 사람을 형사처벌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이 같은 법의 보호는 공직자와 관련된 부패 사실을 신고한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것이다.
한 가지 상황을 가정해보자. 레미콘회사가 원가 절감을 위해 모래 비중을 크게 줄여 ‘부실 콘크리트’를 만들었다. 이 같은 사실을 알게 된 한 직원이 부실 공사로 인한 사회적 피해를 우려해 내부고발을 하려 해도 마땅히 갈 곳이 없다. 부패방지위원회(위원장 정성진·이하 부방위)는 ‘공직 사회의 부패가 아니기 때문에’ 아예 사건을 접수받지 않는다. 또 검찰 등 수사기관에 의뢰하면 곧장 고발자 신원이 노출되어 각종 불이익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처지에 놓인 공익제보자들을 위해 필요한 법과 조직이 부방법과 부방위인데도 법의 한계 때문에 공익제보자들과 공익을 저해하는 모든 부패 행위를 다루지 못하는 한계가 있어왔던 것. “부방위 이름을 국가청렴위원회로 바꿀 게 아니라, 공직자부패방지위원회로 바꿔야 한다”는 비아냥거림이 나오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어디까지가 ‘공공기관’과 ‘공직자’ 범위에 속하는지가 일선의 내부고발 현장에서 명확하게 규정되기 어렵다는 점도 문제다. 공익제보자 모임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공직유관 단체에 대해 내부고발을 했지만, 부방위는 이 단체가 공공기관에 속하지 않는다며 접수조차 하지 않았으며, 공적 자금을 지원받아 사실상 정부 소유인 은행의 분식회계 또한 부방위는 다룰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고 했다”고 비판했다.
이번 개정안에서 부방위에 조사권을 부여하는 문제가 전혀 다뤄지지 않은 점에 대해서도 부방위 안팎의 실망감이 크다. 현재 부방위는 신고자에 한해서만 조사할 뿐, 피신고자에 대한 조사 권한이 없다. 이번 개정안에 ‘피신고인에게 자료 제출을 요구할 수 있다’는 항목이 삽입됐지만, 피신고인이 거부하면 그만이다. 성해용 부방위 상임위원은 “조사권이 없어 정확한 부패 혐의를 가려내지 못해 유관기관에 이첩만 하기 때문에 실제로 부패행위를 적발하고 시정하는 궁극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 한계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고 털어놓았다.
이에 열린우리당 정성호 의원은 ‘공익제보자보호법’(가칭)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환경, 노동, 교육, 보건, 의료 등 민간 영역에서의 내부고발도 공익에 부합하는 경우 법이 정한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 법안은 또한 공익과 밀접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에 대해 내부고발을 의무화하는 조항도 포함하고 있다. 김승민 한국투명성기구 정책위원은 “부방위는 공직비리 수사나 인사검증 기능 이관을 추진하고 있다”면서 “조직 확대를 꾀하기보다는 우리 사회의 부패행위를 시정하고 방지하는 본래의 목적에 충실해달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