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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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9일 서울의 하루는 영화 세트

  •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입력2004-05-27 17: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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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9일 서울의 하루는 영화 세트

    ‘한 도시 이야기 9404’를 기획한 이재용 감독.

    1994년 6월9일을 기억하십니까. 국경일도, 우리가 기억하는 역사적 기념일도 아닌 그저 좀 더운 초여름, 한 주의 개성 없는 목요일이었다. 물론 누구에겐가는 특별한 날이었을 것이다. 누구는 결혼을 했을 테고, 누구는 첫사랑의 시련을 당한 날이었을 수도 있다. 어떤 이는 첫 출근을 했을 것이고, 어떤 이는 교통사고를 당했을지도 모른다. 혹자는 태어났고, 혹자는 죽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날 그 순간이 특별하지 않았던 사람이 있었을까. 그 시간은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테니 말이다. 그러므로 10년 전 6월9일 어느 목요일, 1000만 인구가 살고 있는 서울이란 도시에서는 1000만개의 스토리가 만들어졌을 것이다.

    그때 이재용 감독- ‘정사’와 ‘스캔들’로 지금은 유명하지만 당시 그는 단편영화 ‘호모 비디오쿠스’로 영화계 내부에서만 알려진 감독 지망생이었다-은 “그렇다면 왜 1000만개의 영화가 만들어질 수 없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다.

    “왜 영화는 우리가 영화라고 알고 있는 것만 영화여야 하는가를 심각하게 고민했고, 누구나 영화를 찍을 수 있어야 한다고 확신했어요.”

    상업영화사인 신씨네로부터 장편 저예산 영화 감독 제안을 받고 있던 이감독은 영화사 사장이 바빠서 잠시 ‘방심한 틈을 타’ 일을 저질러버렸다. ‘손오공이 털을 뽑아 수많은 자신의 분신을 만들어내듯’ 하루 동안 이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 수만큼의 영화를 만들어 서울의 지도를 완성하겠다는 야심만만한 프로젝트를 만든 것이다.

    10년 만에 이재용 감독 또 도전



    결국 1994년 6월9일 그의 뜻에 동조하는 720명의 영화, 미술, 사진, 음악 등 거의 모든 장르의 예술가들과 일반 시민들이 합세하여 서울의 24시간을 기록했다. 이감독처럼 필름으로 서울 사람들의 인물화를 채집한 이도 있고, ‘아줌마’와 ‘여학생’ 연작으로 유명한 사진작가 오형근은 사진을 찍었다. 설치미술작가 최정화는 사진과 시각이미지들을 통해 서울의 하루를 기억했다. 일반 시민들도 그날 자신이 본 서울을 기록했다. 그때 모은 자료의 일부는 서울시의 ‘타임캡슐’로 들어갔지만, 영화와 미술과 인류학적 고찰을 넘나드는 방대한 이미지들은 “언젠가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라는 영화사 사장의 위로(?)와 함께 창고에 보관되어왔다.

    “영화 밖보다 영화인들 사이에서 이 프로젝트가 무모하고, 치기 어린 행동이라고 보는 시선이 더 많았던 것 같아요. 사실 지금이라면 저도 시도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러나 당시엔 너무나 절실했죠. 재미로 해보자는 것도 아니었고, 무척 무거운 의미였지요. 지금 돌아보면 그 같은 반성과 대담함이 지금까지 영화를 만들어오게 한 원동력이 되었죠.”

    그 후 10년 동안 이감독은 ‘정사’와 ‘스캔들’로 가장 성공한 감독이 되었으며 “적어도 10년 뒤에 다시 한번 이 프로젝트를 시도하겠다”는 약속도 지켰다.

    2004년 6월9일 ‘아무나 아무거나 아무렇게나’ 서울을 기록하게 될 대규모 프로젝트 ‘한 도시 이야기 9404’에는 ‘살인의 추억’의 봉준호 감독, ‘봄날은 간다’의 허진호 감독, ‘장화 홍련’의 김지운 감독 같은 젊은 흥행 감독들과 김중만, 배병우, 구본창 같은 유명 사진작가들도 여럿 참여하지만, 슬로건처럼 카메라 한 대만 있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눈치챘겠지만, ‘한 도시 이야기 9404’는 디지털카메라와 휴대폰카메라가 일상화된 2004년의 트렌드와 꼭 맞아떨어진다. 이감독의 생각은 꼭 10년이 빨랐던 셈이다.

    이감독이 10년 전에 모은 이미지들은 서울이 얼마나 빨리, 그리고 얼마나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단적으로 옛 중앙청과 청계고가도로-이감독은 설마 이것이 사라지랴, 상상도 못해 정밀하게 찍진 않았다고 아쉬워한다-, 황학동이 사라졌고 상암동 판자촌이 월드컵 타운으로 바뀌었다. 당시엔 휴대전화와 인터넷이 보편화되지 않아 사람들은 직접 만나거나 공중전화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또 멀티플렉스가 아닌 단관 극장에서 영화를 보았다.

    “서울이란 도시엔 애증이 있어요.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것, 역동적이라는 것, 그래서 여행 가면 돌아오고 싶은 곳이지만, 사려 깊지 못한 방향으로 발전한다는 것, 각박하고 관대하지 못한 도시이기도 하지요.”

    서울이 얼마나 각박한지 증명이라도 하듯, 서울 시정 프로젝트처럼 보이기도 하는 ‘한 도시 이야기 9404’는 서울시의 후원을 전혀 받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10년 전과 똑같이 전적으로 자발적 참여자들에 의해 진행된다. 이감독은 “비상업적 프로젝트라 각오했다”면서도 섭섭함을 감추지 못한다. 이 촉망받는 감독은 예술의 상업적이고 산업적인 시스템에서 자유로운 것일까?

    “아뇨, 오히려 반대지요. 영화의 시스템에 매여 있기 때문에 수없이 많은 욕망들이 생겨나요. 그걸 채우고 싶은 생각에 수없이 많은 ‘나’를 만들고 싶은 겁니다. 상업영화 감독이 갖는 초조함의 최대치가 바로 ‘한 도시 이야기’가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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