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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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협회여, ‘夢’에서 깨어나라!

정몽준 회장 독재체제 속 무능력·무책임·무원칙 ‘중병’…몇몇 사람이 요직 독점

  • 최원창/ 굿데이신문 기자 gerrad@hot.co.kr

    입력2004-05-27 16: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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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이 높으면 골이 깊고, 나무가 크면 그림자가 길다.’ 정몽준 회장이 1인 ‘독재체제’로 이끌어온 12년간의 대한축구협회(이하 협회)의 우울한 자화상이다. 2002년 월드컵 유치와 성공적인 개최, 그리고 한국의 4강 위업으로 치부가 가려진 한국축구의 이면에는 무능력, 무책임, 무원칙 등 ‘3무’의 병폐로 곪아가고 있는 협회가 있다.

    3무 병폐의 중심엔 협회를 사유화하며 독단적으로 운영해온 정회장이 자리잡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협회 인사들이 시스템보다는 ‘회장의 뜻’에만 좌고우면하다 보니 연속성 있는 축구행정과 꾸준한 대표팀 관리는 애당초 기대할 수 없었다.

    움베르투 코엘류 감독 퇴진 이후 협회의 ‘눈 가리고 아웅’식 대처와 협회 내부의 불협화음, 여전히 사태 파악을 하지 못하는 협회 고위층의 잇따른 실언 등은 썩은 물이 고일 대로 고인 협회의 현실을 그대로 방증한다.

    축구팬들의 분노가 극에 이른 지 오래고, 국가대표팀의 희생양이 돼왔던 각 프로구단들의 불만도 하늘을 찌를 듯하다. “2006년 독일월드컵에서 다시 한번 세계를 놀라게 하자”는 팬들의 바람은 요원한 것일까. 축구협회의 구조적인 모순을 바로잡기 위해선 어느 곳부터 칼질을 해야 할까.

    성적 부진 때 감독만 희생양·협회는 인적 쇄신 ‘감감’



    1993년 정회장 취임 이후 한국축구는 4년을 주기로 ‘위기론’에 봉착해왔다. 96년 박종환 퇴진, 2000년 허정무 퇴진, 그리고 2004년 코엘류 퇴진 등 공교롭게도 월드컵을 마치고 2년 뒤 대표팀 감독 경질과 함께 ‘한국축구 위기론’이 대두돼온 것.

    그때마다 나온 해결책은 하나같이 똑같다. ‘기술위원회의 시스템 개선과 함께 세계축구 흐름을 바탕으로 대표팀을 강화하고, 조직 내 정확한 업무분담 체계를 통한 전문화를 실현한 뒤 이를 통해 축구발전의 뿌리인 꿈나무 육성에 대한 장기적인 비전을 제시하고, 그동안 대표팀 위주로 흘렀던 축구문화를 K리그 중심의 문화로 연착륙시켜 리그의 산업화를 이끌어야 한다.’

    하지만 협회는 당장 눈앞에 닥친 국제대회 성적내기에 급급했다. 성적이 나쁠 때마다 협회의 처방은 감독을 희생양 삼아 새로운 인물을 내세우는 것이었고, 그때마다 새 감독들이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루며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근본적인 처방 없는 언 발에 오줌 누기식 대응법이 아시아에서는 통했을지 몰라도 세계대회에서는 어림없는 일이었다.

    사실 정회장 취임 이후 12년간 제대로 된 성적은 2002년 월드컵 4강뿐이다. 매 대회마다 조별 예선 탈락으로, 일취월장 성장해가는 일본에 항상 뒤처졌던 게 사실이다. 성적 지상주의를 외쳤던 협회의 정책이 그만큼 잘못됐던 셈이다.

    그러나 협회 고위층은 개혁의 필요성을 절감하지 못했다. 2000년 올림픽 8강 진출 실패와 아시안컵 졸전으로 2002년 월드컵 16강 진출에 비상이 걸리자 그때서야 몇몇 개혁안을 내놓고 실행했지만 개혁 속도는 당연히 더뎠다. 최고위층을 포함한 인적 쇄신 없이는 방향성과 추진력을 동반한 개혁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정회장 재임기간 동안 한국축구가 외형적인 발전을 거듭해왔다는 사실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탄탄한 재정기반을 마련했고, 월드컵 개최로 한국축구의 외교력이 급상승했다. 월드컵 개최를 통한 7개의 축구전용경기장과 국가대표 전용 트레이닝 센터 등 각종 인프라 구축도 정회장의 빼놓을 수 없는 업적이다.

    그럼에도 정회장이 축구팬들 사이에서 ‘탄핵 대상’으로까지 몰리는 데는 정회장의 독단적인 운영이 10여년간 협회를 짧은 안목의 임기응변식 사고에 머물게 하며 ‘지속적인 발전’이라는 시대적 요구를 충족시킬 수 없는 무능한 인적 구성과 시스템의 파행을 만들어왔기 때문이다.

    협회의 명목상 최고의사결정 기구는 26명으로 구성된 이사회다. 하지만 ‘친(親)정몽준 체제’로 꾸려진 이사회에서 회장의 의사와 다른 의견이 도출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게다가 정회장은 모든 정보와 인맥을 독점한다. 대표팀 경기, 감독 선임, 정회장의 국제축구연맹(FIFA) 활동 등은 현대중공업 출신인 가삼현 국장이 이끄는 국제국에 집중돼 있다.

    핵심 업무가 국제국에 몰려 있다 보니 협회 내부에서 위화감이 생기는 것은 불 보듯 뻔하고, 국제국은 막강한 권력으로 종종 월권을 범하며 자신들이 ‘진골’임을 과시한다.

    축구인 출신들의 인맥은 조중연 부회장이 관리하고 있지만 조부회장의 뜻에 맞는 몇몇 축구인들이 협회의 요직을 독점하며 오히려 축구인들을 두 패로 가르는 분파주의적인 행태를 보여왔다. 정회장의 포용 능력이 편협하다 보니 축구인들이 주축이 돼야 할 기술 분야의 발전은 도외시될 수밖에 없었다.

    코엘류 감독 퇴진 후 새 감독 선임 과정에서도 기술위원회가 국제국이 넘겨주는 후보 리스트를 발표하는 ‘마이크’ 수준을 넘지 못했던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김진국 기술위원장 사퇴 뒤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격’인 조영증 위원장의 선임, 이틀 뒤 조위원장의 사퇴와 이회택 위원장의 등장은 한 편의 ‘코미디’를 연상시킬 정도다.

    행정과 기술을 철저히 분리해 운영하는 대부분의 축구선진국들과는 달리 행정과 기술 분야 모두 ‘친정몽준 세력’이 독식해온 부작용인 셈이다. 감독의 중도 경질과 함께 퇴진했던 조중연 노흥섭 김진국 등 역대 기술위원장들이 여전히 협회 내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는 것도 팬들로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잉글랜드·프랑스 강력한 구조조정으로 환골탈태

    정회장은 FIFA 내에서 개혁세력으로 분류된다. FIFA를 1인 독재체제로 이끌던 아벨란제 전 회장에 과감히 맞섰고, 아벨란제의 대를 이은 블라터 현 회장에 대해 부정부패 의혹으로 불신임을 묻는 등 세계 축구계에서는 블라터 체제의 확실한 대항마 구실을 하고 있다. 하지만 정회장은 이제 자신이 이끄는 협회를 냉철하게 바라봐야 한다. 이번 비판의 소용돌이는 정회장이 은근슬쩍 넘어갔던 이전과 다르기 때문이다.

    축구 종주국 잉글랜드는 2000년 1월 광고회사 경영자 출신인 애덤 크로저가 사무총장에 취임하면서 젊고 역동적인 조직으로 탈바꿈했다. 91명이나 되던 이사회를 12명으로 줄이고 과감한 인적 쇄신으로 협회 직원의 평균 연령을 55살에서 32살로 낮췄다. 또 인력개발국을 설치해 70% 이상 직원을 전문경영인을 스카우트해 채용한 사례는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프랑스 역시 단기처방 대신 30년간의 꾸준한 유망주 발굴로 세계 최강에 올랐다. 에메 자케 전 프랑스 감독의 “장기 목표가 있다면 눈앞의 경기 결과에 연연해하지 말라”는 말처럼 협회는 선언적인 의미의 10대 개혁안 대신 구체적인 비전을 만들어야 한다.

    월드컵 이후 한국축구의 위기는 예견되었다. 거스 히딩크 감독이 “한국축구가 이제는 유소년축구를 위한 토양을 만들고 K리그를 성공적인 리그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던 이유는 한국축구가 지금처럼 척박한 토양으로는 ‘지속적인 발전’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변화를 위한 몸살을 앓고 있는 대한축구협회. 이번 기회야말로 협회의 쇄신으로 한국축구가 기적의 주인공이 아닌 세계적인 강호 대열에 오를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할 때다. 변혁의 물꼬를 트고 성공적인 개혁을 이루기 위해서는 협회의 수장인 정회장이 더 이상 거스를 수 없는 이 물결을 가슴 깊이 느끼고 혁명적이면서도 체계적인 변화에 앞장설 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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