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피렌체, 시드니. 이 아름다운 세 도시를 방문한다고 하자. 대부분은 당장 서점으로 달려가서 도시의 세밀한 여행안내서를 고를 것이다. 안내서에는 화려한 풍경사진과 볼거리, 먹을거리, 잠잘 곳과 교통수단 이용법 같은 실제적인 정보들이 가득하다.
그러나 막상 현지에 가보면 그런 책들이 큰 도움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관광객들은 늘 새로운 상황에 처하게 되고, 이미 아는 것 외에 색다른 정보를 얻고자 하기 때문. 그래서 무엇보다 정형화된 여행안내서 수준을 넘어 무언가 본질적인 것을 알려주는 책이 있다면 금상첨화 아닐까.
작가의 시선으로 이 아름다운 도시들을 그려낸 ‘작가와 도시’ 시리즈는 여기에 가까이 다가간 책으로 볼 수 있을 듯하다. ‘우리 시대 일급 작가들이 한 도시의 가장 내밀하고 독특한 비밀을 담아낸, 상투적인 여행안내서에 대한 신선한 해독제’라는 광고 문구처럼 시리즈는 신선한 느낌을 준다. 우선 ‘게으른 산책자’(파리 편) ‘아주 미묘한 유혹’(피렌체) ‘휴가지의 진실’(시드니) 등 세 권이 나왔다.
이들 책에는 화려한 사진도, 실용적인 여행 정보도 들어 있지 않다. 다만 도시에 얽힌 다양한 역사와 문학, 사람들 얘기로 가득하다. 따라서 꼭 가봐야 한다고 생각되는 대표적인 명승지를 한바퀴 돌아본 이들이라면 이런 책을 들고 한가롭게 뒷골목을 거니는 것도 새로운 세계를 만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파리 편을 쓴 에드먼드 화이트는 ‘한 소년의 이야기’ ‘결혼한 남자’ 등으로 유명한, 16년째 파리에서 살고 있는 미국인 소설가다. 그는 근대와 현대, 혼잡함과 고요함, 예술과 스캔들, 온갖 인종들이 뒤섞여 살아가는 파리를 제대로 느끼려면 ‘게으른 산책자(fla^neur)’가 돼야 한다고 조언한다.
시간에 구애하지 않고 눈길 닿는 대로 거닐며 저자는 우선 파리 역사에 독특한 흔적을 남긴 사람들을 추적한다. 그들 가운데는 첨단 유행을 따르고 골동품 사들이는 데 유산을 탕진한 시인 보들레르, 19세기 말 제약이 많은 여성으로서 남성 못지않은 다양한 삶을 체험했던 소설가 콜레트, 잃어버린 시간 속을 산책하듯 탐미한 프루스트 같은 사람들이 있다.
저자가 발견한 파리의 매력 가운데는 ‘작고 이상한 박물관’들도 있다. 해질 무렵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크리스털 제품들이 볼 만한 크리스털박물관, 조르주 상드와 예술혼을 나누던 남자들에게 헌정된 ‘낭만적 삶의 박물관’, 사냥박물관과 안경박물관, 향수박물관과 고식물 박물관 등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여행자들의 눈을 크게 뜨게 하기에 충분한 것들이다.
피렌체 하면 가톨릭교회의 장엄함과 르네상스 시대의 화려한 미술, 또는 ‘노블리스 오블리제(지배층의 도덕적 의무)’의 대명사가 된 메디치가를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아주 미묘한 유혹’은 그것들을 멀리 밀어놓는다. 미국인 소설가이면서 이탈리아에 관한 책을 두 권 쓴 저자 데이비드 리비트는 피렌체에 정착했거나 잠시 살았던 외국작가들에 대한 얘기를 늘어놓는다.
이밖에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피렌체 아르노강의 다리를 복구하기 위해 파견된 미국 흑인 공병대에 대한 얘기도 흥미롭다. 백인에게 총을 겨누는 것이 허락되지 않은 이 흑인 병사들은 독일군이 파괴한 ‘사계상(四季像)’ 가운데 ‘봄’의 머리를 찾기 위해 강바닥을 헤집고 다녔다.
“시드니 항구의 아름다움을 독자에게 전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나는 포기했다.”
19세기 영국 소설가 앤터니 트롤럽의 말이지만 이 말은 지금도 유효하다고 ‘휴가지의 진실’을 쓴 소설가 피터 케리는 주장한다. 케리는 소설 ‘오스카와 루신다’ ‘잭 매그즈’ 등으로 영어권 최고의 문학상인 부커상을 두 번이나 받은 유명 소설가. 시드니 출신이지만 12년 전부터 뉴욕에서 생활하고 있다.
저자는 자신의 뿌리인 시드니의 여러 가지 특징들을 물 바람 흙 불 등 4원소로 설명한다. 남태평양의 푸른 바다와 요트·파도타기족들에게 인기 있는 휴양지의 이미지, 척박한 토양, 주기적으로 산불을 발생시키는 강력한 바람이 있다는 식이다.
거기에 영국과 결탁한 매판자본, 백인들이 고의로 누락한 역사, 식민지 개발이라는 명분 뒤에 얼마나 큰 범죄가 저질러졌는지와 같은 민감한 부분들도 친구들의 입을 통해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휴가지의 진실’을 그렇게 적나라하게 들려주면서도 저자는, 자연친화적 감정을 잃지 않는 시드니 사람들의 매력도 빠뜨리지 않는다.
에드먼드 화이트 외 지음/ 강주헌 외 옮김/ 효형출판 펴냄/ 각권 270쪽 안팎/ 각권 9000원 안팎
그러나 막상 현지에 가보면 그런 책들이 큰 도움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관광객들은 늘 새로운 상황에 처하게 되고, 이미 아는 것 외에 색다른 정보를 얻고자 하기 때문. 그래서 무엇보다 정형화된 여행안내서 수준을 넘어 무언가 본질적인 것을 알려주는 책이 있다면 금상첨화 아닐까.
작가의 시선으로 이 아름다운 도시들을 그려낸 ‘작가와 도시’ 시리즈는 여기에 가까이 다가간 책으로 볼 수 있을 듯하다. ‘우리 시대 일급 작가들이 한 도시의 가장 내밀하고 독특한 비밀을 담아낸, 상투적인 여행안내서에 대한 신선한 해독제’라는 광고 문구처럼 시리즈는 신선한 느낌을 준다. 우선 ‘게으른 산책자’(파리 편) ‘아주 미묘한 유혹’(피렌체) ‘휴가지의 진실’(시드니) 등 세 권이 나왔다.
이들 책에는 화려한 사진도, 실용적인 여행 정보도 들어 있지 않다. 다만 도시에 얽힌 다양한 역사와 문학, 사람들 얘기로 가득하다. 따라서 꼭 가봐야 한다고 생각되는 대표적인 명승지를 한바퀴 돌아본 이들이라면 이런 책을 들고 한가롭게 뒷골목을 거니는 것도 새로운 세계를 만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파리 편을 쓴 에드먼드 화이트는 ‘한 소년의 이야기’ ‘결혼한 남자’ 등으로 유명한, 16년째 파리에서 살고 있는 미국인 소설가다. 그는 근대와 현대, 혼잡함과 고요함, 예술과 스캔들, 온갖 인종들이 뒤섞여 살아가는 파리를 제대로 느끼려면 ‘게으른 산책자(fla^neur)’가 돼야 한다고 조언한다.
시간에 구애하지 않고 눈길 닿는 대로 거닐며 저자는 우선 파리 역사에 독특한 흔적을 남긴 사람들을 추적한다. 그들 가운데는 첨단 유행을 따르고 골동품 사들이는 데 유산을 탕진한 시인 보들레르, 19세기 말 제약이 많은 여성으로서 남성 못지않은 다양한 삶을 체험했던 소설가 콜레트, 잃어버린 시간 속을 산책하듯 탐미한 프루스트 같은 사람들이 있다.
저자가 발견한 파리의 매력 가운데는 ‘작고 이상한 박물관’들도 있다. 해질 무렵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크리스털 제품들이 볼 만한 크리스털박물관, 조르주 상드와 예술혼을 나누던 남자들에게 헌정된 ‘낭만적 삶의 박물관’, 사냥박물관과 안경박물관, 향수박물관과 고식물 박물관 등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여행자들의 눈을 크게 뜨게 하기에 충분한 것들이다.
피렌체 하면 가톨릭교회의 장엄함과 르네상스 시대의 화려한 미술, 또는 ‘노블리스 오블리제(지배층의 도덕적 의무)’의 대명사가 된 메디치가를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아주 미묘한 유혹’은 그것들을 멀리 밀어놓는다. 미국인 소설가이면서 이탈리아에 관한 책을 두 권 쓴 저자 데이비드 리비트는 피렌체에 정착했거나 잠시 살았던 외국작가들에 대한 얘기를 늘어놓는다.
이밖에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피렌체 아르노강의 다리를 복구하기 위해 파견된 미국 흑인 공병대에 대한 얘기도 흥미롭다. 백인에게 총을 겨누는 것이 허락되지 않은 이 흑인 병사들은 독일군이 파괴한 ‘사계상(四季像)’ 가운데 ‘봄’의 머리를 찾기 위해 강바닥을 헤집고 다녔다.
“시드니 항구의 아름다움을 독자에게 전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나는 포기했다.”
19세기 영국 소설가 앤터니 트롤럽의 말이지만 이 말은 지금도 유효하다고 ‘휴가지의 진실’을 쓴 소설가 피터 케리는 주장한다. 케리는 소설 ‘오스카와 루신다’ ‘잭 매그즈’ 등으로 영어권 최고의 문학상인 부커상을 두 번이나 받은 유명 소설가. 시드니 출신이지만 12년 전부터 뉴욕에서 생활하고 있다.
저자는 자신의 뿌리인 시드니의 여러 가지 특징들을 물 바람 흙 불 등 4원소로 설명한다. 남태평양의 푸른 바다와 요트·파도타기족들에게 인기 있는 휴양지의 이미지, 척박한 토양, 주기적으로 산불을 발생시키는 강력한 바람이 있다는 식이다.
거기에 영국과 결탁한 매판자본, 백인들이 고의로 누락한 역사, 식민지 개발이라는 명분 뒤에 얼마나 큰 범죄가 저질러졌는지와 같은 민감한 부분들도 친구들의 입을 통해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휴가지의 진실’을 그렇게 적나라하게 들려주면서도 저자는, 자연친화적 감정을 잃지 않는 시드니 사람들의 매력도 빠뜨리지 않는다.
에드먼드 화이트 외 지음/ 강주헌 외 옮김/ 효형출판 펴냄/ 각권 270쪽 안팎/ 각권 9000원 안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