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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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 전도사 그 아름다운 무모함

  • 입력2004-05-27 18: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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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 크게 될 놈일세.”

    어린 시절 동네 공터에서 친구들과 뛰어놀고 있는데 낯선 노인이 다가와 던진 한 마디. 이 말은 벤처기업의 대부로 불렸고, 자신이 키워온 미래산업을 직원들에게 물려주고 인재양성을 위해 KAIST에 300억원을 기부한 정문술씨(66)의 지금을 있게 했다. 정씨는 그 노인이 해장술에 취한 삼류 관상쟁이었다 해도 자신에겐 은인이라고 평가한다. 그 말이 어떤 난관 앞에서도 자신으로 하여금 “결국 내 인생은 해피엔딩이 되리라”고 낙관하게 해줬다는 것.

    그래서 스스로 ‘크게 될 놈’에 어울리는 짓만 하려 애썼고, 덕분에 작고 편벽되지 않게 살 수 있었으며 미래지향적일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정문술의 아름다운 경영’(키와 채 펴냄)에 나오는 얘기다.

    상시적 경제위기 상황을 말하는 시대, 삶을 반전시킬 만한 경제 경영서를 찾는 이들이 많은 때다. 정문술의 경영철학이 녹아 있는 이 책은 그런 이들에게 작은 길 하나를 보여줄 법하다. 물론 자서전이므로 다소 과장된 면이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고난을 뚫고 일관되게 미래를 준비하고, 도덕적이며 양심적인 기업을 만들기 위해 애썼던 일화들은 감동을 준다. 전북 임실 태생으로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에서 18년간 근무했고, 퇴직금으로 금형공장을 인수해 파산하는 등 혹독한 시련을 겪었던 그는 1983년 반도체 제조장비업체인 미래산업을 창업했다.



    초기 성공가도를 달리는 듯했지만 심각한 경영난에 부닥쳐 가족 동반자살까지 생각했을 만큼 심각한 좌절도 겪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희망을 이야기하며 기술투자를 아끼지 않았고 반도체 검사장비 ‘테스트 핸들러’의 국산화에 성공했다. 2000년에는 국내 처음으로 미래산업을 미국 나스닥시장에 상장하는 개가를 올렸다.

    그의 경영철학은 ‘거꾸로 경영’이었다. 남들이 다 가는 넓은 길이라도 옳지 않으면 가지 않는 고집이 있었다. 회사에 친인척을 배제하고, 종업원과 동업자 관계를 유지하며, IMF 외환위기 때 매출액을 넘는 연구개발비를 쏟아부었다.

    어쩌면 ‘벤처’라는 단어가 더 이상 희망의 어감을 주지 않는다고, 벤처강국론을 주장하는 저자의 의견에 공감하지 않을 수도 있다. 저자는 이에 대해 할 말이 많다.

    “정작 문제는 우리 모두의 가슴속에 깊게 자리잡고 있는 조급증이다. 굴뚝 회귀론이니 벤처 포기론이니 하는 주장들도 있었다. 그러나 한국의 벤처는 이제 시작이다.”

    황혼의 나이에도 “나는 여전히 열정과 위험을 사랑한다. 그 아름다운 무모함을 죽는 날까지 곁에 두고 싶다”는 정씨의 철저한 긍정이 아름답게 들린다.



    확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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