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정서가 짙게 깔려 있는 영화 ‘더 랍스터’의 한 장면.
영화 ‘더 랍스터’는 그리스 중견감독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패러디 드라마다. 가상 미래를 배경으로 세상의 부조리를 풍자하는데, 이곳에서 성인은 반드시 커플을 이뤄야 생존할 수 있다. 만약 혼자가 되면 수용소 같은 곳에 들어가 45일 안에 다시 짝을 찾아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사람으로서 삶이 끝나고 동물로 환생한다. 이곳에 건축가 데이비드(콜린 패럴 분)가 수용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말하자면 데이비드는 45일간의 시한부 삶을 선고받은 셈이다. 이렇게 ‘더 랍스터’는 도입부터 ‘죽음’의 엄정한 도착을 상기하게 만든다.
무겁고 슬픈 도입부의 배경음악은 베토벤 ‘현악4중주 1번’ 2악장이다. 느린 아다지오의 2악장은 ‘더 랍스터’의 전체 감성을 결정짓는다. 이 곡은 베토벤이 ‘로미오와 줄리엣’의 ‘무덤 시퀀스’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한 것으로 유명하다. 로미오는 가족묘에 누워 있는 줄리엣이 죽은 줄 알고 독약을 마신다. 다시 깨어난 줄리엣도 죽어 있는 연인을 보고 단도로 자살한다. 바로 이 부분이 무덤 시퀀스다. 어린 연인의 비극적인 죽음이 청년 베토벤 음악의 모티프였다. 말하자면 베토벤 현악4중주는 죽음을 위무하는 진혼곡인 셈이다. 베토벤의 이 곡은 ‘더 랍스터’의 전체 감성, 그리고 이야기까지 결정짓는 구실을 한다. ‘더 랍스터’의 데이비드도 ‘슬픈’ 로미오처럼 연인의 운명을 뒤따를 것이다.
1945년 소련에서 창립된 보로딘 4중주단. 작곡가 쇼스타코비치는 이 악단이 연주하는 자신의 ‘현악4중주 8번’ 4악장을 듣고 눈물을 흘렸다.
영화 후반부는 전혀 다른 상황 전개다. 이번엔 다른 사람과 커플이 되면 안 된다. 한쪽에선 사랑해야 생존할 수 있는데, 또 다른 한쪽에선 사랑하면 죽는다. 이곳은 수용소에서 도주한 탈주자들의 세계다. 숲에서 야생동물처럼 사는 이들은 철저히 혼자로서의 삶을 실천한다. 데이비드도 탈출해 이곳에 합류한다. 그런데 데이비드는 자유를 상징하는 자연에서 사랑이 금지되는 역설적 상황을 뒤늦게 알게 된다. 자유를 찾아 탈주한 사람이 스스로 사랑을 억압하는 이상하고 기괴한 느낌 역시 음악의 비유법을 통해 표현된다. 이번엔 쇼스타코비치 ‘현악4중주 8번’ 4악장이다. 아다지오보다 더 느린 라르고의 4악장은 비극적 선율로 유명하다. 이 곡은 쇼스타코비치가 파시즘과 전쟁 희생자들을 위무하고자 작곡한 것이다. 말하자면 이 곡은 억압의 희생자들에게 헌정됐다. 작곡가 스스로 보로딘 4중주단의 연주를 듣고 눈물을 흘렸을 정도로 대단히 슬픈 작품이다.
데이비드는 결국 숲에서 만난 연인(레이철 바이스 분)과 함께 이곳도 탈출한다. 달리 말하면 이젠 아무 데도 갈 곳이 없어진 셈이다. 다시 화면에선 베토벤 현악4중주가 연주되기 시작한다. 연인의 죽음을 위무하던 그 곡 말이다. 문명도, 자연도 사랑의 불모지가 돼버렸다면, 이제 세상에 남은 건 죽음뿐이다. ‘더 랍스터’의 마지막엔 그런 막막한 감정이 오래 남는다. 실내악들은 죽음의 심연에 빠진 허무한 마음을 천천히 위무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