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제공 · EMK뮤지컬컴퍼니]
이 작품은 프랑스 작가 빅토르 위고의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한 뮤지컬이다. ‘웃는 남자’는 입이 흉하게 가로로 찢어져 멀리서 보면 웃는 것처럼 보이는 얼굴을 갖게 된 그윈플렌을 지칭한다. 언제나 웃고 있지만 내면에는 증오와 슬픔을 품은 인물이다. DC코믹스 배트맨 속 희대의 악당 ‘조커’의 원형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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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우연히’가 반복되는 건 착각이 아니다. 빈약한 드라마는 이 작품의 약점이기도 하다. 스토리만 놓고 보면 ‘막장’을 한 스푼 추가한 아침드라마 같다. 하지만 뮤지컬만의 단점이라고는 할 수 없는 게 원작이 그렇기 때문이다. 스토리의 아쉬움을 채우는 건 배우들의 연기와 노래, 그리고 무대의 화려함이다.
그윈플렌의 입을 큼직하게 형상화한 강렬한 무대 디자인의 핵심 콘셉트는 ‘상처’. 오필영 무대 디자이너는 “가난한 자의 세계와 부유한 자의 세계는 상처를 대하는 방식에서 차이를 보인다”며 “상처를 숨기지 않는 그윈플렌과 상처를 숨기려 애쓰는 귀족들의 차이를 무대에 표현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대본과 연출은 로버트 조핸슨이 맡고, 주요 넘버는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와 ‘황태자 루돌프’ ‘몬테크리스토’ 등으로 잘 알려진 프랭크 와일드혼이 작곡했다. 두 사람 다 ‘뮤덕’(뮤지컬 덕후)이 어떤 스타일을 좋아하고 원하는지 잘 아는 전문가다. 종종 자기 복제 같다는 비판도 받지만 어쩌겠는가. 그 느낌을 좋아한다면 알면서도 또다시 빠져들 수밖에.
[사진 제공 · EMK뮤지컬컴퍼니]
김유선 분장 디자이너에 따르면 그윈플렌의 찢어진 입을 만들기 위해서는 매일 1시간 반가량이 걸린다. 실리콘 재질의 특수 분장용 가루를 반죽해 찰흙처럼 만든 뒤 이 덩어리를 입 주변에 펴 바르고 그 위에 메이크업을 해 찢긴 입을 표현한다. 매일 반죽과 성형, 화장을 해야 하기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 참고로 ‘시라노’의 코는 배우 얼굴의 본을 떠 가벼운 폼 재질로 성형한 뒤 채색해 만들었다. ‘노트르담 드 파리’의 카지모도 머리는 석고팩에 물감을 섞어 머리에 바르고 손으로 하나하나 꼬아서 만든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여왕 앞에 선 그윈플렌. 그는 귀족들에게 가진 것을 나누고 자비를 베풀라면서 “그 눈을 뜨라”고 외친다. 하지만 여왕과 귀족들은 코웃음 치며 조롱할 뿐이다. 이 ‘그 눈을 떠’가 끝나고 광기와 분노에 사로잡힌 그윈플렌의 ‘웃는 남자’가 이어진다. ‘오만한 것들 지들이 최고라 떠들어 대/분노한 신께서 나 같은 괴물을 만든 이유’라며 으르렁대는 모습에 압도되는 느낌이 든다.
그윈플렌 역은 가수 박효신과 EXO 수호, 뮤지컬 배우 박강현이 맡았다. 우르수스 역은 정성화와 양준모, 조시아나 공작부인 역은 신영숙과 정선아가 맡아 가창력을 뽐낸다. 박효신과 수호야 팬층이 워낙 탄탄하지만, 2015년 데뷔한 뮤지컬 배우 박강현은 종합편성채널 프로그램 ‘팬텀싱어2’ 준우승팀(미라클라스) 소속이었다는 사실을 모르면 낯선 얼굴이다. 그러나 조승우를 닮은 외모에 무대를 씹어 먹을 듯한 발성과 발음이 예사롭지 않아 처음 본 사람도 반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제작진에게도 도전적인 캐스팅이 아니었을까”라고 했는데 그 도전은 성공적이었다는 말을 덧붙이고 싶다.
“부자들의 낙원은 가난한 자들의 지옥으로 세워진 것이다”는 작품을 관통하는 메시지이자 가장 유명한 대사다. 17세기 영국이나 21세기 한국이나 이 말이 먹히는 걸 보면 사회가 그리 많이 바뀐 건 아닌 모양이다. 우리가 지금 있는 곳은 낙원인가 지옥인가. 웃는 남자는 삶의 끝에서 진정으로 웃었을까.
※관객이 공연장에서 작품과 배우를 자세히 보고자 ‘오페라글라스’를 쓰는 것처럼 공연 속 티끌만 한 디테일도 놓치지 않고자 ‘오타쿠글라스’를 씁니다.